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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심원(행복한 쉼터) 원문보기 글쓴이: 나두라
Dealing with Emotions 감정 다루기
Jeshua channeled by Pamela Kribbe
Dear friends, I am delighted to be among you again and to communicate with you in this way. I must say that this means a lot to me as well. I cherish these meetings for in this way I can come closer to you than from my own plane of reality. Yet I always live inside your hearts and I wait for moments in your time when you are open and susceptible to my energy. My energy, the Christ energy that is being reborn in this time, is not solely my energy. It is not simply the energy of one man who lived on earth at one time; it is a collective energy field in which you take part in a way that is more profound than you realize.
친애하는 여러분, 다시 여러분과 모이게 되어 기쁩니다. 내가 속해있는 곳에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올 수 있는 이모임을 축복합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여러분의 가슴에 살고 있으며 여러분이 문을 열어 나의 에너지를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의 에너지, 그리스도 에너지는 지금 다시 태어나고 있으며 단일에너지는 아닙니다. 한때 지구에 살았던 한 사람의 에너지는 아니며 여러분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휠씬 더 깊은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는 집단 에너지입니다.
You all made a vow once, you all set your intention to carry this energy forth into the reality of earth, to anchor it in earth. Many lifetimes, many centuries, you have worked on this mission. You are all in the process of birthing the Christ seed within and I am helping you. I was a forerunner, yet the sowing of the Christ seed was a collective effort. Even my coming to earth was possible only because of the field of energy that was present here, woven by you. We work together, we are a unity. Therefore I am accessible to all of you. I am not exclusively available to any one person. I am at the service of all of you.
여러분들은 한때 맹세를 했으며, 그리스도 에너지를 지구에 정착시키고 지구의 현실로 드러나도록 모든 목적을 설정했습니다. 많은 생들과 수백 년 동안 이 임무를 수행해왔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내면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의 과정에 있으며 나는 그것을 돕고 있습니다. 나는 선두주자였지만 그리스도의 씨앗을 뿌리는 것은 집단의식의 노력이었습니다. 내가 지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들이 짜 놓았던 에너지 덕분이었습니다. 우리는 함께 일했고 공동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어느 특정한 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당신들 모두에게 봉사하기 위해 있습니다.
Today I want to speak about an issue that touches you deeply and frequently in your day to day life. It is about dealing with emotions.
오늘은 여러분들 매일의 삶을 자주 흔드는 주제에 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감정들을 다루는 문제입니다.
Last time I spoke about the energies of the male and the female which run through your energy field and chakras. I have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healing the lowest three chakras as a part of becoming whole and complete unto yourself. I thought it was important to emphasize this as some of you who crave the spiritual tend to withdraw yourself, both in thought and feeling, to the higher chakras. The heart, the third eye and the crown chakra are attractive to you, because these energy centers connect you with the higher realms that are so natural to you. But the real inner breakthroughs must now occur on a lower level, in the area of the lower chakras, closer to earth.
지난번에 여러분의 에너지 영역과 차크라를 통해 흐르는 남성과 여성에너지에 대하여 얘기하였습니다. 전체성의 한 부분으로써 자신을 완성하는데 하위의 세 차크라를 치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왜냐하면 영적인 것을 갈구하는 어떤 이들은 생각과 느낌에서 상위 차크라로 자신을 축소하는 경향 때문이었습니다. 목, 제 3의 눈, 왕관 차크라는 당신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것입니다. 이 에너지 센터들은 당신들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고차원의 영역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내면의 돌파구는 이제 지구에게 가까운 하위 영역, 하위 차크라를 통해 일어나야 합니다.
The area of the emotions is a vital area in your growth process towards freedom and wholeness. You are spiritual beings. You come from a plane of reality where the density and coarseness of earth reality was unknown to you. To cope with this has been difficult. Throughout many lives you have tried to express your cosmic energy here on earth. And in this expression, in the channeling of your energy to earth, many deep traumas have been built up. The emotional body that you all have is rife with wounds and traumas. Of that I wish to speak today.
감정의 영역은 자유와 전체성으로 향한 당신의 성장과정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당신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당신은 지구의 밀도와 험난함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차원에서 왔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여러 삶 동안 자신의 우주 에너지를 지구에 표현하려 노력해 왔으나, 이 노력과 지구에 대한 에너지의 채널링으로 깊은 트라우마가 형성되었으며 당신들 모두의 감정체는 상처와 트라우마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Anyone who walks the path of inner growth knows the importance of emotions: that you should not repress them, that you have to come to terms with them in some way, that you must ultimately release them. But how it all really works is not always so clear. I first want to make a distinction between emotions and feelings. I am not concerned here with specific terms or labels and you may call it by different names, but I want to make a distinction between emotions in the sense of energies that are essentially expressions of misunderstanding and feelings or energies that are a form of higher understanding.
내면의 성장의 여정을 걷는 모든 이들은 감정의 중요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어떤 방식으로든 그것들과 타협해야 한다는 것, 궁극적으로는 그것들을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들입니다.그러나 그것들이 작용하는 방식은 항상 명확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첫째로 감정과 느낌의 차이를 설명하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특정한 단어나 이름표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좋습니다만 본질적으로 오해의 표현으로써의 에너지적 측면인 감정과, 고차원의 이해의 형태로써의 느낌과의 차이를 구분하고 싶습니다.
