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이었어. 집을 나서는데, 왜 우편물함, 그거 있잖아?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 보믄, 들어서자마자 왼쪽 벽에 떡허니 붙어있는 거 말이야. 우편물 넣는 틈새 사이루다가 기다란 고지서 하나가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더라구.
가스? 전기? 수도? 아니지, 엊그제 몽창 냈잖어. 혹, 나도 모르는 불법주차 과태료고지서가 아닐까? 그것두 아니네, 건 노란색 종이잖어. 졸라 빳빳해게지구서리, 왼쪽 상단 모서리에 있는 까만 삼각형에다 손톱을 바짝 대게지구서리, 뜯어내면 ‘축! 적발됐심다’며 잡소리 적혀있는 그건, 노란색이잖어.
믿거나 말거나 계단 몇 개를 밟아 내려간 그 찰나지간에, 본좌 이토록 많은 추정과 부인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그 의문의 흰 종이를 뽑아들었으니…, 오 마이 갓!
“교육훈련소집통지서...상기자를 민방위기본법 제21조 및 동법 시행령 제23조2항의 규정에 의해 아래와 같이 소집함”
호고곡! 민방위훈련 나오라는 찌라시더란 말이지. 후아, 순간 나는 지금은 ‘구마적’이란 이름으로 훨 유명한 그 얼굴 큰 친구, ‘신라의 달밤’의 양아치 대장 마천수의 심정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거야.
“니이미, 조국이 나한테 해준기 뭐가 있다꼬! 쓰읍”
본좌, 대통령 후보를 아버지로 두지 못한 대죄를 범하였기에, 경기도 양주군에서 2년 반의 팔팔한 청춘을 바쳤더란 말이지. 그것두 모자라 대한민국 최정예 원조 날라리라는 야비군에 입대하야, 동원 4년 포함, 무려 8년 성상을 주구장창 복무해 왔더란 말이지. 그리하야 마침내, 사우스코리아, 그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범털 아닌 개털로 태어난 싸나이의 고행을 엩 라스트, 끝냈다고 철썩같이 믿었더랬지. 그런데, 그것이 단지 나만의 착각이었던가?
본좌, 지난 겨울 내내 갈고닦은 단학선원 고유의 뇌호흡과 운기행공을 발휘, 잠시간의 격분을 수습하고는 곧 문제의 찌라시 분석에 들어갔어. 근데 뭔 놈의 뻘건 글씨가 이리 많아? 눈대중으로 봐도 ‘아래 한글’ 활자 크기루다 한 12포인트, 그것도 ‘진하게’로 편집되었음에 틀림없는 그 뻘건 글씨들은 다음과 같았어.
‘10분전까지 입장완료, 교육시작후에는 입장불가’
‘신문 등 반입금지, 휴대폰 등 사용금지’
‘신분증과 통지서를 필히 지참’
‘참가증은 교육 종료후 6개월 보관’
거 참 어이가 없더군. 출근 직전부터 영 기분 다운되더만 말이지. 생각해 봐, 우리나라 사람들 교육수준이 을매나 높아? 몇몇 또라이를 제외하고는 이 동네 필부들 죄다 민주시민의 기본자질은 갖추고 사는 사람들 아니겠냐구. 더욱이 그 준수사항이란 것들이 시간준수, 공공장소에서의 휴대폰 사용자제 같은 건데, 그거야 ‘두말하면 숨가쁜’ 우리네 스탠다드 에티켓 아니냐 이런 말이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구설랑은 왜 이 따위 ‘불가’, ‘금지’, ‘필히’등의 통제적 용어가 난무하냐는 거야? 와이? 내가 특수부대 훈련가는거여? ‘민화투’보다 싱거운 ‘민방위훈련’이잖어!
잠시만 진지해져 볼께. 세금 꼬박꼬박 내고, 현역 갔다 와서, 예비군 훈련도 8년이나 받았으면 이제 좀 놔줄 때도 됐건만, 이 노무 나라 하는 뽄새를 보노라면, 그 집념의 강인함이 거의 스토커 수준이다. 반백의 노털이 되어서야 군역의 의무를 벗으라 한다. 사람의 관념은 오십이 넘으면 거의 ‘스테레오타입’화 하여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통설이다. 이렇게 보면, 민방위 훈련이란 ‘안보이데올로기학습’의 평생교육판이라고 해야 옳다.
느그들.
씨바. 존말할 때 민방위훈련 폐지해라. 본좌, 동대장 아자씨들 군대 야그 듣고잡은 생각일랑 애저녁에 없는 사람이야. 16미리 떡무비만큼의 작품성도 없는 이상한 전쟁비됴 보기에는 나의 미적 감수성은 넘나도, 넘나도 고상하기 짝이 없어, 그 딴 거 보기 싫어. 폐지해라.
폐지 못하겠으면, 수당이라도 도. 안 된다구? 좋아. 택시비, 아니 빠스비라도 도! 토큰 하나 주지도 않을 거믄서 찌라시에는 왜, 대중교통 이용하라고 씨뻘건 글씨로 써놓은 건데? 왜, 왜!
근데 말이지, 본좌, 정말이지 솔직하게 토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말이지. 우리 동네 특공대 징집통지서를 맞이한 오늘 아침의 소회를 이제껏 떠벌여댄 진짜 속내는 말이지. 어쩜 이느낌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거야.
내가 이제 이만큼 나이를 먹어버렸나? 이봐, 나 지금 늙고 있니?......ㅠ.ㅠ
“훈련나왔습니다”며 새벽잠을 깨우던 동방위의 풋풋한 낯짝을 더 이상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 마포방위협의회 아줌마들이 떠주는 3,500원짜리 멀건 설렁탕과 시큼한 깍두기를 더 이상 섭취할 수 없다는 사실은 결국 본좌의 나이테가 범상치 않음을 반증하는 것들이지.
‘늙는다’는 필연에다 ‘성취’와 ‘성숙’이란 ‘비필연’이 함께 할 때, 말인즉 ‘아름다운 인생’이라 하겠지. 그렇다면, 이 최정예 민방위대원에게는 어떤 것이라서 자족할 ‘성취’와 '성숙‘이 있을까? 눈 닦고, 비비고 봐도 없더란 말이야.
뭐 그리 바쁜 인생이라고, 구청공무원의 군사우편을 보고서야, 나이듦을 가늠할 수 있었던 본좌의 인생, 어쩌면 ‘일상’이라는 이름을 빌려 그저 열심히 늙어가고만 있었던 것인가?
첫댓글 혹시 함성이 조선대 노래패 '함성'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러면 제가 아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군요.
아닙니다^^
동방위라니요~~~~ 지금은 상근 예비역으로 대체된 걸로 알고 있는데 ???? 동방위를 부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