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3.1절이었던 지난 금요일을 피정 때문에 거르고 2주만에 방문해보니 환자의 좌측 폐에 물이 차서 촬영을 위해 아침 일찍 방사선과로 내려가셨단다. 1층 방사선진단촬영실 앞에서 기다리다 초췌하고 기진맥진한 채 이동침대에 실려 나온 환자를 6층 병실까지 안내한 후 병상에 옮겨드렸다. 그 와중에도 힘없는 미소로 반겨주는 환자의 마음이 고마왔다. 방사선과에서 병실까지 동행한 담당의사와 간호사의 대화 도중 환자에게 당장 필요한 Bile Bag을 보호자가 사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즉시 구입하여 간호사실에 맡겼다. 폐에 차있는 물을 빼내기 위한 Bag이었다. 한번에 400ml씩 빼낸 벌건 물을 5번이나 갈아드리고 나서야 이제 개운하다고 했다. 한쪽이 개운해지자 이번에는 반대쪽이 비슷한 통증을 느낀다며 마저 손봐달라고 보챘다. 오후에 다시 촬영을 해보고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나가자고 환자를 달래는 의사의 침착한 친절이 마음에 들었다. 어느 정도 환자의 욕구가 받아들여지고 나니 환자가 마음의 평정을 찾는 듯 했다. 이리저리 심부름과 돌봄을 해준 데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하며 내 손을 잡았다.
어제 밤에는 폐에 물이 차있어 너무 고통스러웠고 밤새 한숨도 못 잤노라며 우측 폐에서 새로 시작된 통증을 경계했다. 식욕을 달래기 위해 꽂았던 콧 줄도 너무 고통스러워 스스로 빼냈는데 한번 음식을 제대로 먹어보고 죽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더 가느다란 콧 줄을 끼워봐야겠단다. 조금이라도 목으로 음식을 넘기면 토하기에 먹자마자 음식을 콧 줄을 통해 도로 빼내지만 아쉬운 대로 식욕을 달랠 수 있기에 크게 미련을 두고 있었다. 오늘은 각진 얼음 몇 개를 깨물어 먹는 것으로 식욕을 달랬다. 대변 본지가 일주일도 넘었다고 해서 간호사실에 관장을 부탁했다.
대화도중 환자에게 거의 유일한 도움을 주고 있는 이복형님이 일건 서류를 들고 왔다. 지난번 사회사업팀에 건의했던 경제적 도움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하는 서류들이었다. 오전 중에 있었던 일들을 이복형에게 자세히 전하고 향후의 일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자신도 경제적으로 넉넉치 못한 편이고 동생은 더욱 무력한 형편이라 난감하기 그지없었는데 이런 관심과 배려가 심적으로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사의를 표했다. 환자도 함께 고마워하며 나도 이렇게 더불어 살아왔어야 했는데 헛살았다고 회심을 드러냈다. 방문시 들고 갔던 나음터 1월호와 평화신문을 드리고 영과 육의 건강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세속적인 이해가 개입되지 않은 무조건적인 인간애와 신뢰가 이루어진 바탕 위에서 반영적 경청과 요약된 질문을 통해 그분들의 본래 심성에 투영된 내면의 세계와 교감했다. '몸의 질병과 치료, 혼의 질병과 치료에 대한 대화를 통해 참사랑과 참평화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사랑을 하느님으로부터 받고 있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참사랑과 참평화를 누리는 것' 이라고 공감했다.
이때다 싶어 자원봉사자실로 내려와 하느님, 하느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음미할 수 있는 시 한편을 가져다 드렸다. 칼라로 프린트된 싯귀를 소중하게 따라가는 환자의 젖은 시선을 통해 환자의 선한 마음에 물든 하느님의 사랑이 느껴졌다. 이런 때를 위해 종종 시와 그림을 준비하고 코팅까지 해두곤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12시 30분. 병실 방문을 마치는 인사를 드리니 환자가 두 손을 잡으며 "많이 보고싶어질 거예요.." 라고 받으시기에 "언제든지 전화하세요. 가능하면 밤중이라도 올께요." 라고 말씀드리며 전화번호를 적어드리고 물러났다.
오후 방문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팀 모임에서 신체적 돌봄과 사회적 돌봄에 관한 여러가지 측면이 고려되고 계획되었다. 다시 병실에 들려 관장을 도와드리고 화장실에서 구토까지 겪는 환자를 돌보고 환의도 갈아 입혀드린 후 병실로 돌아왔다. 고맙다는 환자의 말도 그렇지만 마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어느새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하나되어 있음이 느껴졌다.
하느님, 그분의 사랑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