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수상 작가 윌라 캐더 내면의 뿌리, 황량한 초원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지는 네브래스카 소설. 작가 스스로 체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나의 안토니아>는 희박한 희망을 품고 고국을 떠나 척박한 땅에 온몸을 던져야 했던 이민자들의 삶을 담고 있다.
가장 행복한 날들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
안토니아. 황량한 초원에 심어 놓은 소년기를 끄집어내는 이름.
이제는 중년이 된 한 남자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회상한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고향을 떠나온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
그러나 거친 노동과 소외감 속에서, 그들 또한 희망을 보았고 숨을 쉬듯 사랑을 했다.
작가 스스로 체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나의 안토니아』는 희박한 희망을 품고 고국을 떠나 척박한 땅에 온몸을 던져야 했던 이민자들의 삶을 담고 있다. <네브래스카 소설>이라 불리는 거작들 가운데 하나인 이 작품을 통해 윌라 캐더는 황량한 초원에 공존하는 슬픔과 아름다움, 그 안에 내제된 인간의 고귀함과 숭고함 등을, 고통을 감내하며 묵묵히 삶을 꾸려 나가는 이민자들의 정서와 사랑에 중첩시킨다.
P.10-11
아이오와를 지나갈 때 타는 듯이 뜨겁던 그날, 우리의 대화는 그 옛날 우리 둘이 함께 알고 지냈던 보헤미아 여자아이에 관한 이야기로 자꾸 되돌아갔다. 우리가 기억하는 다른 그 누구보다도 우리에게는 그 여자아이가 바로 그 시골이고 그 상황이고 그 시절의 모든 모험을 의미했다. (……) 「이따금 안토니아에 대해 기억나는 것들을 적어. 중서부를 지나는 긴 여행에서는 객실에서 그런 걸 쓰면 기분이 좋아.」 읽어 보고 싶다고 했더니 꼭 보여 주겠다고 했다. 언제고 끝나기면 하면. 몇 달 후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 날 오후, 짐이 서류철을 들고 내 집에 나타났다. 거실로 들어와 손을 녹이면서 선 채로 말했다. 「여기 있어. 아직도 읽고 싶어? 어젯밤에 끝냈어. 시간을 들여 정리하면서 쓴 게 아니라 그 이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그냥 그대로 적어 놓은 거야. 일정한 형식도 없을걸. 아직 제목도 없는걸.」 그러고는 옆방으로 가서 내 책상에 앉아 서류철 겉장에 <안토니아>라고 썼다. 순간 얼굴을 찡그리더니 이름 앞에 한 자를 첨가했다. <나의 안토니아>. 그러고는 비로소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P.103-104
쉬메르다 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으며, 이제 자유로워진 그의 영혼은 틀림없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시카고까지는 얼마나 멀까, 그리고 버지니아까지, 또 볼티모어까지, 그다음에 저 거대한 겨울 바다까지는 또 얼마나 멀까 하고 혼자 생각해 보았다. 아니다, 그토록 먼 여행길에 지금 당장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추위에 지치고, 비좁은 집에서 사느라 지치고, 쉬지 않고 끝없이 내리는 눈과 싸우다 지칠 대로 지친 그의 영혼은 지금 이 조용한 집 안에서 쉬고 있는 중이라고 나는 믿었다.
P.258-259
눈을 감으면 덴마크 세탁소에서 일하는 처녀들과 보헤미안 메리 세 명이 모두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레나가 그들 모두를 나에게 다시 데려다 주었다. 전에는 전혀 생각도 못 했으나 이 처녀들과 베르길리우스의 시와의 관계가 문득 떠올랐다. 이들 같은 처녀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라는 것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그것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이 새로운 사실은 나에게 지극히 소중한 것이어서 혹시라도 갑자기 사라져 버릴까 봐 가슴 깊이 간직했다. 마침내 책을 펴고 자리에 앉자 짧은 치마를 입고 추수 밭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레나가 등장하던 나의 그 옛날 꿈이 실제 경험의 추억처럼 느껴졌다. 그 장면은 한 폭의 그림처럼 책장 위에 나타나 아물거렸고 그 밑에는 한 줄의 슬픈 구절이 두드러지게 적혀 있었다. <가장 행복한 날들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
P.350
지금도 눈만 감으면 어둠 속에서 덜거덕거리며 달리던 마차 소리가 들리다가 다음 순간 그 소리는 모든 것을 지워 버리는 신기한 망각의 세계로 사라지고 만다. 그날 밤에 느꼈던 감정들은 너무도 생생해서 손만 뻗으면 어루만질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비로소 나 자신으로 되돌아온 기분이 들었으며, 한 인간의 경험의 범주가 그 얼마나 작은 원을 그리고 있는지 깨달은 느낌이었다. 안토니아와 나에게 이 길은 운명의 길이었으며 또한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앞날을 미리 결정해 주었던, 어린 시절의 온갖 시간들을 가져다준 길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바로 이 길이 우리를 다시 연결시켜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든, 우리는 말로는 전달이 불가능한 그 소중한 과거를 함께 소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