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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01월10일(토요일) [아산 공세리 성당&예산 추사 김정희 고택&예산 상설시장&청양 (칠갑타워&천장호 출렁다리&알프스마을)] 탐방일정
회비 30,110원 1월6일 국민은행 578601-01-308843 전진보 계좌로 송금
6열2번 좌석 예약
탐방지 : [아산 공세리 성당&예산 추사 김정희 고택&예산 상설시장&청양 (칠갑타워&천장호 출렁다리&알프스마을)]
탐방일 : 2026년01월10일(토요일)
날씨 : 눈이 내린 날씨 [아산시 인주면 최저기온 영하 1도C, 최고기온 4도C]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6시간30분 소요)
08:10~09:3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교대역 13번 출구 앞에서 출발하여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길 10 번지에 있는 공세리 성당으로 이동 [1시간 20분, 84.1km]
[아산 공세리 성당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
[개설]
공세리는 원래 조선시대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보관했던 조창(漕倉)인 공진창(貢津倉)이 있던 자리이다. 17세기부터 대동법(大同法)이 실시되면서 세금을 베 또는 돈으로 내거나 사선(私船)을 임대하여 직접 경창(京倉)으로 운반함에 따라 점차 조창의 기능이 약화되다가, 19세기 고종 때 폐지되었다. 마을에는 지금도 조운의 책임을 맡았던 해운판관 등 관리들의 공덕을 기리는 송덕비들과 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어 조창이 운영되던 당시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1890년 천주교 조선교구는 내포 지역인 예산 고덕 양촌과 교우촌이 있던 간양골에 성당을 설립하고 각각 퀴를리에(L. Curlier)[레오] 신부와 파스키에(P. Pasquier)[베드로] 신부를 파견하였다. 그런데 1894년에 일어난 청일전쟁과 동학농민혁명 때문에 퀴를리에와 파스키에 신부는 교구장 뮈텔 주교의 명에 따라 서울로 피신하였다. 그런데 파스키에 신부가 병이 들어 홍콩으로 요양을 떠나는 바람에, 1895년 간양골성당을 아산 공세리로 이전(移轉)하였다. 초대 아산공세리성당 주임으로 임명된 에밀 피에르 드비즈(Emile Pierre Devise)[한국명 성일론(成一論)][1871~1933] 신부는 부임 1년 만에 명동성당[교구청]의 당가(當家)[사무처장] 신부로 발령을 받았고, 후임으로 기낭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런데 기낭 신부 역시 1년 만에 공주본당 창설을 위해 유구 요골[명곡리]로 전임(轉任)하여, 드비즈 신부가 3대 주임신부로 다시 부임하였다. 이후 드비즈 신부는 1930년까지 총 35년간 재임하면서 열정적인 선교와 사목(司牧) 활동을 벌여서 지역 천주교회의 기반을 굳건히 하였다. 드비즈 신부가 먼저 한 일은 공진창 터를 매입하여, 1899년 8월에 한옥식 성당을 건축한 일이었다. 그리고 1922년 9월에 현재의 고딕양식의 서양식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아산공세리성당은 대전교구 최초로 지어진 서양식 성당으로, 이후에 지어진 합덕성당[1929년], 예산성당[1934년], 공주 중동성당[1936년] 등 다른 성당의 건축적 모델이 되었다. 또한 아산공세리성당은 주변 자연 환경과 어우러지며 풍기는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아산 지방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설립 목적]
내포 지역의 신앙 공동체는 그 터전이 넓은 데다가 신자 수 또한 어느 지역보다 많아 오랫동안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천주교 교회 조직의 재건과 확대를 위해 내포의 중심 지역에 천주교 성당[본당]을 세운 것이다. 1890년에 양촌과 간양골에 두 개의 성당을 세웠고,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영향으로 1895년에 선교를 위한 입지 조건이 훨씬 좋은 공세리로 간양골성당을 이전하게 된 것이다.
