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실 앞을 지나가는데 경비 아저씨가 급하게 뛰어나온다. 항상 그렇듯이 90도로 허리를 굽혀 깍듯이 인사를 한다. “저 이달 말로 여기 그만둡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깜짝 놀라서 “아니, 왜요? 다른 데로 가세요?” “아닙니다... 당분간 쉬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경비원이 스쳐 지나갔지만 무덤덤했는데 이번만큼은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 아파트에 산 지 십오 년, 지난해에 온 경비원 최 씨는 이전의 분들과 달랐다. 택배 물건을 찾으려고 경비실에 들어서면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차렷 열중 쉬어’ 자세로 주민들을 맞이했다. 처음엔 ‘참 예의가 바른 분이구나.’ 생각하면서 기분이 좋았지만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주눅이 잔뜩 든 채 겁먹은 굳은 얼굴표정하며 또박또박 존댓말 이상의 경어로 주민들을 대하는 아저씨의 모습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주민들이 까다롭게 굴었으면 안절부절 못하고 굽신거릴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웠다.
어느 날, 아저씨가 재활용 수거함을 뒤적거리고 있기에 다가가서 물었다. “웬일이세요?” “아, 네! 외손녀딸이 있는데 그 녀석 입을 만한 것이 있나 해서요. 허허.” 외손녀 이야기를 하자 평소의 긴장한 굳은 표정은 싹 사라지고 얼굴에 함박 웃음꽃이 활짝 폈다. 처음 보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아파트 마당을 쓸 때나 경비실에서 혼자 밤을 새는 아저씨를 보면 마음에 걸렸다. 순하고 여린 품성인데 부디 주민들의 등쌀에 잘 적응하길 바라면서. | |  | | | ⓒ한상봉 |
이달 말에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저씨를 응원하려고 고향에서 가져온 인삼막걸리와 사과를 들고 경비실에 갔다. “죄송합니다. 그날은 제가 근무라서 시상식에 갈 수가 없습니다.” 통화에 호기심이 생겨서 “무슨 상 받으시나 봐요?” 했더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면서 급하게 통화를 끊는다. ‘상’이라고 하니까 더 궁금했다. “이거 보이시죠? 보통 막걸리가 아니고 토종 인삼막걸리, 보약이에요!” 쭈욱 잘 뻗은 인삼뿌리가 그려진 막걸리병을 흔들어 보이자 유혹(?)이 성공했다. “집에서 집사람하고 반주로 먹어야겠습니다. 하하.” 하면서 묻어둔 이야기를 꺼냈다.
오년 전, 삼십 년을 다니던 중소기업에서 명예퇴직한 후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선택한 일자리가 빌딩 경비였다.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성격으로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힘들었다. “좁디좁은 경비실에 앉아서 많은 것을 느꼈지요. 긴 밤을 혼자 깨어서 지키면 외로움이 밀려오고, 사람들이 경비라고 반말하고 욕하고 주먹질까지 하는 수모를 겪을 때마다 나는 사람이 아니구나, 상처가 컸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멸시를 당할수록 그 상처가 나를 깨웠지요.”
그는 좁은 경비실에서 날개를 달고 저쪽에 펼쳐진 세상 속으로 날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이 좁은 한 귀퉁이에서 저 넓은 세상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지금 살고 있는 현실보다 더 높은 현실, 비록 지금 여기서 구차한 일상에 매여 있지만 그것마저 구차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세상의 작은 한 귀퉁이에 초라하게 살지만 세상에 기여하고 싶었다. 그것은 인간성을 지키는 길이었고 고민 끝에 ‘기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집 가까운 대학을 찾아가서 어려운 학생들의 등록금을 대신 내주기 시작했다. 어느덧 5년, 학교 측에서 감사의 뜻을 전해온 것이다.
“아, 글쎄 304호 사는 젊은 놈이 지 외제차 긁혔다고 최 씨 멱살을 잡고 직무태만이니 직무유기니 하면서 협박하고 소장에게 민원을 넣더니만 분을 못 삭이고 최 씨를 몇 개월이나 괴롭히는 통에 결국 그만뒀지 뭐야!” 보일러실의 김 기사가 아저씨가 떠나게 된 사연을 전해준다.
장미꽃이 활짝 핀 5월의 마지막 날, 아저씨는 경비실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경비실을 힐끗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양심과 인간성을 버리지 않은, 빵 한 쪽을 나눠 세상 저 편에 내민, 비참함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세상을 지키는 고귀하고 위대한 이웃이 내 곁을 떠나서다.
심명희 /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
첫댓글 깊이 관심갖지 않으면 잊혀질 이야기를 보시는 분이 계시는 군요. 우리 이웃들도 내 관심만큼 보이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