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륙도가 액자 속의 풍경이 되었다
내 푸른날의 일기장 속으로 걸어들어가다 내게도 푸른날이 있었을까? 자존감이 지나치게 낮았던 어린시절이었기에 내가 가진 색깔이 없었던 것같다 그럼에도 나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갈맷빛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 그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 마침내 차에서 내려 가슴 밑바닥에 숨어있던 그 바다빛을 만났다. 오늘만큼은 다른 곳에 눈 돌릴 겨를 없이 갈맷빛 바다를 바라보며 오래오래 걸었다. 그 걸음 사이에 만난 풍경 하나가 진종일 따라 다녔다. 마음 속과 혹은 겉껍질을 벗겨내며 먼 산너머 있던 그리움까지 들추어내며 푸른날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청사포의 쌍둥이 등대
해운대 갈맷길 따라 걷다
흔적 : 기장 대변항-대변초등학교-오랑대-국립수산과학원-해동용궁사-공수포-송정해수욕장-구덕포- 죽도공원-청사포-문텐로드-미포-해운대해수욕장-동백섬길-주차장 (5시간 40분)
대변항
나뭇가지 사이로 뜨는 해를 마음속에 떠올리고 생각밖에 사라질 해는 물결 위에 손가락으로 그려넣다.
오랑대 들어가볼까하다 그만두었다. 푸른 기억을 찾아 헤엄치는 귓전에 징소리가 맴돈다. 꿈은 짧았다. 다시 챙길 이야기를 찾기 위해 오랑대를 흘렸다.
징소리 한바탕의 춤사위 그리고, 북어가 통채 바닷물에 던져지는 굿판 사람이 무얼까? 참 나약한 게 인간인 것이다. 정말 아무런 힘도 없는, 지푸라기보다 약한 먼지 한 톨의 무게도 되지 못하는...
서편제는 아닐진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오랑대 뒤로 대변항이 물러섰다
오리나무
길이 문득 바닷물 가득해져 폐쇄된 군부대 담벼락을 따라 에돌아간다
정지된 시간이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몰라 무념무상 속에 고인물같은 그러나 정제된 시간인지도 모르고
렌즈를 들이대면 덩치 큰 방파제도 등대도 내겐 장난감이 될 수도 있음을... 초등3학년 특활반 미술 엄지를 치켜든 손 데생을 했다. 끝낸 후 점심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열었는데 옴마가 세상에!! 젓가락을 안넣어 주셨다. 물론 숟가락도 없다 숫기도 없고 까다롭기만했던 나는 그 냥 굶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울었다. 너무 배가고파서. ㅋㅋㅋ 지금도 편식습관이 적당히(?) 남아있 지만 어린날의 단발머리 그 아이는 지독한 편식에, 낯가림에 하여간 못난 짓은 다 갖고 있었나보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
해동용궁사
편견을 버리고 바라보기가 우선이다. 그래야 아름다움으로 다가올터이니... 사寺 와 암庵 의 차이 마음속의 부처와 눈에 보이는 부처 있고 없는 차이일까? 편견을 버린다고 했지만 나는 역시 庵이야! 거들먹거리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순수가 좋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야.
골드맨은 기도 중
그의 기도가 너무 간절했어 저자거리같은 분잡함 속에서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심연 그 깊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는 집중력 역시 아마추어는 아닌 게 분명했어. 믿음이란 역시 그런거야 어떤 상황에서도 원하는 상황으로 몰입할 수 있는.
돌탑들도 기도 중 국태민안! 지구평안을 위하여!
노란별들의 유희
해동용궁사를 되돌아 나와 산길 따라 조금 오르면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아래로 벼랑 그 곳이 시랑대가 된다
시랑대에서 몇 컷 오른쪽 붉은 건물은 국립수산과학원
좀바위솔
시랑대 음각
???
톱풀순
또 다른 전망대에서 만난 바위솔
등대풀일까? 대극일까?
