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밤새 안녕이라는 것, 쥔장과는 거리가 먼 말이요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어
그 말이 그렇게 현실감 있게 다가올지 몰랐다.
지나간 또 하루가 이틀째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요
착찹하기 그지 없다.
잦은 일은 아니나 간만에 벽난로의 재를 버리자고 들면 그 날리는 재의 먼지 때문에
반드시 온 집안 대청소를 하여야만 해서 아직은 쌀쌀한 아침 기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창문이라는 창문은 죄다 열어 젖히고 봄맞이 대청소를 겸해 청소기를 돌리다 보니
점심이 늦었다.
막 한 끼를 해결하고 설겆이를 마치자니 문자가 날아든다.
무심히 전화를 열어 본 순간 쿵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많이 편찮으십니다. 아침 아홉시부터 일산병원 응급실에 와있습니다.
검사 결과 대장에 천공이 생겨 개복 수술을 하셔야 하며 대장의 일부를 절제하는 개복 수술을 하여야 한답니다.
오늘 중에 수술을 할 예정입니다. 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정신없이 도련님이 보낸 문자 메시지 몇 자를 읽었건만 눈으로 저장된 일산병원과
입으로 말하는 원자력 병원이 혼동된 채 여보오 여보오 허둥지둥 서방을 찾았다.
마침 점심 먹고 나가려던 참이라 느긋하게 집에 있던 신선에게 문자 메시지를 전하는데 참내 횡설수설이다.
그러나 동시다발로 전해진 메시지 인지라 서방의 핸폰에도 문자가 와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들여다 보지를 않고 쥔장이 전하는 말만 듣고 마음만 급하다.
그리고 둘 다 허둥지둥 병원으로 갈 준비를 하는데 서방의 얼굴이 비장하고 차를 운전하는 내내
"도대체 왜 원자력 병원으로 가신거지? 일산에도 원자력 병원이 있던가? 아니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가지
서울까지 오신건가? 알 수 없네...정확히 어딘지 전화를 해봐."
다시 한 번 문자를 들여다 보았다.
"아니, 여보 일산병원이야 일산병원 응급실이래...."
정말 미치고 환장하게도 또 눈으로 읽는 것과 입으로 말하는 것이 다르게 나와 서방에게 다른 병원을 알려주고 만 것이다.
지난 번에도 동창회 건으로 곤욕을 치른 기억이 있다.
그거야 그렇다 치고 지금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거늘 그런 실수가 가당키나 한 말이던가 싶어 한심스러웠지만 어쩌겠는가.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제 멋대로 읽고 저 보고 싶은대로 보고 제가 저장하고 싶은대로 기억하는 머리 저장 능력이 퇴보하는 것을.
좌우지간 부리나케 달려가는 동안에 벌써 수술실로 향했다는 소식이 오고 헐레벌떡 중앙수술실 앞으로 달려가니
그 시간이 가능한 피붙이들이 모두 모여서 근심 어린 표정으로 앉아 있어 분위기는 무겁기 짝이 없고
가장 먼저 시어머님의 연락을 받은 동서는 앵무새 마냥 새로 도착하는 자식들에게 일일이 상황 설명을 하느라 입이 마른다.
당연히 설날엔 온 가족 앞에서 의기 충천이요 여전히 쥐락펴락이셨으며 그 강력한 리모콘 딱딱 누르며
내 앞으로 헤쳐 모여의 위상을 보이시며 가득한 자녀들의 사랑을 받던 분이시고 시어머니의 피붙이까지 모두
찾아와 인사를 받았음은 물론이요 증손주들에 외 증손주까지 모두 발길을 놓았으니 다복 그 자체가 아니셨던가 말이다.
들은 바에 의하면 그 전날엔 퇴근한 외손녀가 재롱삼아 외할머니 댁에 들러 함쎄 밤 아홉시 까지 먹고 마시며
즐겁게 담소를 나눴고 밤새 흐뭇하게 잘 주무시고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거뜬히 식사를 하신 후
음식물 찌꺼기를 버리러 일층으로 내려가셨다가 갑자기 배가 아파 나뒹그러지시는 와중에도
근처에 사는 막내 며느리에게 전화를 하셨던 것.
그야말로 밤새 안녕인 게다.
그렇게 정정하시고 강단있고 건강하시던 분이지만 워낙 태생의 기초 체력 부실은 못 면하셔서
늘 스스로 체력을 키우던 그런 분이셨다.
당당하게 5년 째 홀로 된 삶을 살면서 88세이신 시어머님께서는 아들네 집은 물론이요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시고 일산 호수 공원 돌기는 기본이던 그런 분이시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원래도 명절 끝에 음식을 과하게 먹자고 들면 내장 기관이 반란을 일으킨다고 했다.
하물며 나이든 분들의 내장은 더더욱 버거움을 감당치 못해 내장 기관이 얊아지기 마련이니 과식할 일이 아니나
어쩌다 보니 다들 식탐에 빠져 허겁지겁 음식을 먹게 되는 것, 어쩌겠는가.
그러다 보니 나이 든 분들은 방귀만 힘줘서 뀌어도 내장에 천공이 생기는 것이라고 시아주버님께서 말씀 하셨다.
그러나 그냥 천공이 문제라면 간단한 일이지만 그 천공이 문제가 되어 섭취된 음식물이 내장기관을 돌아다니고
피를 통해 다른 기관까지 전달되면 그야말로 패혈증에 이르러서 사망하게 된다는 의사의 전언이고 보면
이젠 식탐도 버려야 할 듯.