Feelings are your teachers, while emotions are your children.
느낌은 당신의 스승이며 감정은 당신의 아이들입니다.
Emotions are energies that have a clear manifestation in the physical body. Emotions are reactions to things that you do not really understand. Consider what happens when you are overcome by a fit of rage. For instance someone hurts your feelings unexpectedly and you feel yourself becoming angry. You can feel this very clearly in your body; in certain places you feel the energy go tense. This physical tension or tightening that follows the energetic shock shows there is something you do not understand. There is an energy coming toward you that you feel is unjustified. The feeling of being treated unjustly, in short the not-understanding, is vented through the emotion. The emotion is the expression of the not-understanding, it is an energetic explosion and a release.
감정들은 물리적인 육체에서 명확히 현실화할 수 있는 에너지들입니다. 감정은 당신이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당신이 분노의 흥분 상태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해보세요.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예상치 못하게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당신은 분노하게 됩니다. 육체의 어떤 부분에서 에너지가 긴장하면서 이 상태를 정확히 느끼게 됩니다.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 에너지적 충격에 육제척 긴장과 수축이 따릅니다. 당신이 정의하지 못하는 에너지가 다가 옵니다. 적절하게 다루지 못한, 이해가 안 되는 느낌은 감정을 통해 발산하게 됩니다. 그 감정은 이해하지 못함의 표현이며, 에너지적 폭발이며 배출입니다.
When this happens, you are confronted with the following choice: what am I going to do with this emotion? Am I going to base my actual behavior on it? Am I going to use this as fuel for my reactions to other people or do I let the emotion be and base my actions on something else? Before answering this question, I want to explain the nature of feelings.
이 일이 발생할 때 당신은 다음의 선택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그 감정을 바탕으로 실제적인 행동을 해야 할까? 이 감정을 다른 이들에게 화풀이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 감정들은 두고 다른 이유로 행동해야 하는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느낌의 성질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Emotions are essentially explosions of misunderstanding that you can clearly perceive in the body. Feelings, on the other hand, are of a different nature and are perceived differently as well. Feelings are more quiet than emotions. They are the whispers of the soul that reach you through gentle nudges, an inner knowingness or a sudden intuitive action that later appears to have been very wise. Emotions always have something very intense and dramatic to them. Consider anxiety attacks, fear, rage or deep sadness. Emotions take hold of you completely and pull you away from your spiritual center. In the moment you are highly emotional, you are full of a kind of energy that pulls you away from your center, your inner clarity. In that sense, emotions are like clouds hovering before the sun.
감정은 본질적으로 몸에서 명확히 인지하게 되는 오해의 분출입니다. 반면에 느낌은 다른 성질을 가지고 다르게 인지됩니다. 느낌은 감정보다 휠씬 더 고요합니다. 내면의 앎에서 뒤에 현명했음이 드러나는 직관적 행동 등의 부드러운 손짓을 통해 당신에게 닿으려는 영혼의 속삭임입니다. 감정은 항상 아주 강렬하고 드라마틱하게 전개됩니다. 불안함, 두려움, 분노 혹은 깊은 슬픔을 생각해 보세요. 감정은 당신을 완벽하게 붙들어 영적 중심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감정이 최고조 일 때 당신의 중심, 내면의 명료함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에너지로 가득 차기 때문에, 감정을 태양이 드러나기 전에 주변을 떠도는 구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With this, I do not want to say anything against emotions. Emotions should not be repressed; they are very valuable as a means to get to know yourself more intimately. But I do want to state what the nature of emotional energy is: it is an explosion of misunderstanding. Emotions essentially take you out of your center.
이제 감정에 대해서 더 이상 나쁘게 말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감정들은 억제 되어서는 안되고, 자신을 좀더 친밀히 알게 해주는데 매우 가치 있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나의 설명은 감정의 본질적인 성질이 바로 오해의 분출이며 중심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에너지라는 것입니다.
Feelings, on the other hand, bring you deeper into yourself, into your center. Feelings are closely associated with what you call intuition. Feelings express a higher understanding, a kind of understanding that transcends both the emotions and the mind. Feelings originate in a non-physical realm, outside of the body. That is why they are not so clearly located within one spot of the physical body. Consider what happens when you sense something, an atmosphere or a mood, or when you have presentiments about a situation. There is a kind of knowingness within you then that seems to come from the outside and that is not a reaction from you to something external. It comes out of nothing (out of the blue as you so beautifully put it). In such a moment, you may feel something open up in your heart chakra.
