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일고(老化 一考)라... 제목이 일견 거창한 화두(話頭)라도 되는 양 내세운 듯 하지만 쉽게 말해서 사람이 늙어가는 데 대한 나의 생각이랄까 뭐 그런 거를 몇 자 끄적여 보려고 한다. 혹여 용두사미(龍頭蛇尾)의 글이라 비난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최근 몇 년에 걸쳐 우리나라가 세계 최저의 출산율 국가라고 해서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정치권에선 해법이라고 서로 앞다투어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넘의 나라에서 얼라 하나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는 상상을 초월한지 이미 오래인 건 주지의 사실 아닌가. 근디 무슨 용 빼는 재주 있어 출산율을 높이겠다고 호들갑들을 떨어대는지...
뭐 출산율 정책이야 위정자들이 나설 일이고 젊은이들은 그 정책에 적극 호응해 준다면야 성공이 보장되겠지만, 나이가 들어도 한참 늙어가는 내게는 그딴 것이 어찌 보면 오불관언(吾不關焉)의 일이요, 피안의 등불에 다름아니리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한다고 뭐라 해도 그 비난들 나를 포함한 늙어가는 자들이 오롯이 감당해야지 뭐 별 수 있을까.
이야기가 나도 모르게 주제와 자꾸 멀어지고 있네. 자, 그럼 이야기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 1979년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과 랭어(Ellen Langer) 교수는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 나이의 남성 노인들 8명을 모집하여 1주일간 외딴 시골의 수도원에서 합숙하는 일련의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였다고 하는데...
당초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들은 모두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일 정도로 신체적·정신적으로 극도로 허약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노인들에게는 합숙하는 동안 지켜야 할 두 가지 규칙이 주어졌는데, 첫째는 20년 전인 1959년으로 시간을 되돌려야 하고, 둘째는 청소와 설거지 등 집안일은 노인들이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노인들이 처음에는 간단한 청소도 힘겨워했지만 이내 적응해 갔고, 20년 전에 일어났던 정치, 사회, 그리고 스포츠 분야 등에서의 사실들을 마치 지금 겪고 있는 일인 듯 현재형으로 이야기하는 데도 점차 익숙해져 갔다.
이를테면, 그들은 1959년에 개봉한 영화를 보며 "이건 올해 나온 영화 중에선 최고지."라고 이야기하거나, 1959년 발간된 야구잡지를 보며 “재작년 그러니까 1957년에 다저스가 연고지를 LA로 옮겼잖아.”라고 하는 등 점점 자기들의 장년시절을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일을 하는 데서도 각자의 일을 찾아서 하고 빨래나 비질을 할 때 서로 도와가면서 집안일을 스스로 해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계획된 일주일이 경과한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 8명의 노인들의 시력·청력·기억력·체력 등을 검사한 결과, 처음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던 그들의 신체 나이가 50대 수준으로 향상-50대의 나이로 돌아갔다는 말이 더 적절할른지-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렝어교수의 그 유명한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counterclockwise study)’였던 것이다. 이 연구내용은 우리나라 공영방송인 EBS에서도 다룬 바 있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연구과정을 담은 영상이나 글을 쉽게 찾아볼 수도 볼 수 있다. 또 렝어교수는 이 연구에 대한 보고서의 성격을 갖는 책을 출간했는데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나온 바 있다.
일찌기 로마의 키케로(Marcus T. Cicero)는 노년에 맞서는 최고의 무기는 학문을 익히고 미덕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더만, 이미 신체적 기능이 노쇠하여 학문을 익힐 정도로 두뇌가 명석하지도 않고 하루 하루 먹고 살기에 빠듯한 나의 삶에서 미덕을 실천한다는 건 가당키는 커녕 허황된 얘기에 다름아니라 보이는데...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노인입네 하고 행여 누가 조선시대의 최고 수준의 노인 공경 시설인 기로소(耆老所) 같은 데 나를 넣어주지나 않나 하고 헛된 꿈을 꾸거나, 매사에 의욕을 잃고 뒷방에 웅크리고만 있다면 노화(老化)는 번개와 다름없는 속도로 우리들을 덮칠 수 있다는 사실을 렝어교수의 실험은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랄까, 결국 노화를 앞당기거나 늦출 수 있는 사람은 현재 늙어가는 본인이요, 본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노화의 자연적인 현상은 상당 부분 개설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 독일의「베를린 노화연구소」는 인간의 수명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노화에 대한 불만’이라고 하면서, 노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보다 7.5년을 더 산다는 조사 결과도 보여 주었다는데...있다. '인간사 마음먹기에 달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은 더 이상 의지력이 약한 자들이나 노인들에게 격려를 가장한 조롱이나 풍문으로 돌릴 순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