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12월 어느 날 처음으로 몇몇이 만났다. 그날 북한산에 올랐다 내려오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등산을 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만 13년의 세월이 흘러 2017년 12월. 해를 가리키는 숫자가 느는 만큼 산악회도 커갔고, 회원도 늘었으며, 우애도 돈독해졌다. 이제 또 한 해가 더해진다. 그만큼 산에서 자주 만나고 별탈없이 하루하루 잘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2017년 12월 16일 역시 셋째 주 토요일이다.
느지막이 만나기로 했기에 비교적 여유 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러나 밖으로 한걸음 내딛는 순간, 마음의 여유는 저만큼 달아나 버렸다. 너무 추웠다. 순식간에 마음이 얼었다. 여유를 부릴 게 아니라 단단히 마음을 잡아매어야 했다. 약속장소인 뚝섬에 도착하니 20분이나 이르다. 편의점에서 뭘 살까 두리번거리기도 했으나 물도 가져왔으니 딱히 살 게 없다. 잠시 바깥을 내다봤다가 코로 확 달려드는 찬기에 깜짝 놀라 대합실로 다시 쑥 하고 밀려나듯 들어와 버렸다. 카톡을 보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무 응답이 없다. 도착했다는 톡을 날리고 좀 있으니 오랜만에 멍게가 빵떡모자를 쓰고 일착으로 나타났다. 이어서 집에서 오는 알이 역 바깥에서 대합실로 들어온다. 그러더니 사니 아저씨가 밤 12시에 댓글을 달아 오늘 ‘거시기 하지만’ 참가한다고 했다고…. 잇달아 노들강과 그린란드 아저씨가 나타나고 사니 아저씨가 합류해 모두 6명이다.
출발하자 뚝섬 주민인 알이 안내를 맡고 나선다. 주변 맛집을 하나둘 설명하는 중에 내가 아침으로 콩나물국밥을 먹고 가자고 제안했다. 별로 시장하진 않았지만 오늘 산행을 거의 맛집 기행으로 엮어갈 작정이기도 해서, 아침 점심 저녁을 다 먹어보기로 했다. 국밥 4개와 모주를 시켜 간단히 먹고 길을 나섰다. 서울숲에 이르는 주택가를 거쳐 가는데, 성수동 골목이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곳곳에서 뜯고 새로 짓고 고치고 하느라 분주하다.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개성을 살린 카페, 식당, 빵집, 술집, 애완동물 시설장 등 구경하며 걸으니 심심하지도 않다. 서울숲을 지나 한강으로 나선다. 강바람이 서늘하지만 생각보다 춥지는 않다. 그러다 달맞이공원을 오른다. 상당히 가파른 계단이 계속 이어져 올라가다 보니 숨이 찬다. 게다가 곳곳에 눈이 얼어붙은 곳도 있어 발밑을 신경 쓰면서 걸어야 한다. 금호산 조망명소에선 북한산과 도봉산이 흔히 보던 각도와는 다르게 보인다고 사니 아저씨가 발길을 멈춘다. 추위는 제법 강하지만 그래도 하늘은 맑아 시야가 제법 멀리까지 트였다. 산책 나온 주민에게 단체 사진도 한 장 부탁하고 점심을 먹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약수동 쪽까지 계속 걸어가면서 알의 골목 안내는 계속된다. 순대국 등 맛집 숫자도 늘어간다.
점심은 처갓집. 언젠가 지방에서 올라오면서 전화로 주문해서 다들 함께 갔던 곳이다. 도저히 가게가 있을 듯하지 않은 곳에 숨어 있는 집이다. 전화로 미리 예약을 했기에 앉아마자 찜닭을 먼저 내준다. 그린란드 아저씨는 직접 담근 포도주를 제품으로 빈티지한 것을 내놓는다. 그 자리에서 6명이 홀랑 비우고 소주 3병 추가.
