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8년만 쟤랑 지내봐라. 사귀고 싶나. 하긴 네가 뭘 알겠어.”
“그럼 태양이 상처 안 받게 그런 약속을 하지 말던가. 전교생이 천 명인 이 학교에서
정확히 사백 십이 등을 하는 윤태양이 어떻게 전교 1등을 하니? 그리고 그 조건은 뭐야.
너랑 사귄다는 약속까지. 너 진짜 너무하다. 태양이 갖고 노는 거야? “
연희는 내가 이상한 듯 날 째려봤다. 왜 그런 잘생긴 애를 성격 좋은 애를 마다하냐는
눈빛이 분명하지만 난 무시하겠다. 연희는 말을 들었다가는 나도 연희처럼
될 게 분명한 건 천지신명이 다 아는 일일테니 말이다.
“그래도 싫은 걸 어떡하라고. 공부도 안 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놀기만 하는 애하고 어떻게 내가 맞겠어. “
“저번에 너 너하고 성적 비슷한 애하고 며칠 커플 했었는데. 너 그 때 걔 너무 공부만
한다고 고작 일주일 갔어 이 바보야. 너하곤 딱 태양이 같은 애가 어울려. 그리고 너 그런
잘난 척 좀 하지마. 넌 그럴 때가 제일 꼴 보기 싫어 이 가시내야. “
옳은 말 하면 입을 때려주고 싶다고 끼워 맞춘 듯 꼭 맞는 말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 자식보단 태양이가 훨 나은 것 같긴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봐 온 태양이의
모습이 내 눈에는 별로 좋지 않다. 아니 나빴다. 언젠가 한번은 시험 끝나고 연희하고 노래
방에 갔었는데 바로 옆방에서 태양이와 친구들 그리고 이름 모를 한참 어려보이는
여자아이가 놀고 있었다. 그 때 연희가 태양이를 그렇게 사모하던 연희가 태양이에게 살짝
실망했던 기억도 난다.
“그럼 그 때 노래방 사건은 뭐야? 그렇게 놀고 있었는데?”
“뭐‥그렇게 놀 수도 있는 거지. 그 땐 시험도 끝났었는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여자애랑 그게 무슨 짓이야. 무튼 난 싫어.”
태양이에 대한 나의 이미지의 이유를 말한다면 이런 사건들 때문 일거다.
이 노래방사건 말고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긴 하지만 말하자면 기니 생략하겠다.
“아 됐다. 네 연애사 도와주다가 내 머리가 터져서 죽겠다. 난 잠이나 잘란다.”
나와는 말이 안 통한다는 듯 책상에 팔베게를 하고 얼굴을 묻어버리는 연희를
깨워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연애사에 대해 연희와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기도 하고 서로 피곤하기도 하기 때문에 관두겠다. 하지만 지금 이 교실에서
나와 태양이의 사이를 아는 사람은 연희 말고는 없다. 그렇다고 연희를 깨우자니 아까
말했던 이유가 내 마음 한구석에 걸린다.
“연희야 일어나 선생님 오셔.”
“‥아으 좀 잘라고 했더니.”
창 밖으로 보이는 선생님의 모습에 내가 연희를 깨우자 연희는 죄 없는 나에게
신경질을 내며 일어났다. 그 몇 분 동안 얼마나 깊이 잠들어 있었는지 가만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는 군데군데 산발이 되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알 수 없는 액체까지
묻어 있었다. 거기에다가 얼굴 한 쪽 자리에는 베고 잤던 가방의 끈자국 까지 남아있었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얼떨결에 선생님께 고개를 숙이고는 멍하니 앉아있는 나다. 가만 생각해보면 1교시가
어떻게 갔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이번 교시가 마지막인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옆을 보니 연희는 나와 정반대로 이미 내 옆에 없다.
“시험 끝났는데 놀자.”
우리 반 안까지 성큼성큼 들어온 태양이를 본체만체 하며 가방을 챙기고 있었는데
다짜고짜 와서 하는 말은 나랑 놀자였다.
난 무시하기도 하고 차갑게도 말해봤지만 전생에 물귀신 이였는지 끝까지 포기 안 하는
태양이다.
