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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고향 집
업로드 날짜2025년.02월.04일 15:27
예전 고향에 우리 집이 어떻게 생겼는가 지금 이렇게 생각을 회상을 한다 할 것 같으면 자좌 오향으로 지었는데 안채를 안채 행랑채 이렇게 말하잠 지었어.
안채를 그렇게 햇빛이 잘 드는 방향으로 집을 지었는데 약간 기역억자형으로 지었지.
그러니까 예전에는 그 방이 9자 10자 이런 정도로 놓으면은 아주 큰 방이라 그랬어.
예전엔 그렇게 시골에서 그 무릎팍을 맞대고 이렇게 있어야지만 정이 들어서 좋게 가정이 화목하다고 그랬거든.
그래서 방들이 좀 지금보다 많이 작았지. 그래서 이제 10 자 9자 집은 집이면은 상당히 방이 큰 거야.
그렇게 안방을 그렇게 두고 이제 위방은 좀 작았어.
벽돌집이었는데 그 9자 기둥보다 더 높은 그런 집을 짓고 살게 되었는데 그런 다음 이제 안방 문을 열게 되면 대청이 되는데 거기도 역시 그 안방 위방처럼 그렇게 칸이 큰 대청을 두고서 다시 또 그쪽으로 건너방을 두고 윗방을 두어 가지고서 그러니까 삼칸겹집이라도 상당히 큰데 또 부엌을 또 내려 붙이다 보니까 기억자형의 집이 되었더라 이런 말씀이지....
그래 이제 건너방에 큰 가마솥을 걸고서 소죽 솥을 만들어서 이제 소를 기르게 되는 거야.
그렇게 이제 대청에 대청 마루를 놓고서 그 뒷뜰로 이렇게 창을 크게 내서 문 식으로 문호식으로 그런데 거기에 그렇게 문은 해닫지 않았어.
바람이 설렁설렁 이렇게 대청으로 통하라고 그렇게 짓고선 이제 나중에 또 몇 년 지나서 행랑채를 짓게 되는데 역시 그렇게 이제는 기억 자를 지었으니까 니은 자로 짓게 되는 거야 맞춰서 그러니까 그러니까 앞마당이 입구자형이 되는 거지 그래 행랑채는 호집으로 다섯 칸을 짓게 되는데 나무해다 놓는 나뭇간 그다음에 소를 기르는 외양간 그다음에 허드레 간 측간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그다음에 이제 또 꺾어서 들어오는 큰 대문 또 그다음에 방을 사랑채 그니까 사랑방을 둬야 될 것 아니야 사랑방 이렇게 해서 다섯 칸이 되더라 이런 말씀이지 그래 안채에는 저쪽 건너방 쪽으로 퇴를 달아가지고 퇴마루마를 두어서 손님 객이 오게 되면 그리로 이렇게 이제 들어와 가지고 신발을 벗고 말하자면은 건너방으로 들어오게끔 그렇게 만들었다.
이런 말씀이지. 그러니까 상당히 큰 집이여 대갓집처럼 지은 거나 마찬가지지 촌(村)의 집으로는 유지급에 해당하는 집을 짓고 살았다 이런 말씀이야.
그런데 이제 우리 형님께서 사촌 형님이지 나는 이제 어려서 조실 부모를 하고 이제 말하자면 어- 백모께서 키우게 되었는데 우리 역시 우리 형님들도 다 대동아 전쟁에 백부도 다 돌아가시고 그런 형편이 되어서 그냥 말하자면 우리 큰어머님도 과택이시지 그래 이제 그 한 번에 형님께서 어디서 구해서 캐 가지고 왔는지 난초를 많이 캐 가지고 오셔서 그 뒷뜰이 이렇게 약간 경사진 산기슭기인데 그 뒤뜰로 비잉 돌아가지고서 말하자면 좀 산기슭 조금 올라가 가지고 그러니까 관목나무 숲 아래에다가 심는 거야.
관목숲 아래다가 그래 그것이 해마다 가니까 점점 숫자가 불어나 가지고 그 포기 수가 늘어나 가지고 난초라 하는 것은 화엽(花葉)이 불상견(不相見)이라 하고 하고서 꽃과 입사귀가 서로 만나보지 못하는 그런 식물이야.
그렇게 이제 입사귀가 다 지고 난 다음에 꽃을 피우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 관목 숲 그늘 속으로 난초 꽃이 화려하게 피어 돌아가는 거야.
