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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이야기: 현실은 뇌가 만드는 가상(假象)이다
'현실'이란 어떤 사람에게 현재 실제로 주어진 상황이나 상태를 말한다. 누구에게나 현실은 늘, 그리고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각자가 처해 있는 현실이 다를 뿐이다. 즉, 현실은 각자가 살아가는 실제적인 생활의 양상이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자기에게 닥치는 일들이 고단한 것들 뿐이어서 세상이 그다지 좋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게 그 사람들에게는 현실인 것이다. 반대로 여유로운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상황이나 상태는 긍정적이고 보람된 일들이 더 많을 수 있으므로 그들에게는 이게 현실이 되는 것이다.
현실의 사전적인 의미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 또는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나 상태" 이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일이나 상황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허황된 허상이거나 환상 같은 존재를 의미할 것이다. 허황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두고 현실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현실이라는 말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라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이나 사실을 두고 현실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은 절대적으로 사실성과 직결되는 말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사실성은 상대적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허황되고 환상 같은 상황이 현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은 상대적인 것이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현실은 비현실적인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현실은 뇌가 만드는 가상(假象)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뇌가 형성하는 의식화이다. 쉽게 말해서 현실은 뇌가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인체의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서 자연의 세계에 대한 감각정보를 받아들인다. 자연으로 존재하는 세상의 현상이나 만물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뇌의 1차 감각피질로 입력되는데 이곳으로 입력된 정보는 의식화 되지 않는 감각자극이다. 이 감각자극이 연합피질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전전두엽에 이르게 되면 전전두엽은 여러 감각정보를 통합처리를 한다. 이러한 처리과정을 쉽게 감각정보의 해석이라고 해두자. 다시 말해서, 자연세계라는 바깥 환경으로부터 뇌로 입력된 감각정보는 전전두엽의 해석에 의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미가 있는 자연세계로 인식하게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자연의 세계를 자연 본연의 모습대로 절대 인식할 수 없다. 우리는 자연의 세계를 뇌가 해석해준 대로만 자연을 인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눈 앞에 펼쳐지는 어떤 모습들을 사람들 각자가 다르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다보는 사람들 각자의 느낌은 모두 다르다. 결코 같을 수가 없다. 이 말은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사람들 각자의 현실은 모두 다르다는 말과 같다. 이렇게 해가 지는 모습이 사람들마다 느끼는 바가 다른 것은 뇌가 해가 지는 모습을 각자 다르게 해석해주기 때문이다.
전전두엽이 1차 감각피질을 경유하여 입력된 감각정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대뇌피질 곳곳에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장기기억(경험기억이라고도 함)들이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이미 저장되어 있는 장기기억들을 토대로 비교, 검토하고 예측하는 통합적인 해석을 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전전두엽은 현재 입력된 감각정보를 이미 저장된 기억들을 바탕으로 하여 해석한다. 이 해석을 통해서 해가 지고 있는 장면을 인식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인식과정을 '지각'이라고 한다. 지각은 전전두엽이 감각적인 정보를 기억의 바탕에서 인식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지각화되기 전의 감각자극은 1차 감각피질에서 의식할 수도 인식할 수도 없다.
믿기지 않겠지만, 뇌 안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이라는 존재가 없으면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도 무엇인지를 전혀 인식할 수 없다. 한 예로, 뇌 안에 사과에 관한 정보들이 장기기억으로 저장된 것이 전혀 없으면 사과를 보고도 사과로 인식할 수 없다. 뇌는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장기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이같은 기억들을 토대로 현재 입력된 정보들을 인식할 수 있게끔 처리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다보는 사람들은 각자의 뇌 안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들을 바탕으로 하여 인식이 이루어지는데, 슬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해지는 모습이 슬프게 인식되고, 유쾌하고 좋은 기억들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해지는 모습이 찬란하고 아름답게 인식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해가 지는 모습을 결코 자연 그대로 볼 수 없다. 뇌는 입력되고 있는 자연세계에 대한 정보들을 끊임없이 해석해내기 때문이다. 만약에 지는 해를 바라다 보는 사람에게 아무 생각이 없다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요즘 말로 "멍때린다"는 말은 아마도 아무 생각없이 무얼 바라본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아무 생각없이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다본다는 행위는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석양이 지는 해인지 아니면 뜨는 해인지조차 의식할 수 없다. 사람은 대뇌피질에 엄청난 양의 경험기억을 저장하고 있으며, 이런 기억들은 현재 입력되고 있는 감각자극들과 끊임없이 통합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무엇을 본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현재 입력되고 있는 감각자극이 경험기억을 토대로 알게 되는 과정을 '작업기억'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동물들은 해가 지는 모습을 자연 그대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동물들의 뇌는 인간의 뇌처럼 기억장치가 고도로 조직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엉성하기 때문이다. 엉성하다는 말은 동물들의 기억장치는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감각기관을 통해 입력된 자연에 대한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기억을 장기적으로 저장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만 존재 할 뿐이며, 현재 입력된 정보들을 비교하고 검토하는 해석이 불가능한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은 뇌가 만드는 의식화로 바깥 세계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과 자연으로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에 대해 받아들이는 현실성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감각기관으로 입력되고 있는 정보들이 각자의 사람들이 저장하고 있는 기억들을 바탕으로 하여 해석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는 한다. 물론,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특수한 종교적인 경험기억에 의해 신(神)의 존재를 믿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들이 섬기는 신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임을 뇌가 인식시켜주기 때문에 종교인들에게는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 그들의 뇌가 신의 존재를 현실화시켜 주었으므로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의심을 한다. 그들의 뇌에서는 신이라는 존재가 현실로 의식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대뇌피질의 전전두엽의 중요한 기능은 정보를 처리하는 일이다. 자연세계의 현상이나 사물들을 본질 그대로 인식할 수 없는 이유는 뇌 안으로 입력되고 있는 모든 정보들이 과거의 기억들을 바탕으로 하여 가공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전전두엽에 의한 정보처리라고 한다. 전전두엽이 정보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대뇌피질에 많은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미 저장되어 있는 기억들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거나 과거에 존재했던 사물들에 관한 기억들이다. 과거라는 시간의 개념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뇌의 또다른 엄청난 기능이다. 과거가 있으면 현재도 있고 미래가 있다. 이와 같이 뇌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개념을 만들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다.
