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하청장(淘河靑莊)
도하와 청장이라는 새에 대한 이야기로 인간이 세상에서 부귀와 명리를 구하는 태도에 견주었다.
淘 : 쌀 일 도(氵/8)
河 : 물 하(氵/5)
靑 : 푸를 청(靑/0)
莊 : 씩씩할 장(艹/7)
박지원의 '담연정기(澹然亭記)'에 도하(淘河)와 청장(靑莊)이란 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둘 다 물가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새다. 먹이를 취하는 방식은 판이하다.
도하는 사다새다. 펠리컨의 종류다. 도(淘)는 일렁인다는 뜻이니, 도하는 진흙과 뻘을 부리로 헤집고, 부평과 마름 같은 물풀을 뒤적이며 쉴 새 없이 물고기를 찾아다닌다.
덕분에 깃털과 발톱은 물론, 부리까지 진흙과 온갖 더러운 것들을 뒤집어쓴다. 허둥지둥 잠시도 가만 있지 않고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헤매고 다니지만 종일 고기 한 마리 못 잡고 늘 굶주린다.
청장은 해오라기의 별명이다. 신천옹(信天翁)으로 불린다. 이 새는 맑고 깨끗한 물가에 날개를 접은 채 붙박이로 서 있다.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좀체 옮기는 법이 없다. 게을러 꼼짝도 하기 싫은 모양으로 마냥 서 있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희미한 노랫가락에 귀를 기울이듯 아련한 표정으로, 수문장처럼 꼼짝 않고 서 있다. 물고기가 멋모르고 앞을 지나가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날름 잡아먹는다.
도하는 죽을 고생을 해도 늘 허기를 면치 못한다. 청장은 한가로우면서도 굶주리는 법이 없다.
연암은 이 두 가지 새에 대해 설명한 후, 이것을 세상에서 부귀와 명리를 구하는 태도에 견주었다.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쫓아다니면 먹이는 멀리 달아나 숨는다.
욕심을 버리고 담백하게 있으면 애써 구하지 않아도 먹이가 제 손으로 찾아온다. 권력이든 명예든 쟁취의 대상이 되어서는 내 손에 들어오는 법이 없다. 갖고자 애쓸수록 멀어진다.
담백한 태도로 신중함을 지키고, 희로애락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때, 보통 사람들이 밤낮 악착스레 얻으려 애쓰면서도 얻지 못하는 것들이 저절로 이른다.
박지원에게 이 설명을 듣고 이덕무는 청장이란 새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청음관(靑飮館)이라고 쓰던 자신의 당호를 당장 청장관(靑莊館)으로 고쳤다.
신천옹, 하늘을 믿고 작위하지 않는 청장과 같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없어도 그만이다. 조금이면 만족한다. 그런 마음속에 넉넉함이 절로 깃든다. 아등바등 욕심만 부리면 먹을 것도 못 얻고 제 몸만 더럽힌다.
---
도하(淘河)와 청장(靑莊)
세상에 가장 가련(可憐)한 것은 일하고도 먹지 못하는 것이요, 그 대신에 가장 가증(可憎)한 것은 놀고도 잘 먹는 것이다. 인간의 온갖 불평과 눈물의 반 이상이 여기에서 연유함이라 하여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淘河勞而常飢(도하노이상기)
靑莊失而常飽(청장실이상포)
도하(淘河)는 애를 쓰고도 늘 주리는데, 청장(靑莊)은 놀면서도 늘 배불리 먹는 다는 말이다. 여기에 도하와 청장이라는 것은 다 물새들의 이름이다.
도하(淘河)란 것은, 속명으로 '사다새' 이니, 이 새는 하루 종일 고기를 엿보며 강물의 뻘흙 속을 다니면서 날개와 입부리를 더럽혀가며 고기를 찾느라고 애를 쓴다. 그러나 꾀 많은 고기들은 도하의 그림자를 피하여 물가로 숨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청장(靑莊)은 항상 물가에서 멀쑥하니 서서 밖으로는 한가로운 척 아무것도 구하는 것이 없는 듯이 보이나 도하에게서 쫓겨 물가로 숨어 나오는 고기들을 아무런 수고도 없이 날름날름 배부르게 잡아 먹는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일찌기 도하와 청장을 세간이욕인(世間利慾人)에게 비겨 말해 온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이 도하와 청장이 요즘 말하는 '수저론'과 흡사하다. 도하는 흙수저이고, 청장은 금수저인 셈이다.
도하는 기를 쓰고 노력해도 공정한 기회마저 박탈당한 일반 서민들을 말함이요, 청장은 부모의 후광을 배경삼아 고생 없이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옛말이 되고 금수저는 금수저를 낳고 흙수저는 흙수저를 낳는다는 세간의 말속에서 우리사회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사실 우리네 인생이 이렇다는 것은 우리 모두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돈 좀 더 벌어 보려다 보면 사람이 옹졸해지고 남보다 높이 올라가려다 보면 사람이 비굴해지고 돌아설 때면 내 자신이 초라함을 느끼게 되는데 말이다.
