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빛을, 과거에서 이야기를 캔다
경기도 광명 광명동굴에서 땅속으로 모험을 떠났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금, 은, 동, 아연을 채굴하다 1972년 문을 닫은 광산이 2012년 광명동굴로 다시 태어났다.
어부는 바다로 출근했다 뭍으로 퇴근하고, 광부는 땅속으로 출근했다 땅 밖으로 퇴근했다. 50년 전까지 광부가 오늘 치 광물을 캐러 들어갔을 동굴 입구에 서자 땅속의 바람이 불어왔다. 땅속과 밖의 온도, 기압 차가 만든 바람은 거세다. 이 바람을 맞으며 광부는 그날의 마지막 자연광을 보고 어두컴컴한 구멍으로 뚜벅뚜벅 걸어갔을 것이다.
그랬던 광명동굴이 어제의 역사를 안고 문화와 생태, 이야기를 녹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 여행객을 맞는다. 바람을 헤치고 다다른 입구는 어둑해 걸음이 느려졌다. 뒤로는 빛이 벌써 저만큼 멀다. 차츰 눈이 적응해 울퉁불퉁한 돌 천장과 벽이 보이고, 갱도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는 물이 귀를 깨워 존재를 알린다. 땅속 또 다른 세상, 동굴로 입장한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금, 은, 동, 아연 등을 채굴하다 1972년 문을 닫은 광산을 광명시가 2012년 광명동굴로 다시 선보였다. 2킬로미터 거리의 갱도를 오르내리며 역사관, 아쿠아월드, 예술의전당, 황금폭포, 동굴의제왕, 와인동굴 같은 시설이 이어져 감상하고 배우고 느끼고 사진 찍기 좋다.
2킬로미터 거리의 갱도를 오르내리며 아쿠아월드, 황금폭포, 반지의제왕 등 다양한 시설이 이어진다.
동굴로 할 수 있는 모든 상상
수많은 광산이 그렇듯 광명동굴은 일제강점기에 채굴을 시작했다. 남의 나라를 쥐어짜 빼낼 수 있는 물자는 몽땅 쓸어 담아 가느라 이 땅 곳곳을 파헤친 일제의 손이 가학산에도 미쳤다. 학을 닮아서 가학산이라 이름했다는, 오랫동안 주민과 함께하며 정들었을 산이다.
산을 파고 그 안의 광물을 끄집어내 이득을 얻는다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 사람들이 등 떠밀려 광산을 일구었다. 당시 행정구역상 시흥군에 속해 시흥광산이라 부른 곳은 1903년 처음 기록에 등장하고 1912년 설립되었다. 여기서 캐낸 피 같은 금, 은, 동, 아연이 일제를 배불리고 전쟁하는 데 쓰였다.
광산은 광복 이후 산업화 시기에 600명 넘는 광부가 일하고 하루 350톤 광물을 채굴해 경제성장에 기여하다가 1972년 8월 홍수로 문을 닫는다. 광부는 흩어지고 갱도엔 지하수가 들어차 수십 년의 고달픈 시절이 땅속 물 밑에 가라앉았다. 일부만이 새우젓 보관소로 사용되었으니, 볕이 들지 않고 기온이 서늘해 젓갈을 저장하는 데 적합했기 때문이다.
2011년 광명시가 광산을 매입해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다. 해발 220미터 산에 275미터를 파 내려가 7.8킬로미터 길이의 갱도를 낸 역사와 눈물, 노력을 기념하기로 했다. 갱도의 층을 레벨이라 부르는데, 9개 레벨로 이루어진 광산에서 해발 102미터인 0레벨과 해발 75미터인 지하1레벨 일부를 단장해 2012년 광명동굴로 개방했다. 전체 갱도 7.8킬로미터 가운데 2킬로미터 남짓한 구간이다. 아래쪽은 폐광한 지 오래되어 지하수에 잠겼고, 2킬로미터 구간만 해도 동굴의 면모를 만끽하기엔 전혀 부족하지 않다.
다른 세상에 들어섰음을 알리듯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속을 100여 미터 걸어 갱도가 나뉘는 웜홀광장에 선다. 천장에 꽃이 흐드러진 광장은 조명도 은은히 밝혀 사진 찍기 좋다. 천연이 아닌 인공 동굴이라 조명을 켜고 내부를 꾸미는 데 제약이 없어 자유롭다. 내부 시설 또한 상상의 범위를 뛰어넘는다.