그 반면 느낌은 당신 자신 속으로, 중심으로 깊이 들어가게 합니다. 느낌들은 흔히 직관이라고 부르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느낌은 고차원의 이해의 표현이며 일종의 감정과 마음을 초월하는 이해입니다. 느낌은 육체 밖의 비 물리적 영역에서 기원합니다. 그래서 느낌들이 물리적 육체의 한 지점에 명확하게 위치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무엇인가, 공기 혹은 분위기를 감지 했을 때나, 상황에 대한 예감을 느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외부에서 온 듯이 보이는 내면의 일종의 앎이 있을 뿐이며, 외부적인 것에 대한 반응이 아닙니다. 난데없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순간에 당신은 가슴 차크라에서 뭔가 열리는 것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There are many moments in which such an inner knowingness comes to you. For instance, you may know something about someone without having really talked with him or her. You can sense something about the two of you that later on will play an important role in your relationship. Such things are not easy to grasp in words simply a feeling - and certainly not easily understood by the mind. (These are the moments in which your mind gets skeptical, telling you that you are making things up or are going crazy).
내면의 앎이 당신에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그 혹은 그녀와 직접 얘기를 나누지 않고도 뭔가를 알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신은 뒤에 그 혹은 그녀가 당신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 느낌들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고 마음으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이 순간들 속에서 당신의 마음은 자신이 이 것을 지어내고 있거나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다는 의심을 가지게 됩니다).
I would like to mention another energy that has more of a feeling nature than an emotional one. It is joy.Joy can be a phenomenon that transcends the emotional. Sometimes you can feel a kind of joy inside that lifts you up without a particular reason. You feel the divinity inside you and your intimate connection to all that exists. Such a feeling may come to you when you least expect it. It is as if Something Greater touches you or as if you touch a Greater Reality. Feelings are not so easily summoned and seem to come to you out of the blue. Emotions almost always have a clear immediate cause: a trigger in the outside world that pushes your buttons.
감정보다 더 휠씬 더 느낌의 성질을 가지는 에너지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기쁨입니다. 기쁨은 감정을 초월하는 현상입니다. 때로 당신은 특별한 이유 없이 고양되는 내면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내면의 신성함과 존재하는 만물과 친밀한 연결을 느낍니다. 그러한 순간은 당신이 기대하지 않을 때 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위대한 어떤 것이 당신에게 닿고 혹은 당신이 위대한 실체에게 닿는 것과 같습니다. 느낌들은 쉽게 불러들일 수는 없지만 난데없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와 달리 감정은 항상 즉각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외부의 세계에서 감정의 부를 수 있는 버튼 장치가 있습니다.
Feelings originate from the dimension of your Higher or Greater Self. You need to be quiet inside to catch those whispers in your heart. Emotions can disturb this inner silence and peace. Therefore it is vital to become emotionally calm and to heal and release repressed emotions. Only from your feeling which connects you to your soul can you make balanced decisions. By being quiet and peaceful, you can feel with all of your being what is right for you at a certain moment. Making decisions based on emotions is making decisions from a non-centered position. You need to release the emotions first and get in touch with your inner core where there is clarity.
느낌은 고차원, 위대한 자아적 차원에서 기원합니다. 가슴속에서의 이러한 속삭임을 잡기 위해 내면의 고요함이 필요합니다. 감정은 이러한 내면의 고요와 평화를 방해합니다. 오직 영혼에 연결되어 있는 느낌에서 당신은 균형 있는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있음으로써 어떤 순간에 당신의 모든 존재차원에서 무엇이 적절한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을 바탕으로 결정하는 것은 중심에서 벗어난 결정입니다. 일단 감정을 놓아줄 필요가 있고 명료함이 있는 내면의 핵심과 접촉해야 합니다.
Now I want to go into the question of how you can best deal with your emotions. I said that feelings are your teachers and emotions are your children. The parallels between being emotional and being like a child are striking. Your inner child is the seat of your emotions. Also there is a striking resemblance between the way you deal with your own emotions and the way you deal with real children.
이제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싶습니다. 느낌은 당신의 스승이고 감정은 당신의 아이라고 말했습니다. 감정적인 상태와 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의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내면의 아이는 감정들의 세트입니다. 또한 당신이 감정을 다루는 방식과 당신의 실제 아이를 다루는 방식의 놀라운 유사성이 있습니다.
Children are honest and spontaneous in their emotions and they do not hide or repress them until adults encourage them to do so. The fact that children spontaneously express their emotions does not however mean that children experience their emotions in a balanced way. Everyone knows that children can be carried away by their emotions (rage, fear or sadness) and are often unable to put a stop to them. In such a situation, the child can almost drown in their emotions and that makes them unbalanced, i.e. out-of-center. One of the reasons for this unbounded emotionality is that the child has only recently left a world in which there are hardly any boundaries. In the ethereal or astral dimensions, there were no such restrictions and limitations as there are in the physical realm, within the physical body. The child’s emotions are often reactions of misunderstanding to this physical reality. Therefore when he or she grows up, the child needs help and support in dealing with their emotions. This is part of the process of balanced incarnating on earth.
