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9일 고난주간 성금요일 말씀 묵상♣.hwp
♣2013년 3월 29일 고난주간 성금요일 말씀 묵상♣
성경:마가복음15:33-39(신84P)
제목: 수난의 날
33.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할렐루야!오늘은 고난 주간 성금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신 날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더 깊게 묵상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제목}***“수난의 날”
고난 주간 첫째 날 주일은 “예루살렘 입성의 날”이었습니다.
둘째 날 월요일은 “성전 청소의 날”이었고,
셋째 날 화요일은 “변론의 날”이었습니다.
넷째 날 수요일은 “사랑과 배신의 날”이라고 부르며,
다섯째 날 목요일은 “최후의 만찬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고난 주간 여섯째 날 금요일은 “수난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수난의 날에 예수님이 수난은 당하시는 장면을 통해서
특별히 세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첫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자는 교훈입니다.
만찬과 마지막 설교가 끝나고 한밤중에 예수님은 철야 기도하러 베드로와 요한, 야곱을 따로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이 동산에서 예수님은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정말 죽어야 하는가 하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
얼마나 위대한 복종입니까? 그리고 얼마나 위대한 결단입니까?
우리에게도 이런 복종과 결단이 있기를 힘써야 합니다.
2. 둘째, 어려움을 당해도 정신을 잃지 말자는 교훈입니다.
이 결단이 있고 나서 세 제자에게 일어나 가자고 하며
동산 어귀에 있었던 나머지 8명의 제자도 불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얼굴이 눈물과 피로 얼룩진 것을 보고
무엇인가 일어날 것같은 느낌을 가졌습니다.
대략 이때가 새벽 3-4시쯤으로 추정됩니다.
이어서 제사장이 보낸 무리들에 의해 예수님은 순순히 잡히셨다. 그 이유는 성경을 이루려 하셨기 때문입니다(막 14:49).
예수님의 삶은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십자가라는 일관된 목적 하에 움직인 삶이었습니다.
만약 이러한 주님의 일관된 삶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주님의 두 어깨에는 인류 전체의 생명이 달려 있었고, 주님은 그것을 인식하고 일관된 삶을 사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삶을 보면서 무엇을 도전받습니까?
그러한 주님의 모습 앞에서 조그만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시험에 들면 죄송하지 않습니까? 주님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에도 당당히 맞서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수치스럽게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마 26:56; 막 14:50).
이 급박한 장면을 우리가 보면서 강하게 인상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완전히 콘트롤하고 계셨다는 점입니다.
상황을 콘트롤하고 있었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결코 무력한 희생자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철저히 자발적인 희생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무력한 희생자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도 그 상황을 컨트롤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3. 셋째, 우리도 예수님처럼 의의 십자가를 지자는 교훈입니다.
제자들이 다 떠난 고독한 상태에서 예수님은 홀로 남아 정신없이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에 의해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단순한 십자가에 돌아가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에는 수많은 수치와 모욕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부족한 면에 너무 많아서
주님께서 그렇게 많은 수치를 당해야 했다는 말이 됩니다.
이 사실만 생각해도 얼마나 죄송스러운 일입니까?
1). 먼저 주님은 채찍으로 맞으셨습니다.
이 채찍에 맞으면 등이 갈기갈기 찢겼습니다. 대부분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 채찍은 우리의 병든 부분을 치유하기 위해 대신 당하신 것이었습니다.
2). 그리고 병사들이 희롱을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가시 면류관을 만들어 씌웠고, 갈대를 머리를 치고 침을 뱉고 조롱하기 위해 꿇어 절했습니다(막 15:19).
이 희롱은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 주기 위해 주님이 대신 당하신 것이었습니다.
3). 그리고 직접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셨습니다.
밤새 취조를 받았고 채찍의 고통 때문에 운반하다가 쓰러지셨습니다. 그때 북 아프리카 구레네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온 시몬이라는 사람이 대신 십자가를 졌습니다.
4).그리고 주님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거절하셨습니다(막 15:23).
보통 십자가 사형수에게 몰약을 섞은 포도주를 마시게 합니다. 극심한 고통을 진정시키는 마취제 역할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사형수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거절하셨습니다. 죽음의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자 했기 때문이다(마 27:34). 고통이 없는 십자가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 3시, 오늘날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 뒤 세시간, 해가 중천에 떠 있어야 할 때 어두움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에 예수님은 운명하셨습니다.
그 순간 성전의 지성소를 막고 있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겼습니다. 그 순간 사형을 집행했던 백부장이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 막 15:39).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낍니까?
십자가는 결코 비극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그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은 위대한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여러분! 진정 승리의 삶을 원하십니까?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이 진정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십자가의 원리를 깨닫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의 원리란 무엇입니까?
내가 죽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원리! 그것이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는 깨닫지 못하고
“저 사람은 좀 이렇게 변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합니다.
목회자들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교인들이 좀 이렇게 변화되었으면 좋겠다”
(새벽이슬같은 주의청년들인 십자가군병들도 변화하기를 원합니다).
목회를 하면 상대하기 힘든 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그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내가 죽는 것이 빠르고 쉽습니다.
내가 죽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십자가의 진리입니다.
기도 중에서도 자신을 죽이려는 기도가 천하를 얻는 기도입니다.
목사는 교인을 치려 하지 말고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목사 한 사람이 죽으면 교인 전체가 목사와 함께 죽습니다.
이것이 참다운 목회입니다.
목사가 죽으면 교인들은 따라서 편안히 죽습니다.
그러면 평안한 교회가 됩니다. 내가 죽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시끄럽고, 가정이 시끄러고, 나라가 시끄럽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시끄러운 것입니다.
사실상 알고 보면 “저 사람의 책임”이 아닙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십자가의 신앙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시끄럽게 만드는 데 앞장섭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이란 무엇입니까? 죽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자기가 죽지 않고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척 하면서 자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원리를 아셨기에 십자가를 지셨고, 그 원리를 우리도 따르기를 지금도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조차도 그 길을 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보면 압니다.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에는 대부분 기도가 간단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위해서는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도전해 줍니까?
성공보다 십자가가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말이 아닙니까?
교회부흥보다 십자가를 하나님이 더 원하신다는 말이 아닙니까? 목사가 교회를 부흥시키는 사역은 오히려 조금만 기도해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는 기도에는 진액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 목회자나 성도들은 십자가의 기도는 안하고 너무 능력만 받으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이 어떻게 능력이 주어질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런 식으로 살면 마지막 날에 주께서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실지 모릅니다.
***{결론}***
여러분! 예수님이 수난은 당하시는 장면을 통해서 특별히 세 가지 교훈을 묵상하였습니다. 무엇입니까?
1. 첫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자는 교훈입니다.
2. 둘째, 어려움을 당해도 정신을 잃지 말자는 교훈입니다.
3. 셋째, 우리도 예수님처럼 의의 십자가를 지자는 교훈입니다.
십자가의 원리란 무엇입니까?
내가 죽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원리! 그것이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최대의 신앙은 자기 죽음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만약 놀라운 성공을 하고, 수많은 찬사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자기 죽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는 자라면 그것은 결코 행복을 가져다주는 성공이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됩니다. 십자가는 알고 보면 행복의 원천입니다.
십자가의 헌신을 통해 여러분들의 삶을 행복한 인생으로 만들고, 여러분들이 속한 공동체를 살리는 거룩한 십자가의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마가복음15:33-39절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성금요일이기에 하루종일 주님의 십자가 묵상하시면서 순종의 삶을 사시기를 소원합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