그 말하자면 뒷뜰 경사진 산기슭 밑으로 그러니까 울타리를 삼은 거지 울타리 관목숲아래 말하자면은 그렇게 화려한 난초꽃이 피어나게 되어 있더라 이런 말씀이지.
그런데 그 나중 나중에는 그게 서로가 이별을 본다.
그래서 난초 곷하고 난초 입사귀하고 서로 만나보지 못한다고 해서 다 그냥 캐내었던가 소실이 되었던가 없어지고 말더라고.
그런데 그 말하자면 그 대청문 뒷들 문호를 이렇게 내다보면은 그 위에 예전 사람들이 터를 조금 만들고서 집을 짓고 살던 구터가 있어.
그런데 거기를 이제 뒷밭을 삼아서 이렇게 채마 정도는 약간씩 갈아서 먹고 하고 분추도 심고 그러는데 바로 그 뒷뜰 대청문어 둔덕진 위에다가 무엇을 심으셨냐 하면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국화 종류인데 키다리 국화야 가을이면 노란 꽃이 아름답게 피는 그런 국화꽃을 심었는데 그 입사귀가 넙적넙적한 것이 여름철이면 그걸 뜯어서 쌈을 싸 먹는데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어 아주 향긋한 냄새가 나는 그런 잎사귀여.
그렇게 해서 이제 이렇게 꽃이 화려하게 피면 참 이뻐 보이고 그래 그렇게 좀 멋있게 보이지 그래 이제 그 부엌 저 뒷문 쪽으로는 이렇게 돌아 말하자면은 집 그 뜨락을 쫓아서 올라가다 보면 거기 이제 장독대를 만들어 놨어.
산기슭 아래 그래서 거기다 이제 장을 담고 장항아리가 예전에는 얼마나 커 커다란 장항아리가 몇 개씩이나 되지.
그리고 이제 그 짝으로 또 친구네 집이 있는데 친구네 집은 이제 오막살이 집이여 어 그래 오막살이 집을 짓고 거기서 살게 되고 그래 이제 이쪽 건너방 쪽 모퉁이 쪽으로는 또 약간 둔덕이진 울타리가 되었는데 그 울타리 관목 숲을 연이어서 무엇을 심으시는가 하면 우리 형님께서 산 노가지 향나무를 갖다가 쭉 심었어.
그래서 상당히 아름답지 산 노가지도 잘 이렇게 가꾸면은 향기도 나고 그래 그걸 이제 뿌리를 캐가지고 나중에는 그렇게 제사 지낼 적에 향으로 쓰기도 하거든.
그래서 향을 때린다고 그러지 이렇게 바짝 말라서 건사를 잘 해 놨다가는 제사 때만 되면 이렇게 칼로 조금씩 도려서 말하자면 향불 위에다 불에다가 이렇게 놓으면 향불이 돼서 아주 온 방 안에 향기가 가득해지는 거지 그래 그 건넛방 퇴마루 그 둔덕 모퉁이에는 또 아주 오얏나무 황두나무가 여러 개가 저절로 이렇게 자연으로 자라게 돼서 상당히 컸어 그래 여름철로는 누런 황두가 말하자면 애들 주먹만 한 것이 주렁주렁주렁 막 많이 달렸지 그래 그런 걸 이제 우리가 그이제 따먹고 그렇게 지냈는데 또 그 아래는 이제 둔덕 아래는 좀 약간 편편한 데는 그 김치독 묻는 그런 자리가 돼 가지고 가을로는 이제 김치를 해가지고 김치 항아리를 거기다 묶고 이렇게 가작을 해서 세우고 눈이 오면 아 맞으면 안 될까 봐 아 그렇게 하고 놓고서 그다음에 이제 그렇게 이제 나뭇간 행랑채가 돼서 돌아가는 모습이 되는 거지 그래 이제 앞마당이 네모졌는데 그래 이제 설 로는 거기다 커다란 떡판을 설치하고서 우리 숙부께서 떡을 치는 거야.
그 시루에다가 쌀가루 말하자면 입쌀이야 그냥 쌀을 밥을 찌는 거야.
쪄가지고선 찹쌀을 쪄내가지고선 떡판에 놓고 떡매를 갖고 딱딱 치는 거야.
말하자면 섣달 그믐 그 전날서부터 그러면 떡을 이제 만드는 거야.