만두와 막국수까지 맛있게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에 성곽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식사 뒤 금방 걸으니 숨이 차다. 길도 상당한 비탈이어서 걷기가 만만치 않다. 성곽 옆으로 붙듯이 올라서자 한결 숨이 가라앉는다. 그때부턴 다소 여유롭게 걸어가다가 타워호텔을 지나 국립극장으로 넘어가 남산 순환 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국립극장 입구에서 팔각정으로 올라가면 되는데, 마포와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기에 산책로를 좀 더 걸어야 한다. 그러나 중간에 멍게가 마포와 전화를 하고는 팔각정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는 말을 전한다. 우리도 중간 지점에서 남산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장인의 생신 가족 모임에 가야하는 멍게와 아쉽게도 작별해야 한다.
남산으로 올라가니 추운 날씨에도 관광객들이 많아서 상당히 붐빈다. 사니 아저씨는 거의 40년 만에 왔다면서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기에 바쁘다(내 휴대폰 몸살 날라. ㅠㅠ). 특히 사랑의 자물쇠를 보고 무척 놀라는데 사실은 몹시 부러워하는 듯(ㅎ).
저녁 뒤풀이 약속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지만 조금 일찍 가기로 하고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남산 곳곳에는 그사이에 새로 둘레길을 조성해서 내려가는 길이 여러 개 생겼다. 처음 가보는 길로 내려갔더니 남산도서관 못미쳐 있는 지점이었다. 다시 퇴계로 쪽을 향해 내려가다 보니 힐턴호텔 맞은편으로 길게 성곽이 복원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서울에 살면서도 남산공원이 이렇게 많이 변해버린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날 좋을 때 다시 한 번 찬찬히 걸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그럭저럭 5시가 좀 넘어 연길반점에 도착했다. 사람이 어느 정도 모이기 전까지는 양꼬치를 시키지 않기로 하고 먼저 탕수육과 어향가지를 시켰다. 탕수육은 쫄깃한 식감이 좋고, 어향가지는 맛은 있었으나 좀 달았다. 그래도 유명한 이름값은 하는 요리였다. 그리고 내가 가져간 술을 따려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한다. 규칙이 그렇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다.
6시 무렵 대략 12명이 모였다. 특히 투병 중인 안은섭 선배가 선물까지 들고 오셨다. 건강해진 모습에 다들 인사를 드리고 빠른 쾌유를 빌기도 했다. 이제 연길반점의 유명한 양꼬치를 시켰는데 굽는 도구가 신기하다. 홈이 파여진 바깥 틀이 움직이면서 양고기를 꽂은 꼬치 한쪽에 붙인 톱니바퀴 같은 것이 그 홈에 걸려 스스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손으로 뒤집지 않아도 꼬치가 저절로 360도 회전을 하게 된다. 참 머리를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먹는 맛, 보는 맛 곁들여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막간을 이용해 알이 제비를 만들어 선물뽑기를 진행했다. 미처 준비를 못한 사람은 현금 1만원으로 선물을 대신하기로 했다.
두어 시간 지나고 나니 가상이가 오고 있다고 전화를 했다. 연길반점에서는 그만 떠나야 할 것 같아서 2차 장소를 물색했으나 가져간 술을 편하게 마실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다. 그래서 우리 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 뒤는….
첫댓글 회장님의 큰 은덕을 입었는데 이렇게 후기까지... 고맙습니다. 뒤풀이에만 합류해 죄송하고요. 모두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내년에 뵙겠습니다.