“지금 시간이 몇신데. 시험 끝난 지 벌써 이주일째야. 언제까지 놀거야? 빨리 참고서
사서 공부해. 이렇게 놀 시간에 공부를 하겠어.”
“넌 매일 공부, 공부. 그러고선 나랑 놀아준 적은 고작 한 번도 없지? 너 자꾸 그러면 나 삐진다. “
“‥풉”
저 큰 키에 나름대로 애교라는 듯 아양을 떨어대는 태양이를 보고 터져 나올 뻔한
웃음을 애써 참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은 결정판으로 내 팔을 툭 치는
느낌에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웃었다. 좋아 뭐. 나랑 안 놀아줘도 오늘 성과는 이걸로 만족한다. 난 집에 가서
네가 말한 그 공부 할 테니까 집에 오는 길에 내가 보고 싶으면‥“
“아 됐고 빨리 가.”
내가 보고 싶으면 어떡하라는 태양이의 말이 듣고 싶었지만 태양이에게 점점 동요되어
가고 있는 나를 이러면 안됀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 잡았다.
그래도 태양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 거리며 미닫이 교실 문을 열었다.
“있잖아 집에 오는 길에 내가 보고 싶으면 나한테 전화해. 네가 태양에 있던
달에 있던 모터 달고 날라 갈게. 오케? “
“‥풉. 오케.”
하지만 태양이의 강력한 울트라 파워 초특급 애교에 난 넘어가고 말았고
아까보다 더 밝아질 수 없었을 것 같던 태양이의 얼굴 표정도 더 밝아졌다.
왠지 해맑은 태양이의 표정에 난 귀엽다는 느낌을 살짝 가지게 됐지만은 곧
정신차려 거리면서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
.
“몰라. 넌 허구한 날 나한테 도움요청이야?”
“그래서 내가 너한텐 허구한 날 꼼짝 못하잖아. 아잉 봄해야.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
역시 난 애교에 약하다. 수학문제를 알려 달라는 연희의 도움요청에 이번엔 꼭 차갑게
거절하려 마음 잡았건만 연희의 애교는 태양이의 애교와 맞먹을 만큼 만만치 않다.
“알았어. 자, 봐.”
결국 연희에게 내 손을 내밀었고 연희는 내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눈을 광 메가 속도로
빛을 내며 다가왔다.
“근데 봄해야. 시험 얼마 안 남았잖아. 너 이렇게 한가하게 나 알려주고 있을 때인 거
맞아? 너도 빨리 공부해. 한 자라도 더 봐. “
“얼마 안 남은 게 아니라 내일이잖아.”
“그런가? 호호 난 몰랐네.”
말 한마디 남겨놓고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는 연희를 보며 나도 연희의 말처럼 한 글자라도
더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은 왠지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싶은 게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이렇게 공부했다간 큰 일이 날지도 모른다.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는 말이 무서운
건 요즘이 처음이다.
“근데 요즘 태양이가 안 보이네. 너 포기 한 건가?”
“‥바쁜가보지.”
연희는 아무생각 없이 그냥 한 말인 것 같지만 난 왠지 가슴에 팍 꽂히는 게 어느 한 쪽
구석이 욱신욱신 하면서 아프기 시작했다.
솔직히 태양이가 요즘 들어 안 보이기 시작한 건 사실이다. 그 때 교실에서 보고
나선 내 눈에 통 띠지 않는다. 이런 태양이가 그래도 친구라고 난보고 싶은 지
태양이의 반에 가보려고도 했지만 그렇게 말하고 온 나여서 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공부도 손에 안 잡히고 시험이 끝날 그 날만 기대하고 있는 나다.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했는데 결국‥
“너 사실대로 말해봐. 태양이 좋아하지?”
“뭐?”
“너 좋아하잖아. 넌 왜 네 마음 숨기고 그래? 태양이도 너 그렇게 좋다는데. 어?”
눈이 책에 강력본드로 붙인 듯 떨어지지 않던 연희가 나를 갑자기 잡고는 물었다.
하지만 연희의 질문에 난 대답할 수 없었다.
