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보지 못하는 눈
저임금의 노동 착취 공장에서는 선진국의 소비재를 생산한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그랬다.
그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루 10~12시간씩 에어컨도 없는 찜통 같은 공장에서 일한다. 안전 수칙도 없고 고용주의 학대행위도 흔하다.
1993년 아이오와주 톰 하킨 상원의원은 아동 노동착취 제품을 수입 금지하는 아동노동억제법을 발의했다. 당시 방글라데시에는 수많은 아동이 공장에 고용되어 있었는데 이 법이 발의되자 공장 측에서는 할 수 없이 5만명의 아동을 해고했다.
해고된 아이들은 노동억압에서 해방되어 행복해졌을까? 그 아동들은 더 영세한 “미등록 하청 공장”이나 길거리 범죄단, 성매매 등에 내몰려 더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다(유엔 유니세프 조사 결과).
라오스와 캄보디아와 버마에서는400만명이 노동착취 공장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태국으로 이주했다. 볼리비아에서도 노동착취 공장에 취업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브라질로 불법 입국했다.
브라질의 노동착취 공장의 연평균 임금은 2,000달러다. 그러나 볼리비아의 평균 임금에 비하면 600달러나 더 많다. 방글라데시의 노동착취 공장의 하루 임금은 2달러, 캄보디아는 5.5달러, 아이티는 7달러, 인도는 8달러다. 터무니없는 저임금이지만 현지 “하청 공장”의 1.25달러보다는 많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교수는 “노동착취 공장 같은 고용증대 방식은 극빈층에게는 반가운 희소식이다”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교수도 “내가 걱정하는 것은 노동착취 공장이 너무 많다는 게 아니라 너무 적다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이 입을 모아 노동착취 공장을 옹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더 부유한 사회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이 과정을 거쳐 선진국에 진입했다.
선진국에서 노동 착취 공장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면 가난한 나라의 빈곤층은 더욱더 비참해진다. 이런 사실을 사회윤리학자나 사회정의를 외치는 시민단체들은 보지 못하고 있다.
왜 보지 못할까? 이념의 노예가 되어서 그렇다.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이 실패로 끝난 이유는 그가 자신의 이념에 몰입되어 현실적인 문제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p.s.
윗글은 7년 전, 사회주의 논객들과 논쟁을 벌이면서 썼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