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우리 삶에서의 사랑과 죽음의 무게-
강계열 할머니와 조병만 할아버지의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아내와 같이 보았다. 아는 이들과 우르르 몰려가 함께 보려고 했는데 조조 상영분 자리가 마땅치 않아 우리 부부만 그 영화를 보았다. 76년을 함께 사셨다는 분들이 아직도 연애하는 감정이 식지 않은 듯했다. 개구쟁이의 감성을 그대로 지녀서 봄에는 꽃으로, 여름엔 물장난, 가을엔 낙엽, 겨울엔 눈싸움으로 장난기와 티격태격에 끝이 없었다.
기르던 강아지 ‘꼬마’가 죽어서 땅에 묻고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는 생각이 많다. ‘꼬마’가 앞장서 갔고 머지않아 할아버지도 갈 것이고 자신과 ‘공순이’가 남겨졌다 자신도 갈 것을 안다. 할머니는 시장에서 떠나간 자식들의 내복을 여섯 벌을 산다. 세 살, 여섯 살에 잃어버린 육남매, 그 어려웠던 시절 내복 한번 사 입히지 못하고 보낸 자식들이 마음에 걸려 저 세상에서라도 입혀보고 싶은 것이 어버이 마음이다. 철없는 자식들은 어머니 생일이라고 찾아와서 서로를 원망하며 싸워대고 어버이는 돌아서서 눈물을 흘린다.
할아버지 바튼 기침은 잦아지고 가슴은 답답해 비오는 날도 문을 열고 지낸다. 집 안팎의 풍경들은 단출하고 노부부의 한복색깔은 눈부시게 고와도 이야기의 흐름은 아릿해진다. 병원에서도 나이가 많아서 약도 효과가 없으니 모셔가서 편하게 지내게 하시라는 얘기를 전화로 전하는 목소리도 서글프다.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인간의 감정은 서로 비슷하다. 새끼를 낳고 훌쭉 여윈 공순이를 보며 뼈와 가죽만 남았다고 가엾어 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자식들을 길러낸 마르신 부모님이 연상되는 것은 제대로 보살펴 드리지 못한 자식들의 서글픔이다.
깊어가는 병환에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빛 고운 옷들을 아궁이를 통하여 저승으로 먼저 보내드린다. 겨울, 봄옷도 가려 입을 줄 모르는 할아버지를 걱정하면서 와서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한탄한다. 함께 했던 76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할아버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홀로 건너고 마을에는 무덤하나 생겨난다. 눈 쌓인 길을 밟고 무덤에 찾아가 눈사람 만들어 세워놓고 보고 싶어도 참으라고 혼잣말하고 돌아서 내려오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주저앉아 흐느껴 운다.
죽음이 있어서, 헤어짐이 있어서 사랑이다. 한없이 함께 할 수 있으면 오늘 잘 해주지 못하면 이다음에 잘 해주면 되지만 언제 강을 사이에 두고 헤어질지 모르니 오늘 서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무엇 때문에’ 가 아니라 함께 함이 사랑이고 정(情)듦이다. 더구나 크게 이루는 일 없어도 서로 아끼며 오랜 세월 함께 함이 큰 사랑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물었었다. 강아지들을 목사님네 집에 갖다 주냐고, 할아버지는 갖다 주라고 하면서도 지금이 아니라 키워서 나중에 갖다 주라고 한다. 할머니에게 강아지들이라도 친구가 되고 의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으리라.
할머니는 이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 할아버지와의 오랜 추억을 되새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리라. 화장실밖에 서서 노래를 불러주던 할아버지, 머리에 꽃을 꼽아주며 ‘곱다’, ‘예쁘다’를 반복하던 일, 무릎이 아프다고 ‘호오’ 불어주던 그 숨결, 자다가도 쓰다듬어 주던 그 손길을 생각하며 할아버지와 만날 날을 기다릴 것이다.
머지않아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건넌 강을 건너가게 되리라.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니까. 그리고 세월과 함께 노부부의 흔적들이 점점 사라져 빨래하는 할머니에게 던진 할아버지의 돌이 만들어낸 물결이 없어지듯이, 서로를 흉내 내 만든 눈사람이 녹아 버리듯,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 날이 오리라. 그 때에도 76년을 힘께 하고도 석 달만 더 살기를 바라며 ‘그 강을 건너지 말라’ 고 아픈 마음으로 눈물짓는 커다란 울림의 ‘참사랑’을 사람들은 기억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첫사랑’을 회상하면서 이 노부부의 사랑을 ‘끝사랑’이라고 부른다. 조금 더 생각하면 이분들의 사랑은 ‘온사랑’ 이다. 처음부터 끝까지를 한 줄로 뚫고 가는 사랑의 모든 것이다.
앞날을 장담할 수 없기에 오늘 하루를 마음 다해 서로 아껴주며 살아야 한다. 84분이 지나고 영화가 끝나도 많은 이들이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시대에도 참사랑의 본보기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몸과 마음이 훈훈해 진다. 모두가 가슴 먹먹한 감동을 품고 가리라. 그래도 복잡한 일이 너무 많아 모든 것을 쉽게 잊는 현대인들에게 감동이 오래가지 않을 수 있으니 이런 마음 따듯한 영화나 책, 아니면 노래라도 주기적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겨울 속에 참 따사로운 날이다. 영화관을 떠나는 이들에게서 온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첫댓글 변두리님! 덕분에 영화를 감상한 듯 노부부의 사랑이야기, 인생길의 애환의 노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름답게 사는 법, 애틋하게 사는 법, 정겹게 사는 법을 배웁니다. '님아! 그 강을 함께 건너가자'고 혼잣말을 중얼거립니다.
변두리선생님 참사랑 이야기 정말 가슴을 울립니다. 우리도 사랑하며 마지막 그 날까지 노력할며 살 수 있을 까요?
사랑하면서
저도 손녀, 며느리, 나 삼대가 가슴 먹먹한 사랑을 보았습니다. 늙은 가죽 속에도 소년의 사랑이 꽃이 되어 피고 있음에 용기가 나더군요. 나도 남은 날을 그렇게 살다가리라 다짐 했지요.
저도 그 영화를 보고 '내 안에 또 다른 나'란 주제로 글을 써 보았습니다. 선생님 잘 읽고 갑니다.
'머지않아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건넌 강을 건너가게 되리라.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니까.
그리고 세월과 함께 노부부의 흔적들이 점점 사라져 빨래하는 할머니에게 던진 할아버지의 돌이 만들어낸 물결이 없어지듯이,
서로를 흉내 내 만든 눈사람이 녹아 버리듯,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 날이 오리라..."
님아 그강을 건너지마오...참, 제목부터 감동입니다. 감상 잘했습니다.
백수 광부(白首狂夫)의 아내가 지었다는 고대 가요. 백수 광부가 강을 건너다 죽자, 슬픔에 빠진 그의 아내가 이 노래를 부르며 남편을 따라 강물에 빠져 죽었다는 설화, ~~ 에서 유사한 부부의 사별곡,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제목은 여전히 새롭습니다.
영화를 보았지만 이렇게 자상하게 나열하시니 또 감동이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