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짜빔-바엘레크
쇼파르(Shofar): ‘듣기’와 ‘경청’의 차이
왜 음악은 우리에게 그토록 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요? 때로는 음악이 우리 영혼과 직접 연결된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음악은 우리의 기분과 감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합니다. 일어나 춤추게 하기도 하고, 멈춰 서서 생각에 잠기게 하기도 합니다. 우리를 달래주고, 기운을 북돋아 주며, 우리 존재의 깊은 곳까지 울려 퍼지게 합니다.
음악은 다른 외부 자극이 닿지 못하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논리나 언어가 더 이상 닿지 않는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츠하이머 환자, 뇌졸중 환자, 심지어 혼수 상태에 있는 환자들조차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반응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음악에는 종종 반응합니다.
쇼파르의 경우 특히 그러합니다. 쇼파르의 음색은 뇌의 여러 부위에 심오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뇌 전반의 활동을 증가시켜, 사물을 명확히 보고 단호하게 행동할 수 있게 해주는 고도의 의식 상태로 이끌어 줍니다.
친구 여러분, 로쉬 하샤나에 행하는 쇼파르의 미쯔바는 적극적인 의도를 요구합니다.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기울여 경청해야 합니다. 탈무드를 근거로 람밤은 쇼파르를 부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자신이 특정 토라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는 점을 마음속에 명심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람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쇼파르가 전하는 강력한 도덕적·영적 메시지에 마음을 맞추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로쉬 하샤나에 쇼파르를 부는 것은 성경의 규정이긴 하지만, 그 안에는 ‘잠든 자들을 잠에서 깨우라… 너희의 행실을 되돌아보고 회개하며 돌아오라. 시간의 공허함 속에서 진리를 잊은 자들아, 너희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암시가 담겨 있다.” (『회개의 법』 3:4)
쇼파르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부름입니다. 이는 공기 진동을 신경 자극으로 변환한 뒤 뇌에서 이를 정리하는 물리적 과정을 넘어섭니다. 이는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잠재적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적, 정서적, 영적 경험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동 조종 장치에 맡긴 채 삶을 무심코 흘러가게 두며, 말과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지도 않습니다.
쇼파르는 신이 보내신 깨우침의 신호입니다. 이는 우리의 도덕적·영적 잠을 깨우고, 현재에 집중하도록 일깨우며,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우선순위와 목적을 다시 일깨워 주고, 개인적·영적 성장의 길로 돌아오게 해줍니다.
로쉬 하샤나에 회당에서 쇼파르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깊은 영적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쇼파르의 소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우리의 잠재력을 실현하라고 부르시는 것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쇼파르의 음조는 매우 특정한 형태를 띱니다. 기본적으로 이 패턴은 길게 이어지는 음(תְּקִיעָה, 테키아)에 이어 끊어지는 음(שְׁבָרִים(쉐바림) 또는 תְּרוּעָה(테루아))이 나오고, 다시 길게 이어지는 음이 나오는 순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음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패턴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랍비 삼손 라파엘 히르슈는 이 일련의 순서를 ‘하쪼쯔로트(חֲצוֹצְרוֹת)’의 소리와 연결 짓습니다. 하쪼쯔로트는 유대민족이 이집트를 떠난 후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던 시절, 유대 민족의 이동을 지휘하는 데 사용되었던 은 나팔입니다.
‘테키아’라고 불리는 일정한 길이의 나팔 소리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울려 퍼졌습니다. 끊어지는 소리인 ‘테루아’는 백성들에게 진영을 철수하라는 신호, 즉 천막을 걷어내고 짐을 꾸려 다음 장소로 이동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테키아’ 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이는 여정을 계속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쇼파르의 맥락에서 히르쉬 랍비는 첫 번째 끊어지지 않는 소리인 ‘테키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청하시는 것, 즉 우리 삶에서 그분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메시지를 받을 준비를 하라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끊어지는 소리인 ‘쉐바림-테루아’는 과거의 우리 자신, 즉 뿌리 깊게 박힌 나쁜 습관들과 결별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토라의 가치와 원칙에 비추어 우리 삶을 깊고 솔직하게 재평가하여, 새로운 여정에 강화하여 가져가야 할 것과 뒤로 남겨야 할 것을 가려내야 합니다.
마지막 연속 음인 테키아(tekiah)는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참되고 고귀한 목적에 부합하는 새로운 결심과 새롭게 다진 방향성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라는 부름입니다.
우리 조상들처럼, 우리도 인생이라는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에는 지도와 나침반이 필요합니다. 우리 창조주께서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우리를 이 땅에 두셨으며, 우리가 그 목적을 확실히 이루기 위해서는 그분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사막에 있던 유대 백성이 언제 진영을 걷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림을 받아야 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가 하고 있는 해로운 일들로부터 벗어나, 새롭고 긍정적이며 생산적인 일을 찾아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깨우쳐 주는 신호가 필요합니다.
우리 삶의 지도와 나침반은 토라(Torah)이지만, 때때로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곤 하므로 상기시켜 줄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쇼파르가 바로 그 상기시켜 주는 신호입니다. 쇼파르는 우리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일상의 소란에서 한 발 물러나, 우리 영혼을 꿰뚫는 쇼파르의 울림, 즉 하나님의 맑고 선명한 부르심을 듣도록 촉구합니다.
쇼파르는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우리가 집착하게 된 모든 것, 우리 삶의 지도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불필요한 것들로부터 벗어나라고 촉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결단력과 확신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도록 부릅니다.
쇼파르가 주는 이 세 단계—멈추기, 되돌아보기, 나아가기—는 회개 그 자체의 과정을 반영합니다. 람밤(Rambam)은 회개를 과거의 잘못에 대한 후회, 현재 그 잘못으로부터의 단절, 그리고 미래에 그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정의합니다.
쇼파르를 불기 전에 낭송하는 축복문에서 ‘리슈모아 콜 쇼파르(לִשְׁמֹעַ קוֹל שׁוֹפָר)’—즉 “쇼파르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쇼파르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목소리입니다. 이는 명확한 메시지를 담은 목소리이며,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메시지를 단순히 음을 듣는 차원을 넘어,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받아들이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경청은 유대교의 기초입니다. 유대 민족의 사명 선언문은 ‘쉐마 이스라엘(Shema Yisrael)’—“이스라엘아, 들으라”입니다. 우리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과 아침에 일어날 때 쉐마(שְׁמַע)를 낭송합니다. 우리는 매일 경청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경청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이번 로쉬 하샤나에는 회당에서 매일 100번씩 쇼파르의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 소리는 우리를 깨워주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는 우리로 하여금 내면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변화를 일으키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 소리는 문을 열어주고, 새롭고 영광스러운 미래, 즉 우리가 본래 되어야 할 모습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귀를 기울이는 것뿐입니다.
By Chief Rabbi Warren Goldstein (PhD. in Human Rights Law, is the chief rabbi of South Af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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