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엉의 시간
김분홍
바닥의 깊이를 재는 줄자는 뱀을 닮았어
곧추서지 못하고
똬리를 틀었다고 속까지 음흉하진 않겠지
분노를 삭히다 보면 생활도 꼬이고 마음도 꼬이게 되지
언젠가는 비비 꼬인 생이 풀리는 날이 오겠지
악착스럽게 바닥을 후벼 팠어
파고들수록 단단해지는 깊은 어둠에 뿌리를 박았지
사각으로 펼쳐놓은 악몽에
소시지와 단무지, 채 썬 보름달과 졸인 어둠을 넣고 말았지
당신이 터지지 않게
휘어지지 않는 당신의 성격
누구 말도 듣지 않아
채울 줄만 알았지 비울 줄 모르는 누적의 식습관
관장을 해야 항문이 열렸어
방안 가득 산수유를 피워 내던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별이 안 되는 뿌리식물
지팡이가 당신의 발자국을 놓아주었는지
당신이 지팡이의 발자국을 놓아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악몽을 지우는 중일까, 기척이 없어
기우는 수직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폐가의 시간
이미 뒤끝이 만삭이야
—계간 《열린시학》 202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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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분홍 / 1963년 충남 천안 출생. 2015년〈국제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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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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