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례식
조창규
기도를 멈추는 날이 장례일이 될 겁니다 영혼이 아름다워질수록 내 육체는 야위어갑니다 며칠 째 나는 혼수상태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내리는 눈송이가 내가 처음 맛본 이유식이라면 배고픈 새들을 위해 눈밭에 모이를 뿌리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죠 이삼월이면 아직 땅속도 얼어있을 텐데 당신에게 쓴 시들이 꽃샘추위에 떨어질까 봐 새벽마다 당신을 위해 무릎으로 씨를 뿌렸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사귄지 백팔십이일 되는 날입니다 성지순례는 결코 억누를 수 없는 사랑의 의무인데, 내가 죽으면 시든 꽃을 들고 조문 와 주세요 당신이 나의 뺨을 어루만질 때 신기하게도 내 눈물은 광합성으로 시듭니다 무릎이 닳고, 당신 미간의 주름도 먹구름처럼 깊어지네요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무척 힘이 들 때면 기도를 했습니다 몸이 아픈 바람이 비구름을 운구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감각하는 일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잠든 나에게 당신이 입맞춤하는 것, 꽃차를 빗물에 우려 마시는 일, 내 건강한 폐와 간을 이식해 살아갈 누군가의 새로운 삶. 나의 심전도 그래프가 더 이상 뛰지 않고 멈춰 섭니다 빈소에 교인들이 찾아와 찬송을 부릅니다 화목장(花木葬)으로 나의 장례를 치러주세요 내가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당신이 언젠가 청첩장을 돌릴 때, 이곳에서 축시를 써 전서구로 보낼게요 짧게 살다간 내 인생에 그래도 당신이 곁에 있어 눈부시게 환했지요 영정사진 속 나는 활짝 웃고 있습니다
조창규시인 프로필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2015 동아일보 신춘문예 '쌈' 으로 시 당선.
시논문집 '한국현대시의 공간연구 2'공동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