자연의 세계에서는 시간이란 현상이 없다. 그저 지구가 스스로, 또는 태양계를 돌면서 밤과 낮이 반복되고 계절이 반복될 뿐이다. 밤과 낮이, 그리고 계절이 반복되니까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흐르는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뇌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인식시켜주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의 개념을 갖게 된 것이다.
시간의 개념은 언어에 의해 추상적으로 의식되는 과정이다. 언어는 인간의 뇌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독특한 기능으로 언어에 의해 시간의식과 자아의식이 생성된다. 시간의식이란 과거, 현재, 미래를 시간의 흐름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자아의식은 내가 나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어는 자연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에 대해서, 또는 모든 현상이나 사건들에 대해서 대상화시킨다. 대상화 시킨다는 말은 사물들이나 사건들에 이름을 붙여 지칭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사물이나 사건들에는 이름이 없는 것이 없으며 이름이 없다면 뇌는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따라서 언어는 자연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사건들을 대상화시키고 대상화된 자연이 지각되는 과정이 인식이다. 이것이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시간의 개념을 의식화할 수 있으므로 과거를 회상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대단히 놀라운 뇌의 기능이다. 동물들의 뇌는 이러한 기능이 없으므로 과거를 기억할 수도 없고 미래를 내다볼 수도 없다. 오직 현재의 의식만이 있을 뿐이다. 만약에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이 과거를 기억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을 것이다. 왜나하면 언젠가는 사람들에 의해 도살당할 것을 예측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시간의 개념을 의식할 수 없으므로 과거와 미래를 모른 채 우리에 갇혀 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물들은 자연의 세계를 완전히는 아니겠지만 거의 본연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우리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들에서는 볼 수 없는 언어기능의 뇌를 가졌으므로 시간의식을 인식할 수 있고 자연세계에 대해서 대상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즉, 언어에 의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장이 뇌 안에서 형성되었고, 언어에 의해 자연의 세계가 대상화되면서 언어로 지칭된 하나의 세계상이 뇌 안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것을 언어가 만든 '가상의 세계'라고 한다.
우리가 자연의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결국 뇌가 만든 가상의 세계를 통해서이고, 가상의 세계는 경험기억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이므로 각자의 뇌가 만드는 가상의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언어는 또한 뇌 안에서 추상의 세계라는 상징적인 영역을 형성할 수 있다. 동물들은 구체성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추상의 세계를 인식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언어에 의한 추상의 세계를 형성할 수 있으므로 의식의 범위가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 의식이 구체성에 머물지 않고 추상의 세계에서 자유롭고 무한하게 확장되는 것이다. 언어가 지칭하는 것들에는 구체적인 대상도 있으나 대부분은 대상을 추상적으로 상징화시킨 것이다.
감각기관을 통해 입력된 자연세계에 대한 정보들을 상징적으로 처리하여 추상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을 무한하게 확장시킬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뇌이다. 뇌가 만든 가상의 세계와 추상의 세계에서 종교인들은 그들의 신을 만들었고 철학자들은 사상을 만들었으며 경제인들은 화폐나 상품에 대한 가치를 만들었고 정치인들은 각종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것들이 그들 각자에게 현실이며, 현실은 뇌가 만든 가상의 세계에서 형성된 것이다.
뇌가 만든 가상의 세계는 경험기억들을 바탕으로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 각자의 가상의 세계는 천차만별이다. 현실은 천차만별의 가상의 세계에서 반영된 것이므로 각자의 현실 또한 다르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현실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의 현실을 부정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는 그게 현실이며 현실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나 상태로 뇌가 인식시켜주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현실성이 없는 것이 또다른 누구에게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뇌가 만든 가상의 세계에서 해석되어진 지각으로 이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가상의 세계는 경험기억들로 형성되기 때문에 좋은 경험들은 이상적인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나쁜 경험들은 추악한 가상의 세계를 만든다. 자신의 뇌는 어떠한 가상의 세계로 구축되어 있는지를 생각해 보기를...
마인드로 측정된 환상의 세계, 마야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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