아이들의 감정은 정직하고 즉흥적입니다. 그들은 어른들이 지시할 때까지 감정을 숨기거나 억누르지 않습니다.아이들이 감정을 즉각적으로 표현한다는 것과 자신들이 감정을 균형 있는 방식으로 경험한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아이들이 분노, 두려움 혹은 슬픔으로 자제력을 잃고 종종 멈추기 힘들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그 감정들은 아이들을 잠식하고 중심을 벗어나 불균형 상태로 만듭니다. 이러한 선을 벗어난 감정들의 원인 중 하나는 아이들은 경계가 거의 없는 세계를 아주 최근에 떠나왔기 때문입니다. 에테르 혹은 아스트랄 차원에서는 물리적 영역에서 육체 속에 있는 것만큼의 억제와 제한은 없었습니다. 아이의 감정은 흔히 물리적 현실에 대한 이해하지 못함의 반응입니다. 그래서 그 혹은 그녀가 성장했을 때 아이는 감정을 다루는데 있어 도움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이는 지구에 균형 있는 환생 과정의 한 부분입니다.
So how do you deal with emotions, whether in yourself or in your children?
그러면 당신은 자신과 당신의 아이들 속에서 어떻게 감정을 다루고 있습니까?
Emotions should not be judged or repressed. Emotions are a vital part of you as a human being and as such they need to be respected and accepted. You can look upon your emotions as your children who need your attention and respect and your guidance. An emotion can best be viewed as an energy that comes to you for healing. Therefore it is important to not be completely swept away by the emotion, but to remain able to look at it from a neutral stance. It is important to stay conscious. One might put it like this; you should not repress an emotion, but you should not drown in it either. For when you drown in it, when you identify with it completely, the child in you becomes a tyrant that will lead you astray.
감정을 판단하거나 억제해서는 안됩니다. 감정은 인간 존재에게 있어 핵심적인 부분이며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감정을 관심과 존중, 안내가 필요한 당신의 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은 치유를 위해 당신에게 다가오는 에너지라고 보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감정을 중립적인 상태에서 바라볼 수 있기 위해서는 감정으로 완전히 휩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상 의식적인 상태로 머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억제해서도 안되지만 그것에 압도되어서도 안됩니다. 감정에 압도되면 당신은 자신을 그것과 완전히 동일시하게 되고 내면의 아이는 당신이 길을 잃게 만드는 독재자가 됩니다.
The most important thing you can do with an emotion is to allow it in, to feel all aspects of it while not losing your consciousness. Take for instance anger. You can invite anger to be fully present, experiencing it in your body at several places, while you are at the same time neutrally observing it. Such a type of consciousness is healing. What happens in this instance is that you embrace the emotion, which is essentially a form of misunderstanding, with understanding. This is spiritual alchemy.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감정을 허용하고 그것의 모든 측면을 느끼면서 동시에 당신의 의식을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분노를 생각해보세요. 분노를 불러들여 중립적으로 바라보며 완전하게 현재의 순간에 존재하면서 몸의 여러 차크라 지점에서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식의 형태는 치유입니다. 지금 이순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함의 근본적인 형태인 감정을 이해로 껴안을 수 있습니다. 이 것이 영적인 마법의 순간입니다.
Let me explain with the help of an example. Your child has bumped her knee on the table and it really hurts. She is upset, screaming with pain and she kicks the table because she is angry with it. She considers the table to be the source of her pain. Emotional guidance at this moment means that the parent first helps the child name her experience. you are angry, aren’t you. you are in pain, right? Naming it is essential. You transfer the root of the problem from the table to the child herself. It’s not in the table, it is you who are hurt, it is you who is angry. And yes, I understand your emotion!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이가 테이블에 무릎을 부딪혀 심하게 다쳤습니다. 그녀는 화를 내며 고통으로 울부짖습니다. 화가나 테이블을 걷어찹니다. 그녀는 테이블이 자신의 고통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순간 감정의 가이드는 부모가 아이에게 그 경험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화가 났구나, 많이 아프겠는걸, 그렇지?본질적인 것을 알려주세요. 문제의 본질을 테이블에서 아이 자신으로 바꾸어 줍니다. 다치고 상처 받은 것은 너지 테이블이 아니란다. 그래 나는 너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어.
The parent embraces the emotion of the child with understanding, with love. The moment the child feels understood and recognized, her anger will gradually fade away. The physical pain may still be present. But her resistance to the pain, the anger around it, can dissolve. The child reads compassion and understanding in your eyes, and this relaxes and soothes her emotions. The table, the cause of the emotions, is not relevant anymore. In embracing an emotion with understanding and compassion, you shift the focus of the child’s attention from outside to inside, and you teach the child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e emotion. You are showing her that her reaction to an outside trigger is not a given, but that it is a matter of choice. You can choose misunderstanding or understanding. You can choose to fight or to accept. You can choose.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이해와 사랑으로 껴안아줍니다. 그 순간 아이는 이해하고 자각하며 분노는 점차 사라집니다. 그 육체적 고통은 여전히 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고통과 분노에 대한 저항은 사라집니다. 아이는 당신의 눈에서 연민과 이해를 읽으면서, 긴장을 풀고 완화됩니다. 감정의 원인인 테이블은 더 이상 관계가 없습니다. 이해와 연민으로 감정을 껴안음으로써 아이의 관심을 외부에서 내면으로 돌리고 아이에게 감정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외부적인 발단에 대한 반응은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해를 선택하든지 혹은 이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싸우기를 선택하든지 받아들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This also applies to the relationship with your own emotions, your own inner child. Allowing your emotions in, naming them and making an effort to understand them, means that you truly respect and cherish your inner child. Making the shift from outer to inner, taking responsibility for the emotion, helps to create an inner child that does not want to hurt anyone else, that does not feel victimized. Strong emotions whether anger, grief or fear always have the component of powerlessness, i.e. the sense that you are the victim of something outside of you. What you do when you focus not on the circumstances outside of you but instead on your reaction and your pain is that you dismiss the outside world as the cause of your emotions. You do not care that much about what gave rise to the emotion. You completely turn inward and you say to yourself: okay, this has been my reaction and I understand why. I understand why I feel the way that I do and I am going to support myself in this.
