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갈릴리교회에서 9년전기사내용으로 참고바람
“먼저 손해보세요 몇 배로 갚아 주십니다”
갈릴리교회 인명진 목사
인명진 목사는 1945년 충남 당진에서 아버지 인치희 장로와 어머니 홍경희 권사 슬하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72년 충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신동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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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맹지도(孔孟之道), 즉 ‘공자와 맹자가 주장한 인의의 도(道)’는 유교의 동의어로도 쓴다. 그만큼 유교의 성립에 맹자도 중요했다. 초기 기독교의 전개에선 바울의 비중이 컸다. 예수와 바울을 기독교의 공동 창립자로 보는 학자도 있고 ‘바울 기독교(Pauline Christianity)’라는 표현도 있다. 1960~70년대는 ‘바울에 대한 새로운 시각(New Perspective on Paul)’이라는 뜨거운 신학적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예수의 복음’과 바울이 전한 ‘예수에 대한 복음’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신학적 분석이 있다. 예수의 가르침을 100% 실천하자면 아버지가 돌아가도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기고 예수를 따라가야 한다. 집에 빈방이 있으면 노숙자를 데려와야 한다. 바울은 현실 속에서 가능한 신앙을 이야기했다.
노동운동서 외국인 근로자 선교까지
갈릴리교회의 인명진(64) 목사는 실천 가능한 신앙의 폭을 확장하는 삶을 살아 왔다. 1972~84년 YH 사건 등 노동 운동으로 네차례 투옥됐다. 서울 영등포 산업선교회 총무로 14년 동안 일했으며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당시에는 국민운동본부 대변인이었다.
인명진 목사는 여러 분야에서 선구자의 길을 걸어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운동단체인 경실련의 창립 멤버인 인 목사는 1982년 최초의 환경운동단체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설립했다. 1997년 기독교인터넷방송국 설립으로 인터넷 선교를 개시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도 그의 제안으로 발족됐다. 인 목사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8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인 목사는 특히 1993년 국내 교회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근로자 돌보기를 시작했다. 인 목사는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헤쳐왔다”며 “외국인 나그네를 돌보라는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민주화·노동운동의 전면에 섰던 그가 90년대 이후엔 외국인 근로자의 목자라는 역할도 맡은 셈이다.
요즘에는 용산참사 사망자의 장례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유족·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을 찾아 뛰고 있고, 우리민족서로돕기 운동본부를 통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위해서도 평양·중국 등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대전고·한국신학대학·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인명진 목사는 1986년 샌프란시스코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신학자이기도 하다. 청년기부터 몸담은 노동 문제에 대한 이론적 바탕을 다지기 위해 숭실대 노사관계대학원에서 노동문제를 전공(경영학 석사)하기도 했다.
인 목사의 저서로는 『죽음 그 마지막 성장과 축복』 『사도신경강해』 『한국 교회를 새롭게』 등이 있다.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구로6동에 있는 갈릴리교회에서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교회 이름으로 갈릴리교회를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갈릴리는 예수님의 고향이자 활동하신 곳입니다. 부활하자마자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갈릴리는 가난하고, 억울하고, 핍박 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사는 곳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교회가 있다(Ubi Christus, ibi ecclesia)’는 신학적 표현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예수님이 있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의 이름은 갈릴리교회입니다.”
-갈릴리에 가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23년 전 서울 시내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을 찾아 일부러 여기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쪽방, 벌집에 노동자 맞벌이 부부들이 살았습니다. 열쇠를 채워놓고 일하러 나간 사이 남매가 불에 타 죽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맞벌이 부부를 위해 어린이집을 열었습니다. 지금은 장애아들과 통합교육을 실시합니다. 매주 토요일엔 인근 독거노인과 장애인들에게 사랑의 도시락 150개를 배달합니다. 19년 전부터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몽골·파키스탄·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필리핀 등지에서 온 200명 정도 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예배를 드립니다. 이들이 모국어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그들 나라의 목사님들을 모셔왔습니다. 이들에게 식사·진료·이발·상담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예수를 믿게 된 이들은 본국에 가서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자카르타와 울란바토르에 교회를 자발적으로 세웠으며 베트남에도 곧 교회가 생깁니다. 지난 6월 몽골 교회 창립예배에 갔더니, 갈릴리교회의 닭튀김 맛을 못 잊겠다고 말해 닭튀김을 사주고 왔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선교의 계기가 있습니까.
“1990년 9월의 어느 날 교회 마당에 서 있었는데 외국인 근로자 2명이 화장실 위치를 물었습니다. 그 후 초라한 행색에 머뭇거리던 그들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돌보라고 보낸 사람들이라고 직감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필요한 돈을 마련하려 다른 교회를 찾아가 설교하고 구걸하듯 손을 벌렸습니다. 갈릴리교회가 외국인 근로자를 돌본다는 게 알려지자 수술비가 없어 중태에 빠져 있던 필리핀 근로자가 경기도 의정부에서 교회까지 찾아와 사무실에 쓰러져 있기도 했습니
다.”