“봐~대답 못 하는 거 보니까 맞네. 너 이번 시험 걸고 그렇게 무모한 약속 걸지 말고
태양이 마음 돌아서기 전에 당장 가서 사귀자고 그래. 너 그러다간 진짜 놓친다.
그리고 후회해. “
“내가 왜 내 마음을 숨겼을까. 이런 생각 넌 많이 하긴 하겠지만‥난 못하겠어.
못해. 절대로 난 못해. “
소설 상이라 표현은 못하겠지만 나 혼자 진지한 것 같다. 연희도 말투는 그리고
말의 내용은 나름 진지하지만 왠지 난 연희가 하는 말이 꼭 다 장난 같아서 믿고 싶지가
않다.
“그럼 넌 놓치는 거야. 윤태양 같은 킹카를 놓치는 거라고 바보야. 난 남자가 없어
옆구리가 시려 죽겠는데‥무튼 너 너 속이고 그렇게 살다간 언젠가 한번 크게
울거야. 내가 장담한다. “
연희는 마치 나에게 남자 놓쳐라, 놓쳐라 하고 저주를 거는 듯 무섭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들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무튼 난 그렇게 들렸다. 그렇지만 지금 태양이의
반에 가서 고백하기란 내 마음이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태양이가 전교 1등을 해온다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와 같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방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 어떡해 연희야. 너 그렇게 나한테 남일 같은 저주 걸면 정말 나도 서럽단 말이야.”
“저주가 아니고 남일도 아니야. 성적표만 기다려. 네가 못하겠다면 끝까지 태양이한테
빚지는 수밖에 안 그래? “
.
.
“김봄해.다음부터 잘해.”
이 내용은 그러니까 선생님이 하신 지금 말씀을 엄청난 생략과 요약을 한 거다.
전교 50등 안에도 들지 못해 아니 성적이 팍 내려가 선생님이 날 교무실로 부르셨다.
몇 십분동안 설교를 들었다. 성적표를 나눠주시자 마자 교무실로 따라오시라는
말씀에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하실 줄은 몰랐다.
태양이의 성적도 아직 보지 못했는데 이미 학교는 종례시간이 지난 지 오래다.
“어? 연희야. 너 왜 아직도 교실에 있어?”
“성적표 때문에. 지금 가야하긴 하는데‥”
“왜? 안 나왔어?”
고개를 끄덕거리는 연희가 나와 같은 처지여서 동지로 느껴졌지만 위로할 새도 없이
연희는 일어나 가방을 들고 교실문을 열었다.
“먼저 갈게 봄해야. 안녕.”
“응. 안녕.”
우리 둘 다 팔에 힘은 축 쳐져서 있었지만 난 그래도 최대한 기운을 내 연희에게
인사했다. 하지만 연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인사고 뭐고 울고 싶다는 표정으로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나가버렸다.
“성적표를 엄마한테 어떻게 말하지‥”
“자. 성적표 보세요. 마녀님.”
한 동안 내 눈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태양이가 성적표를 들고 드디어 내 눈 앞에
모습을 보여주었다.
난 안 반가운 척 안 보고 싶었던 척 애써 무 담담하게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너…이거 위조 성적표지. 그렇지.”
“넌 내가 그런 애로 밖에 안 보이냐? 그거 진짜야. 전교 석차 1등.”
지금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무 담담했던 표정이 밝아진 것뿐이다.
성적표에 쓰여 있는 전교 석차 1등 이라는 글씨가 내 눈이 들어올 뿐이다.
내 앞에서 방방 뛰며 좋아하는 태양이가 보일 뿐이다.
“태양아. 너…”
“자 내 애인씨. 이제부터 우리는 1일입니다.”
“어? 뭐…”
태양이를 따라서 나도 방방 뛰고 싶었지만 난 지금도 내 감정 숨기기에만 급급하다.
기뻐하는 모습 내비쳐주고 태양이 칭찬 같은 거 해주려고 마음 단단히 굳게 먹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오늘 우리 시험도 끝났고 그러니까 데이트 하자. 괜찮지이?”
“어? 뭐 그렇겠지.”