아주머니네들이 이렇게 안반에다 놓고서 친 걸 갖다가 둥글둥글해 가지고 길게 말하자면 떡 가래를 만들어 제키지 그게 이제 꾸덕꾸덕해지면은 말하자면 설날 그것을 이제 쓸어서 떡국을 해서 먹는 거지 예전에 다 그런 식으로 촌(村)에서 말하자면 다 스스로들 떡을 만들어 먹고 뭐 술도 만들어 먹고 뭐 조청도 만들어 먹고 다 그랬지.
예전에 다 그렇게 살았어. 그래 이제 대문을 여름철에 열고서 나가면 대문을 크게 해서 달라는데 삐걱 하고 대문을 열고 나가면은 그 말하자면은 커다란 어렸으니까 내가 나이가 몇 살 열 살 안쪽이지 그러니까 커다란 아람들이 그때 아람들이 내 손으로 아람들이면 꽤 크잖아.
그런 대추나무가 말하자면 마당가에 서 있는데 거기 그렇게 가을이 되면 대추가 그렇게 많이 달릴 수가 없어 주렁주렁주렁주렁 달려 그래 거기 올라가 가지고 대추를 그렇게 많이 따먹는 거야.
울긋불긋 울긋불긋한 대추를 대추가 그렇게 말하자면 조금 약간 덜 익었을 적에 불긋불긋한 점이 있을지 그럴 적에가 아주 맛있거든 달콤한 게 약간 비릿한 것 같은 그런 맛이 들면서 그래 그 나무가 너무 그렇게 크게 키니까 그만 그 행랑채가 옛날에 초가집인데 거기 이렇게 그늘이 지니까 그 집 집들이 지붕들이 막 이렇게 그늘이 지니까 썩기도 하고 그러더라고 나중에 다 안 채 행랑채 다 기와로 해 이었지만 이제 처음에 집을 지었을 적에는 초가집들이었다 이런 말씀이지 그래 가을게 그 초갓집의 이엉을 해 이으려면 얼마나 힘들어 며칠 몇 날씩 말하자면 남자분 네들이 집안의 어른들의 이엉을 밤으로 엮고 낮으로 엮고 엮어가지고서 그만 한날 날을 정해선 동네 사람들을 좀 몇을 동원해서 같이 그렇게 옛날엔 다 그렇게 이 동네 서로의 품앗이라고 일을 같이 했잖아.
그렇게 해서 지붕을 해 잇고 나오면 아주 참 예전에 뭐 흥부놀부 나오는 흥부의 집처럼 아주 번 듯한 그런 말하자면 초가집이 되는 거지 새로 말하자면 새 이엉으로 해 이은 초가집이 된다 이런 말씀이지.
그런데 이제 거기서 저 우리 마당 바깥마당이 상당히 큰데 그래 바깥마당 저 가로 앞에 대문을 열고 한참 몇 걸음 좀 나가지 그러니까 한 30~40m 나가면 거기 또 이렇게 허드레 깐 식으로 또 측간을 지어놨어.
그래서 인제 말하자면 거기 가서 또 이제 대소변을 보는 사람도 있고 또 옆에 말하자면 친구네들도 같이 거기 같이 까작식으로 겸해서 이렇게 오두막식으로 측간을 같이 붙여 짓고 그렇게 해 놧는데 그 마당에 그렇게 마당 가로 그렇게 나무 울타리 가을그로 숙부께서 나무를 산에 가서 해 가지고 와셔서 돌담이나 이런 흙담이 아니고 나무 울타리를 하시여 나무를 쭉 해마다 참 세워가지고서 나무를 또 옆으로 대가지고 엮어서 이렇게 울타리를 해가지고 그러니까 바깥마당에 울타리를 만들고 그래 거기서 이제 바깥마당에서 또 이렇게 집이 약간 높은 지역이니까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이렇게 저 바깥으로 내려가려면 큰 길로 나서려면은 지길 나선 생겨 먹었는데 그게 큰 길이야 윗동네가 아니라 윗집 사람들도 다니고 해서 우리 마당을 걸쳐서 근데 거 이제 그 내려가는 옆에 국기 장대도 세웠지만 거기 말하자면 감나무 하나가 섰는데 감나무가 그렇게 가을으로 감이 말하 주렁주렁 말하자 노랗게 익어서 달려가지고 있고 그랬지 그래도 조금 내려가면 샘 둥치가 있어 샘이 그 자연적으로 생긴 샘이야 누가 파거나 그러지 않고 이렇게 돌 틈바귀 속에서 물이 나오는데 그게 어떻게 생겨 먹었느냐 하면 우멍하게 이렇게 말하자면 동굴처럼 파여 있어 그래서 거기서 물이 막 솟아나거든 그래 그 물이 솟아나는데 물이 그렇게 여름물은 시원하고 차고 겨울굴은 뜨뜻하고 그런 물이 솟아난다.