반갑고 고마운 탐방기입니다. 보통 산행에서는 장소와 풍경을 회상하기가 어렵지 않은데, 어제 일정에서는 지명과 내용과 풍경을 연결하여 기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유용한 정보(!)가 많아 다시 지도를 보며 되짚어 기록해 두려고 했는데, 자세하게 적어주셔서 큰 도움이 됩니다. 고개를 젖혀야 올려다 보이는 고층 아파트 단지, 오밀조밀한 구옥들, 오래된 연립주택, 개발 중인 주택가, 집들의 어깨가 닿아 있는 좁은 골목길, 자동차로 가득한 광활한(?) 도로, 상류와 같이 정비되고 깨끗한 듯 보이는(?) 하천의 하류, 곳곳의 동네 공원과 산책길... 남산에서 바라보는 서울, 고층빌딩과 창백한 아파트 군락(남산에서 보이는 아파트는
햇볕때문인지 멀어서인지 이상하게도 모두 하얗게 보였습니다)으로 빽빽한 도심과 외곽, 숲과 강과 산악이 함께 하는 서울은 한 마디로 서울입니다. 다양하게 상이한 동네와 환경과 지역이 둘레길로 연결되어 있더군요. 아니면 알님이 그런 길을 찾아 연결한 것이라는 말이 더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곳곳에 숨어 있는 맛집 정보도 좋았습니다. 피플러버님이 집을 제공해주셔서 편안하고 즐거운 뒷풀이가 되었습니다. 추운 날, 함께한 분들 반가웠습니다. 특히 은섭이형이 다시 산행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고 기뻤습니다. 일정을 준비하고, 선물을 제공해주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저는 선물을 준비 못해 미안합니다.
@sanisana 그리고, 산행참가가 "거시기"했던 것이 아니라, 산행 당일 0시 넘어 참가를 알리는 것이 미안했지요.
사니 아저씨의 곰살맞은 수식이 더해져 감상문이 더 나은 산행기가 되었네요. 건조한 기록에 감칠맛을 더해준 평을 함께해서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희망과 용기는 발목 더 신경쓰고...다들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에도 건강합시다. ㅎㅎㅎ
회장님 덕분에 귀한 술과 안주들(갖가지 마른 안주 성찬) 맛본 송년모임이었습니다. 산행기, 빨리 쓰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그날 최후의 멤버들과 골뱅이 소면에 소주 한 잔 더 하고, 또 가상이와 커피 한 잔 더 하고 집에 오니 01시 30분. 올해도 다이내믹한(?) 일정의 송년모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뵈었는데, 친정처럼 편안한 자리였습니다.
함께 했던 시간을 거쳐, 나이도 들고, 점점 더 편안해 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3차쯤 되면 더 이상의 기억이 없는 것에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기도 식상해서 어물쩡 넘어가게 됩니다. 그래도 되는 모임에만 간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죠.ㅋ
즐거웠습니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회장님의 '베품'이 계속된 하루였네요. 고맙습니다.
우리 산악회의 산행이 주로 거리와 시간을 요하는 지방산행이 대부분인데, 서울의 중심부를 여유있게 걷는 이번 일정도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함께 걸은 거리도 상당하지만 5차까지 진행된 술자리도 인상적이네요. 회원님들 모두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요, 해 바뀌고 뵙겠습니다.
아이구 새벽 1시 넘어까지. 역시 젊어서 좋네. 그래 그렇게 해서 또 한 해를 기억나게 넘기는 거지. 나는 공치사는 아니고(ㅎ) 설거지 끝나고 대략 치우니 12시가 좀 넘더라구. 그래도 중간에 깨지 않는 잠을 자고 일요일 오전에 일이 있어 나들이하고...연말은 이렇게 바쁘게 보내는 거지. 지칠 때까지 가보는 거야. 다시 한 번 자리 함께해서 고맙고, 함께 못한 사람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랩시다...
산행기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댓글중의 몇몇 단어들이 산행기의 숨겨진 의미들을 상징하는것 같습니다.
은덕...창백한 아파트 군락...거시기...다이내믹...서울의 중심부...친정...베품...아쉬움...그리고 내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연길반점 불참은 별로 아쉽지 않은데 회장님 댁에 못간 건 정말 아쉽습니다.
산행은 못했어도 연말이 가기전에 반가운 얼굴들 볼 수있어 좋았습니다.하해와 같이 넓은 회장마마님의 은덕이 빛난 연말 모임이었던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