이는 당신의 자신의 감정, 내면의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허용하고 인식한 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진정으로 그 아이를 존중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감정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외부에서 내부로의 변환과정은 내면의 아이가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되돌려주지 않고, 희생자 의식이 들지 않게끔 돕습니다. 분노, 슬픔 혹은 두려움 같은 강한 감정은 항상 무력감, 외부적인 상황에서의 희생자 의식에서 비롯됩니다.외부의 조건이 아닌 자신의 반응과 자신의 고통에 관심을 둘 때 외부 세계를 감정의 원인으로 보지 않게 됩니다.감정을 일으키게 한 것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완전히 내면으로 방향을 돌리고 자신에게 말합니다: 그래,이것은 단지 나의 반응일 뿐이고 난 이해할 수 있어.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할 수 있고 그일에 관해서 나 자신을 지지하겠어.
Turning toward your emotions in such a loving manner is liberating. It does require a kind of self-discipline. Releasing outside reality as the source of the evil and taking full responsibility yourself means that you acknowledge that you choose to react a certain way. You stop arguing about who is right and who is wrong, who is to blame for what and you simply release the whole chain of events that happened outside of your control. you now experience this emotion in the full awareness that I choose to do so. That is taking responsibility. That is courage!
그러한 사랑의 방법으로 감정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은 풀어주는 것입니다. 외부 현실을 악의 근원으로 여기는 것을 놓아주고 자신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원하는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이제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 누구를 무엇 때문에 비난하는 것을 멈추세요. 당신의 통제 밖에서 외부세계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그냥 놓아주세요. 이제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완전한 자각 속에서 감정을 경험합니다. 그것이 책임을 지는 자세이며 용기입니다!
The self-discipline in this is that you give up on being righteous and on being the helpless victim. You give up on feeling angry, misunderstood and all the other expressions of victimhood that can feel quite good at some times. (Truly, you often cherish the emotions that bug you the most). Taking responsibility is an act of humbleness. It means being honest with yourself, even at your weakest moment. This is the self-discipline that is asked of you. At the same time, this kind of turning inward requires the highest compassion. The emotion you are honestly prepared to face as your own creation is also looked upon with gentle understanding. you chose anger this time, didn’t you? Compassion tells you: okay, I can see why and I forgive you. Perhaps when you feel my love and support more clearly you will not feel inclined to take that response next time.
여기에서 자기 훈련이란 옳은 존재가 되려는 시도와 무력한 희생자가 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아주 집착하게 되는(사실, 흔히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감정을 소중히 여기곤 합니다) 감정들인 분노, 오해와 다른 모든 희생자적인 표현을 포기하세요. 책임을 지는 것은 겸손함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심지어 가장 약한 순간에도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것이 당신에게 필요한 자기 훈련입니다. 동시에 내면으로 관심의 돌리는 것은 고도의 정열을 요구합니다. 정직하게 대면할 준비가 된 자신의 창조물인 감정을 또한 부드러운 이해심으로 들여다 보게 됩니다. 이 전까지는 분노를 선택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연민은 당신에게 말합니다: 좋아, 이제 나는 그 이유를 이해했고 용서하겠어. 아마도 당신이 나의 사랑과 지지를 좀더 명확히 느낀다면 다음 번에는 분노로 대응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This is the true role of consciousness in self-healing. This is what spiritual alchemy means. Consciousness does not fight or reject anything; it encircles darkness with awareness. It encircles the energies of misunderstanding with understanding and thus transforms ordinary metal into gold. Consciousness and love are essentially the same. Being conscious means letting something be and surrounding it with your love and compassion. Often you think that consciousness alone is not enough to overcome your emotional problems. You say: I know I have repressed emotions, I know the cause of it, I am aware but it does not go away.
이것이 자아 치유에 있어 의식의 진정한 역할입니다. 영적인 마법의 의미입니다. 의식은 어떤 것과 싸우거나 거부하지 않습니다; 의식은 어둠을 인식으로 둘러쌉니다. 의식은 오해의 에너지를 이해로 둘러쌉니다. 그렇게 해서 평범한 금속을 금으로 변환시킵니다. 의식과 사랑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의식으로 머문다는 것은 놓아주고 그것을 사랑과 연민으로 둘러싸는 것입니다. 종종 당신은 의식만으로는 감정적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말하길: 나는 내 감정을 억눌러온 것을 알고 그 원인도 알고 있어. 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들이 사라지지는 않아.