[변천]
1922년에 지은 성당과 사제관은 지역의 명물이 되었다. 1970년에 성당 내부의 목재 기둥과 북측의 제대가 있는 곳을 헐고 ‘T’ 자형의 ‘성 안토니 십자형’으로 증축하였다가, 1995년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본당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였고, 1998년 7월 28일 성당과 옛 사제관이 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아산시의 지원을 받아 2001년 성당과 옛 사제관을 원형대로 복원하였으며, 새 사제관, 수녀원, 예수마음 피정의 집, 성체조배실, 주변 정비사업 등도 병행하여 2년 뒤인 2002년 10월 축복식을 가졌다. 2007년 8월에는 박의서, 박원서, 박익서 3형제 순교자의 묘가 있던 자리에 순교자 현양탑을 세워 아산 공세리 지역 출신 순교자 28위의 유해와 묘석을 봉안하였다. 2008년 9월에는 옛 사제관을 개보수하여 아산공세리성당의 기원과 성전 건축, 박해와 순교자, 6·25전쟁 때의 고난 등을 중심으로 특화시킨 아담한 공세리 성지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드비즈 신부는 1897년 공세리에 두 번째 부임하면서부터 장차 큰 성당을 건축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고 서울과 인천의 수녀원과 고아원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으로 논과 밭을 매입하여 운영하였다. 공세리 1구 주변에 10만 평[33만 578㎡] 이상, 밀두리[생원장]에 논 10여만 평 이상, 영인면 창용리[당개]의 논과 밭 10만 평 이상, 그리고 염전 등을 소유하였다. 이 땅은 천주교 신자들과 착실한 외교인들에게 소작을 주었고, 넓은 지역에서 받은 소작료는 성당 건축은 물론 성당 운영에 큰 보탬이 되었다. 또한 흉년이 들 때면 소작료 탕감은 물론 기아에 허덕이는 지방민들에게 구호의 혜택을 베풀 수 있는 재정을 만들었고, 그 밖에도 조성학교 설립, 공원묘지 조성, 극빈자 구제, 고아원 운영 등 사회사업과 문화사업에 활용하였다. 일제강점기 거의 모든 지주들이 5할 이상의 소작료를 징수한 데 비해 성당의 소작지는 4할 이하의 적은 소작료를 받았으므로 신자들은 기꺼이 성당의 소작농이 되었고, 이는 비신자들의 입교를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아산공세리성당의 토지 매입 목적은 경제적 기반 마련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지만, 성당이 중심이 되는 신앙공동체의 건설이 또 하나의 주요 목적이다. 그러나 광복 후 1950년 4월부터 대한민국 전체 농토를 대상으로 시작된 농지개혁으로 아산공세리성당 소유였던 논과 밭 수십만 평이 소작인들에게 유상 분배되었기 때문에 성당의 대토지 소유는 사라졌다. 드비즈 신부는 공세리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물론 신자들의 육신건강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당시엔 피부에 종기(腫氣)가 나는 병이 많았는데, 드비즈 신부는 프랑스에서 배우고 익힌 방법으로 원료를 구입하여 1906년에 고약(膏藥)을 제조하여 신자들을 치료해 주었다. 이 고약은 드비즈 신부의 한국식 이름을 따 ‘성일론 고약(成一論膏藥)’이라 불렀다. 이 고약의 제조법을 인천에서 온 가난한 신자 이명래가 배우게 되었다. 이명래는 드비즈 신부에게 배운 것에 열성적인 연구를 더해 ‘이명래 고약’을 만들었고, 더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겠다는 일념으로 서울로 올라가 중림동 약현성당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점차 많은 사람들이 종기 치료를 위해 방문하였고, 그중 약효를 경험한 일본군 육군 대좌 사사키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경성일보』에 그 약효를 기고하여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광복 후 명래제약을 세워서 계속 발전하였지만, 항생제의 발달과 의료보험의 확대로 인해 1980년대 이후 고약 제조 산업은 점차 쇠퇴하였다. 아산공세리성당은 2019년 현재까지 23대의 주임 사제를 거치며 오랜 세월 동안 질적·양적으로 성장하였다. 그동안 10여 명의 사제와 10여 명의 수도자를 배출하였고, 공주성당, 안성성당, 온양성당 등을 분리함으로써 경기도 남부와 충청남도 지역에 천주교 신앙의 뿌리를 확고하게 내리고 한국 천주교회의 중심적 역할을 다하였다. 간혹 성당 밖으로 나가서 천주교 신앙 축제인 ‘성체 거동’ 행사를 열어서 지역의 중심 교회로서 그 위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현황]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의 높은 첨탑이 인상적인 아산공세리성당은 고딕 양식 건물로 분류된다. 아치형 천장, 버팀벽, 종탑으로 구성되는 고딕 양식은 원래 석조 건축 양식이었으나, 한국에서는 벽돌을 이용한 간략화된 유사 고딕의 형태로 지어져서 ‘고딕 양식의 한국적 재현’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성당 외부의 정면 꼭대기에 뾰족하게 4층 높이까지 솟아 있는 종탑은 하얀 비둘기와 천사를 연상시키는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다. 