벽과 천장에 작은 조명을 알알이 달아 색깔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갱도를 지나자 아쿠아월드다. 동굴 안에 수족관이라니! 희귀 어종인 금룡을 비롯해 피라냐, 모래무지, 납자루, 문피시 등 토종 물고기와 세계의 물고기를 모았다. 동굴의 깨끗한 암반수로 온도를 맞추어 정성스럽게 기르는 물고기다. 몸이 투명해 검은 뼈가 다 비치는 글라스캣피시가 특히 신기해 눈을 사로잡았다.
그 옆으로는 예술의전당이다. 3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는 콘서트, 패션쇼, 권투 세계 타이틀 매치 같은 행사가 열렸고, 상시 미디어 파사드 쇼를 진행한다. 거친 벽을 스크린 삼은 쇼가 환상적 느낌을 자아낸다. 이 산을 이룬 암석은 편암과 석회규산염암이다. 광부는 돌이 단단해 한 시간을 작업해 겨우 1미터 50센티미터 정도 팠다고 증언했다.
한 시간에 두어 걸음이다. 해발 220미터가 등산객에겐 만만해도, 그 안을 파 들어가야 하는 이에게는 얼마나 막막했을까. 매 순간 절벽 앞에 선 기분이었겠다. 내가 뚫고 나가야 하는 절벽. 그분들의 노고가 이토록 거대한 공간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미디어 쇼 이상으로 경이롭다.
소망의초신성 구역은 황금빛으로 번쩍번쩍하다. 1955년부터 1972년까지 광산에서 캔 금의 양이 52킬로그램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얼마나 많이 가져갔을지 기록이 없어 짐작도 못 한다. 광산의 과거를 말해 주듯 황금을 테마로 한 동굴에서는 황금패에 소원을 써서 달아 놓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갓 태어난 별의 기운을 받아 사람들이 소원을 빈다. 건강, 행복, 합격, 취업. 황금패가 늘어나 천장에 붙이고 벽에 걸고도 모자라 황금색 나무 조형물을 세웠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길, 아픈 사람은 사랑하는 이 곁에서 건강해지길, 그리운 사람은 만나길, 바로 옆의 행복을 어리석게 놓치지 말고 잡아서 누리길. 광부가 간절한 소원을 품은 채 빛을 등지고 들어와 돌을 캤을 공간에서 후손이 비슷한 소원을 빈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고 올라가며 다양한 공간을 탐험한다. 동굴의제왕 구역에는 영화 <반지의 제왕> <아바타>로 유명한 웨타워크숍이 제작한 800킬로그램 무게의 용이 돌 사이에서 나타나고 골룸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번갯불 같은 조명이 들어올 때마다 빛을 받는 간달프의 지팡이도 신비롭다.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에서 광산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했으니 자리를 잘 고른 셈이다. 이처럼 광명동굴은 단순한 놀이 시설을 넘어 동굴이라는 공간의 특성과 광산으로서 지닌 역사성을 활용해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는 점이 더욱 의미 깊다.
실제 식물을 재배하는 식물원, 광산의 과거를 보여 주는 근대역사관을 거쳐 마지막에는 와인동굴로 간다. 포도·사과·복숭아·오미자·매실 등 한국에서 기른 과실이 향기로운 와인이 되어 손님을 유혹한다. 새우젓에 적합한 온도와 습도는 와인 보관에도 최적이다. 이토록 많은 와인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기회가 또 있으랴. 와인병과 라벨도 하나하나 개성 만점인 데다 예뻐 한참을 구경했다.
한국 전역의 와인을 선보이는 광명동굴에서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광명동굴 대한민국 와인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노고 위에서 또 다른 시작을
해발 75미터에서 102미터까지, 2킬로미터 거리의 땅속을 누비다 밖으로 나왔다. 빛은 눈부시고 기온도 완연히 차이가 나서 다른 세상에 다녀온 느낌이다. 발아래가 그 큰 동굴이다. 내가 누군가의 노고 위에 서 있음을 실감한다. 산에는 산책로를 조성해 여운을 음미하기 좋다. 입구 근처 평화의소녀상 앞에서는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아픔을 생각하며 눈을 잠시 감았다. 황금은 어디서 나오는가. 백화점, 공장이 아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돌에서 금을 캔다. 찬란한 금빛은 어둠에서 탄생했다. 땅속에 한 세상을 만들어 빛을 꺼낸 이들께 존경을. 한 걸음 한 걸음이 신비로운 모험인 광명동굴에서 생각한다. 지금 내게 절벽처럼 다가오는 어느 상황이 황금을 품었는지 모른다고. 동굴을 뒤로하고 빛으로 발을 내디딘다. 또 다른 탐험을 시작한다.
광명동굴 주변에 둘레길을 조성해 동굴을 관람하고 산책하기 좋다. 광산의 흔적인 선광장도 함께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