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서울 예진이네를 갑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말씀을 조명하여 주실 때,
진리를 보고 기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2.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3.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셀라)
4.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5.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6.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9.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10.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본문 주해)
시편 75편의 표제어는 ‘아삽에게,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이다. ‘알다스헷’은 ‘멸망당하지 말게 하소서’(Do not destroy)라는 뜻이다.
본 시는 아직 심판이 임하지 않은 행악자들을 보며 낙담하는 경건한 자들을 향하여 불린 시이며, 시의 주제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때에 행악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어떤 주해에는 이 시가 레위인이자 성가대원으로 성전에서 일하던 아삽 자손이 쓴 시로 히스기야 통치 1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막강한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공격하려고 진을 친 위기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응답하셨고, 산헤립의 군대에 하나님의 사자가 임해 십팔만 오천 명이 멸절당하게 된다. 또한 산헤립은 본국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두 아들에게 살해당한다.
그런데 이 시는 이러한 결과적인 승리가 주어지기 이전에 쓰인 것이다.(2절)
1절 : “하나님, 우리가 주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이 주님께서 이루신 그 놀라운 일들을 전파합니다.”(새번역)
시인이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주의 이름이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주의 약속하신 말씀을 듣고 주님이 정하신 그 약속을 기다린다.
2~5절 :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하여 놓은 그 때가 되면, 나는 공정하게 판결하겠다.
땅이 진동하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흔들리고 비틀거릴 때에, 땅의 기둥을 견고하게 붙드는 자는 바로 나다. (셀라)
오만한 자들에게는 '오만하지 말아라' 하였으며, 악한 자들에게는 '오만한 뿔을 들지 말아라.
오만한 뿔을 높이 들지 말아라. 목을 곧게 세우고, 거만하게 말을 하지 말아라' 하였다."”(새번역)
‘하나님이 정하신 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른 때이다. 하나님은 그때 공의로 심판하신다. 그의 심판으로 인해 땅이 흔들리고 거기 사는 자들이 다 흔들린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세우신 세상의 기초를 흔들리게 하신다. 하지만 세상의 기초를 세우신 하나님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시며 견고하시다.
‘뿔’이란 주로 힘과 권세를 말하는데 악인이 가지게 되면 오만한 힘과 권세가 된다.
세상은 끊임없이 자기들의 뿔을 높이 들려고 한다. 이것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이어지는 인간의 죄악 된 역사이다.
6~7절 : “높이 세우는 그 일은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않고, 남쪽에서 말미암지도 않는다.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만이, 이 사람을 낮추기도 하시고, 저 사람을 높이기도 하신다.”(새번역)
높이는 일이나 낮추는 일이 세상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보여준다.
심판을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동쪽(아침)을 살피든 서쪽(저녁)을 살피든 남쪽의 광야를 살피든 그것은 무의미하다.
높이는 일이나 낮추는 일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다.
8~10절 : “주님은 거품이 이는 잔을 들고 계신다. 잔 가득히 진노의 향료가 섞여 있다. 하나님이 이 잔에서 따라 주시면, 이 땅의 악인은 모두 받아 마시고, 그 찌끼까지도 핥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쉬지 않고 주님만을 선포하며, 야곱의 하나님만을 찬양할 것이다.
주님은 악인의 오만한 뿔은 모두 꺾어 부수시고, 의인의 자랑스러운 뿔은 높이 들어 올리실 것이다.”(새번역)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 자기 뿔을 드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에 이른다.
이 심판은 여호와의 손에 있는 잔을 마시는 것으로 표상된다. 여호와의 손에 있는 잔에서 술거품이 일어나고 맛이 가득하다. 그가 술을 따라 내시면, 땅의 모든 악인들은 그 잔을 찌꺼기까지도 비우며 그것을 마신다.
이렇게 함으로 악인들의 뿔을 꺾어 부수어버리시지만, 의인들의 뿔은 (하나님에 의해) 높임을 받는다.
시인은 그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의 묵상)
시인이 감사하고 감사한 이유를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고 한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악인이 자신 뿔을 높이 쳐들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때(기약)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꺾어 부수어버리신다는 것이다.
그 악인에 대한 심판은, 당연히 주님을 의지하는 의인의 뿔을 높여주시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시의 배경을 히스기야 시대 산헤립의 공격을 받는 상황이라고 볼 때 더 이해하기가 쉽다.
시인은 아직 결과를 모를 상황에서 이 시를 지었다.
결과는 산헤립의 군대가 하나님의 사자에 의해 십팔만 오천 명이 멸절당한 것이다. 또한 산헤립은 본국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두 아들에게 살해당한다.
원수의 뿔은 꺾어버리시고, 주의 이름을 가까이 부른 히스기야와 왕과 한 마음이었던 시인의 뿔을 하나님께서 높이신 것이다.
내게도 주의 이름이 가까운가를 생각해 본다.
전에는 어떤 상황적 어려움을 당했을 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내가 주님과 가까이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주님과 가까움이 아니라, 내가 당한 ‘문제’와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 자녀, 건강 그리고 어떤 인간관계 등에 마음이 밀착되어 살아가다가 거기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제야 주님을 찾는 것을 주님의 이름이 내게 가깝다 라고 착각한 것이다.
복음을 듣고 난 뒤 내 마음이 기쁘든, 슬프든, 희망차든, 낙심이 되든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생명의 삶을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주님을 불렀어도 주님은 너무도 멀리 계신 듯했다.
말씀 앞에 나아가는 시간은 기쁘게 즐겁게 시작할 때보다, 덤덤함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시간이 바쁠 때면 어쨌든 빨리 이 시간을 해치우자는 마음으로 임했던 적도 많았다.
어떤 때는 정리가 잘 되는 날이 있고, 어느 날은 내가 무얼 적고 있는지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을 정도로 산만한 내용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시간을 통해서 주님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주님은 때로는 마주 앉아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어깨너머로 봐 주시기도 하고, 눈을 마주쳐 주시기도 하고, 미소를 보여주시기도 하시고, 음성을 들려주시기도 한다.
나의 작은 방 묵상의 공간이 주님으로 가득함을 느낀다.
이즈음에야 나는 주의 이름이 내게 가깝다는 것을 실감하고 또 실감한다.
말씀을 통해 십자가에 연합되는 것을 알고 기도하게 되니 주님보다 더 가까웠던 것들을 하나하나 십자가에 못 박는다. 이로써 주님과 나 사이의 장애물들이 처리되니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하는 말씀에 아멘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의 이름을 부르니 과거에 불렀던 이유와 모습과는 딴판이 된다.
아득하고 희미했던 주님의 약속이 분명해지고 더욱 기대하게 된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 주님의 그 심판의 날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소망의 날이 되는 것이다.
그립고 그리운 주님이시다.
(묵상 기도)
주님,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 세상 것을 얻어내기 위해 부르는 자가 아니라,
하루라도 주님을 부르지 않으면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저를 찾아와 주셨고,
또 이토록 가까이 불러주심을 찬양할 뿐입니다.
악인의 뿔처럼 저의 뿔도 십자가 앞에 꺾이고 또 꺾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께 두 손 들고 나아갈 뿐입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