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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마태오 21,33-43.45-46
창세기 37,3-4.12-13ㄷ.17ㄹ-28
집단적 악의 세력이 휘둘러대는 광기 앞에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들의 양심입니다!
집단적 악과 개인적 양심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오늘 첫 번째 독서인 창세기를 통해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스라엘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동생 요셉의 모습에 형들은 질투심으로 똘똘 뭉치게 되었고, 요셉은 그야말로 공공의 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 것인데도 불구하고, 형들은 아버지로부터 총애를 받는 동생의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집단적 악이 결정적으로 발동됩니다.
평소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던 악의가 동시에 표출된 것입니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창세기 37장 19~29절)
형들이 그런 악의를 품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으니, 아버지 야곱의 편애와 요셉이 꾼 특별한 꿈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창세기 37장 3~4절)
“내가 꾼 꿈 이야기를 들어보셔요. 우리가 밭 한가운데에서 곡식 단을 묶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 곡식단이 일어나 우뚝 서고, 형들의 곡식 단들은 빙 둘러서서 내 곡식단에게 큰절을 하였답니다.”
(창세기 37장 7절)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분기탱천하기 시작하였고, 큰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들끓었고, 마침내 집단적인 광기와 폭력성으로 연결되고 만 것입니다.
결국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요셉은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이집트로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생만사 세옹지마’라고, 남의 나라 땅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한 요셉은 대제국의 제2인자로 우뚝 서게 되고, 후에 대기근으로 굶어죽게 생긴 가족들을 살리게 되는 드라마틱한 대반전 스토리를 엮어갑니다.
인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를 돌아봐도 집단적인 악, 집단적인 광기가 지속적으로 되풀이되어왔습니다.
600만 명이 넘는 유다인 대학살, 수많은 청춘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대전쟁들은 집단적 악의 결과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백성은 아직도 집단적 악의 난동으로 인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하이에나 떼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며 선량한 국민의 삶을 힘겹게 하는 검찰 집단, 기레기 집단, 국민 민폐당, 사이비 종교 단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다행히 요셉이 기적적으로 죽음을 모면하고 살아날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한 인간의 내면이 남아있는 개인의 양심 때문이었습니다.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던 르우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피만은 흘리지 마라. 그 아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버리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마라.”(창세기 37장 21~22절)
집단적 악의 세력이 휘둘러대는 광기 앞에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들의 양심입니다.
악이 더 큰 악으로 확산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막아보려는 일말의 양심입니다.
거대 악을 목격하고서도, 그 악으로 인해 드러나는 참혹한 현실을 직면하면서도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또 다른 악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어쩌면 성체의 적을 만드는 교리교육?
오늘 복음은 ‘못된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포도밭에 소출의 일부를 받으러 와서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포도밭 주인 외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성체’입니다. 우리가 성체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죽일 수도 있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이 주시는 이익만을 생각하지, 그분이 우리에게 없애려고 하시는 고통의 원인을 우리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새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새입니다.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죠. 이 참새가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았던 새라는 것을 몰랐나요? 그리고 참새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참새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3월 20일 '세계 참새의 날'을 맞아 우리가 몰랐던 참새의 비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몰랐던 참새의 비밀은, 참새가 사람을 이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참새는 다른 야생동물들과 달리 사람들의 집 근처에서 살아갑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야생동물들은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꺼리지만, 참새는 사람들과 떨어져 살 수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참새의 자연적인 적들로부터 참새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새에게는 뱀, 족제비, 매와 같은 자연적인 적들이 존재하는데, 이들 모두 사람을 두려워하여 사람을 보호막처럼 사용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주변을 둘러보면, 참새들이 지붕 밑에서 둥지를 틀 수 있는 장소들이 많습니다.