In that case, there is a subtle resistance within you to that emotion. You keep the emotion at a distance, from fear of being overwhelmed by it. But you are never overwhelmed by an emotion when you consciously choose to allow it. As long as you keep the emotion at a distance, you are at war with it. You are fighting the emotion and it will turn against you in several ways. You cannot keep it outside in the end. It will manifest itself in your body as an ache or tension or as a feeling of depression. Feeling down or weary frequently is a clear sign that you are repressing certain emotions.
이 경우는 당신의 내면에 그 감정에 대한 미묘한 저항이 있습니다. 그 감정에 의해 휘둘릴 것이 두려워 거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그것을 허용하도록 선택한다면 결코 감정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감정에 거리를 두는 한, 당신은 그것과 전쟁 중입니다. 그 감정과 싸우고 있으며 그것은 당신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등을 돌릴 것입니다. 결국은 계속 밖에 둘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육체에서 긴장과 고통 혹은 스트레스로 스스로 드러냅니다. 기분이 가라앉는 것과 지치는 것은 흔히 당신이 어떤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입니다.
The thing is that you need to allow the emotions to fully enter your consciousness. If you do not know exactly what emotions are there, you can very well start by feeling the tensions in your body. This is a gateway to the emotions. In your body it is all stored. For instance, if you feel pain or tension in the area of your stomach, you can go there with your awareness and ask what is the matter. Let the cells of your body speak to you. Or imagine that right there, a child is present. Ask the child to show you what emotion is predominant in him or her.
감정이 당신의 의식으로 들어가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어떤 감정이 있는지를 정확히 모른다면 육체적으로 쉽게 긴장해 버립니다. 이 것이 감정에 이르는 신호이며, 육체에 그 모든 감정들이 저장되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당신이 위(장)에 고통과 긴장을 느낀다면 의식을 거기에 두고 무엇이 문제인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육체의 세포가 당신에게 말하도록 하세요. 혹은 그 자리에 아이가 있다고 상상하고 그 아이에게 어떤 감정이 그 혹은 그녀 속에서 장악하고 있는 지를 보여달라고 하세요.
There are several ways to connect with your emotions. It is vital to realize that the energy that got stuck in the emotion wants to move. This energy wants to be released and therefore it knocks at your door as a physical complaint or as a feeling of stress or depression. For you it is a matter of really opening up and being prepared to feel the emotion. Emotions are part of your earthly reality but they should not get a hold over you. Emotions are like clouds for the sun. Therefore it is so important to be aware of your emotions and to deal with them consciously. From a clear and balanced emotional body, it is much easier to contact your soul or inner core through your intuition.
감정과 연결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움직이지 못하고 갇혀있는 에너지는 흐르고 싶어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에너지는 흘러가길 원하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이나 스트레스 등의 방법으로 당신의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서 그 고통은 진정으로 문을 활짝 열고 감정을 느낄 준비를 하게 합니다. 감정은 당신의 지구적 현실의 부분이지만 당신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게 할 수 없습니다. 감정은 태양주위의 구름과 같습니다. 당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의식적으로 다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확하고 균형 잡힌 감정체에서 직관을 통해 당신의 영혼과 내면의 정수를 접촉하는 것이 휠씬 쉬워집니다.
In your society, there is much confusion about emotions. This is evident, among other things, from the amount of debate and confusion there is about how to raise your children. Children clearly are much more emotionally spontaneous than you are as adults. This creates difficulties. What if some of your moral boundaries are crossed? What if the situation gets out of hand and chaos arises? Does one have to discipline children or let them express themselves freely? Do their emotions have to be controlled or not?
여러분의 사회에서는 감정에 대해서 많이 헷갈리고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키우는 방법에서의 그 분쟁관 혼란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감정적인 면에서 휠씬 더 즉흥적입니다. 이것이 어려움들을 야기합니다. 당신의 도덕적 경계의 선을 넘어선다면 어떨까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어져서 혼란스러워진다면 어떨까요? 아이들을 훈육해야 할까요 아님 그들이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내버려 둬야 할까요? 그들의 감정은 통제되어야 할까요 아닐까요?
What is important in a child’s upbringing is that they learn to understand their emotions, to understand where they come from and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em. With your help, the child can learn to see their emotions as explosions of misunderstanding. This understanding prevents your child from growning in their emotions and going out of control. Understanding liberates and brings you back to your own center without repressing the emotions. The parent teaches their child to deal with emotions in this way by being the living example of it.
아이의 양육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감정들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고 그것들에 책임을 지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당신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이 오해의 분출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감정을 키우고 통제 밖으로 벗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이해는 자유롭게 풀어주고 감정의 억압 없이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부모는 자신이 그 표본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이 감정을 다루는 것을 배우게 합니다.
All the questions you have about dealing with your children also apply to yourself. How do you cope with your own emotions? Are you hard on yourself? When you feel angry or sad for some time, do you discipline yourself by saying: come on, get yourself together and move on? Do you suppress the emotion? Do you feel that disciplining yourself is good and necessary? Who taught you this? Was it a parent?
