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환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 2. 막고굴 254굴의 본생담

[박정근]

오동환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

2. 막고굴 254굴의 본생담

구도의 결기, 중생 향한 자비 위에 다져진다

비둘기·굶주린 호랑이 살리려 목숨 던진 전생 극적으로 구성

시각적으로 함축된 본생도 보며 정진 의지 각인토록 이끌어

막고굴 254굴 북벽 시비왕본생도(사진 위). 중생을 상징하는 비둘기를 오른손으로 받쳐들고 시무외인을 한채 살을 내어주는 장면에서 견고한 자비심이 느껴진다. 254굴 남벽 살타태자본생도(아래). 극단의 보시와 슬픔의 대조는 칠보탑으로 승화된다.사진 제공 돈황연구원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 흥법을 위해 자신의 목을 칠 것을 주청하는 이차돈에게 법흥왕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자기 살점을 도려내고 몸뚱아리를 저울질하였고, 일곱 마리 짐승을 가엽게 여겨 스스로 피를 뿌리고 목숨을 끊는다 하였다. 나의 뜻은 백성들을 이롭게 하고자 함인데, 어찌 죄 없는 그대를 죽인단 말인가?” 법흥왕의 애민(愛民)과 흥법에 대한 고심을 잘 드러낸 이 비유는 대표적인 본생(本生: 석가모니 부처님의 과거세 행적) 이야기로, 돈황석굴의 벽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북위시대(386-534)에 건설된 막고굴 제254굴은 중앙에 탑모양의 기둥을 중심으로 설계된 중심탑주 형식이다. 주실의 북벽과 남벽에는 각각 시비왕 본생도와 살타태자 본생도가 그려져 있다. 각 벽화는 한 화면에 여러 장면들이 담겨있다. 이런 형식은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작품들이 주로 단일 화면에 단일 장면을 표현한 것과 확연이 다르다.

그렇다면 이 복잡한 화면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먼저 북벽의 시비왕 본생고사의 화면을 보자. ① 중앙에 단좌한 시비왕의 우측 위로 하얀색 매가 초록색 비둘기를 쫓는 장면이 보인다. 이것은 제석천과 비수갈마가 매와 비둘기로 변신하여 시비왕의 보살도를 시험하는 것이다. ② 시비왕은 비둘기를 보호하듯 오른손 위에 두고, 왼손은 시무외인을 취한 채, 평정한 얼굴로 눈을 지긋이 내려뜨고 있다. 왼쪽 다리 앞에는 도수(刀手)가 웃통을 벗은 채 칼로 왕의 다리에서 살을 베어내고, 도수의 다리에는 하얀 매가 희미하게 보인다. 비둘기를 살려주는 대신 비둘기의 무게와 같은 생고기를 요구하는 매에게 시비왕이 자신의 살을 내어주는 장면이다. ③ 도수와 대칭한 맞은편에는 세 명의 후궁이 눈앞에 펼치지는 처참한 광경에 왕의 오른다리를 부여잡고 슬픔과 공포로 오열하고 있다. ④ 도수의 오른쪽에 하얀색 관모를 쓴 자가 저울을 들고 무게를 재고 있다. 제석천의 술수로 아무리 살을 베어내도 비둘기의 무게에 미치지 못하자, 마침내 시비왕이 자신의 남은 몸을 모두 내주어 저울 위에 걸터앉고는 손을 모아 서원을 세운다. ⑤ 이때 천지가 진동하며 화면 상단에는 비천들이 하늘꽃을 뿌리며 공양하고, ⑥ 그 아래 보살(시비왕)의 양쪽에는 색계의 천신과 사람들이 모여 보살을 칭송한다.

