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2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바크하우스라는 밴드를 하면서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본다는 마음으로 글을 올려봅니다. 재미없고 지루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사실과 다른 왜곡된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문득 듭니다.
최대한 사실에 기반하여 기억나는대로 적어보겠습니다. (이제는 유명인이 된 홍일이 얘기를 이렇게 적어도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바크하우스라는 밴드 이야기로 가겠습니다.
제가 직장인이라 자주 업로드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생각나는대로, 그리고 연도별 순서와 관계없이 기억나는 사건 중심으로 편하게 올리겠습니다. 편안한 어체로 적겠습니다. 경어체로 적으니 무슨 조서(?)작성 하는 것 같아서 힘듭니다ㅜㅜ
그리고 ‘홍일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이러한 사항들 부디 양해해주시길 바라면서 시작해봅니다.
- 홍일이와의 만남
1995년 여름, 경남 마산/창원에 위치한 방송광고회사에서 처음 홍일이를 만났다. 당시 홍일이는 창원 도계동 녹음실(스튜디오)에서 근무했고 나(치훈)는 마산 양덕동 야구장 건너편(현재 H마트 자리에 소재하였음)의 사무실에서 근무했었다. 업무상 스튜디오를 가끔 갔었는데 거기서 홍일이를 보게 되었고 오다가다 안면을 익혀 친분을 쌓는다. 방송광고 작업 등을 주로 했었는데 홍일이는 마산/창원지역에서 송출되는 라디오CM송을 몇 곡 부른게 기억한다. 몇초짜리 광고의 멘트도 했었고.
(광고녹음한 자료는 찾지 못했고 96년도에 홍일이 노래한 테잎은 있습니다. 공개가 될지안될지 몰라서 사진만 올립니다)
그러던 어느날 업무차 들린 녹음실 홀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홍일이를 보게 되는데 그때는 노래보다는 기타치는 플레이에 귀가 먼저 갔다. 누구한테 기타 배웠냐니 혼자 쳤단다. 혼자 터득한 것 치고는 꽤 매끄럽게 연주했다. 그리고 음색이나 음정도 좋고 노래도 곧잘한다. 이후 마산사무실이 창원으로 옮겨져 홍일이와 카풀로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락음악을 주입시키기 시작한다. ‘락입문자 세뇌용’로 엄선해 녹음한 테잎을 차에 꽂고 홍일이와 둘이서 음악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저는 지금도 음악이야기로만 밤샐 수 있습니다 - 그 녹음한 테잎들을 홍일에게 주면서 집에 가서 들어봐라고 했다. 홍일이는 음악에 남달이 관심이 많고 흡수력이 좋아 다음날 아침이면 ‘행님, 어제 밤에 테잎 들어보니 어떤곡이 좋습띠다’ 하는 리액션이 있었고 그중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귀로 듣고 커버하여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하기도 했다. 싹수가 보이는거지. 그러면 이어서 다음 과제로 점점 센곡으로 내줬다. 약한것부터 시작해서 슬슬 강도를 높여가야 락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다. 그렇게 홍일이는 서서히 락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 밴드 결성
어느날 홍일이에게 ‘행님이 조만간 밴드를 할 생각인데 니가 와서 노래 좀 할래’하니 반색하며 ‘좋지요’한다. 일단 밴드 멤버 두 명이 만들어진거다. 난 스쿨밴드 시절부터 베이스를 쳐온터라 이제 기타리스트와 드러머만 있으면 기본적인 밴드의 틀은 만들어 질거라 생각한다. 요즘은 웹사이트를 통해 밴드 같이 할 사람 구할 수 있는 폭이 넓지만 그때는 모뎀 접속 시대로 하○텔, 천○안, 나우누○ 동호회 시절, 그곳의 음악동호회 커뮤니티나 아니면 전봇대에 꽂힌 벼○시장이 소통의 창구였다. 이래저래 구인광고도 올려보고 했지만 그곳을 통해 멤버 구하는 건 포기하고 1997년 여름, 초등학교 친구 두명을 술자리에서 밴드 같이하자고 꼬드긴다. 어릴때부터 같이 기타치고 노래부르며 놀던 친구들이라 밴드를 같이 하는데 큰 거부감이 없어 같이 하기로 한다. 본격적으로 준비 하려다보니 장소와 악기 등의 장비가 필요했다. 지금은 시간당 얼마주고 이용하는 합주실이라는 곳이 존재하지만 그때는 그런게 아예 없던 시절이라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다 마련해야만 했다. 결국 틈만나면 벼○시장을 살펴보는게 습관이 되었다. 혼자 힘으로 하나둘씩 장비를 마련한다. 그해 겨울 중고로 드럼셋트, 기타앰프, 베이스앰드 등등을 하나씩하나씩 장만해 회사창고 구석에 쌓아둔다. 이윽고 밴드 연습실 장소를 창원 도계동 주택지하에 1998년 6월에 바크하우스라는 이름이 달린 밴드를 최초로 결성한다. 멤버는 나, 홍일, 초등학교친구 두명, 이렇게 네사람. 하지만 나를 제외한 세사람은 밴드 경험이 전무하여 기타, 드럼 등 악기의 모든걸 다 가르쳐야만 했다. 그때의 열정이 대단했던 것 같다. - 지금 이글을 적으면서 생각해보니 미친거임 -
주택 지하다보니 밤늦게까지 연습할 수 없었고 때로는 주인 아주머니가 와서 시끄럽다고 방빼라고 한적도 여러번 있었다. 나름 흡음제를 사서 방음에 노력을 기울였으나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장마철 비가 많이 오면 비가 스며들어 장판을 걷어 바닥의 물을 퍼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우리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기쁨으로 매주 한번씩 저녁에 모여 우리만의 열정을 키워갔다.
밴드 이름도 없이 지내던 중 각자 밴드이름 하나씩 얘기해보자 하니 기억은 안나지만 손발이 오글거리는 이름들을 제안했다. -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름이라 기억이 안나는 듯 - 그때 문득 옆을 보니 누군가 사온 박○스 드링크 박스가 눈에 들어왔고 그 뉘앙스를 빌어 락이라는 이미지가 그려지는 BARK와 그 공간의 HOUSE가 합쳐진 바크하우스가 이름 붙여졌다. 그 이후로 한번도 밴드이름이 바뀐적이 없었다. 멤버들이 줄줄이 바뀌고 혼자 남아있을때에도 그 이름은 있었고 나를 제외한 밴드멤버들이 다 바뀌어도 바크하우스는 존재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23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하고 있는 이름이 바크하우스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2021.3.11
written by STEELER
첫댓글 바크하우스 역사를 볼수있어서 좋네요 감사합니다 ^^
멋지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