양지꽃
멀리 장산이 들어오고
죽도공원과 해돋이 장소로 유명한 일송정
접근 일송정 해벽을 따라 올라가니 계단이 있고 나즈막한 문이 있었는데 잠겨있어서 미안한 마음으로 월담 아래를 내려다보니 태공들 횡대로 늘어섰다
송정해수욕장
나의 아부지는 철도공무원이셨다 덕분에 기차는 공짜로 타고 다녔다. 여름날 부산에서 기장으로, 월래로, 송정으로, 조수간만의 차가 크지 않고, 물의 온도도 따뜻하고, 모래사장도 넓고 쾌적한 해수욕장이었다. 나를 네모난 군용 침대보트에 태워서 아부지 가슴 즈음에 들어가셔선 나를 팽개치셨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날려고 헤엄이라도 칠 줄 아셨나보다 그러나 나는 그 때 그 충격으로 아직도 수영을 못하 고 갈맷빛 물빛만 보아도 무서워 소름이 돋는다. 아부지의 무대뽀 교육방식은 부산이 고향인 내게 수영 도 못하고 생선회도 안먹는 어른을 만든 것이다. 사실 우리 아부지는 지독한 편식쟁이셨지. ㅎㅎ 젓갈 넣은 김치 아부지 사전에는 없었어. 그래서 우리집 김장은 젓갈 대신 집간장으로 간을 했었어. 근데 엄 니 손맛이 좋으셨든지 김치맛은 늘 깔끔했지. 흠 갈맷빛 물빛 얘기하다 김치로 샜네. ㅋㅋㅋ
일송정을 반대편으로 들어가다
해안선을 따라 걸을 때 무딘 내 코를 자극하는 냄새 바다냄새였어. 파래와 김, 미역 그들은 속살을 드러내며 은은한 바다향을 날리며 내 후각을 건드렸어. 기장미역으로 끓인 도다리 미역국도 맛있었어 변덕이 나면 가 끔 못 본 척도 했지만 그래도 육류로 끓인 미역국보다 훨씬 시원했었나봐 입맛 깍쟁이 나도 도다리미역국은 먹었으니......
추억쌓기놀이
중딩이나 고딩일 때 학교행사로 광안리나, 해운대해수욕장으로 2박3일 해양훈련을 했었는데 물론 박은 집에서 하고 학교에 출석하듯이 시간 맞춰 해수욕장 지정된 장소로 등교가 아닌 등 장을 하는거지 그리고 물놀이 간식도 집에서 가져와서 먹고 시간 맞춰 싸온 도시락 먹고 자유 시간도 가지고 그런데 중딩1학년 때였나봐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온 몸이 조금 추운 듯하여 맨 몸으로 백사장을 이쪽 끝에서 저 쪽 끝까지 걸어갔지머야 그랬더니 양 팔뚝 살이 익어 그 날 죽 는 줄 알았어 옴마가 감자 갈아서 붙여주고 손바닥 선인장 찧어서 붙여주고 그래서 낫긴했다마 는 그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아마 2도 화상이었던가봐 팔뚝에는 주근깨가 난리도 아니야. 아직도 그래.
가오리 하늘을 어지럽히다 연하면 사금파리 생각나. 오빠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아마 오빠 등쌀에 나도 사금파리깨나 줏으러 다녔을텐데 연줄에 사금파리를 돌로 찧어 무언가를 섞은 다음 실에 풀을 맥인다나 우짠다나 그라면서 자세를 요리조리 잡 아채면서 연실 끊어먹기 놀이도 하고 그라더라고. 참 나는 남자들이 하는 놀이 중 구슬치기 하고 자치기는 제 법 잘했지 땅따먹기도 하고, 눈치기도 하고, 구멍넣기도 하고, 그러다 밤 늦으면 옴마가 대문을 잠그는 바람에 월담을 하는거야. 머 월담 얘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말야. 내가 생각해도 여자치곤 꽤 극성 맞은 여자인가 봐. 숫기 없고, 어리석은 구석은 많지만 아부지 근성 닮아 내게 덤비는 남자아이에게 어퍼컷 날려 코피 낸 적 도 있거든 그리고 이건 웬만해선 안꺼내는 얘기인데 어떤 여자아이가 내 머리채 잡고 까불길래 한 번 감아 잡 아채기했더니 이마가 훤해졌더라고 그래서 숨어다니다가 그 담날 걔네 할매한테 욕 사발로 묵었지. 가스나가 우찌 저리 극성맞노! 캄서 나는 속으로 그랬제 나는예 먼저 안건드리믄 절대로 안그랍니더 캤제.