이게 맑은 물이 그래 그걸 가지고 온 동네 사람이 그 샘물을 가지고 먹고 말하자면 빨래도 하고 식수도 하고 그렇게 되는데 그 샘둥치 바로 위에 이렇게 바위가 그 말이야 끊어진 내려온 옆에다가 동네 어른들께서 아마 아마 예전서부터 그 까칠까칠한 향나무를 갖다가 심으셨어.
그 향나무가 여기 말하자면 까시 없는 그런 향나무가 아니고 이렇게 만지면 까끌까끌한 그런 향나무요 노가지 나무도 아니며 그래 그게 향이 그렇게 날 수가 없어.
그런데 그걸 말하자면 그 뿌리를 캐가지고 그렇게 이따금씩 끊어가지고 향을 대리면 그렇게 향이 향 냄새가 좋을 수가 없더라 이런 말씀이지.
바로 그 향나무 옆에서 역시 그렇게 오래묵은 아람들이 대추나무가 있는데 대추나무가 이렇게 구부정하게 씌워져서 말하자면 사람이 당기는 길가 위로 이렇게 생겨 먹었어.
가을로는 대추가 그렇게 많이 달릴 수가 없어 울긋불긋 울긋불긋한 게 그래 거기 올라가서 대추를 그렇게 많이 따 먹고 그랬지.그옆으로 뒷동산올라가는길이나있는데뒷동산은 아름드리 밤나무숲과 아카시아 밭이라 여름철로는 아카시아 껓이피고봄철로는 등화 개불알꽃이 피며 둥굴레 꽃이피며 붉은 주초 잔디 더덕 뿌리 같은 것도 캐먹고 뭐 가을에는 알밤들이 수없이도 빠지는데 새벽에 발빠르게 가선 줍는 거지 [뒷동산은 아랫집 역시촌부자집 산이고] 전지(田地)가에 심은 대추나무는
그게 다 이제 우리 조부께서 이제 그렇게 다 심으신 것인지 그전서부터 있던 것인지 남의 가대(家垈)를 사 가지고 와 가지고 그렇게 있게 되었는데 그게 전부 다 이제 우리 집의 토지들이지 그래 그 앞에 전지가 이렇게 큰데 그 골짜기 안에서 뭐 아주 크지는 않아 그저 한 천여 평 정도 그 시리 되겠지 몇천 평 되겠지 그러니까 그런데 그 가에로 그리고 둔덕가에로는 전부 다 대추나무 뭐 이런 걸 많이 심었어.
그리고 그 예전에서부터 그 골짜기 뭐 뭐가 뭐 예전 고래(古來)적에 무슨 집이 있었던지 이렇게 밭을 일궈서 보다 보면 예전 기와 쪼가리가 막 나오고 그러거든.아주머니들이그걸주어서 디딜방아에 빻아선 가루를 만들어선 유기그릇[신주그릇]을 딱는 것으로 사용한다
그러니까 예전서부터 거기에 어떤 사람이 말하자면 살고 그 말하자면 무슨 집들도 기와집 같은 게 있었고 그랬던 모양이야.
그리고 동네 어른들 돌아가신 어른들 예전에 우리 어렸을 적서부터 할아버지지 그런 양반들한테 물어보면 거기 그전에 뭐 예전서부터 무슨 말하자면 뭐 성황당식 같은 식으로 무슨 집들이 있고 그 후에는 또 헐어 제키고 무슨 서양 계덕 귀신 믿는 사람들이 집들을 짓고 살고 뭐 아주 어지럽게시리 이렇게 말들을 한단 말이야.
그래 이제 우리는 양지 쪽으로는 집이 한 10가구 열호 10호 정도 되고 음지 쪽으로 집이 원래 삼호 였었는데 새 집안이 살았었는데 꼭대기 집은 우리 작은 조부께서 사시다가 헐고서 다시 양지마을로 이사를 오게 됐어.
그래 두 집이 있었는데 결국은 나중에 또 한 집이 헐렸어.
그러고서 한 집만 우리 친구네 집 한 집만 지금 남아 있을 거다 이런 말씀이지.
지금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또 그것마저 헐었는지 그거는 알 수가 없어 그렇게 우리 고향집이 생겨 먹었어.
