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류형 휴양지 조성 실패…대통령 테마공원·불교문화촌도 무산
2019년 가을꽃축제로 활력…지자체·주민 힘 모아 지방정원 도전
가을꽃으로 물든 인제 용대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43만7천㎡(13만2천424평) 터에 호텔, 콘도, 음식점, 특산품 판매점, 운동시설, 오락시설까지. 내설악을 품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단지 보고 지나가는 관광지구가 아닌 머물면서 즐기는 문화휴식 공간 조성을 꿈꿨던 1998년 관광지구 계획은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하지만 관광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한바탕 봄 꿈처럼 덧없이 빈터로 방치돼있던 공간에는 이제 가을이면 형형색색의 국화와 야생화들로 넘실거린다. 꽃길에서 희망을 본 지자체와 주민들은 이제 '가을 한철 꽃밭'이 아닌 '사시사철 꽃밭'을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바로 인제군 '용대 관광지'가 지난 25년의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지방정원으로 도약을 꾀한다.
◇ 이름뿐인 '관광지' 간판…인제군의 25년 아픈 손가락
처음 계획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백담사와 십이선녀탕, 국내 최대 규모의 황태덕장 등 연계할 관광지도 충분했다. 동해안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관광객들을 붙잡을 수만 있다면 지역경제도 활기를 띨 게 분명했다. 인제군은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설악산 관문에 용대 관광지를 조성해 기존 관광지와는 차별화된 문화관광 단지로 발전시키고자 1998년부터 관광지 조성에 매달렸다.
인제 용대 관광지 모습 [인제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당시 한국토지공사(현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 숙박시설, 상가시설, 종합 오락시설 용지를 분양했다. 2002년 9월 십이선녀탕 입구 일대에 관광지 기반 공사를 마치고 2003년 7월 분양을 마쳤다. 그러나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건물 단 한 채도 올라가지 않았다.
인제군은 분양 당시 '계약자들은 계약일로부터 2년 안에 시설물을 건축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으나 경관계획 용역이 늦어지는 등 분양 후 2년 넘게 건물 신축이 지연되면서 조건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 게다가 경기 불황 장기화로 인해 계약자들이 호텔과 콘도 등의 신축을 미루면서 관광지 터에는 잡초들만 무성했다. 수년간 빈터로 방치되자 다른 사업으로 선회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울긋불긋' 오색 옷 갈아입은 44번 국도 인제∼양양 한계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첫 시도는 2004년 '인제와 인연이 있는 대통령 테마공원' 조성 추진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 등 정치색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인제와의 인연을 매개로 특화된 관광상품을 만들어 학생과 가족 단위 관광객의 체험형 관광지로 가꾸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05년 12월에는 '인제군 대통령 테마공원 건립 추진위원회 구성 및 운영조례'를 만들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인터뷰와 영상물을 촬영한 것을 비롯해 주민 등으로부터 사진 등의 각종 자료를 기증받으며 가시화하는듯했다. 하지만 국비와 도비 등 사업비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발목이 잡혀 2008년 결국 백지화됐다.
두 번째로 2009년 추진했던 네팔 불교문화촌 조성 역시 투자 협약식까지 가졌으나 사업 타당성 미확보 등에 가로막혀 결국 결실을 보지 못했다. 전흥수(68) 용대1리 이장은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다. 사업들이 줄줄이 다 물 건너가니 언제부턴가 누가 와서 뭘 하겠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이 듣지를 않았다. 더는 흐지부지 없어지는 게 아니고 되든 안 되든 뭐든 간에 시작이라도 제대로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제 가을꽃 축제 준비 한창 [연합뉴스 자료사진]
◇ 꽃길로 거듭난 관광지…사시사철 꽃향기 가득한 지방정원 도전
용대 관광지에 가을꽃이 핀 건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9년이다. 그사이 2017년 6월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44번 국도를 이용하는 차량이 급감, 국도변을 따라 늘어선 식당과 주유소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변화가 절실했다. 인제군은 '내설악을 품은 인제가을꽃축제'라는 간판을 내걸고 2019년 10월 관광지를 꽃향기로 물들였다.
한때 호텔과 콘도를 세우려 했던 13만2천㎡ 자리에는 형형색색의 국화 2만주와 야생화 30만주가 어우러진 꽃길이 됐다. 꽃 심기에 관심이 많은 용대 1·2리 주민들과의 합작품이었다. 설문조사 결과 방문객 81%가 '순수 축제 참여를 위해 축제장을 찾았다'고 답했고, 방문객 1인당 평균 4만2천639원을 썼으며, 69%가 인제에서 숙박한 것으로 나타나 체류형 관광 개발에 청신호를 밝혔다.
인제 가을꽃축제 찾은 관광객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움츠렸던 축제는 2022년 '인제에서 꽃길만 걷자'를 주제로 다시금 열렸고, 15만명이 넘게 찾으며 60억원의 경제 유발 효과를 거뒀다. 축제장을 무료로 개방해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았고, 축제를 통한 수익은 인근 상인은 물론 주민에게도 돌아갔다.
꽃밭 꾸미기에 들어간 국화 2만1천 주 가운데 3분의 1인 7천 주를 지역 농가에서 조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여년 만에 용대 관광지는 방문객에는 휴식을, 지역주민에게는 소득 창출을 선물하는 효자가 됐다. '꽃밭의 경제학'을 실감한 인제군은 가을 한철 축제에서 나아가 사시사철 꽃이 피고 지는 지방정원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군은 지난해 말 지방정원 기본계획 및 타당성 조사를 마치고, 강원특별자치도의 지방정원 공모사업을 신청했다. 군은 공모사업을 통해 도비를 따내고, 특수상황지역 개발 사업 예산으로 국비를 확보해 군비까지 총 195억원을 들여 지방정원을 만들 계획이다.
인제 가을꽃축제 찾은 관광객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가을꽃 축제장을 중심으로 정원을 만들고, 꽃이 지는 겨울철에 활용할 수 있는 온실 조성에 더해 각종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 진행이 가능한 정원지원센터까지 지을 계획을 세웠다. 용대 1·2리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연 결과 꽃 심기에 진심인 주민들의 호응도 좋았다.
집마다 마당은 물론 농사를 짓지 않는 땅에도 모두 꽃을 심어 그야말로 꽃동네가 될 마을, 마을과 차량으로 불과 3분 거리에 2027년 들어서는 백담역까지 하나의 권역으로 묶는다면 관광 콘텐츠는 더 풍부해진다.
인제군 관계자는 "지금은 매년 가을꽃 축제장을 갈아엎고 새로 조성한다. 그 비용만 7억∼10억원"이라며 "하지만 지방정원을 조성하면 지금처럼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축제가 가능하다. 마을주민들이 자기만의 정원을 가꿀 수 있도록 조례를 만들고 교육도 해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