그래서인지 어제 병원에는 노인들로 가득했고 수술실도 대 만원이라 혼잡 그 자체였으나 다행히 시어머님의 수술은
제 시간에 시작되었고 관계 되시는 분들의 극도의 배려와 친절로 이뤄졌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연세가 있으시고 워낙 혈압이 낮아 미처 수술을 다 하지 못하고 그냥 덮었다는 것과 그 밑에 또 다른 소견이 보인다는 것.
그러다 보니 수술은 했으되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일단은 중환자실로 이동되어 계신 시어머님.
간신히 면회를 하였지만 의식 없이 인공 호흡기를 장착한 채로 누워 계시는 모습만 보고 뒤돌아 나오는데
눈물과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엊그제도 정정하신 목소리로
"야야, 네 생일을 내가 잊었다. 꼭 설날 끝이라 네가 제대로 챙김을 못받는구나. 미역국은 끓여 먹거래이.
너도 며느리를 봐야 대접을 받는건데...애비랑 맛있는 것 사먹으래이"
그러셨건만 어쩌자고 저렇게 덜컥 누워버리시고 아무런 의식의 동요가 없으신지 안타까워 애면글면하여도
오늘의 오전 면회시간에 먼저 들여다 보게 될 피붙이들로 부터 소식을 듣게 될 순간이 두렵긴 하다.
하루에 두 번 면회, 중환자실의 풍경은 썰렁하기 짝이 없다.
수술 되어진 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채로 끝나진다면 회복실이 아니라 중환자실로 보내어져
간호원들의 손에 의해 환자들의 목숨이 유지된다.
시아버님도 그랬고 친정아버지 또한 그 과정을 거쳐 가셨다.
그러나 시어머님 만큼은 아직 생명을 놓을 때가 되지 아니하셨다는 이유로 중환자실을 나와 일반 병실로
옮겨지시길 희망한다.
그래도 집안의 대들보로 존재하시던 시어머님이 아니시던가 말이다.
마음을 다해 쾌유를 빌어보지만 의술에 의지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지금 현재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듯.
그저 소생의 기운만 바랄 뿐이다.
입춘이 지나고 봄의 기운이 들어서는 길목이다.
시어머님의 생명도 그러하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래본다.
첫댓글 노인의 내일이란 장담할 수 없는 거라더니... 마음의 편치 않음이야 안보고도 알겠습니다
이럴 때일 수록 가족들이 기운내고 계셔야 하니, 든든한 끼니를 꼭 챙겨 드시어요
아,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늘 활기 차고 관심도 많으셔서 오래도록 건강하게 잘 계시겠구나 했더니 웬일이신지.
암튼 모두가 간절함으로버티고 있답니다.,
남편에게 27년여 이런저런 가르침과 무엇보다 좋은 영성 지도를 해 주셨던 김 영운 목사님도
갑자기 쓰러지셔서 검사해 보니 뇌암 판정을 받으셨고 한양대 교목으로 계셨기에 뇌수술을
권하는 대로 했다가 지난 수요일 그만 소천하셔서 어제 문상다녀왔네요.
내일이 발인인데 너무 서운해 푼수스럽게 울까봐 못가겠네요. 남편만 가게하려는데 서운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노인은 하루 앞을 말할 수 없다더니 정말 그러네요~! ㅜㅜ ㅜㅜ
말씀으로 많이 듣던 그 목사님도 그러셨군요.
그런데 뇌 수술은 정말 함부로 할 것이 못되는 것 같아요.
쥔장의 올케 역시 뇌수술 하자는 것을 남동생이 거절하고 버텨 약물과 대체의료학으로 견디어온 1998년 이후로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제도 일산병원에서 뇌수술 환자를 보았는데 그냥 혼수상태더라구요.
소생 가능이 없다며 병원에서 거절했는데 가족이 우겨서 그만 68세의 어머니가 절명 순간이더라구요.
강하게 마음 먹읍시다.
저도 연로하신 엄마를 모시고 살고 있지만 정말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맞는거 같아요..ㅠㅠ 그저 잘 회복 되시길 빌어요
늘 관심 갖고 들여다 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늘 돌발상황이니까요....고맙다는.
정말 아슬아슬합니다.
다행히 가까스로 회복하셨다는 소식을 기다려봅니다.
어젯밤 늦게 돌아온 남편의 말에 의하면 혼수상태는 벗어나 의식은 있으시나 뉸으로 의사 소통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직은 인공 호흡기를 사용 중이시고 혈압을 유지시켜 패혈증세를 잡는 것이 관건이며 나머지는 추후에 살펴볼 일이라고.
그동안에 별 일 없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나눠 주시는 걱정에 고마워 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 엄마도 88세에 돌아가셨는데...
가슴이 뻐근하게 아픕니다.
아직은 더 사셔도 좋을 연세시니
그리고 그렇게 건강하셧다니 회복되실 거에요.
아, 그러셨군요...그래도 오래 어머님과 함께 하셨네요.
제 어머님은 2000년도 75세에 돌아가셔서 참으로 아쉬웠답니다.
시어머님의 의식은 회복되셨으나 계속 주무시기만 합니다.
상황만 지켜보는 답답한 마음.
빠른 쾌유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