청사포등대
청사포
망부송을 멀리서
망부송 접근
괴불주머니
청사포를 지나가는 동해남부선철로
아부지는 기차 타고 경부선 탈 때도 있고 동해남부선 탈 때도 있고 퇴근할 때 아부지 손에는 늘 봉투가 있었어 튀김건빵, 호떡, 식빵 사과, 토마토, 어떤 때는 수박, 찰떡(인절미) 쌀강정, 튀밥, 아부지 는 술을 안드셨거든 그래서 군것질꺼리를 잘 사오셨나봐 폭신폭 신한 식빵(자르지 않은 것) 통째로 사오셔서는 휙 던지시면서 하 시는 말쌈 " 아나 숙아! 니 베개다"
청사포마을을 지나 만나는 이정목
지지배배 제비꽃
홀로 걸어도 둘이서 걸어도 좋을거다
숲을 채운 팔손이나무들 공기정화작용 식물이라한다
흠 올해 첫만남이야
문텐로드를 벗어나기 전
달맞이고갯길 오랜만에 걷는 길이네 하도 오랜 시간이 지난지라 가늠이 제대로 안되는 과거여!
다시 철길을 건너서 만나는 목초속에 봄이 빼곡하다
중딩 1학년 나는 기계체조부에 들어가게 되었어. 내 생각은 단 1%로도 들어가지 않은 강제입부였지 그리고 3학년 여름이었나봐 고딩이었던 언니 복희언니 집이 우1동인가 2동인가 하여간 우동이었어 1박2일로 가자고 했어 옴마한테 승낙받고 가는데 옴마는 잠옷까지 준비해주셨어. 근데 가는 날이 장 날인지 저녁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개구리, 맹꽁이, 뚜꺼비 양서류가 총동원해 우는데 날 꼴딱 샜지 너무너무 요란한 오케스트라에 깜짝깜짝 놀라 무서웠던거지. 근데 내가 사는 동네는 좌천동 산동 네라 그런 소리는 첨 들었거든
그러더니 그 다음날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학교에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지 그래도 체조감독한테 맞아뒤지는 것보다는 걷더라도 학교가는 편이 더 수월하니 걷기 시작했어 학교는 걸어간다면 아마 종일 가야할 걸 해운대에서 범일동까지 다행히 한참 걷다보니 버스가 오데 그래서 타고갔지
우리 고딩 때는 송충이 잡는다고 유엔묘지가 있는 대연동 지나 거기가 어디더라 참! 용호동 거기까지 송충이 잡는 행사도 하고 그랬어 그런데 나는 그 때 멀미가 심해 늘 걸어다녔어 그 길이 몇리가 되든 지 구덕운동장에 갈 때도 구덕터널을 가로질러 가곤했었지 출발 점은 늘 좌천동 아니면 범일동이야
초딩 때는 좌천동에서 범내골을 넘어 가야동 뒷산으로 소풍을 가곤했지 물론 부산에 살면서 금정산에도 한 번 안 오른 나였어 그 때 지겹게 걷던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
이런 멋진 건축물을 보면서 당장 급한 곳은 해우소였으니...
해운대해수욕장
인어아가씨도 만나고 올만이야!
태종대, 조도, 해양대학, 동아대학, 그러다 토성초등학교, 범일초등학교, 가야초등학교, 태광산업에서 기억이 잘려 나가고 제 2의 허경숙으로 살아왔어 여긴 지금 경기도 안성 땅이야 여기도 살 만하지만 부산하고는 비교 당근 안되지 배부른 이야기 인지도 모르지 그래서 주어진 시간 막 먹는거야 체할 때 체하더라도 지난 추억의 시간 마구마구 들추어내는거야 마구마구 삽질해서 퍼 넣는거야 빈 내 마음 구석으로 밀어넣어뒀다 꺼내보려구.
동백섬길
격세지감 동백섬에 대한 격세지감은 어쩔 수 없어 좋아졌으니 좋은거지뭐 다만 다 변하더라도 한 가지만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야 뭐냐구? 물빛 갈맷빛 저 물빛 절대 변하지 말았으면 해
오늘 죙일 흐린날이라 어두웠어 후반전으로 가니 조금은 밝아졌네
동백섬의 등대
누리마루
누리마루 APEC하우스는 부산시가 지난해 9월 15일 194억의 사업비를 들여 공사에 착수해 1년 만에 준공했으며, 지상3층 연면적 905평 규모다. 누리마루 APEC는 특히 12개 기둥이 건물을 지탱하는 한국 전통 정자를 본떠 한국의 전통미를 가미한 현대식으로 건축됐다.누리마루 APEC하우 스는 2005년 11월 APEC정상회의 때 제2차 정상회의장과 오찬장으로 사용되며 21개 나라 정상들의 공식 기념사진 촬영과 함께 역사적인 정상선 언문 발표가 있었던 곳이다. 누리마루 APEC 하우스의 뜻은 순수우리말인 누리(세상, 세계)와 마루(정상, 꼭대기), APEC 회의장을 상징하는 AP EC 하우스를 조합한 것으로 "세계의 정상들이 모여 APEC회의를 하는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누리마루APEC하우스는 이미 국내·외 인사들의 내방을 통해 역대 정상회의장 가운데 풍광이 뛰어난 곳으로 평가받고 있고 천년 역사의 숨결이 흐르는 동백섬과 더불어 세계적인 명소 로 부각될것이다.