성당 내부의 북쪽 벽에는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사용하던 제대(祭臺)가 붙어 있고, 그 이후 현재까지 신자들을 마주보고 사용하는 제대가 그 앞쪽에 있다. 남쪽에 입구가 있으며, 출입구와 모든 창문은 반원 아치로 되어 있다. 가운데 천장은 넓은 아치형이고 양쪽 회랑(回廊)의 천장은 좁은 평천장인데, 목재판을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흰 바탕에 단순한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져 엄숙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회랑은 기둥을 나열하여 가운데 부분과 구분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의 3랑식 구조를 이루어서,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과 조화를 이루어 엄숙한 가운데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고딕성당의 특유의 고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제대가 있는 앞부분은 사제가 미사 예식을 드리는 가장 엄숙한 공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로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신과 인간이 만나는 성소(聖所)이다. 아산공세리성당은 한국관광공사가 2005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성당’으로 선정하였고, 한 해 2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와서 신앙과 역사를 느끼고 체험하는 장이 되었다. 순례와 피정(避靜), 캠프가 종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종합 문화 공간이 된 것이다. 300년 이상 되는 큰 나무들이 성당의 풍취(風趣)를 더욱 북돋아 주는 공간에서 그동안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롯하여 7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 뮤직비디오가 촬영되었고, 사진작가들이 단골로 와서 작품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되었으며, 가수와 미술가들이 찾아와서 마음의 위안과 영감(靈感)을 얻어가는 힐링의 장소가 되었다. 아산공세리성당의 역대 주임 신부는 1대 드비즈[1895~1896]-2대 기낭[1896~1897]-3대 드비즈[1897~1931]-4대 콜랭[1931~1937]-5대 김성학[1937~1938]-6대 정규랑[1938~1949]-7대 베르트랑[1949~1950]-8대 뷜토[1950, 북한군에게 납치·순교]-임시 주임 신종오[1951~1953, 온양성당 주임]- 9대 이인하[1953~1958]-10대 세라장[1958~1961]-11대 박노열[1961~1965]-12대 파일러[1965~1968]-13대 김동욱[1968~1974]-14대 윤석빈[1974~1980]-15대 여충구[1980~1985]-16대 변갑철[1985~1990]-17대 김인수[1990~1992]-18대 유재식[1992~1998]-19대 강현식[1998~2003]-20대 오남한[2003~2010]-21대 김찬용[2010~2014]-22대 김수겸[2014~2017]이 역임하였으며, 2019년 4월 기준 23대 박지목[2017~ ]이 맡고 있다. 관할 공소들을 제외한 아산공세리성당만의 신자 수 추이를 보면, 1896년 183명이었던 신자 수는 1920년대 400여 명, 1940년대 900여 명, 1960년~1970년대 2,000여 명으로 늘었다가, 1980년대부터 농촌 인구 감소와 함께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여 1995년에 1,700여 명이 되었고, 2000년대에는 1,400여 명 이하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한국 천주교회의 못자리 역할을 한 내포 지역에서 일찍 터를 닦아 120여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아산공세리성당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와 함께 한 민중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선 후기까지 국가의 중요한 세곡 운송 창고였던 공진창은 19세기 말에 폐지되고 말았지만,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드비즈 신부에 의해 천주교 신앙의 창고로 거듭나게 되었다. 일제의 지배라는 암울한 터널을 지날 때도, 6·25전쟁으로 인해 다시 찾아온 박해에도 믿음은 마르지 않았고, 아산공세리성당의 신앙 공동체는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켜냈다. 아산공세리성당 건물은 충청남도 지방에 세워진 최초의 서양식 성당 건축물로서 중세의 서양 고딕양식 건축 문화를 한국식으로 발전시킨 유형으로 이후 다른 성당 건축의 모델이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09:30~10:00 1922년에 완공된 충청남도 최초의 서양식 천주교 성당인 아산 공세리 성당을 탐방
[아산 공세리성당