화공은 여기서 이야기 주인공을 화면 중심에 두고, 여러 장면을 대칭 구도로 구성했다. 이런 형식은 내용의 서사성을 높이고, 각 장면을 대비시켜 주제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킨다. 이후의 시기에 등장하는 경전 변상도에서 이러한 기법은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다음으로 마주 보이는 남벽의 살타태자 본생도를 보자. 마찬가지로 다수의 장면으로 촘촘히 조합된 화면은 중심에서 시작해 시계방향 순서로 장면이 전개되는 특징을 갖는다. ① 중앙에 산악을 배경으로 세 인물이 아래를 내려보고 있다. 이들은 산으로 외유(外遊) 나온 살타 왕자와 두 형으로, 벼랑 아래에 굶주린 어미 호랑이가 갓 나은 새끼들을 두고 아사직전에 있는 장면을 목도하였다. ② 바로 오른쪽에서 살타태자가 옷을 벗고 거꾸로 떨어지고 있다. 살타태자가 자비심으로 호랑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형들을 먼저 보낸 후 벼랑에서 몸을 던진 것이다. ③ 다시 오른쪽에는 기력이 쇠해 차마 몸을 뜯어 먹지 못하는 호랑이를 위해, 살타태자가 날카로운 나뭇가지로 목을 찔러 피를 내는 장면이다. ④ 이어진 아래 화면에서 피를 마시고 기운을 차린 호랑들이 살타태자의 몸을 포식하고, 어미 호랑이의 두 눈은 매섭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⑤ 뒤늦게 동생을 찾아온 두 형이 호랑이에게 다 뜯어 먹히고 남겨진 뼈를 수습하면서 황망함과 비탄에 빠진 장면이 이어진다. ⑥ 좌측에는 머리를 움켜쥐고 통곡하는 부왕의 모습이 보이고, ⑦ 우측 대각선 상단에 왕비가 아들 시신의 머리를 받들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다. (여기서 화공이 이미 백골이 되어버린 살타태자의 시신을 온전한 모습으로 배치하였다.) ⑧ 좌측 상단에 살타태자의 뼈를 모아 세운 칠보탑 주변에 비천들이 공양하고 있다.

살타태자 본생도는 시계방향으로 휘돌며 전개되는 극단적 보시와 비극의 장면들을 통해 서사의 주제를 뚜렷이 부각시킨다. 특히 중앙의 살타태자는 통견의 복장을 한 채 내려다보는 하나의 도상으로 벼랑 아래 호랑이를 보는 살타태자와, 환생한 도솔천에서 내려와 부모를 위로하는 천인(天人)으로서의 살타태자, 그리고 이러한 과거생의 인연을 설하고 있는 부처님을 중의적으로 표현했다. 장면의 극단적 대립은 화면의 칠보탑에서 승화되고, 다시 석굴 중앙의 중심탑으로 전이된다.

254굴은 위의 두 본생도 외에도, 석가모니 항마변, 석가모니의 이복동생 난타의 출가인연도, 천불벽화, 도솔천의 미륵보살상, 하생 미륵불상, 선정하는 석가모니불상 등의 내용이 수행관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어, 좌선을 중시하는 북위불교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석굴에 들어선 예배자는 시각적으로 함축된 본생도들을 보면서 구도의 결기를 다진다. 그러나 그 결기가 오직 수행에만 천착될 경우, “세상일에 간여하지 않고”, “좌선고행”을 우선시하는 북위 불교교단의 폐단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나(살타태자)는 흔들리지 않는 대비심으로 버리기 어려운 것을 버리며, 보리를 구하여 지혜 있는 이의 찬탄을 받으며, 삼계의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고 죽는 무서움과 모든 번뇌를 끊으려 하노라.”(‘금광명경’) 구도의 길은 중생에 대한 견고한 자비 위에서 다져지는 것, 이것이 무수한 본생담에서 강조하는 요의이다.

막고굴의 본생담은 북량에서 수대에 걸친 200여년 간 50폭에 가까운 벽화로 조성될 정도로 크게 유행했다. 당 통일제국이 들어서고 경제와 사회가 안정되면서 본생담은 대승불교사상을 반영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중생의 불성과 이상적 정토를 설하는 대승경전의 변상도에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1618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