그렇게 많은 돈과 권력을 쌓은 사람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줄줄이 구속되는 모습을 보면 과연 부귀영화의 끝은 있는 걸까 생각해 본다.
부처님께서도 젊은 시절에는 낙을 추구했단다.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쾌락주의를 따라갔단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단다. 더 큰 불꽃은 더 많은 장작을 요구하듯이 끝없이 커지는 욕망의 성질을 말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욕망의 씨를 잘라 버려야 된다고 생각하고 욕망을 없애 버리고자 고행주의를 따랐던 것이다. 우리도 이 욕망을 놓아버림으로써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淘 : 쌀 일 도(氵/8)
▶️ 河(물 하)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可(가, 하)이 합(合)하여 강물을 뜻한다. 可(가, 하)는 입으로 부터 숨이 세게 나오거나 허락하여 말하는 일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河자는 ‘물’이나 ‘강’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河자는 水(물 수)자와 可(옳을 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河자는 본래 중국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인 황하(黃河)를 일컫던 말이었다. 황투고원에서 시작되는 황하는 상류에서 쓸려오는 퇴적물이 많아 정기적으로 범람이 일어나던 강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대부터 황하 일대에서는 둑을 쌓아 범람하던 황하를 다스렸었다. 그래서인지 갑골문에 나온 河자는 水자와 方(모 방)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가래로 둑을 쌓는다는 의미이다. 후에 方자가 可자로 바뀌긴 했지만, 본래는 치수의 개념이 반영된 글자였다. 그래서 河(하)는 물이 시원스럽지 못하게 나가다가 세차게 흐르는 일을 나타낸다. 중국에서는 황하를 예로부터 하(河)라 일컫고 그 신(神)을 하신(河神)이라 하여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河(하)는 성(姓)의 하나로 ①물 ②내, 강(江) ③운하(運河) ④섬(=島) ⑤은하(銀河) ⑥강(江)의 이름, 황하(黃河) ⑦메다, 짊어지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내 천(川), 강 강(江), 바다 해(海), 시내 계(溪), 물 수(水),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메 산(山), 큰 산 악(岳), 언덕 릉(陵)이다. 용례로는 강과 시내를 하천(河川), 강물이 큰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어귀를 하구(河口), 강과 바다를 하해(河海), 독수리 자리의 가장 밝은 별을 하고(河鼓), 하천의 바닥을 하상(河床), 강 가나 강 언덕을 하반(河畔), 하천가에 있는 작은 항구를 하진(河津), 하천이 흐르는 골짜기를 하곡(河谷), 강물이 흐르는 한 가운데를 하심(河心), 물이 통하는 길을 하도(河道), 강이나 내의 흐름을 하류(河流), 움푹 들어간 눈을 하목(河目), 얼음이 얼은 큰 강을 빙하(氷河), 산과 강을 산하(山河), 강과 하천을 강하(江河), 온 하늘을 두른 때 모양의 엷은 빛의 별무리를 은하(銀河), 홍수가 져서 강물이 제방을 파괴하여 넘쳐 흐르는 말을 결하(決河), 평소에는 마른 골짜기이다가 큰비가 내리면 홍수가 되어 물이 흐르는 강을 고하(凅河), 강물을 건넘을 도하(渡河), 항상 흐린 황하의 물이 천년에 한번 맑아진다는 뜻으로 기다릴 수가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하청난사(河淸難俟), 큰 강이나 넓은 바다와 같이 넓고 큰 은혜를 하해지은(河海之恩), 배앓이를 달리 일컫는 말을 하어지질(河魚之疾), 썩 드문 만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하청지회(河淸之會), 은하수가 멀고 먼 하늘에 있다는 데서 연유한 말로 막연한 말을 이르는 말을 하한지언(河漢之言) 등에 쓰인다.
