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톄 百億 世界예 化身ᄒᆞ야 敎化ᄒᆞ샤미 ᄃᆞ리 즈믄 ᄀᆞᄅᆞ매 비취요미 ᄀᆞᆮᄒᆞ니라
부처님이 백억 세계에 화신하여 교화하심이 달이 일천 개의 강에 비치는 것과 같으니라.
《월인석보(1459)》에 실린 월인천강지곡 제1 주석 中
세존일 여쭈리니
만리밖의 일이오나
눈에 보는가 ~여기소서
세존일 여쭈리니
천 년 전 말이시나
귀에 듣는가 여기 소셔~
오셔도 오신 바 없음은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춤이요
가셔도 가신 바 없음은
허공이 천하에 나뉨이라~
https://youtu.be/VZsis7woePU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해 남편이 지은 찬불가 형식의 천도재 노래이다. (불교에서는 천도재를 쓸때 재로쓴다.) 아내를 위한 진혼곡, 레퀴엠 형식의 글이다.
남겨진 자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절대 권력의 남자라면 얼마나 더 낭만적일까? 남겨진 자가 위대할수록 떠난 자가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달빛 서린 인도 타지마할, 세계 최고 절대권력의 끝판왕샤자한이 아내 마할을 위해 지은 묘가 더 처절하게 마음에 와닿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최초 금속활자로 쓰인 한글 노래이다. 천 개의 강에 달빛이 비친다는 이 노래는 누가 누구를 위해 쓴 것이며 왜 쓰인 것일까?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제목만으로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글이다.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왕 세종이 그의 아내인 소헌 왕후를 위해 은밀하게 써 내려간 글이다. 마치 금주령이 엄한 시대에 지아비를 위해 몰래 밀주를 담근 아내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흉년이 들자 나라에서 술 담그는 것을 엄격하게 금했다. 외할머니께서 몰래 밀주를 담그고 장작이랑 솔가리로 덮어 두었다. 밤마다 비밀리에 외할아버지께 술을 퍼오던 내 임무는 대한민국의 마타하리가 된 기분을 주었다. 금주령이 언제나 실패하듯이 금지된 종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불교가 엄격하게 금기시되었던 조선초기에 세종은 자신이 나쁜 왕이라고 직접 말하며 아내를 위해 써내려 갔던 글이다. 그는 스스로가 멋진 왕보다 좋은 남편이길 원했으나 아내는 떠나고 없었다.
세종은 왕이었음에도 아내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미안함에 애통해했다. 아내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직접 지은 찬불가이다.
아름다운 선남선녀는 어린 나이 (세종 12세 )에 결혼해 일생을 함께했다. 함께함으로 행복했지만 백성의 남자를 남편으로 둔 이유로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아내 심 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늦게나마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수백 년이 흘러 흘러 내 가슴을 적시는 노래이다. 어쩌면 대왕께서는 다음 생애에도 아내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불교를 끔찍하게 규탄했던 조선초기에도 남편은 왕이라는 직책보다 한 남자로서 아내가 보고 싶어서 580편의 노래를 써내려 갔다. 자신이 왕이 됨으로 아내는 친정아버지의 사형과 어머니, 친인척이 관노비가 되어야만 했던 끔찍함을 견뎌야 했다. 어떤 누구도 이런 상황에서 왕비로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힘들지 않은 삶이 있을까? 왕비여서 더 행복하진 않았을 것이다. 수십 번 어쩌면 행복과 작위를 등가교환하고 싶었을 것이다.
기독교의 원죄, 불교의 업을 믿고 싶지 않았다. 삶이 힘드니까 저절로 믿게 된다. 종교를 초월해 아내를 그리워한 세종의 레퀴엠이 가슴을 뜯는다. 태어난 게 죄이고 업이라는 불교의 교리가 새삼 이해가 된다.
사랑에 점수나 등급을 줄 수는 없지만 세종은 위대한 왕이자 소헌왕후를 진심으로 그리워한 사랑꾼 남편임에는 틀림없다.
진정한 사랑은 헤어져 봐야 아는 것이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엔 언제나 계산만이 남는 요즘 꼭 되 돌아봐야 할 일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첫댓글 내 딸 온이의 무서운 필력.
온이야 잠도 푹 자거라.
난 네 건강 때문에 걱정이 크다.
너는 내게 무서운 딸이다.
문학사랑 문우 여러분,
내 딸 온이의 필력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온이의 별명은 '두부 한 모' 입니다.(아버지는 둘이요, 엄마는 하나)
아버지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