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중심도시 광주와 창조경제
정찬용(현대 기아차 인재개발원장)
주말에 강원도 지역을 다녀왔다. 고향을 사랑하는 청년이 땅을 좀 사고 10만 평의 국유지를 임대하여 일궈낸 고원자생식물원을 보았다. 태백시 九臥牛마을에 자리한 이 식물원에서는 5만평의 해바라기꽃밭 사이를, 버얼건 赤松이 들어찬 한적한 숲 길을, 벌개미취 나리꽃 범부처 원추리 구절초 동자꽃등 40여종의 야생화가 피어있는 꽃밭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걷고 또 걸었다. 허름해도 개끗하고 맛있는 식당, 중남미와 아시아 지역 토산품을 파는 검은 아줌마, 즐거운 노래를 선사하는 폴리네시아 아저씨, 사이사이 이어지는 다양한 퍼포먼스...... 엉성하게 지어진 갤러리 두 개는 <할아텍(할 아트 앤드 테크놀로지의 약자)> 회원의 판화전과 조각전 전시 중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자유롭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울려져 5,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하루 평균 1,500명이 다녀가는 곳이다. ‘이곳은 일반인과 지역주민등 길들여지지 않은 눈을 가진 사람들을 관객으로 하는 열린 공간이고 그들과의 교감을 통해 작가는 새로운 힘을 얻고, 작품은 본연의 생명력을 회복한다’는게 할아텍의 주장이다.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노다지 시절이 지나고 탄광촌이 폐허로 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회지로 떠나갔고 이곳 정선군 고한읍이 고향인 주민 중심으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시작했다. 먹을 것도 놀 곳도 볼 것도 없고 교통이 매우 불편한 지역이 앞으로 무얼 먹고 살까 궁리를 했다. 군청의 협력을 받아, 폐업한 삼척탄좌 본관 4층 건물을 손보고 다듬어 박물관 비슷하게 만들었다. 잘 나가던 시절의 향수와 목숨 걸고 일하던 광부들의 아픔과 애환을 거칠은 공간에 배치하고 갱도체험 코스도 만들어 방문객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너덜너덜한 천정과 엉성한 페인트 벽이 오히려 탄광촌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졌다. 동네 영감 할매와 아저씨 아줌마들이 교대하여 자원봉사자로 표를 팔고 안내를 하고 주차장 정리를 한다. 해발 1,700m라는 숭악한 산골을 거꾸로 이용하여 더위를 피해 야생화 구경하라는 발상도 대단하지만 통상 우리 주변에서 관이 축제를 열면 주민들에게 준비비 교통편 식권이 주어져 결국 ‘당신들의 축제’가 되는데 비해 이들은 ‘우리들의 축제’를 열고 있었다.
이웃 삼척에서는 종유동굴 환선굴과 대금굴이 길다랗게 줄을 지어 기다리던 관광객들에게 장엄한 광경을 보여주었다. 용평 리조트에서는 제5회 대관령 국제음악제를 열어 비싼 입장료를 낸 수백명의 극장 관객과 영상중계를 무료관람하는 수천명의 운동장 관객을 흐뭇하고 즐겁게 만들었다. ‘미녀와 야수’ 영상물을 싱크로나이즈한 오케스트라 연주는 즐거웠고 美 日 中 蘇 獨 南美 출신으로 구성된 세계 최정상급 연주자들의 현악합주는 감동적이었다. 2박 3일의 강원도 여행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한편 “우리 동네는......?”이라는 물음표를 갖게 했다.
독일 루르 지역은 석탄과 철강산업의 몰락과 함께 절망의 도시로 전락했다. 허나 민과 관이 궁리를 모으고 모은 끝에 엠셔 강변 17개 도시를 하나로 묶어 도시재생 프로그램을 실천하여 오염된 엠셔 강을 정화하고 가스탱크는 거대한 갤러리와 스킨 스쿠버 장으로, 제철소 구조물은 암벽타기 훈련장과 콘써트장과 나이트 클럽으로, 탄광은 디자인 센터로 원 모습을 살린 채 재생하여, 녹슬어가는 산업폐기자원을 역사적인 문화관광자원으로 바꿔냈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메카 Detroit도, 세계경제의 중심 Newyork도, 영국의 Wales와 Gateshead도, 일본의 요코하마도 쇠락의 위기에 몰렸다가 다시 살아난 도시들이다.
이러한 궁리의 중심에 <문화도시> <창조도시> <창조산업>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개념이 자리한다. 산업단지를 만들어 기업을 유치하고 뉴 타운과 신도시를 개발하여 땅 값을 올리고 도시를 발전시킨다는 개발독재시대의 궁리로는 세상을 앞서 가기는 커녕 따라가지도 못한다는 주장이다. 山川과 遺適, 탄광과 바다, 음악과 미술이 사람답고 풍요한 삶을 만든다는 생각이다. 금년 2월 UN 무역개발위원회는 ‘창조산업 리포트 2008’이라는 보고서를 간행했다. “창조산업은 지적 재산의 재화나 서비스를 창조하고 제조하며 배포하는 순환과정이다. 나아가 민속예술 축제 음악 도서 회화 조각 공연과 같은 전통적인 것, 영화 게임 방송 디지털 에니메이션같은 기술집약적인 것, 광고나 건축같은 서비스 중심적인 것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매년 평균 8.7%씩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사불란 상명하복 질서 통제 일관공정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표현되는 산업경제의 시대가 지나가고, 다가오는 세상에서는 자유 자율 창의 융합 통섭의 가치가 단연 우위에 선다는 전망이다.
“뒤로 돌아 갓!”의 세상일 창조경제시대에는 산업경제시대에는 뒷처져 있던 광주가 오히려 앞서 나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문화중심도시, 문화수도라는 이름에 걸맞는 궁리를 제대로 하느냐, 대충 이름만 걸고 어영부영 넘기느냐에 따라 우리의 앞 날이 정해진다. 분명 재미있는 일이다.
첫댓글 주어진 상황을 체념이 아닌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하면 많은 창조적인 일들이 쏟아질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만큼 환경적응적인 생명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정선배님의 좋은 경험들이 구체적인 현장에 적용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