당신의 아이들을 다루는데 대한 모든 질문들은 또한 당신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감정을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자신에게 가혹하게 대합니까? 분노나 슬픔이 느껴질 때 자신을 이렇게 다잡습니까?: 괜찮아, 추스르고 일어서야지. 감정을 억누릅니까? 자신에게 엄격하게 대하는 것이 옳고 필요하다고 느낍니까? 누가 이것을 가르쳐주었습니까? 부모님이었습니까?
Or do you go to the other side? Do you wallow in your emotion, not wanting to let go of it. This also is frequently the case. You may have felt for a long time that you were a victim of some situation outside of you, for example your upbringing, your partner or your work environment. At a certain moment, it may have been very liberating to get in touch with the anger inside you about the negative things that influenced you. Anger can enable you to break free from these influences and go your own way.However you may get so enamored with your anger that you do not want to give it up anymore. Instead of becoming a doorway, it becomes a way of living. A form of victimhood then arises which is anything but healing. It holds you back from truly standing in your own power.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대합니까? 감정을 보내지 않고 그것에 파묻혀버립니까? 이 또한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오랫동안 자신이 외부의 상황, 양육환경, 배우자, 혹은 직장에서 희생자임을 느껴 왔을 것입니다. 그러다 어떤 순간 당신에게 영향을 미쳤던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노와 접촉함으로써 자유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분노는 부정적 영향에서 벗어나 당신만의 길을 가는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분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하기에 현혹돼버려, 입구를 위한 문(돌파구)이 되는 대신에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 버립니다. 치유가 아닌 희생자의식의 형태가 만들어집니다. 이는 당신이 자신의 힘으로 진정하게 서는 것을 방해합니다.
It is very important to take responsibility for your own emotions and not to make absolute truths of them. When you give them the status of truths, instead of looking upon them as explosions of misunderstanding, you will base your actions on them and that will lead to uncentered decisions.
The same happens with children who are allowed too much emotional freedom. They run wild and become uncontrollable; they become little tyrants and that is not right. Emotional chaos is just as unpleasant for the child as it is for the parent.
그 감정들을 진실로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감정들을 오해의 분출로 바라보는 것 대신에 감정을 현실로 만들어버리면,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하게 되고 중심을 벗어나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같은 일이 아이가 감정적인 자유를 지나치게 가졌을 때도 일어납니다. 제멋대로 되어 통제를 벗어납니다; 감정은 작은 독재자가 되어 버리고, 감정적인 혼란은 부모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아이에게도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In short you can either be too strict or too lenient in dealing with your emotions (and, by analogy, with your children). I want to go a little more into the lenient way, for that seems to be more of an issue nowadays. Since the sixties there has been a collective realization that it will not do to suppress your emotions, for then you are stifling your spontaneity and creativity, indeed your very soul. Society will produce disciplined and obedient children who care more for rules than the whispers of the heart and that is a tragedy for society as well as the individual.
요약하면 당신은 감정을 다루는데(아이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유사한) 있어 너무 완고해지거나 너무 관대해져 버릴 수 있습니다. 나는 약간은 관대한 방식으로 가고 싶은데 그것이 오늘날의 문제에 알맞기 때문입니다. 60년대 이후에는 감정을 억압하지 않는 대중적인 자각이 있어왔는데 이유는 이전에는 자발성과 창조성, 당신의 영혼을 숨막히게 했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가슴의 속삭임보다 규칙을 더 중시하도록 훈련되고 복종하는 아이들을 양산했는데, 이는 그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게도 비극이었습니다.
But what about that other extreme: what about justifying emotions in such a way that they take over and rule your life? You can very well observe inside you whether there are emotions that you cherish in such a way that you regard them as truth instead of what they really are: explosions of misunderstanding.These are emotions you have identified with. The paradox is that often enough, these are emotions that cause you much suffering. For instance: powerlessness( I cannot help it), control (I want to handle it), anger (it is their fault) or grief (life is miserable). These are all emotions that are painful but yet, on another level, they give you something special to hold on to.
위와 다른 극단의 측면은 어떨까요: 그들이 당신들의 삶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규정하는 것은 어떨까요? 당신이 내면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면, 그것의 진정한 모습인 오해의 분출로 보기보다 일종의 현실로 여기는 방식을 소중히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감정들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흔히 이 감정들로 인해 당신이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예로 무력감(나는 도와줄 수 없어), 지배(잘되게 하고 싶어) 혹은 슬픔(삶은 비극이야)들 입니다. 이것들은 고통스러운 감정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뭔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Take powerlessness or the victim feeling. There can be advantages to this emotional pattern. It may give you a sense of safety. It releases you from certain obligations or responsibilities. I can not help it, can I? It is a dark corner you’re sitting in but it seems a safe one. The danger of identifying or merging with such an emotional pattern for a long time is that you lose touch with your own true freedom, your innermost divine core.
