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가족
내설악 백담계곡엔 12선녀탕이 있다. 탕수동계곡이라고도하는 선녀탕계곡 열두 개 물웅덩이에는 밤마다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단다. 얘기로만 들어도 신비롭고 마음 설레는 선녀탕에는 독탕, 무지개탕, 복숭아탕 등등 이름이 붙어 있단다. 선녀가 목욕하면 선녀탕이고 오리가 목욕하면 오리탕이다. 내설악 선녀탕에 견줄 수 있겠냐마는 나는 아침저녁 오리탕을 엿보는 즐거움을 누린다.
앞 문단은 내가 연전 ‘오리탕’이라는 제목으로 문학 동인 카페에 올린 글의 마지막 단락이다. 내가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창원 천변을 걸어 다닌다. 그해 가을 생태하천으로 복원되던 창원천 물웅덩이에 날아든 흰뺨검둥오리를 소개했다. 그랬더니 원로회원 한 분께 어렵게 인터넷에 접속해 댓글을 달아 놓기를 맛있는 오리탕을 소개한 줄 알고 들어와 허탕치고 나간다고 했던 기억이 새롭다.
환경수도 창원을 대표하는 생태환경이 주남저수지다. 도심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광활한 면적의 저수지다. 대산 들녘 농업용수 공급이 주된 용도이긴 하나 홍수 시 미쳐 강물로 빠지지 못한 내수를 저장해 농경지 침수를 막는 기능은 더 크다. 여름과 겨울이면 여러 철새들이 깃드는 주남저수지 주변에는 ‘주남오리알’ 비롯한 오리 구이와 탕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다들 알다시피 주남저수지엔 철따라 각종 철새들이 찾아온다. 주남저수지에 베이스캠프를 친 철새들은 인근 들녘이나 샛강으로 파견을 나간다. 그때는 여러 무리들이 흩어져 작은 조로 분산된다. 내가 아침저녁 출퇴근길 걷는 창원천변에도 왜가리와 백로와 흰뺨검둥오리들이 서식한다. 그 가운데 텃새가 된 흰뺨검둥오리는 초여름 하천 풀숲에 둥지를 틀어 새끼를 부화시켜 식구를 불렸다.
내가 지난해 관찰한 바로는 흰뺨검둥오리는 늦은 봄에 새끼를 한 차례 까고, 장마가 오기 전 한 차례 더 새끼를 깠다. 당국에서 지난봄 하천에 수북하던 검불을 제거했다. 안타깝게도 그때 흰뺨검둥오리가 품던 알이 수난을 당했지 싶었다. 언제부터인가 창원천변 물웅덩이엔 흰뺨검둥오리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유유히 헤엄쳐 다니고 있다. 짝짓기를 끝내고 유정란을 낳았을 것이다.
말끔하게 정비된 하천은 부들과 물억새를 비롯한 풀들이 다시 무성해졌다. 그곳 어딘가에 흰뺨검둥오리는 둥지를 틀어 알을 낳아 보태었을 것이다. 작년에는 흰뺨검둥오리가 새끼를 여덟 마리를 까 데리고 나왔다. 창원천변 오가는 산책객들이 물웅덩이 흰뺨검둥오리를 보고 스치지만 녀석들이 비밀스런 둥지에서 새끼를 까고 있는 줄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한동안 녀석들이 보이질 않았다.
유월 둘째 주 금요일 퇴근길이었다. 창원천변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물웅덩이에서 반가운 녀석들을 만났다. 어미오리가 이제 갓 알에서 깨어난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끼오리를 데리고 나와 헤엄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폰 카메라로 피사체를 겨냥해 꼭지를 눌렀다. 어미오리는 경계심을 느끼고 새끼오리를 거느리고 유유히 물살 따라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갔다.
어미닭이 달걀을 21일 동안 품으면 병아리가 된다. 오리새끼는 병아리보다 기간이 조금 더 길다. 오리알에서 오리새끼가 되려면 어미오리가 26일을 품고 있어야 한다.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한동안 보이질 않던 한 쌍의 흰뺨검둥오리는 그동안 하천바닥 풀숲에다 둥지를 틀어 새끼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하천바닥에는 들고양이가 지나고 뱀도 있었을 터인데 용케도 새끼 부화에 성공했다.
주말 이틀을 보내고 새롭게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다. 나는 주말 내내 그 흰뺨검둥오리 가족들이 잘 지내고 있을까가 궁금하다. 그렇다고 너무 일찍 출근하면 오리가족이 아직 둥지에서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어미오리는 헤엄치는 법을 가르친데 이어 먹이 찾는 법도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장마가 와 개울물이 불어나기 전 자립할 수 있길 바란다. 새끼오리는 모두 여덟 마리다. 15.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