아직까지 멍하니 성적표만 꾸깃꾸깃 거리고 있는 날 잡아끌고 교실을 나가는 태양이의
모습이 마냥 좋기만 한 난데 마냥 기쁘기만 한데 왜 난 내색을 못하는 거지?
왜 내 감정 숨기기에만 급한 거야?
“왜 그래?”
태양이의 손을 잡고 학교 정문을 나가고 있는 사이 난 내 젖 먹던 힘까지 모두 꺼내서
내 발걸음을 잡고 말았다.
“어…태양아. 있잖아. 음…”
“뭔데?”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아무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내가 태양이는 답답해 보였는지
대답을 재촉하고만 있다. 하지만 역시 어려운 건 마찬가지 인 것 같다.
“네가 좋아. 네가 안 보였던 그 날만큼 난 진짜로 정말 진짜로 너 보고 싶었고 너 기다렸고
또 지금 네가 이렇게 내가 했던 약속을 지켜준 것도 고마워. 사실 너랑 가까웠지만 떨어져
있었던 그 시간동안만큼 네 소중함 같은 거 알게 된 거 같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응. 네가 하고 싶었던 말은?”
“널 좋아하게 됐어. 이젠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거 같아.”
선뜻 눈을 감고 소리쳤다. 이런 낯간지러운 말은 태양이의 얼굴을 보고 차마 말 할수
없어서 눈을 감아버렸다. 안 봐도 뻔한 드라마처럼 내 얼굴은 새빨게져 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눈 뜰 수가 없다.
“눈 떠봐. 그리고 다시 한 번만 말해봐.”
“…널 좋아하게 됐어.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으억”
다행히 키 차이는 조금 밖에 나지 않아서 안기기가 무척이나 편했다.
.
.
“정말이야? 너 잘못들은 거 아니야?”
“지금 교무실 가봐 아마 혼나고 있을 걸?”
연희의 말을 듣자마자 난 교실문을 열고 교무실로 내 최대속력을 이용해 달렸다.
교무실이 맨 아래층에 있고 교실이 맨 위층에 있어서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태양이가 컨닝 페이퍼를 돌렸다는 소문에 난 어쩔 수 없이 뛸 수 밖 에 없었다.
“…”
너무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태양이가 혼나고 있는 걸 본 내 눈이 잘못됐다고
믿고 싶지만 한번 두 번 다시 봐도 태양이는 교무실 안에 있고 또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태양아.”
태양이를 불렀다. 하지만 대답이 없다. 태양아태양아 하고 다시 불러도 오직 고개만 푹
숙이고 있을 뿐 아무런 변화가 없다.
“태양아. 괜찮아. 네가 나한테 왜 미안해. 미안해야하는 건 나야. 연희 말처럼 너한테 너무
차갑게 대한 것도 그런 약속 한 것도 애초부터 내가 잘못한 거지. 지금 이런 일도 내가
다 주최한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어? 이미 다 종례했으니까 나한테 얘기 좀 해봐.
고개 좀 들어보라구.“
첫댓글 잘쓰셨어요 ㅋㅋㅋㅋㅋㅋ!!
호호호 아 정말 감사드려요 저 이런 말 돼게 좋아한답니다♡
아니예요.너무잘쓰시는데요.뭘.잘읽고가요.그후이야기부탁드려도되요?
그럼요 호호호 그 후 이야기 슬퍼질때님 한명을 위해서라도 써드리겠습니다아♡
이 단편을 쓸때 무척이나 힘드셨겠어요.묘사도 잘하셨고. 내용도 재밌네요. 잘보고 가요
호호호 음 준수어머님 안녕하세요 호호호호 저 동방신기 팬인데 호호호 사인 받아 주세요~
재미있고 나름대로 걔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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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니맘이 편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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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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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소설을 읽으시니 마음이 편하세요 호호호호 뭐 마음 편하면 저야 좋죠 호호호호
태양이....마음에 들어요~~!!ㅋㅋㅋ잘쓰셨어요!!!~~~
호호호 전 태양이 같이 애교있고 붙임성 좋은 남자 좋아한답니다아♡ 저랑 취향이 같으시네용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