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룬트비의 삼애정신(Grundtvig's Spirit of the Three Love
덴마크 중흥의 국부國父라 일컬어지는
'그룬트비'는 19세기 덴마크가 강대국의 침략과 영토 상실로 국가적 도산倒産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의 정신을 깨워 현대 덴마크의 기초를 놓은
목사이자 시인, 교육자, 사상가, 철학자이다.
성령 체험을 하고 나서 급진주의자가 된 그룬트비
1783년, 덴마크 유틀란트 반도의 작은 마을 우드비(Udby)의 목사관에서
니콜라이 프레데리크 세베린 그룬트비(Nikolaj Frederik Severin Grundtvig)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덴마크 루터교 목사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경건과 학문이 가득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단순히 아버지의 길을 따르는 순탄한 여정이 아니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 깊은 신앙적 갈등과 지독한 자기 성찰을 겪었으며,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덴마크라는 조국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불태운 위대한 사상가이자 국민 시인으로 거듭났다.
목회자 아들로서 그룬트비의 어린 시절은 '영혼의 병'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진지하고 예민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경과 고전문학, 역사서를 탐독하며 지식을 쌓았지만,
그와 동시에 내면의 공허함과 씨름해야 했다.
이후 그의 신학은 급진적으로 변한다.
흔히들 영적 체험을 하고 난 뒤 이성과는 담을 쌓고 살기가 쉬운데 그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보다는
예수 크리스토를 통해 전해지는 '말씀' 그 자체에 집중했다.
"성찬례와 세례를 통해 살아있는 말씀이 우리에게 직접 전해진다"고 주장하며,
덴마크 교회의 형식주의와 계몽주의 신학을 맹렬히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교회 지도자들과의 갈등을 불러왔고, 결국 그는 설교단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목회자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벗고, 이제 진정한 자신의 신앙을 따라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룬트비의 삶은 덴마크의 역사적 격변기와 겹쳐 있다.
1814년 킬 조약으로 덴마크가 노르웨이를 잃고,
1864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패배하며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상실하는 뼈아픈 역사를 목격했다.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룬트비는 개인의 신앙적 문제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덴마크의 영혼을 건져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그는 덴마크 국민들이 과거의 영광에만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덴마크 국민을 한 사람 한 사람 깨우치고, 그들이 서로의 이웃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것에서 희망을 찾았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그룬트비는 덴마크 국민 전체를 위한 '국민 교회(Folkekirke)'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에게 국민 교회는 단순히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장소가 아니라, 덴마크 국민의 언어와 역사, 문화를 담아내는 살아있는 공동체였다.
그는 "덴마크인들에게 복음이 덴마크어로 들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가와 시를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교육의 힘, 국민 고등학교 운동
그룬트비의 사상은 단순한 신학적 논의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덴마크의 미래가 국민 교육에 달려 있다고 믿었고, 이는 '국민 고등학교(Folk High School)'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의 제자 크리스텐 콜이 이 운동을 주도하며 1844년 최초의 국민 고등학교가 설립되었다.
이 학교들은 기존의 권위적이고 주입식 교육과는 달랐다.
시험도, 학위도 없었다. 대신 '살아있는 말씀'인 강연과 토론을 통해 농부와 노동자 등 평범한 사람들에게
덴마크의 역사, 문화, 언어, 민족의식을 가르쳤다. 그룬트비는 "인간이 되라"고 외쳤다.
그에게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공동체 안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의 열정적인 외침은 덴마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민 고등학교는 덴마크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고, 국민들의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1864년 전쟁 패배로 국토의 일부를 잃은 덴마크는 좌절 대신 '밖으로 잃은 것을 안으로 되찾자'는 정신으로 똘똘 뭉칠 수 있었다.
이 정신적 부흥의 중심에는 그룬트비의 사상이 있었다.
그는 덴마크 루터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추앙받지만, 정작 그의 가장 큰 유산은 종교를 넘어선 곳에 있다.
