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햇살에 눈이 부셨다. 미국 성조기가 흰 바탕에 빨간 줄이 선명한 모습으로 펄럭이고 있었고,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이따금씩 빠른 속도로 지나치고 있었다. 2007년 5월 4일 미국 중부 네브래스카 주의 주도(洲都) 오마하. 우리나라로 치면 삼척이나 동해쯤 되는 그런 조용하고 한적한 미국 소도시 오마하의 파르남 가(Farnam street) 36번지를 나는 서성이고 있었다. 도심이었지만 빌딩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어쩌다 눈에 띌 뿐이었다. 나는 키위트 플라자(Kiewit Plaza)라는 빌딩을 둘러보고 있었다. 14층으로 된 크지 않은 은회색 빌딩이었다. 이 빌딩을 방문할 생각을 한 이유는 이 빌딩의 꼭대기 층에 있는 버크셔 해더웨이(Berkshire Hathaway Inc.) 본사 사무실을 방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버크셔 해더웨이는 워렌 버핏이 회장으로 있는 회사이다. 버크셔 해더웨이 주주총회에 앞서 워렌 버핏이 누구이고 그가 회장으로 있는 버크셔 해더웨이는 어떤 회사인지를 취재할 필요가 있었다. 앞서 나는 버크셔 해더웨이 측으로부터 주주총회 취재 허가를 받은 터였다. 당시 미국의 비즈니스 스쿨에 다니던 중에 운 좋게 얻은 소득이었다. 오래전부터 워렌 버핏이 누구인지, 그가 운영한다는 버크셔 해더웨이는 어떤 곳인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물론 당시만 해도 더 큰 행운이 이어질 줄은 몰랐다. 다음 날 워렌 버핏을 단독으로 인터뷰했고 그 다음날 공식 기자회견에서 다시 한 번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버크셔 해더웨이 본사 사무실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키위트 플라자 빌딩 앞에 서자 신기함, 파격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그곳에 들르기 전까지 버크셔 해더웨이 본사 사무실이 제법 규모가 클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막상 앞에 섰을 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박했기 때문이다. 우선 키위트 플라자 빌딩 자체가 작았다. 이 빌딩은 14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개 층의 면적이 얼추 1,000제곱미터(약 300평)에 불과해 보였다(실제 1개 층의 면적은 929제곱미터였다). 게다가 버크셔 해더웨이는 이 빌딩 전체가 아니라 꼭대기 층만을 쓰고 있었다.입구의 회전문을 열고 들어가자 경비가 안내석에 앉아 있고, 그 뒤편에 빌딩 입주 회사 리스트가 나와 있었다. 14층에 '버크셔 해더웨이 본사 사무실(Berkshire Hathaway World Headquarter)'이 있다고 쓰여 있었다. 웬만한 중소기업도 제법 큼지막한 빌딩 전체를 쓰는데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기업의 본사 사무실이 이렇게 규모가 작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버크셔 해더웨이가 어떤 회사인가? 버크셔 해더웨이는 보험, 금융, 에너지, 가구, 제과, 미디어 등의 사업 부문에서 75개 자회사를 거느린 지주회사(holding company)이다. 지주회사란 자회사의 주식을 경영권 행사를 위해 보유하는 회사이며 배당이 주 수입원이다. 2007년 12월 현재 버크셔 해더웨이는 이들 75개 자회사를 통해 매출액 1,182억 달러(약 150조 원)를 달성했다. 한국의 매출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63조 원(2007년 기준)보다 많은 매출액을 올린 것이다. 버크셔 해더웨이는 금융 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장부가치가 네 번째로 높다. 임직원이 23만 2,000여명인데, 직원 수를 기준으로 하면 미국에서 25번째로 크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BRK-A라는 이름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미국의 공개기업(public company) 가운데 S&P500지수에 포함되지 않는 가장 큰 기업이다. 이 회사의 주가는 1억 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식이다. 이 회사의 주주총회는 '자본가들의 우드스탁(Woodstock for Capitalists)'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한마디로 무언가 웅장하고 규모가 커야 자연스러운 회사인 것이다. 