그 중에서 ‘유진오·행정연구위원회 공동안’을 원안으로 하고 ‘법전기초위원회에서 제출한 헌법초안’ 일명 권승렬안을 참고안으로 하여 헌법 초안을 작성하기로 결정했다.
‘유진오·행정연구위원회 공동안’은 헌법기초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유진오가 작성한 헌법 초안과 행정연구위원회 헌법 초안을 합친 것으로 국회 개원일인 5월 31일에 제출됐다.
권승렬안이라 부르는 헌법 초안은 6월 3일 헌법기초위원회 개회 때 새로 제출된 것으로 유진오의 헌법안과 큰 차이가 없었다.
국회 본회의에 상정할 헌법 초안은 6월 22일까지 모두 16차례의 회의에서 논의한 끝에 최종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는 내각제 헌법안을 대통령제로 바꾼 것이다.
당시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이승만의 주장이 중요했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긴 했지만 대통령의 국회에서 선출, 임기 4년, 중임 1회 제한 등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내각제적 요소를 상당히 남겨두었다.
헌법 초안은 유진오-행정연구위원회 공동안과 권승렬안 외에도 국내에서 제정된 헌법 및 서구 각국의 헌법들을 광범위하게 참조해 완성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제헌헌법은 해방 이후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제정된 것도 아니요, 미국의 영향 아래 제정된 것도 아니었다.
개항으로 유입된 근대 입헌주의 사상을 수용하고 세계 각국의 헌법을 다각도로 연구했다.
또 그것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헌법으로 수정하면서 이루어낸 역사적 산물이었다.
해방을 맞이한 8월 15일을 새 정부 수립 선포일로 정해 놓았기 때문에 국회는 헌법 초안이 넘어온 다음 날인 6월 23일에 본회의를 열고 헌법안을 심의했다.
본회의에 상정된 헌법 초안은 의원들이 조문 하나 하나를 다시 심의하여 최종 결정했다.
이 모든 과정은 7월 7일까지 마무리됐다.
7월 12일에는 그동안 심의한 내용을 정리하고 자구를 수정했다.
그리고 결정된 헌법안을 낭독한 후 헌법안에 대한 확정을 기립으로 결정하기로 했는데, 국회의원 전원이 기립하여 동의를 표시했다. 이로써 국회는 대한민국 헌법을 확정했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수립의 토대가 되는 헌법이 전 국민에게 공포됐다.
그리고 헌법이 정한 법규에 따라 1948년 8월 15일, 대통령 중심제를 기반으로 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정부가 합법적으로 출범했다.
이와 같이 많은 논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을 신속하게 제정할 수 있었던 것은 자주독립 국가를 수립하고자 하는 제헌국회의원들의 강한 의지와 오랜 기간에 걸친 준비 덕분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제정된 제헌헌법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물론서구의 앞선 헌법 규범 등의 영향을 받아 국민기본권을 상대적으로 잘 보장한 헌법이었다.
가령 신체의 자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의 자유권을 다양하게 보장했고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해당하는 법 앞에서의 평등, 즉 기회의 평등 역시 제헌헌법에서 보장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제헌헌법은 재산권과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고,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등 사회주의적 특징을 보여주는 조항도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가령 시장경제의 근간인 재산권은 보장되고 있지만, 공공 필요에 의해 재산권은 제한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경제적 자유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고 했다.
더욱이 광물 등 중요한 지하자원은 국유화하고,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고 했다.
제헌헌법은 교육과 노동 등의 사회권도 중요하게 보장했다.
교육권에서는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했고 초등교육은 무상 의무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명시했다.
노동권에서는 영리 목적의 사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인정됐다.
당시 사회 현실과 정치 상황을 반영해 사회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고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제헌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출범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그러나 제헌헌법은 1952년 제1차 개정 이래 총 9차례의 개정이 이루어졌다.
헌법을 개정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으므로 헌법 규범 역시 그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의 필요에 따라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하거나 경제발전에 맞춰 시민들의 인권 의식이 향상되는 것과 같이, 현실 변화에 맞춰 헌법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에서 헌법을 개정하는 경우도 있다.
통치기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심지어는 정권을 연장하려고 헌법을 개정하는 사례도 있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현실이 변하여 그에 맞게 개정하기도 했지만, 헌법을 개정한 보다 직접적 계기는 정치적 이유였다.