교통비·물값 아껴 베트남 농촌 도와
-외국 ‘갈릴리’도 돕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베트남 농촌에 매해 송아지를 50마리씩 보내고 있습니다. 공짜가 아니라 3년마다 상환을 받아 다른 곳으로 보냅니다. 갈릴리교회 교인들은 결혼식·환갑잔치·출산·돌잔치 등 경조사가 있을 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비용을 아껴 송아지를 보냅니다. 우리는 베트남에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우리가 송아지를 전달하면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모릅니다. 아프리카 가나에는 컴퓨터 센터를 설립해 젊은이들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도 기술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최근에는 교인들이 ‘CO2헌금’으로 몽골에서 사막화 방지를 위한 나무심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황사의 발원지가 몽골이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교인들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샤워를 3분 안에 끝내가며 절약한 돈으로 CO2헌금을 냅니다. 1인당 평생 1000그루의 나무를 심는 게 목표입니다.”
-정부나 일반 사회 단체가 할 일을 교회가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에 보면 나그네, 고아, 과부를 도와야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 헌금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 담겨 있습니다. 헌금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금을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자랑은 설립 이래 헌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전체 예산의 50%를 국내외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살림이 빠듯합니다.”
-갈릴리교회 신도는 몇 명입니까.
“500명가량 모입니다.”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 신도 수가 5000명, 5만 명이 되면 좋지 않을까요.
“장단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큰 교회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교회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몇 사람이 모이느냐가 아니라 모여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 사람들은 ‘갈릴리공동체 계약’에 서명합니다. 물질 중심적인 삶과 가족이기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서약입니다.”
사랑 실천이 기독교의 전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도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기독교의 도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전하는 게 전도입니다. 개신교 신자수가 1000만 명이 넘습니다. 국민 네 명 중 한 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기독교적인 것과 거리가 멉니다. 크리스천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많지만 최근 가슴 아픈 일들이 벌어졌을 때 그들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교회가 성경말씀대로 충실하게 살 때 사회가 변화하고 물질만능이나 이기적인 가치관이 변합니다. 안 믿는 사람을 믿게 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다만 방법이 좋아야 합니다. ‘저 사람은 어쩌면 저렇게 인생을 잘 살고 행복할까. 예수 믿어서 그렇구나. 나도 예수를 믿어야겠다.’ 이렇게 돼야합니다. ”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신학이 문제일까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입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초보적 신앙에 100여 년 동안 머물고 있습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때입니다.”
-예수를 믿어 얻게 되는 물질 축복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질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으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 보고 양보하면 하나님께서 몇 배로 계산해 주십니다. 물질이 다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구원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완료형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사람답게 살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좋아하시고 기뻐하시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삶이 구원입니다.”
찜통 더위 씻는 소나기처럼 … 걸림 없이 사는 사람
내가 본 인명진목사/ 영담 스님 불교방송 이사장
‘걸림 없이 사는 사람’. 인명진 목사를 평하는 더 적합한 표현은 없다.
그와 인연이 깊은 것은 아니다. 인 목사가 민주화 운동과 시민 운동에서 워낙 큰 족적을 남겼기에 활동상은 알고 있었지만 정식으로 인사한 것은 우리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상임공동대표를 맡게 된 2월이었다.
인 목사는 2006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직을 맡았다. 말이 많았지만 나는 그의 뜻밖의 선택이 앞으로 어떤 결실을 보게 될지 궁금했다.
인 목사는 말과 처신에서 그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인 목사는 말한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간음한 여인들에게 가셨듯이 한나라당이 흠이 많았기 때문에 소금 역할을 하려고 했다.”
실제로 인 목사는 불편부당하고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했고 한나라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지난 총선 공천 때에는 “사람을 공천해야지 왜 철새들을 공천하느냐”며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나는 인 목사가 고 제정구 전 의원이 말했던 ‘가짐 없는 자유’를 실천한다고 믿는다.
종교편향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도 인 목사의 안목과 소신은 답답하고 짜증 나는 찜통 더위를 말끔히 걷어 내는 소나기 같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교회를 배신했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교회와 관계를 끊어라. 오히려 교회를 역차별해야 한다. 교회와 대통령이 밀착하면 대통령과 교회가 같이 망할 수 있다.”
종교 지도자로서 공개적으로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인 목사는 예의를 갖춰 ‘은근히’ 불교계를 향해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우리 다종교 사회에서 평화가 유지된 것은 불교의 관용과 너그러움 덕분이다. 이기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한 한국 기독교는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불교계도 관용과 너그러움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못난 우리(기독교)를 따라오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따끔했다. 정신이 번쩍 났다.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인 목사는 한나라당과 보수 교단과는 다른 목소리를 낸다. 보수 측에서는 비난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대단히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목사의 태도다.
“이유를 막론하고 북한 동포들이 배고픔의 고통을 당하게 방치해선 안 된다. 내가 배고픈데 옆에서 배 두드리고 있으면 그 아픔은 안 잊혀질 뿐만 아니라 한이 된다. 통일 후 북한 동포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정부가 싸움을 하더라도 먹여놓고 싸움을 해야 한다. 지원한 쌀이 군대로 들어간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군대는 우리 동포 아닌가.”
나는 인 목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으며 무거운 짐을 진 이들에 대해 애타는 사랑을 갖고 있음을 넘치도록 느낄 수 있었다.
지면 제한이 아쉽다. 인 목사는 같은 하늘 아래 오래도록 같이 살고픈 사람이다.
출처 :비전 여수 원문보기▶ 글쓴이 : 고재경
첫댓글 이 글에 대해 관용과 넒은 이해를 바란다. 왜냐하면 인명진목사에 관하여 부정적인 면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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