무력감과 희생자적 느낌을 보세요. 이 감정적 패턴들에는 일시적인 이점들이 있습니다. 이 감정들은 당신에게 일종의 안전감을 제공합니다. 이 패턴들은 당신을 의무감과 책임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난 도울 수 없어, 그렇지 않아? 이 지점은 당신이 앉아있는 어두운 골목이지만 안전한 곳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감정 패턴과 오랫동안 동일시하는 위험은 자신의 진정한 자유, 내면의 궁극적인 신성한 핵심과의 접촉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Things may have entered your life path that have justifiably provoked emotions of anger and resentment within you. This may have happened in your youth, later on or even in past lives. It is very important that you get in touch with these emotions consciously and that you become aware of the anger, sadness or any other intensely charged energy within you. But at a certain point, you need to take responsibility for your emotions, for they constitute your reactions to an outside event. Being centered, being in a state of clarity and spiritual balance, means that you take full responsibility for all the emotions that are in you. You can then recognize the emotion of, for instance, anger within you and say at the same time: this was my reaction to certain events. I surround this reaction with understanding, but at the same time I intend to release it.
아마 분노나 반감이 정당하게 일어날만한 일이 당신의 삶에서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이 일이 당신의 젊은 시기나 나이 들었을 때 심지어 과거 생에서 일어났을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러한 감정을 의식적으로 접촉하고 분노, 슬픔 등 내면에 강하게 잠기게 되는 감정들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지점에 이르러서는,그 감정들이 외부의 사건에 대한 당신의 반응을 고정화 해버리기 때문에 그 감정들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중심에 머무르고 명료함과 영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당신의 내면에 있는 모든 감정들에 완전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분노의 감정들을 즉각 인식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건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나는 이 반응을 이해로 감싸면서 동시에 그것을 놓아주겠다.
Life is ultimately not about being right; it is about being free and whole. It is very liberating to release old emotional responses that have grown into a lifestyle.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올바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전체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의 방식에 오랫동안 자리잡아온 오래된 감정적 반응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입니다.
One might say that it is all about the subtle middle road between suppressing emotions and drowning in them. On both sides, you have been raised with opinions and ideals that are not in accordance with the nature of spiritual alchemy. The essence of spiritual growth is that you do not suppress anything, but at the same time you take full responsibility for it. I feel this, I choose this reaction, so I can heal it. Claiming your mastership that is what my message is about truly. Perhaps it is not really a middle road, but a different road. It is all about spiritual mastership. In accepting all there is within you, you rise above it and become its master. Mastership is both strong and gentle. It is very allowing and yet it takes great discipline: the discipline of courage and honesty.
이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과 그 속에 잠식되는 것 사이의 미묘한 중간 길로 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지금까지 당신은 양극단에서 영적인 마법의 본성과는 다른 생각들에 의해 성장해왔습니다. 영적인 성장의 정수는 어떠한 것도 억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느끼고, 이 반응을 선택하고, 그래서 나는 이것을 치유할 수 있다. 진정한 나의 메시지는 이로써 당신이 자신의 주인의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중간 길이 아니라 어려운 길일 것입니다. 영적인 주인의식에 관한 것으로, 내면의 모든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그것 위로 일어서고 그것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의식은 강하고 부드럽습니다.매우 허용적이지만 또한 많은 훈육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용기와 정직입니다.
Claim your mastership, become the master of the emotional bits and pieces that torment you, often behind your back. Get in touch with them, take responsibility. Don’t let yourself be driven by unconscious emotional hurts that sidetrack you and block your road to inner freedom. It is your consciousness that heals. No one else can restore the power over your own emotions for you. There are no external instruments or means to take away those emotions. It is in becoming aware of them with strength, determination and compassion that they are released into the Light.
자신의 주인의식을 요구하고, 고통을 만들면서 등뒤에 숨어있는 감정적인 조각들의 주인이 되십시오. 그것들과 접촉하고 책임을 지세요. 당신을 길에서 벗어나게 하고 내면의 자유로 향하는 길을 막는 무의식적인 감정적 상처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세요.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당신의 의식입니다. 아무도 당신을 위해 당신의 감정에 대한 힘을 돌려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감정들을 없앨 수 있는 외부적인 기구나 수단은 없습니다. 힘과 결의와 열정으로 그 감정들을 자각한 상태에서 그것들을 빛 속으로 놓아주는 것입니다.
Becoming whole and free on the emotional level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aspects of growing spiritually. I want to finish by saying: do not make it more difficult than it is. The spiritual path is a simple path. It is about love for yourself and inner clarity. It does not require any specific knowledge or any specific rituals, rules or methods. All things you need for your spiritual growth are within you.
감정적인 수준에서 전체적이고 자유로운 것은 영적 성장의 가장 중요한 측면 중 하나입니다. 나는 이것으로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원래보다 더 어렵게 만들지 마세요. 영적인 길은 단순한 길입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과 내적 명료함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지식이나 특별한 의식, 규칙과 방법 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당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At a quiet moment, go to the feeling side of you. Let this feeling side of you tell you what needs to be clarified and cleansed within you. Trust your intuition. Work on it. Believe in yourself. You are the master of your life, the master of your unique path to love and freedom.
고요한 순간에 내면의 느낌으로 들어가세요. 느낌이 당신에게 무엇이 명확해져야 하고 정화되어야 하는지 알려주는걸 들어보세요. 당신의 직감을 신뢰하세요. 그것을 연습해 보세요. 자신을 믿으세요. 당신은 자신의 삶의 주인이며, 사랑과 자유로의 당신만의 독특한 여정의 주인입니다.
Pamela Kribbe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