또한, 농지와 같은 환경은 참새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중요한 장소인데, 사람들은 자연적인 적들을 차단하고 집짓기를 쉽게 만들어 주며, 먹이를 풍부하게 제공한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참새가 우리와 함께 살며 자연의 균형을 맞추는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 일본의 나가노현의 산악지대는 원래 참새가 많이 살던 곳이었으나, 사람들이 더 이상 그곳에서 살지 않게 되면서 참새들도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참새의 비밀은, 참새가 농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참새는 때때로 모여서 곡식을 쪼아먹기도 합니다. 농부들에게는 마치 쌀 도둑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참새가 사라지면 농업에 더 큰 어려움이 생긴다고 합니다. 참새가 먹는 해충들이 증가하면서, 오히려 농업에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는 1958년, 마오쩌둥 주석이 쌀 수확량 감소를 보고하며 “쌀 이삭을 쪼아먹는 참새는 해로운 새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베이징의 모든 농부와 노동자들이 참새를 없애는 작전을 시작했죠. 그 결과, 2억 마리 이상의 참새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해충이 급격히 늘어나고 쌀은 잘 자라지 않았습니다. 결국, 4,000만 명이 목숨을 잃는 대기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비극은 참새를 잡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참새는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입니다. 우리는 세계 어디에서나 참새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참새의 날'이 존재하는 이유죠. 참새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가까운 이웃이지만, 매우 경계하고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기 때문에, 그 이웃은 쉽게 다가갈 수 없습니다.
이 소중한 이웃인 참새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이제 사람들에게 참새를 해치는 시대는 끝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참새와 함께 살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참새와 함께하는 삶은 바로 우리 자신이 자연의 일원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그 존재들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세계 참새의 날'을 맞아 우리가 몰랐던 참새의 비밀 알아봄, 스브스뉴스, 유튜브]
예수님은 인간에게 이 참새와 같습니다. 인간이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만 싫어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분을 거부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예전 베이징에서 일어난 일이 똑같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저의 경험으로 알아보자면, 바로 이 세 가지 물음이었습니다.
1. “나는 누구의 자식인가?”, 2. “나는 사랑받고 있는가?”, 3.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입니다. 어머니가 의심될 때 다른 것은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사랑받고 있는가?’ 또한 사랑으로 해결되는 문제였습니다. 내가 그분의 자녀라는 믿음이 있어도 자신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자존감’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때 이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뭐 하고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제가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는 내가 사제가 되어야 하는지, 세상에서 결혼하고 살아야 하는지 모를 때였습니다.
이 세 가지 문제를 다 해결해주는 것이 어머니가 주는 ‘밥’입니다. 젖을 먹고 내가 누구인지 알고, 그 밥을 통해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그 밥을 통해 어머니가 원하는 것을 받아들여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합니다.
부모의 사랑만으로는, 그러나 내가 진짜 누구인지, 내가 진짜 사랑받는 존재인지, 내가 진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도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하나의 인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진짜 만들고 낳으신 창조자를 만나야 합니다. 부모는 나에게 다시 생명을 넣어줄 수 없습니다. 그 창조자가 이 세 가지 문제를 다 해결해주는 당신 ‘밥’을 주시는데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입니다.
저는 구역 판공을 하며 냉담자들을 만나 면담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하나같은 특징은 그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왜 성체를 영하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 곧 참 행복에 이를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성체의 적이 되는 교리교육이 되지 않으려면, 사람이 왜 참새와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성체가 주는 효과를 제대로 이해시켜야 합니다.
냉담자들이 발생하지 않게 만들려면, 교회에서 오늘과 같은 포도밭 소작인이 만들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가장 강력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태 21,33-43.45-46: 저 자는 상속자다. 자, 저 자를 죽이자!
오늘 복음의 밭 임자는 포도밭을 일구고 울타리를 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소작인들이 해야 했을 일들을 직접 하였다. 소작인들은 그렇게 많은 일을 해야 했던 것이 아니다. 주어진 것을 잘 지키기만 했어도 되었다. 모든 것이 다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율법을 주셨고 도시를 세워주셨으며 성전을 마련해 주셨고 제단을 준비해 주셨다. 그러고는 “멀리 떠나셨다.”(33절) 밭 주인은 “소출을 받아 오라고”(34절) 자기 종들을 보냈다. 소출은 행실로 드러나는 순종을 뜻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토록 세심한 보살핌을 받고 나서도 게으름을 피워 소출을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종들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인은 아들을 보낸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37절).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소작인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주님은 소작인들이 아들을 죽일 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당신의 종들과는 달리 아들의 존귀함에는 경의를 표했어야 마땅하다는 의미다.
소작인들은 그러나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하고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38-39절).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하고 소리치며, 주님을 도성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40절)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41절) 대답한다. 그 대답으로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였다. 주님께서도 당신의 말씀으로 이것을 암시하셨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동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42-43절).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자기들에게 하는 이야기인 줄 알고 예수님을 죽이자고 마음먹었지만,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46절) 그 군중들에게 변을 당할까 두려워한 것이지만 그 군중들도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하고 외칠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금 어떤 소작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1726년 18세기의 작품으로, 의사 걸리버가 선박 의사로 취직해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작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 큰 사람들이 사는 나라, 날아다니는 섬의 나라 등을 방문하게 되는 기행문 형식의 소실입니다.