가령 집권자의 정권연장을 목적으로 추진한 개헌은 제1차, 제2차, 제6차 개헌, 모두 세 차례였다.
제1차 개헌은 6.25전쟁으로 피난 중이던 1952년 7월, 부산에서 이루어졌다.
반대세력이 다수를 점한 국회에서 대통령 당선이 불가능해진 이승만이 직선제 개헌을 관철시키고자 개헌을 한 것이었다.
개헌 정족수를 충족시키지 못해 ‘사사오입 개헌’으로 추진된 제2차 개헌은 1954년 11월에 이루어졌다.
이 개헌의 중요한 배경은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제한 규정을 철폐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연임의 길을 열었고, 대통령 궐위 시에 부통령이 그 지위를 승계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여 자유당의 장기집권을 도모했다.
1969년 10월에 추진된 제6차 개헌 역시 ‘1차에 한해 허용한 중임 규정’을 개정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3기 계속 연임을 허용하려고 이루어졌다.
한편, 집권세력이 교체되거나 통치 구조를 강화할 목적으로 개헌을 추진한 경우도 다섯 차례나 됐다.
이 경우 헌정체제의 변화가 수반됐다.
3.15 부정선거로 이승만 정부가 무너지고 허정 과도정부 하에서 1960년 6월에 추진된 제3차 개헌은 대통령제의 폐해를 해결하고자 정부형태를 의원내각제로 변경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군사정부 하에서 1962년 12월에 추진된 제5차 개헌은 정부형태를 다시 대통령 중심제로 변경했다.
제7차 개헌은 국내외 정치·안보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강력한 국가 권력구조의 확립이라는 목적 아래 1972년 12월에 이루어졌다.
이 헌법은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고, 비상조치권 등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했으며, 국민기본권의 실천을 크게 제약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제8차 개헌은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 이후 국가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정부 하에서 1980년 10월에 이루어졌다.
이 헌법에서는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간선하도록 변경했으며 임기를 7년 단임으로 개정했다.
제9차 개헌은 전두환 정부의 권위주의 통치에 반발해 대통령 직선제 등을 열망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여 1987년 10월에 이루어졌다.
우리 헌정사 최초의 여야 합의로 이루어진 개헌이었다.
40여 년 동안 평균 5년마다 한 차례씩 헌법을 개정했지만 현행 헌법은 1987년 개정된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역대 최장수 헌법이다.
1987년 헌법의 의의는 국민 기본권의 실질적 강화와 민주주의 발전에 있다.
통치구조에서는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채택하여 평화적인 정권교체와 민주주의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국정감사권을 다시 부활시켜 국회의 권한을 강화해 국가 권력의 균형과 조화를 도모했다.
또한 국민 기본권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국민 기본권은 제헌헌법에서부터 계속 개선되어 왔지만, 1987년 헌법에서 그 실효성은 눈에 띄게 개선됐다.
가령 신체의 자유가 크게 개선되어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서는 처벌할 수 없으며, 타인의 범죄로 피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국가 구제조항을 신설했다.
게다가 최저임금제, 노인·청소년 복지, 환경권 등 사회적 기본권 조항을 신설했고, 인권침해를 구제하려고 헌법소원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를 설치하는 등 국민기본권도 대폭 개선됐다.
국가의 근본법이자 최고 법규인 헌법.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기본 가치를 공유하게 하며 우리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대한민국 헌법!
대한민국은 헌법이 제정되기 이전부터, 개항을 계기로 도입된 입헌주의사상을 바탕으로 민주공화제 통치 구조를 정착시켰고 국민 기본권 이념을 수용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헌법의 토대를 이룬 제헌헌법을 제정했다.
제헌헌법에서부터 지금의 헌법에 이르기까지 총 아홉 차례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는 집권자의 정권 연장이라는 정치적 동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국민 주권과 기본권이 발전하는 과정이었다.
국가와 사회의 안정을 보장하고 국민의 행복한 오늘과 희망찬 내일을 보장할 기본 문서.
보다 나은 삶을 향해,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일상생활의 규범.
그것이 바로 헌법이며, 대한민국 헌법의 존재 이유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