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환의 돈황벽화로 읽는 불교경전
3. 막고굴 196호굴 ‘노도차투성변’
고요한 사리불과 우스꽝스러운 외도 모습 대조
정치 격변 겪은 하서지역서 속강문학 유행하며 벽화에도 반영
외도 노도차와의 대결 대칭·비대칭 절묘한 화면 운용으로 구현
사리불 승리 부각시켜 주류 사상 논파한 ‘항마’ 위세 극적 표현
막고굴 196굴 서벽 ‘노도차투성변’ 모사본과 선묘본(아래).
무한한 자비를 강조하는 불교도 때로는 단호한 투쟁을 강조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成道)하는 순간 마왕 파순과 벌인 투쟁은 너무도 유명하다. 불교미술에서도 이 순간은 ‘항마’라는 이름으로 자주 도상화 되었다. 또한 인도의 간다라미술에서는 사위성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육사외도에 맞서 펼치신 신변(神變) 역시 중요한 항마 도상으로서 유행하였다. 이 두 항마는 수행-포교에 있어 불가피하게 직면하는 내적-외적 투쟁의 치열함을 반영한다.
흥미롭게도 돈황석굴에서는 외도에 대한 항마도상으로서 ‘노도차투성변(勞度叉鬪聖變)’이 더욱 유행하였다. 노도차투성변은 ‘현우경’의 수달기정사품(須達起精舍品)을 도상화한 변상이다. 이 품은 사위성의 수달이라는 장자가 기타(祇陀) 왕자의 동산을 매입해 부처님을 위한 정사[기원정사]를 세우려는 이야기와, 이에 반대한 외도들이 술사 노도차를 내세워 사리불과 법술을 대결하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돈황이 자리한 하서지역은 8세기 중후반 안사의 난 이후 토번에게 점령당하고, 9세기 말에 이르러 토번을 축출함과 동시에 귀의군(歸義軍)이라는 지방정권시대를 맞는 등 정치적 격변을 거친다. 한편으로 불교의 민간화 및 세속화에 따라 불경의 내용을 소재로 속강문학이 점차 유행하였다. 이와 같은 정치와 문화의 흐름 속에서 ‘현우경’을 비롯한 본생담을 소재로 한 벽화가 재등장하였다. 그중에서도 노도차투성변은 북주 시대 처음 벽화에 등장한 이후, 송대에 이르기까지 형식과 내용에서 모두 역동적 변화를 보이며 인기를 끌었다. 형식에서 장면의 시간적 배열(12굴 남벽)로부터 사리불-노도차 대칭구조 중심의 공간적 배열로 발전하고, 내용에서 경전을 모태로 서사구조를 발전시킨 ‘항마변문(降魔變文)’과 같은 속강문학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
막고굴 196호굴은 노도차투성변의 내용과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주실의 남벽과 북벽은 법화경변, 아미타경변, 금광명경변, 화엄경변, 약사경변, 미륵경변이 벽면을 나누어 장엄된 가운데, 노도차투성변은 서벽의 전체를 차지하며 196호굴의 중심 벽화로 자리한다. 화면은 다양한 장면들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원본인 경전, 속강문학인 ‘항마변문’, 다른 출처의 문학작품, 그리고 화공의 창작적 요소 등이 다양하게 개입하였다. 그중 이야기의 핵심인 여섯 차례 법술대결을 중심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달 장자가 정사의 터를 마련하고, 사리불이 대결을 준비하는 장면들은 가장자리를 따라 주변적으로 배치하였다. 대결의 주체인 사리불과 노도차는 각자 대좌에 단좌한 채 대립구조를 이룬다. 화면의 중앙에는 사위성의 국왕 파사익이 대결의 주재자이자 판관으로서 자리하며 이를 중심으로 좌우로 진영이 양분된다. 화공은 이처럼 완벽한 대칭으로 기본 구도를 짜고, 결투의 세부적 정황은 대칭과 비대칭을 절묘하게 운용하여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1) 노도차가 연못을 만들어 칠보로 장식하고 한가운데 연꽃을 피우자, 사리불이 여섯 어금니를 가진 흰코끼리를 만들어 연못의 물을 모두 마셔버리게 하였다.
(2) 노도차가 산을 만들자, 사리불이 금강역사를 불러 금강저로 산을 부숴버렸다.
(3) 노도차가 머리 열 개인 용을 만들어 대지를 뒤흔들자, 사리불이 곧 금시조를 만들어 그 용을 모두 찢어 먹게 하였다.
(4) 노도차가 힘센 소를 만들어 사리불을 공격하자, 사리불은 큰 사자를 보내어 그 소를 뜯어 먹는다.
(5) 노도차가 직접 불을 뿜는 야차로 변신하여 공격하자, 사리불은 비사문천왕으로 변신하여 야차를 오히려 불로 가두었다.
(6) 노도차가 나무를 만들어 대회장을 뒤덮게 하자, 사리불이 회오리 바람을 일으켜 나무를 뽑아버렸다.
여섯째 대결은 본래 ‘현우경’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지만, ‘항마변문’에서는 이것을 마지막에 배치한 후 사리불이 소환한 풍신으로 하여금 나무 뿐만 아니라 외도의 진영 전체를 바람으로 휩쓸게 하였다. 노두차의 대좌는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이 뒤로 젖혀지고, 외도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천막을 고정하고자 애쓰나 오히려 자신들의 몸이 바람에 날아가기 직전이다. 노도차의 표정에는 놀람과 공포와 황망함이 가득한데, 사리불은 마치 선정에 빠진 듯 고요하고 평온한 자태로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또한 여섯 차례의 법술대결은 대부분 노도차의 진영 쪽에서 벌어지고 있어 대결의 형세가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허전한 사리불 진영의 공간은 무엇으로 채웠을까? 경전과 변문에 의하면 이 대결에서 패배한 후 육사외도와 수많은 제자들이 모두 부처님께 귀의한다. 사리불의 진영은 이 외도들이 귀의하는 갖가지 장면들로 채웠는데, 그 모양새가 자못 우스꽝스럽다. 삭발을 진행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 엉덩이를 쳐든 채 머리를 씻는 장면, 관정에 사용할 정병의 물을 들이켜는 장면, 예법을 몰라 어정쩡한 자세로 절을 하거나 무릎을 꿇는 장면, 처음으로 삭발하고 가사를 엉성하게 걸친 채 자신의 모습을 어색해하는 외도와, 그를 보고 다른 외도들이 파안대소하는 장면 등등 각양각색이다. 이처럼 희화화된 외도들의 모습들은 대결구도의 긴장감을 해소하고, 동시에 사리불의 승리를 더욱 극명하게 부각시킨다.
‘현우경’의 ‘수달기정사품’은 이처럼 문학을 통해 극적 요소가 풍부해지고, 회화라는 시각적 매체를 통하여 참배자의 마음에 더욱 효과적으로 각인된다. 미술사학자 우홍(巫鴻)이 지적했듯이, 이것은 화공의 치밀한 기획에 의한 도상의 창조적 결과물이다.
이와 같은 환술의 대결은 당시 주류 사상들을 논파한 ‘항마’의 위세를 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정연한 논리로 상대의 주장과 사고의 모순을 지적하고, 현묘한 이치로 미처 깨닫지 못한 진리를 드러낼 때, 이보다 더 상대의 모골을 송연하게 하는 항마의 투법(鬪法)은 없을 것이다.
[1620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