저의 경우, 이 책을 어렸을 때 동화책으로 읽었습니다. 그렇다면 걸리버 여행기는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일까요? 사실 원본은 신랄한 성인용 풍자였습니다. 당대의 정치 상황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풍자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해 사라졌고, 대신 어린아이도 읽을 수 있는 소설이 된 것입니다. 고전화가 이루어졌고, 세계적인 독자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단정 지을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될 것이다.’, ‘이것밖에 안 된다.’ 식의 한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느님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뜻에만 맞게 살아가려 합니다.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한 세상이라서 그렇게 살아야 지혜로운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냉담 중인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신부님, 먹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단정 짓는 자기 생각이 맞다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만약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만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말씀을 해 주십니다. 포도밭을 일구고 울타리를 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운 사람은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포도밭을 일구시고 이를 소작인들에게 맡기시지요. 이 소작인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키며, 동시에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이들을 나타냅니다.
자기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주인이 보낸 종들을 매질하고 죽입니다. 주인이 아들까지 보내지만, 포도밭을 차지할 생각으로 죽여 버립니다. 바로 예언자들을 향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배척과 예수님에 대한 배척을 보여줍니다. 그 모든 것이 세상의 논리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못된 모습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순간의 만족보다는 영원한 만족을 추구해야 하고, 세상의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 안에 머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 상상도 못 할 그분의 힘 속에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만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에서 여러 번 낙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실패가 아니다. 다른 사람 탓을 하고 모든 시도를 멈추는 순간이 바로 실패다(존 버로우).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창세37,20)
하느님의 섭리에는
인간의 악랄함도
구원의 승리로 이끄는
힘이 있다네.
질투로
요셉의 꿈은
무참히 짓밟히고
뭉개지는 고통이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의 꿈을 통해서
세상에
당신의 길을 내고 계셨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포도원 주인은 바로 하느님이시고,
포도원은 이스라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예수님이시고,
소작인은 당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입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 말씀은
구세사의 전개과정을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선민과
그 지도자들을 처벌할 것이라는 것이
이 비유의 골자입니다.
우리 역시 또 다른 예언자들을,
우리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예수를 나의 이기심으로
죽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을
또 하나의 작은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고
존중해줄 수 있을 때 우리는
소작인들의 우를 범하지 않게 될 겁니다.
우리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를 묻고 난 후에야
주어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제의 삶은 매일매일이 떠나가기 위한 삶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소명을 믿음으로 받아들일때 가능합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03.21.금."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마태 21, 38)
새롭게
찾아오는
봄의
생명력은
그야말로
대단합니다.
모든 생명이
소중합니다.
생명의 가치가
하느님 나라의
가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바쳐
생명을
살리십니다.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고
생명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살아야 할
생명입니다.
그래서
살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생명입니다.
사람이
같은 사람을
죽일 순 없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폭력을
이기시는
빛으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생명을
얻는 것이
하느님을
얻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생명이십니다.
모든 생명은
진심어린
사랑과 기도로
자라납니다.
우리들의
생명을
귀하고
아름답게
보시는
하느님과 함께
생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축복의
사순시기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역사가
살인과 폭력의
발자국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발자국이
우리의 역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이
함께 사는
기쁜
하느님의
세상입니다.
우리는
그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저 녀석을 죽여 버리자.>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37,3-4.12-13ㄷ.17ㄹ-28
3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4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12 그의 형들이 아버지의 양 떼에게 풀을 뜯기러 스켐 근처로 갔을 때,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 형들이 스켐 근처에서 양 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지 않느냐?
자, 내가 너를 형들에게 보내야겠다.”
17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가 도탄에서 그들을 찾아냈다.
1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20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21 그러나 르우벤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낼 속셈으로,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피만은 흘리지 마라. 그 아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마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내어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다.
23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그의 저고리, 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 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25 그들이 앉아 빵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
길앗에서 오는 이스마엘인들의 대상이 보였다.
그들은 여러 낙타에 향고무와 유향과 반일향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26 그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27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그러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28 그때에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다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었다.
그들은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다.
이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33-43.45-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45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46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