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도(尋牛圖)의 의미
십우도라고도 하며, 심우도는 본래 도교의 팔우도(八牛圖)에서 유래된 것으로 12세기 중엽 중국 송나라 때 곽암선사(廓庵禪師)가 두장면을 더 추가하여 십우도(十牛圖)를 그렸다고 합니다.
십우도는 마음의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어린 동자가 소(마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열 가지 그림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① 심우(尋牛)
동자가 소를 찾고 있는 장면이다. 자신의 본성을 잊고 찾아 헤매는 것 은 불도 수행의 입문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② 견적(見跡)
동자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간다. 수행자는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본성의 발자취를 느끼기 시작한다는 뜻이다고 합니다. .
③ 견우(見牛)
동자가 소의 뒷모습이나 소의 꼬리를 발견한다. 수행자가 사물의 근원을 보기 시작하여 견성(見性)에 가까웠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
④ 득우(得牛)
동자가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아 막 고삐를 건 모습이다.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불성(佛性)을 꿰뚫어보는 견성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즉 이제 본성을 찾았지만 아직 번뇌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더욱 열심히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라고 합니다. .
⑤ 목우(牧友)
동자가 소에 코뚜레를 뚫어 길들이며 끌고 가는 모습이다. 얻은 본성을 고행과 수행으로 길들여서 삼독(三毒: 탐.진.치)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 소도 점점 흰색으로 변화된다. 깨달음 뒤에 오는 방심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했다고 합니다. .
⑥ 기우귀가(騎牛歸家)
흰소에 올라탄 동자이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더 이상 아무런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무애의 단계로 더할 나위없이 즐거운 때이다. 드디어 망상에서 벗어나 본성의 자리에 들었음을 비유한 것이라고 합니다. .
⑦ 망우존인(忘牛存人)
소는 없고 동자만 있다. 소는 단지 방편일 뿐 고향에 돌아 온 후에는 모두 잊어야 한다. 즉 본각무위(本覺無爲)로 돌아왔으나 쉬지 않고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라고 합니다. .
⑧ 인우구망(人牛俱忘)
소도 사람도 실체가 없는 모두 공(空)임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텅 빈 원(圓)상만 그려져 있다. 즉, 정(情)을 잊고 세상의 물(物)을 버려 공(空)에 이르렀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라고 합니다. .
⑨ 반본환원(返本還源)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붉게 피어 있는 산수풍경만이 그려져 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는 것으로 이는 우주를 아무런 번뇌 없이 참된 경지로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즉 그의 본심은 본래 청정하여 아무 번뇌가 없어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보게되며 있는 그대로를 볼 수있는 참된 지혜를 얻었음을 비유한 것이라고 합니다. .
⑩ 입전수수(入廛垂手)
지팡이에 도포를 두른 행각승의 모습으로 많이 그려진다. 이는 육도중생의 시장골목에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는 뜻으로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로 나아감을 뜻한다고 합니다. . 즉, 이타행(利他行)을 한다고 합니다. .
무위법에 대한 짧은 소견
무위법의 완성의 경지, 인우구망(人牛俱忘) ~ 모든 도인들의 필수 페러다임 ~ 해탈 ~ 니르바나....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유위법의 완성의 경지, 기우귀가(騎牛歸家) 라는 과정을 통과해야, 무위법(인우구망)까지 완성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우귀가(騎牛歸家) 라는 유위법의 완성의 경지는, 모든 삶(生死)의 고통과 본질을 꿰뚫어 통찰하므로서, 모든 삶(生死)에 대한 마음의 동요를 완전히 잠재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완전한 무욕의 경지에 가까워짐)~ 모든 삶(生死)에 대한 마음의 동요가 사라지고, 마음(불성-소-마음의 방편적인 작용 조차)이 완전히 비워지는, 망우존인(忘牛存人)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어서, 초발심 이후 수행부터 유지해 온 마음의 선성(善性)조차 놓아버리고, 생사(生死)을 완전히 초탈하게 되는 완전한 무욕의 경지에 도달하므로서, 인우구망(人牛俱忘)의 무위법을 완성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살(부처)의 자리는 무위법과 유위법 양쪽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중도의 삶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살(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분이라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보다는, 언제나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있는,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서 살아갈 것이며, 보살(부처)은 유위법으로써 중생(부처의 깨달음이 없는 사람)과 함께 어울리면서, 무위법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중근기 이상)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므로서, 참된 공덕을 쌓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살(부처)가 세상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분명 무위법과 유위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중도의 삶의 자리를 유지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거짓선지자를 구분하는 법을 말씀드리면, 유위법에는 통달하였는지는 모르나, 무위법을 완전히 알지 못하고, 무위법을 참되게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은, 거짓 선지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혼란한 시기에 참된 선지자(보살, 부처) 라면, 무위법으로써 삿된 영적존재와 세상을 제도한 후에, 유위법인 자비(사랑)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위법을 체득하지 못한 사람은, 참된 선지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위법의 완성하지 못한 사람이 세상을 제도하려고 한다면, 상대계(세간)의 음양오행의 법칙을 초월하지 못하기 때문에, 걸림이 많아서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봅니다. 무위법은 이러한 상대계(세간)의 모든 법칙을 초월하고 꿰뚫어서, 무위로 만들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무위법을 완성한 보살(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세상의 혼란함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써 세상을 제도함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회집단 형태로는 무위법을 사용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보살(부처)는 무위법을 모르는 사람들(중근기 이상)에게 무위법을 전하므로서 세상을 제도하시리라고 봅니다.~지금의 시기는 이러한 무위법을 완성할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삶의 이치, 모든 삶의 고통과 본질을 통찰하기도 수월한 시기라고 여겨집니다.~ 좋은 시절, 모두 함께 불법을 수행해서 성불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