광안대교
우후죽순의 숲으로
학꽁치얼라들 잡느라 정신없다
추억여행 푸른날의 기억을 더듬어 보는 추억여행을 떠났다. 다섯시간 남짓 걷는 동안 몇십년 전 그 두꺼운 책장을 들추어내긴 턱도 없는 시간이지만 그러나 그 시작 점으로 갔다는 것과 비록 헝클어진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진 못했지만 묻어있 는 냄새를 맡아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해초냄새는 몇 십년전의 그 냄새를 떠올리게 했고 갈맷빛 그 푸른물은 어 린날의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이었다. 철길에 대한 기억은 차츰 잊혀졌던 아버지에 대한 들춤이었고 달맞이고개 옆 산복도로의 풍경은 어린날의 내집 풍경이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보게해 준 이번 여행이 너무나 행복 했으므로 나는 이제 한 참 동안 이 시간을 잊고 살 수 있겠다.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노라. -푸른날의 기억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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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야동 태화고무공장 자리엔 거대한 아파트군이...
공장뒤엔 철로가 흐르고 있었죠. 나중에 경부선이란 걸 알아차렸지만.
사이다, 맥주병 뚜껑이랑 굵은 못 하나라도 주워들기라도 하면
기차힘을 빌어 쫘~악 펴지기를 바라며 깡총거리며 철둑가로 뛰어가기도 했었습니다.
이름하여 가야동 철길 추억. ^^
저도 누님처럼 뒷집에 있던 말집, 사가지없는 가시내를 때려 뒤질뻔한 기억이 납니다.
여자 중요한 부위 가슴을 쳤다고요.
뉘미... 어린 가시내가 뭔 가슴이 있따꼬. ㅋ
ㅋㅋ 수덩이 동네 안살았기 다행이제
한 동네 살았으믄 둘 중에 하나는 이미 딴 세상이 있었겠네.
수덩님은 가야동에 살았구나.
나는 가야초딩 도서실에 다녔는데......
산동네에 살았으니 늘 놀이터가 산일 때가 많았고
남자애들 뒤따라 다니면서 여치도 잡고 방아깨비도 잡아 연탄불에 구워먹고 ㅎㅎ
산을 누비고 다니다보니 가마때기 덮어 논 송장을 만나 해골을 발로 차고 다니다 기겁도 하고
ㅎㅎ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어렸을 때가 더 재미있었다는 생각
요새 애들은 늘 컴과 놀고.
ㅋㅋㅋ비오는 날 바라보니 옛날 생각이 절로 납니다. 살구 따 먹는다고 돌 던져서 나는 몇개 흐르길래 주워 먹었는데 옆에 있던 친구놈이 던진 돌멩이가 단지뚜껑을 와장창~~~그놈이 지가 안그랬다고 오리발 내는 바람에 울 어무이가 물어 줬지요. 그래도 나는 아부지한테 "내가 던진건 아닙니더" 했더니 안다고 하시며 안머라 카시던 기억~
한편의 드라마처럼 감동 짱입니다^^
ㅎㅎ 차칸아님 맞기는 맞는가 보다 그노무시키 지가 돌메이 떤지가꼬 장독뚜껑 깨놓고 차칸아님한테 뒤집어 씌우고
그 아부지 참 좋은 아부지셨네요 아들의 성품을 제대로 파악하시고 믿음을 갖고 계셨으니 말입니다.
우리들의 어린 날의 기억들을 들추어내면 밤샘해도 몇 박은 해야될기라요.
늘 건강하시고요 시간은 흘러도 늘 지금만 같았으면 합니다요. 고맙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