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거는 단거DANGER하다
곽 흥 렬
또다시 대형 금융사기 사건이 터졌다는 소식이 전파를 탔다. 높은 이자를 준다는 달콤한 말에 현혹되어 한푼 두푼 모아 둔 알토란 같은 돈을 갖다 맡겼던 투자자들의 절규가 TV 화면을 달구고 있다. 가슴을 치며 울분을 토해내는 그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연민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고수익을 미끼로 던진 사기꾼의 낚싯줄에 눈먼 물욕이 여지없이 걸려든 결과이다. 덥석 미끼를 무는 순간 불행으로의 귀결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나 마찬가지다. 누구를 원망하랴, 늘 그놈의 허황한 탐욕심이 원수인 것을. 물론 사건의 일차적인 문제야 당연히 사기꾼에게 있을 터이지만, 기실 따지고 들자면 그들의 마수魔手에 걸려든 피해자들의 잘못도 전혀 물을 수 없는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별의별 사기 사건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꼬리를 문다. 그 근본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내 짧은 소견으로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으로부터 말미암는다고 생각한다. 사기꾼들은 그러한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먹는 데 있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족속이다.
항용 사탕발림에 쉽사리 속아 넘어가는 헛똑똑이가 인간이라는 존재 아니던가. 눈 뜨고도 코 베어 간다는 속담이 생겨난 걸 보면, 번연히 알면서도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그 유혹에 말려들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처음부터 사기를 당할지 모른다고 못 미더워 경계의 울타리부터 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마치 마취제에 취한 듯 몽롱한 상태에서, 의식은 하면서도 마음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나중에 일이 잘못 꼬였음을 깨닫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기차 떠나간 뒤이다. 내가 왜 그랬던가, 하고 쓰린 후회의 감정을 쏟아내지만 엎질러진 물인 것을 어쩌랴.
달콤한 말은 독성이 너무 강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고 한다. 그러기에 옛 경전에서도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리나 몸가짐에는 이롭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보다.
시쳇말로 “단거는 단거DANGER(위험)하다”라는 언어유희가 있다. 물론 호사가들이 꾸며낸 우스갯소리일 터이다. 하지만 비록 우스개일망정 그 속에는 우리가 절대 간과해서는 아니 될 금과옥조의 인생철학이 담겼다. 단것의 입말인 ‘단거’와 영어 단어 DANGER의 우리말식 발음인 ‘단거’가 공교롭게도 일치를 보인다. 이를테면 ‘단거=DANGER’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셈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두 낱말의 발음을 억지로 갖다 붙여서 되지도 않을 논리를 펼치고 있다며 못마땅하게 여기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DANGER의 정식 영어 발음이야 당연히 ‘데인저’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정말’ 혹은 ‘진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영어 형용사 REAL을 두고서 ‘리얼’로 읽지 않고 입버릇처럼 ‘레알’ ‘레알’ 하는 걸 보면, DANGER를 ‘단거’로 발음하여 우리말 단것의 입말인 ‘단거’와 등식 관계를 만든다고 해서 무작정 억지라고만 몰아세울 일도 아니지 않은가. 이러한 논리로 따졌을 때, 두 낱말이 지닌 발음상의 동일성을 갖고서 의미상의 인과성으로 연결시킨 발상이 참 놀랍고 기발하다 싶다.
어쨌든 단것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하나의 절대 진리인지도 모르겠다. 달달한 설탕이 우리의 육신을 망가뜨리듯 달콤한 말은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만든다. 사탕발림의 유혹에 넘어가 집안이 풍비박산되는 일이 세상사에서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가. 우리네 삶에서의 대다수 불행의 씨앗은 어쩌면 이 때문에 연유한다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 게다. 사랑의 밀어에 속아서 몸을 망치고 인생이 뒤틀려 버리는 일도, 결국 단것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여 생기는 비극 아닐까.
개미가 꿀을 먹으러 꿀단지 안으로 들어갔다가 도리어 거기에 빠져 죽는 상황을 이따금 목격하게 된다. 달콤한 것에는 이처럼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개미는 미련하게도 꿀의 달콤함만 알았지, 그 안의 허방다리를 헤아리지 못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인들 개미의 행태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함정의 늪이다. 이 늪은 늘 위장막으로 가리어져 있어 겉으론 아름답고 평온하게만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삶의 도정에서 언제 어느 때 그 허방다리를 만나 곤경에 처하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기에 항시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아예 처음부터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분에 넘치는 욕심 자체를 버릴 일이다. 단거는 단거DANGER한 것이기에.
첫댓글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는 좋은 글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종강할 때 담임선생님(김규열 영어선생님)께서 남겨 주신 말씀이 "위방불입"이라는 네 글자였습니다. 당시에야 필자도 어렸으니 단지 위험한 곳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정도로만 이해 했습니다만 나중에 이 말이 공자님께서 남기신 어록인 《논어(論語)》의 '태백(泰伯)' 편에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글도 한편 쓴 바가 있습니다. 그래도 젊을 때 주식 투자해서 한방에 깡통 찬 적도 있으니 배운데로 살지는 못했습니다.^^
篤信好學, 守死善道(독신호학 수사선도: 도를 독실히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죽음으로써 지켜 도를 잘 행해야 한다.)
危邦不入, 亂邦不居 (위방불입 난방불거: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서는 살지 않는다.)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천하유도즉현 무도즉은: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세상에 나와 벼슬하고, 도가 없으면 숨어야 한다.
그 후 30대 쯤에 선생님을 시내 버스 안에서 뵛는데 위방불입이야기를 했더니 반갑게 맞아 주시며 들려주신 말씀이 自强不息이라는 네 글자였습니다. 위방불입하고 자강불식하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을 따라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정 선생님께서는 관세사임에도 우리같이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보다 더 한학에 대한 조예가 깊은 걸 보면 다방면에 참 박학다식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절대진리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함에도, 사람들은 항용 그 공짜를 좋아하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우리는 주위에서 비일비재하게 보지 않습니까. 그런 세상사의 이치를 이 글에 한번 담아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