그의 사상은 덴마크인들에게 진정한 '국민'이라는 개념을 심어주었고,
국민 고등학교 운동은 덴마크를 오늘날의 복지 국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삼애정신의 배경(Background of the Three Loves Spirit)
'그룬트비' 목사가 초년 목회牧會한 '랑겔란드 섬Langeland Island'에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나라를 새롭게할 메시지의 요점은 삼애정신三愛精神이다.
하나님 사랑, 땅 사랑, 사람 사랑이다.
바로 하나님 사랑과 조국애와 동포애 셋을 합한 삼애정신三愛精神이다.
당시 덴마크는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1814년 400년간 지배하던 영토였던 노르웨이를 상실하고,국가 재정이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가난한 국민들은 좌절과 절망에 빠졌고,알코올 중독과 피폐해진 삶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때에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Let's find within what we've lost outside"며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국토 사랑을
외치며 무너진 백성들의 마음을 일깨웠다.
이 외침이 덴마크를 근대적인 농업 선진국이자
복지 국가로 재건하기 위한 '국민 정신 개혁 운동'의 핵심 배양토가 되었고
1970년 새마을운동의 배경이 되었다.
▪︎민족 부흥운동의 4대 핵심 축軸(The Four Core Pillars of the National Revival Movement)
• 삶을 위한 학교(School for Life)
18세 이상의 청년 특히 농민들이 모여 역사를 배우고 토론하는 공동체 학교를 설립했다.
시민고등학교에서 암기식 죽은 교육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Living Word'을 통한
대화와 체육, 노래, 공동 숙식 생활을 강조했다.
• 깨어있는 크리스토교 혁신(Awakened Christian Innovation)
당시 덴마크 국교회는 교리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룬트비'는 교리의 문자적 해석에 매달리기보다,
신앙이 개인의 삶 속에서 즐거움과 사랑으로 실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인간이 되고, 그 다음에 크리스토교인이 되라
a human being first, and then become a Christian."는 슬로건 아래
인간성과 자율성을 회복하는 유연하고 포용적인 신앙관을 보급했다.
• 문화적 정체성 회복 운동(Cultural Identity Restoration Movement)
정체성을 잃어버린 국민에게 덴마크의 역사를 쉽게 풀어 가르침으로써 민족적 자부심을 되살렸다.
그리고 1,500곡이 넘는 찬송가와 서정시를 작곡, 작사하여 민중이 함께 노래 부르며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했다.
• 농촌 부흥을 위한 협동조합을 결성(Forming a Cooperative for Rural Revitalization)
시민고등학교에서 교육받은 청장년들에게
자존감과 협동 정신을 갖춘 협동조합을 통해 농업 구조를 곡물생산에서 '축산낙농업'으로 전환했다.
'낙농협동조합Dairy Cooperative'을 결성하여,
생산, 가공, 유통을 공동으로 해결하며 덴마크를 유럽 최고 수준의 농업 선진국으로 끌어올렸다.
'그룬트비'가 이룩한 민족 부흥의 핵심은 '위로부터의 강요'가 아닌 '밑으로부터의 자발적인 각성覺醒'이었다
▪︎민족인 존경하는 지도자(A Respected Leader of the Nation)
한 국가의 진정한 부흥은 제도制度로부터가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신적 깨어남 곧 의식 개혁에서 시작된다.
그룬트비' 목사는 덴마크 국민들의 정신적 아버지로 존경한다.
•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시킨 지도자
19세기 덴마크는 영토의 절반 이상을 잃고 국가 파산상태에 직면하여
"이 나라는 끝났다"라는 집단적 패배의식에 빠져있을 때,
"절망을 자존감으로Turning Despair into Self Esteem" 탈바꿈시킨 지도자이다.
이런 지도자를 보내 주소서!
• 국민 교육을 통한 사회 기틀을 세운 지도자
당시 고급 교육은 독일어나 라틴어를 쓰는 기득권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다.
일반 농민과 노동자는 무지 속에 방치되어 있었을 때에
'시민고등학교'를 통해서 교육의 문턱을 없애고, 보통 사람들도 국정에 참여하고 자기 삶을 주도할 수 있는
'깨어있는 시민'으로 키워냈다.
이러니 국민의 정신적 아버지로 존경하고 있다.
이런 지도자 없는가?
"오직 여호와를 바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어서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아서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이사야 4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