아산만과 삽교천을 잇는 인주면 공세리 언덕 위에 세워진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의 본당으로 초기 선교사들이 포구에 상륙하여 전교를 시작한 곳으로 1894년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동네 가운데 민가를 교회로 사용했으나 1897년에 사제관이 세워졌고 본당은 1922년에 완공되어 충청남도 최초의 본당이 되었으며 여기에서 공주 본당, 안성, 온양, 둔포 본당이 분할되었다. 경내에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3인의 묘소가 조성되어 있으며 경내에는 429.75㎡(130평) 규모의 본당과 사제관, 피정의 집, 회합실 등이 있으며 수백 년 된 느티나무와 각종 수림으로 쌓여 있어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천주교성지다. 이곳 공세리는 조선시대에 아산, 서산, 한산을 비롯하여 청주, 옥천 등 39개 고을의 조세를 조운선을 이용하여 서울의 경창으로 보내던 공세곶고지가 있던 곳이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높은 첨탑을 지닌 고딕 양식의 붉은 벽돌이 그림 같아 2005년 한국관광공사 주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된 곳이다. 문화재 및 국가 보호수를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130여 년 된 역사를 자랑한다.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에 많은 영화와 드라마, CF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공세리성당 성지박물관과 함께 둘러보기 좋다.]
아산 공세리성당 지도
10:00~10:3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공세리 성당을 출발하여 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번지에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으로 이동 [30분, 26.1km]
10:30~11:00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 탐방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 및 김정희묘
소재지 : 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번지
김정희 선생 고택 및 김정희묘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고증학자, 서예가, 역사학자인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살던 집이자 묘소로 예산군 제3경으로도 선정되었다. 김정희는 북학파인 박제가(1750~1805)의 제자로 공부하여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에 입각한 학문을 연구했다. 24세에는 청나라로 유학을 가서 금석학과 서체 등을 배웠으며, 1816년(순조 16)에는 서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의 정체를 밝혀냈다. 1819년(순조 19)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대사성 등 여러 관직을 거치고 그만의 글씨체인 추사체를 완성하고 많은 미술 작품을 남겼다. 김정희 선생 고택은 건물 전체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데, 안채는 서쪽에 있고 사랑채는 안채보다 낮은 동쪽에 따로 있다. 김정희묘는 고택에서 약 100m 거리의 가까운 곳에 있는데, 앞에는 상석이 놓여 있고 그 옆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외에도 추사기념관이 건립되어 있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김정희 관련 유물 등을 둘러볼 수 있고, 추사체험관에서는 추사체 써보기, 난초, 세한도 그리기 및 색칠하기, 종이접기, 탁본 체험, 나비 부채 꾸미기, 원형부채 꾸미기 등과 같이 전통문화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 지도
11:00~11:2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을 출발하여 충남 예산군 예산읍 예산시장길 4 번지에 있는 예산 상설시장으로 이동 [20분, 13.3km]
[예산 상설시장
뉴트로 먹방 여행의 성지
예산상설시장은 더본코리아의 ‘지역상생 프로젝트’를 통해 입소문을 타며 유명해졌다. 옛 시설물을 활용해 전통시장의 분위기는 살리고, 화장실과 주차장 주문시스템과 같은 시설물은 현대화하여 추억을 찾는 중장년층과 이색 즐길거리를 찾는 청년층 모두를 매료시키는 시장으로 다시 거듭났다. 예산군민에게는 물론 타지역에서도 많이 찾는 관광지가 된 예산시장은 청년창업과 경제활성화를 통해 소외된 전통시장을 살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델이 되었다.]
[예산 맥주 페스티벌
예산 맥주 페스티벌은 독일의 옥토버페스토(Oktoberfest, 독일의 뮌헨에서 개최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 축제)처럼 지역의 전통적인 맥주축제로 자리잡길 바라며 예산시장 장터광장에서 열린 축제이다. 지역 맥주와 통돼지바베큐를 테마로 개최 이전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예산 맥주페스티벌은 모든 식음료 가격이 적정가격으로 책정되어 지역 축제도 비싸지 않고 맛있다는 것을 보여준 축제다.]