버크셔 해더웨이의 자회사 75곳 가운데 주요 기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버크셔 해더웨이의 자회사 75곳 가운데 주요 기업버크셔 해더웨이의 자회사 75곳 가운데 주요 기업보험·금융 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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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코 자동차 보험(GEICO Auto Insurance), 내셔널 인뎀니티(National Indemnity Company), 미국 채무보험 그룹(United States Liability Insurance Group), 센트럴 스테이트 인뎀니티(Central States Indemnity Company), 제너럴 리(General Re), 어플라이드 언더라이터(Applied Underwriters), 웨스코 파이낸셜(Wesco Financial Corporation) | 제조 및 기타 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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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란(Garan Incorporated), 게이트웨이 언더라이터(Gateway Underwriters Agency), 네브래스카 퍼니처 마트(Nebraska Furniture Mart), 네트제트(NetJets), 데어리 퀸(International Dairy Queen Inc.), 라슨 줄(Larson‒Juhl), 마몽 홀딩스(Marmon Holdings Inc.), 맥래인(McLane Company), 메디컬 프로텍티브(Medical Protective), 미드 아메리칸 에너지(MidAmerican Energy Holdings Company), 미드 아메리칸 에너지(MidAmerican Energy Holdings Company), 미텍(MiTek Inc.) 버크셔 해더웨이 홈스테이트(Berkshire Hathaway Homestates Companies), 버팔로 뉴스(Buffalo NEWS, Buffalo NY), 벤 브리지 보석(Ben Bridge Jeweler), 벤저민 무어(Benjamin Moore & Co.), 보르샤임 보석가게(Borsheims Fine Jewelry), 보트 유에스(Boat U.S.), 비즈니스 와이어(Business Wire), 쇼 인더스트리즈(Shaw Industries), 스코트 페처(Scott Fetzer Companies), 스타 퍼니처(Star Furniture), 시즈 캔디(See's Candies), 애크미 벽돌회사(Acme Brick Company), 이스카(Iscar Metalworking Companies), 저스틴 브랜즈(Justin Brands), 조던 가구점(Jordan's Furniture), 코트 비즈니스 서비스(CORT Business Services), 클레이튼 홈즈(Clayton Homes), 페치하이머 브러더스(Fechheimer Brothers Company), 펨퍼드 세프(The Pampered Chef), 포리스트 리버(Forest River), 프리시즌 철강(Precision Steel Warehouse, Inc.), 프루트 오브 더 룸(Fruit of the Loom), 플라이트 세이프티(FlightSafety), 헬츠버그 다이아몬드(Helzberg Diamonds), 홈서비스 오브 아메리카(HomeServices of America), CTB(CTB Inc.), H. H. 브라운 슈즈(H. H. Brown Shoe Group), RC Willey 가구(RC Willey Home Furnishings), TTI(TTI Inc.), XTRA(XTRA Corporation) |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워렌 버핏' 하면 주식 투자가 떠오르는데 이 부분은 어디에 있을까. 2007년 12월 기준으로 버크셔 해더웨이가 매매 차익을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다음과 같다.
버크셔 해더웨이가 매매 차익을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
그렇지만 보다시피 버크셔 해더웨이의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주식 투자의 비중은 크지 않다. 2007년 버크셔 해더웨이가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가치는 749억 달러(약 97조 원)로 이 회사의 자산총계 2,731억 달러(약 355조 원)의 27퍼센트에 불과하다. 즉, 버크셔 해더웨이는 대략 30퍼센트의 보통주와 70퍼센트의 자회사로 구성된 지주회사이다. 버크셔 해더웨이를 이제 주식 투자를 하는 전문으로 하는 회사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5년이면 버크셔 해더웨이의 보통주와 자회사의 비중이 10퍼센트 대 90퍼센트로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초기의 버크셔 해더웨이는 보통주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워렌 버핏이 1960년대 중반 버크셔 해더웨이를 인수하던 시기에는 주식 투자에 치중해 수익을 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차츰 기업을 통째로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전환했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버크셔 해더웨이의 주식 투자 비중이 줄어들고 자회사 비중이 늘어났다. 결국 워렌 버핏은 초기에는 투자가였지만 이제는 자회사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경영자가 됐다. 그저 그런 기업이 아니라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거대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회사에서 나오는 수익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자본할당가(capital allocator)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