아주 그래서 그 그렇게 꽃이 난초 꽃이 필적에는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다 이런 말씀이지 예 지금 가만히 이렇게 옛날 일을 생각을 한다 한다 할 것 같으면 회상한다 할 것 같음 그렇게 머리에 색색할 수가 없어 아주 똑똑하게 그려지거든.
지금 이 중년에 있는 일은 먹고 살다가 보니까 바빠서 이런저런 생각이 안 나는데 꼭 그렇게 어려서 있던 그 살던 생각이 머리에 아주 그렇게 말하자면 그림처럼 그려진다 이런 말씀이지.
그래서 이렇게 우리 집 고향 옛날 집을 한번 여러분들에게 소개를 해 봤습니다.
그래 이제 우리 형님께서 어디서 달구지를 손달구지를 하나 구해 오셨는데 그전에는 달구지구 구루마 바퀴가 달구지 바퀴가 쇠 바퀴요 굴렁 쇠 바퀴 나무 틀을 이렇게 해서 말하자면 속으로 만들고 거기다 굴렁쇠 바퀴를 끼우는 거 그런데 그거 손으로 끌고 다니다 보니까 안 되겠던 모양이지.
그래서 이제 그걸 대장간이 그 윗마을 윗마을의 작은 그런 회춘모랭이 이라는데 그 말하자면 그 뭐야 그 성이 자꾸 오래되니까 잊어먹었네.신(申)씨
그 집에 도랑청가에 대장간이 있어. 그래서 거길 그 달구지를 끌고 가셔 가지고 소가 끓는 우마차지 그러니까 그걸 이제 꾸미시는 거야 만드시는 거야.
그래가지고서 이제 동춘네 큰아버지 댁이라 그랬지 그 집이 그래서 거기서 이제 꾸며 가지고서 소가 끌고 다니는 달구지를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이 끄는 것보다 원래 나은 거지 또 그것도 시원찮다고 한 번은 또 어디서 남이 쓰시던 달구지 소가 끓던 달구지에 바퀴가 4개짜리 그러니까 앞에 작은 굴렁 쇠 바퀴가 있으면은 뒤에 큰 굴렁 쇠 바퀴가 있어.
그런 걸 마차를 하나 구해 오시더라고 그러더니 아 이 앞에 이 작은 굴렁쇠 바퀴는 괜히 갈고치기만 하고 군더더기가 되니 떼어 떼어버리고 그냥 뒷바퀴만 갖고 사용해도 된다고 그러면서 앞바퀴는 떼쳐 떼내버리고 뒷바퀴를 갖고서 하는데 그 산에 가서 그 나무 속 굴렁쇠에 말하자면 바퀴 할 나무를 베어 가져 와서 다듬어서 일일이 그걸 이렇게 굴렁쇠를 끼우는데 그냥 그게 잘 안 끼워집니다.
그래 가지고 짚으로 황덕불을 해가지고서 그 굴렁쇠 바퀴를 달구는 거야.
그러면 이제 그 바퀴가 늘어난다고 쇠 바퀴니까 그럴 적에 이제 그 틀을 갖다가 끼우는 거야.
말하자면 굴렁쇠 틀을 속틀을 나무 틀을 바퀴 살이 있는 틀을 요즘 뭐 그 어떤 큰 뭐 고상한 술집 같은 데 그 수레바퀴 있잖아 그런 식으로 이제 끼워 그래 가지고선 말하자면 마차에 외워 가지고서 소가 끌고 다니게시리 이렇게 만드는 거지.
그러면 뭐 촌에선 그래 가지고 뭐 곡식이나 뭐 이런 거 싣고서 읍내장이 한 20여 리나 되는데 거기 이제 싣고 가시는 거야.
팔러도 가고 남의 것도 실어다 주고 이렇게 또 장에서 뭘 사가지고서 싣고 오시기도 하고 이렇게시리 이제 살았지 소도 큰 소를 길러 아주 말하자면 황소도 기를 때도 있고 암소도 기를 때도 있고 송아지도 날 때도 있고 아 그렇게 시리 이제 하고서 살았지만 그래 뭐 또 닭 같은 것도 많이 기르고 또 돼지도 기르고 돼지는 그 검은 돼지 검은 돼지를 그렇게 많이 길렀어.
옛날에 꾸정물 해가지고 나오면 그걸 가지고 돼지를 이제 당가루를 타서 주잖아.
그럼 잘 먹지 뭐 돼지들이 그렇게 해가지고 돼지가 이제 한 잘 키우면 한 200여 근 나가잖아.
