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자료[1373]백거이(白居易)시 問劉十九(문유십구)
문유십구問劉十九
유형에게 알리다
백거이白居易(당唐772-846)
녹의신배주綠蟻新醅酒
새로 담근 술은 익어 보글거리고
홍니소화로紅泥小火爐
작은 화로는 빨갛게 이글거리오
만래천욕설晩來天欲雪
해질녘 눈이 올 것 같으니
능음일배무能飮一杯無
술 한 잔 하지 않을 수 있겠소?
이 시에서 말하는 녹의(綠蟻)는
술 빚을 때 생기는 구더기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막걸리에 뜬 밥알을 의미함
술이 아닌, 友情을 마시고 싶은 날에
술고픈 세상이다.
흔히 술 태백이라고 불렸던 이태백은
三盃通大道 一斗合自然
(삼배통대도 일두합자연)이라 노래했다.
즉, 술 석 잔이면 도와 통하고
술 한 말이면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늘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시를 음미하는 것도
운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읊어본다.
그 순간은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우정을 마시는 것일 테니까.
아, 정말 절창(絶唱)이아닐 수 없다!
問劉十九(문류십구)
白居易(백거이)
綠蟻新醅酒(녹의신배주),
紅泥小火爐(홍니소화로).
晩來天欲雪(만래천욕설),
能飮一杯無(능음일배무)?
유형 한 잔 하세
동동주 부글부글 괴어오르고,
화로에 숯불이 벌겋다.
저물녘, 눈이 올 것 같은데,
한 잔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劉十九 : 유씨 성을 가진 일가 형제 항렬에서 열아홉번째인 사람.
제목은 '유형을 청하며' 정도로 풀이하면 족함.
綠蟻=綠螘 : 술독 표면에 부글거리며 뜨는 녹색 포말(泡沫). 그런 술.
술항아리에서 술이 익어 표면으로 부글부글 괴어오르는 모양이
마치 푸른 개미가 움직이는 것 같다 해서 이렇게 묘사.
綠蟻酒 : 표면에 녹색 포말이 뜨는 술로, 맛있는 술을 가리킨다.
新醅 : 새로 빚은 술。醅 거르지 않은 술 배
백거이白居易(당唐772-846) 자字는 낙천樂天
호號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
<장한가長恨歌>로 명성을 떨치고 구강九江 사마司馬로 좌천되어
<비파행琵琶行>을 지었습니다.
생전에 그의 시는 소 치는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골목 벽에 써 붙여질 정도로 민중 속에 파고들어
우리나라에도 신라시대에 이미 애송되었다고 합니다.
이하자료- 동아일보입력 2021-12-17 03:00
술 초대[이준식의 한시 한 수]〈139〉
‘류십구에게 묻는다(문류십구·問劉十九)’
백거이(白居易·772∼846)
綠蟻新배酒,
紅泥小火爐.
晩來天欲雪,
能飮一杯無.
푸르스름한 거품 이는 갓 빚은 술,
불꽃 벌겋게 핀 자그마한 질화로.
저녁 되자 하늘은 눈이라도 내릴 듯,
술이나 한잔 같이할 수 있을는지?
벌겋게 숯불이 타는 질화로 곁에서 보글보글 술 익는 소리를 들으며 한껏 들떴을 시인.
보나마나 술독 안에선 푸르스름한 밥알들이 개미 떼처럼 동동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새로 익은 술을 핑계 삼아 친구를 맞을 기대에, 눈이 내릴 듯 우중충한 저문 하늘조차
그저 정겹게만 느껴졌을 테다. 보글거리는 동동주의 숨소리조차 귀에 쏙쏙 담기는
이 호젓한 밤을 친구와 함께한다면 그 술맛이, 그 도타운 우정이 오죽이나 각별하랴.
스무 자짜리 초대장에 시인의 부푼 기대가 남실댄다. ‘술이나 한잔 같이할 수 있을는지’라며
조심스레 건네는 말 속에, 급작스러운 초대를 저어하는 시인의 세심한 배려가 숨겨져 있는 듯도 싶다.
친구는 이 제안을 달콤한 권주가로 받아들여 한달음에 달려오지 않았을까.
‘함께 동동주 비울 사람이 없어, 저녁 까마귀 울 때까지 기다리네’라 했던
두보의 씁쓸한 시구를 애써 떠올릴 겨를도 없이 말이다.
류십구(劉十九)는 백거이가 남쪽 강주(江州)로 좌천되었을 때 자주 어울렸던
초야의 선비로, 백거이가 다른 시에서 ‘바둑 두고 술내기 하느라 날 새는 줄 몰랐다’고
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류십구는 류씨 집안의 열아홉째 자손이라는 뜻.
과거 대가족이 한 울타리 안에 살 때, 친동기건 사촌이건 상관없이 출생순으로
번호를 붙여 이름 대신 부르기도 했다. 다만 순번을 매길 때 남녀는 구분했다.
시인 원진(元유)을 원구, 류우석(劉禹錫)을 류이십팔이라고도 부르듯
이런 호칭은 꽤 흔하게 쓰였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