▶️ 靑(푸를 청)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青(청)의 본자(本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生(생, 청)과 丹(단)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生(생)은 새싹, 丹(단; 물감을 들이는 원료(原料)인 광물)은 돌을 뜻한다. 붉은 돌(丹) 틈에서 피어나는 새싹(生)은 더욱 푸르러 보인다는 뜻이 합(合)하여 '푸르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靑자는 '푸르다'나 '젊다', '고요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靑자는 生(날 생)자와 井(우물 정)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生자는 푸른 싹이 자라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싱싱하다'나 '나다'는 뜻이 있다. 靑자는 이렇게 싱싱함을 뜻하는 生자에 井자가 결합한 것으로 우물과 초목처럼 맑고 푸름을 뜻한다. 그래서 靑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푸르다'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靑자는 푸름에 비유해 '젊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靑(청)은 ①푸르다 ②젊다 ③고요하다(조용하고 잠잠하다), 조용하다 ④푸른빛 ⑤대껍질(대나무의 순(筍)을 싸고 있는 껍질) ⑥봄 ⑦동쪽 ⑧땅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푸를 창(蒼), 푸를 벽(碧), 푸를 록(綠), 푸를 취(翠)이다. 용례로는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 시절을 청춘(靑春), 청춘기에 있는 젊은 사람 특히 남자를 일컬음을 청년(靑年), 푸른 하늘을 청천(靑天), 나무가 무성하여 푸른 산을 청산(靑山), 싱싱하게 푸름을 청청(靑靑), 신선한 과실과 채소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청과(靑果), 푸른 빛을 청색(靑色), 푸른 빛깔의 구름을 청운(靑雲), 청기와로 푸른 빛깔의 매우 단단한 기와를 청와(靑瓦), 푸른 산봉우리를 청봉(靑峰), 푸른 이끼가 난 무덤을 청총(靑冢), 참깨의 잎을 청양(靑陽), 싱싱한 푸른 풀을 청초(靑草), 푸른 귤의 껍질을 청피(靑皮), 창기의 집을 청루(靑樓), 푸른 하늘을 청명(靑冥), 푸른 치마를 청상(靑裳), 남을 기쁜 마음으로 대하는 뜻이 드러난 눈초리를 청안(靑眼), 바늘로 살갗을 찔러서 먹물 따위를 들인 글씨나 그림이나 무늬 또는 그렇게 만든 몸을 자청(刺靑), 봄에 파랗게 난 풀을 밟고 거닒을 답청(踏靑), 늘 푸름을 상청(常靑), 구리에 녹이 나서 생기는 푸른 빛깔을 벽청(碧靑), 흰 바탕에 연한 푸른빛의 잿물을 올린 도자기 또는 그러한 빛을 영청(影靑), 검은빛을 띤 푸른 빛을 아청(鴉靑), 역사책 또는 기록을 한청(汗靑), 청운의 뜻이라는 말로 남보다 훌륭하게 출세할 뜻을 갖고 있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청운지지(靑雲之志), 푸른 색이 쪽에서 나왔으나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것을 비유하는 말을 청출어람(靑出於藍), 맑게 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벼락이라는 뜻으로 돌발적인 사태나 사변을 이르는 말을 청천벽력(靑天霹靂), 푸른 산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말을 거침없이 잘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청산유수(靑山流水), 전도가 유망한 젊은 사내들을 일컫는 말을 청년자제(靑年子弟), 푸른 산과 푸른 물이라는 뜻으로 산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물을 이르는 말을 청산녹수(靑山綠水), 입신출세를 위한 원대한 포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청운만리(靑雲萬里), 나이가 젊어서 남편을 여읜 여자를 일컫는 말을 청상과부(靑孀寡婦) 등에 쓰인다.
▶️ 莊(씩씩할 장/전장 장)은 형성문자로 荘(장)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성하다의 뜻을 가진 壯(장)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莊(장)은 풀이 무성(茂盛)하다는 뜻이 전(轉)하여 성(盛)하다, 엄(嚴)하다의 등의 뜻으로 ①씩씩하다 ②풀이 성(盛)하다(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③단정(端整)하다 ④바르다 ⑤엄(嚴)하다(매우 철저하고 바르다) ⑥장중(莊重)하다 ⑦정중(鄭重)하다 ⑧꾸미다 ⑨전장(田莊: 귀척, 고관 등의 사유지) ⑩영지(領地) ⑪봉토(封土) ⑫장원(莊園) ⑬별장(別莊) ⑭마을, 부락(部落), 촌락(村落) ⑮가게, 상점(商店) ⑯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장엄하고 정중함을 장중(莊重), 규모가 크고 엄숙함을 장엄(莊嚴), 씩씩하고 깨끗함을 장결(莊潔), 씩씩하고 공경스러움을 장경(莊敬), 의기양양한 말을 장언(莊言), 공경히 생각함을 장유(莊惟), 단단히 간직하여 둔 돈을 장강(莊鏹), 머리를 아름답게 꾸밈을 장수(莊首), 배나 수레 등에 짐을 꾸려서 실음을 장재(莊載), 혈기가 왕성한 남자를 정장(丁莊), 별장을 맡아서 관리함 또는 그 사람을 지장(知莊), 엄숙하고 장중함을 엄장(嚴莊), 조심성 있고 엄숙함을 긍장(矜莊), 시골에 있는 별장을 향장(鄕莊), 산 속에 있는 별장을 산장(山莊), 살림집 밖에 경치 좋은 곳에 따로 지어 놓고 때때로 묵으면서 쉬는 집을 별장(別莊), 개인이 소유하는 논밭을 전장(田莊), 서울 사람이 시골에 가지고 있는 농장을 경장(京莊), 황폐한 농가를 황장(荒莊), 시냇가에 지은 별장을 계장(溪莊), 개인이 소유한 땅이나 농장을 맡아서 관리함을 관장(管莊), 자아와 외계와의 구별을 잊어버린 경지라는 말을 장주지몽(莊周之夢), 의복에 주의하여 단정히 함으로써 긍지를 갖는다는 말을 속대긍장(束帶矜莊), 너그럽고 도량이 넓으며 위엄이 있고 장중하다는 말을 관홍장중(寬弘莊重)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