그러면 갔다가 이제 저기 백정 시내 말하자 정육점 시내에 있는 정육점 돼지 잡는 사람들한테 팔아 먹잖아.
그럼 와가지고 큰 저울도 작은 저울이 아니야 그게 뭐 200근 300근 나가는 큰 추가 있는 저울 사람이 이렇게 작대기 큰 거 석가래를 끼워 가지고 둘이 걺어지는 그런 말하자면 저울을 동네마다 하나씩 다 갖고 있게 되는데 그 저울을 갖고서 돼지를 그만 묶어가지고 다는 거야.
둘씩 한쪽에 양쪽에 둘씩 둘씩 해서 넷이서 걺어지고 달아.
그러면 이건 이제 200 근 나가네 160 근 나가 이렇게 이제 달적 추가 엄청 크지 뭐 그런 저울은 그런 저울 요즘 있을까 다 없어졌을 거야.
뭐 골동품 상회나 어디 있을까 지금은 없을 거야. 그렇게 시리 해가지고 이제 돼지를 달아서 팔아 먹고 이렇게 살았지.
그래서 논에는 가을구로 이렇게 추수를 하고 나면 다음에 논에 벼포기 이래 이제 남잖아.
그러면 그걸 이렇게 들추잖아. 그러면 그 미꾸라지가 그렇게 많을 수가 없어 아주 포기마다 다 들어앉아 있어.
이 물아르는 잘가미 논에도 그렇지만 그냥 여느 논에도 그 포기가 그 물렁물렁한데 이런 데를 이제 이렇게 확 포기를 제치잖아.
그럼 그 속에 미꾸라지가 다 들어앉아서 한두 마리도 아니야 엄청 많았는데 그러면 나중에 그 비료 같은 게 뭐 유안 요소 질소 비료니 뭐 이런 게 나와서 그걸 치기 시작함으로부터 뭐 말하자면 그 농약도 치고 그러는 바람에 저절로 그만 없어지더라고 더 안 나오고....
뱀장어도 그렇게 많고 뱀장어도 얼룩덜룩해 너무 커 가지고 막 이 석가래 같아 뱀 같이 큰 그런 뱀장어가 그 보도랑으로 그렇게 말하자면 스며들어서 보도랑 물마름 숲으로 그렇게 많을 수가 없어 그렇게 해서 촌 사람들이 잡아먹고 여름철은 그렇게 천엽이라고 그러지 않아 내 사냥이라고 내가 사냥이라고 천렵을 나가면 그렇게 물고기들을 잡아서 큰 솥에다 넣고 파를 썰어 넣고 고추장을 풀고 해가지고서 말하자면 육개장식으로 해가지고서 막걸리를 사다가 예전에는 중년에는 그 플라스틱통 막걸리지만 예전에는 전부 다 고리 막걸리 식으로 말하자면 그 나무로 된 그런 고리통에다 막걸리 담아가지고 팔아 먹고 아니면 주전자로 이제 그 도가집에 가서 받아오고 그러잖아.
저 말하자면 술 만드는 도가가 읍내에 있는데 큰 마차에다가 커다란 항아리보다 더 커 그런 말하자면 나무로 만든 술통이 있어 거기다가 아주 이 하나 가득 말하자면 술을 담아가지고 씻고서 올라온다고 그러면서 마을마다 풀어 먹이는데 이제 어떤 마을은 두 말도 받고 어떤 마을은 세 말도 받고 그저 이 동네 사람 먹을 만큼 받아 제키면은 이제 그거를 이제 말하자면 동리 사람들이 그렇게 주전자를 갖고 가가지고 한 되박씩 두 되박씩 사게 되는 거지.
그럼 그걸 이제 예전에 어른들 여름철에 농주라 그러잖아 시원한 농주 막걸리를 그렇게 일하시다 말고 밥 메다 말고 논메다 말고 나오셔 가지고 그 말하자면 정자 그늘 나무 아래에서 말하잠 한 잔씩 하시고 그런 다음에 다시 메꼬자 쓰시고 또 들어가서 논을 메고 밭을 메고 그렇게 했다.
이런 말씀이야 이렇게 해서 시골 삶을 살았다 이런 뜻이지 그런 노인들 다 다 돌아가 50년 전 육칠십여년 전에 다 돌아가시고 아마 백골이 진토가 되었을 거야.
그러니 옛날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거야. 이번에는 이렇게 추억의 고향집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번 해 봤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한 것이지 뭐 뺏쳐먹은 거야.
많지 뭐... 여기까지 강론하고 이야기하고 다음에 또 이야기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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