예산 상설시장 지도
11:20~12:20 점심식사
12:20~13:05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예산 상설시장을 출발하여 충남 청양군 대치면 광대리 316-10 번지에 있는 청양 칠갑타워로 이동 [45분, 33.1km]
[이용요금 : 성인 7,000원(지역 상품권 3,000원)]
13:05~13:35 청양 칠갑타워 탐방
[청양 칠갑타워
2025년 청양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개관한 칠갑타워는 칠갑산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칠갑호가 맞닿아있는 곳에 위치한 지상 6층, 2,722㎡ 규모의 복합 문화공간이다.
칠갑산의 전설을 표현한 미디어영상관을 비롯한 네가지 테마의 생동감 있는 미디어아트와 실감나는 열기구 체험,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라이브스캐치, 옥상 포토존에서 청양이와 함께 인증샷을 찍고나면 본격적으로 칠갑호에 더 가까이 갈 준비가 되었을 것이다. 5층에서 스카이워크를 통해 이어지는 57m 높이의 전망대에서 칠갑산의 수려한 산세를 감상하고 수상 엘리베이터를 통해 1층으로 내려가면 수면과 맞닿아있는 수상보행교를 통해 일렁이는 물결과 함께 나만의 산책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관람 안내
휴 관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 및 추석 당일
이용시간 – 오전 10시 ~ 오후 5시 (오후 4시까지 입장)]
청양 칠갑타워 지도
13:35~13:55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청양 칠갑타워를 출발하여 충남 청양군 정산면 천장리 226 번지에 있는 천장호 출렁다리로 이동 [20분, 11.9km]
13:55~14:30 천장호 출렁다리 탐방
[천장호 출렁다리
천장호 출렁다리는 청양의 명물 다리이다. 2009년에 만들어졌으며 총길이 207m로 다리 중간 부분에 청양의 특산물 구기자와 고추를 형상화한 높이 16m의 주탑이 시선을 끈다. 그 아래를 지나 폭 1.5m의 출렁다리가 시작되는데 20m쯤 걸어가면 상하 좌우로 출렁이며 은근한 스릴을 선사한다. 다리를 건너면 전망대와 칠갑산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이어진다. 산행이 버거운 이들은 황룡정(黃龍亭)까지 천장호변을 산책해도 좋다. 천장호 출렁다리가 있는 천장호는 동쪽으로 뻗어 내린 칠갑산 자락 끝에 위치하고 있다. 청양명승 중에 하나로 꼽힐 만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데 칠갑산 정상으로 연결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어 천장호와 출렁다리, 우거진 숲과 아기자기한 계곡들을 감상하는 또 다른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야간개장과 함께 천장호 출렁다리의 색다른 매력을 느껴볼 수 있다.]
천장호 출렁다리 지도
14:30~14:38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천장호 출렁다리를 출발하여 충남 청양군 정산면 천장호길 223-35 번지에 있는 청양 알프스마을로 이동 [7분, 3.6km]
[경로 입장요금 : 4,000원]
14:38~16:00 청양 알프스마을 탐방
[청양 알프스마을
청양의 칠갑산 아래 자리한 알프스마을은 농업과 농촌 관광이 어우러진 체험 마을이다. 이곳은 겨울이면 화려한 얼음분수와 눈 조각으로 가득한 칠갑산얼음분수축제가 펼쳐진다. 눈과 얼음으로 이루어진 환상적인 풍경은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눈썰매장은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에게 특히 만족도가 높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따뜻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으로, 방문객들은 주차의 편리함과 다채로운 볼거리에 높은 평가를 남긴다.
이용요금
(겨울)얼음분수축제 입장권 12,000원
(겨울)얼음분수축제 썰매이용권 32,000원
(여름)물놀이장 이용료 15,000원
(여름)물놀이장 이용료(경로,장애인) 13,000원
(여름)평상대여 A구역 100,000원
(여름)평상대여 B구역 50,000~100,000원
(여름)평상대여 C구역 60,000원
(여름) 평상 및 테이블대여 D구역 60,000~100,000원]
청양 알프스마을 지도
16:00~18:30 “노블레스 클럽” 버스로 청양 알프스마을을 출발하여 서울 교대역으로 귀경 [2시간 30분, 148.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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