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넷째 주 그룹큐티나눔
가장 큰 계명, 가장 높은 그리스도
마태복음 22:34-46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샤론의 꽃 예수(찬송 89장, 구 89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책이나 편지를 읽을 때 글쓴이의 의도를 읽어내지 못하면, 표면적인 내용에 매여 잘못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도 말씀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아야 말씀을 바르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말씀에 담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의도를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예수님이 가장 큰 계명에 대해 교훈하십니다(34-40절).
1)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던진 질문은 무엇입니까(36절)?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앞서 예수님은 부활에 관한 질문으로 논쟁을 시도했던 사두개인을 꼼짝 못 하게 하셨다(23-34절). 이는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에게는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예수님은 여전히 경계의 대상이었기에, 이번에는 그들 중 하나가 예수님의 신학적 노선을 확인하는 질문을 던진다. 율법을 중시하는 바리새인답게 율법의 해석에 관한 질문이었다. 율법의 조항을 세세히 분류하여 경중을 나누는 일은 율법 준수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바리새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2) 예수님이 답하신 가장 크고 우선적인 두 계명은 무엇입니까(37-39절)?
① 첫째 계명(37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② 둘째 계명(39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은 첫 계명에 이어 “둘째도 그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 두 계명이 따로 뗄 수 없는 성질을 가졌음을 교훈하셨다. 하나님 사랑이 사랑의 뿌리라고 한다면 이웃 사랑은 사랑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없는 이웃 사랑은 그 자체가 참 사랑일 수 없고(요일 4:15-19),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다(요일 4:20).
3) 예수님은 이 두 계명에 대해 무엇이라고 덧붙이셨습니까(40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이 주신 모든 율법의 요약은 바로 십계명이다. 십계명의 1-4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5-10계명은 사람에 대한 계명이다. 예수님은 이를 다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규례, 이웃에 대한 규례의 핵심을 사랑이라고 요약하심으로 율법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하셨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그러했듯, 율법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자기 의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는 모습, 율법으로 누군가를 정죄하는 일에 발 빠른 태도는 율법의 본의를 크게 왜곡하는 행위다.
나눔 1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하고, 이웃 사랑은 하나님 사랑에 근거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이 없는 하나님 사랑’과 ‘하나님 사랑이 결여된 이웃 사랑’이 빚어낸 현상은 무엇인지, 그것이 온전한 사랑이 되려면 어떻게 보완되어야 하는지 이야기해봅시다.
나눔 2 성경의 모든 율법과 계명은 ‘사랑의 빛’ 아래 해석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랑을 읽어내지 못하면 말씀이 도리어 미움, 독선, 배척,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례를 알고 있다면 이야기해봅시다.
2.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해 교훈하십니다(41-46절).
1)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은 뭐라고 대답합니까(42절)?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했다.
율법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된다면 그 사랑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시다(요일 4:9-10).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시다(마 5:17).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자부하듯 율법에 통달한 자들이었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분명히 알아보았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예수님은 율법과 메시아에 대해 무지한 그들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질문을 하셨다.
2) 성령에 감동된 다윗은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칭했습니까(43, 44절)?
그리스도를 주라고 칭했다.
예수님이 인용한 다윗의 시는 시편 110편이다. 거기서 다윗은 자신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주’라고 칭했다.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가 어떻게 다윗의 ‘주’가 될 수 있는가? 일찍이 하나님은 다윗에게 영원한 왕국을 약속하셨다(삼하 7:16). 이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는 메시아가 다스릴 영원한 나라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영원한 존재, 즉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이 약속의 의미를 알았기에 자신의 후손으로 오는 메시아에게 주님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3) ‘다윗이 주라고 칭한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46절)?
한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날부터 감히 예수님께 묻는 자도 없었다.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은 구약을 믿는 유대인의 상식이었다. 예수님이 인용한 시편 110편 또한 유대인들이 메시아 예언으로 확실히 인정하는 본문이었다. 다윗이 자신의 후손인 메시아를 ‘주’라고 칭했다는 사실은, 다윗이 메시아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오직 정치적 메시아로 오는 인간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너무나도 자명한 하나님의 말씀조차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나눔 3 예수님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다윗의 ‘주’, 곧 온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나와 우리만의 구주로 제한할 때와 온 세상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우리 신앙의 양태가 어떻게 달라질지 이야기해봅시다.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공동체 _ 온 세상의 주님을 모신 공동체답게 너른 마음으로 세상을 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