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지오 알마니가 디자인한 턱시도는, 사실 속임수다. 뉴욕의 택시운전사 지미 통(성룡 분)은 일찌기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가 그랬던 것처럼 밤거리의 쓰레기들을 청소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단지 기가막히게 운전을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비밀첩보국의 일급정보요원 운전기사로 채용된 그의 관심은 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하는 미모의 여인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이다.
[턱시도]는 지금까지 다른 성룡 영화들처럼 스턴트나 컴퓨터 그래픽 없이 성룡 개인기에 충실히 의존하는 영화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예전보다 물량면에서 더욱 풍부해진 것이다. 그것은 높아지고 있는 성룡의 인기와 출연료에 비례한다.
[캐논볼] 등의 영화로 90년대 초부터 끊임없이 할리우드 진출을 시도한 성룡은, 수많은 좌절 끝에 드디어 미국 올로케로 촬영된 95년 [홍번구]로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이후 [러시아워]와 [상하이 눈]을 거쳐 할리우드 연착륙에 성공한, 가장 위대한 아시아계 할리우드 배우가 되었다는 사실을 이번 [턱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홍콩 시절의 성룡보다 더욱 세련되어지고 화술도 풍부해졌지만, 살아있는 감성을 찾아보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어색한 불협화음이 전편을 지배하고 있는 [턱시도]는 미국 관객들에게는 온몸을 이용해 발차기와 공중회전, 벽타고 오르기 등등 고난이도의 액션을 화려하게 소화하고 있는 희한한 아시아인을 보는 재미가 있겠지만, 나는 성룡이 서 있는 뉴욕이라는 공간과 그의 주변 인물들, 벌어지는 사건이 각각 따로 논다는 생각이 든다.
무술은 성룡보다 더 뛰어난 데도 할리우드에서 이연걸이 실패한 이유는 유머가 모자라기 때문이고, 주윤발이 아직 뜨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아직도 너무 홍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룡은 유연하게 코믹한 캐릭터를 활용해서 자신의 몸을 낮추며 미국 관객들의 경계심을 무장해제하고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만큼 영악하다.
자신이 모시는 비밀첩보요원이 사고를 당하자 그를 대신해서 턱시도를 입은 지미 통, 갑자기 턱시도 내부의 비밀스러운 힘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고난이도의 발차기는 물론 댄스까지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성룡의 화려한 개인기를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턱시도 내부의 테크놀로지에 의해 평범한 운전기사 지미 통이 화려한 인물로 변신하게 되지만, 실제로는 맨몸으로 뛰어난 액션을 펼칠 수 있는 성룡이 턱시도라는 트릭의 힘을 빌어 자신의 개인기를 마음껏 보여준다.
생수 제조업체에서, 물 위에서 사는 소금장수를 이용해 박테리아를 퍼트린 뒤 자신들이 제조한 생수를 팔기 위한 전략을 실행으로 옮기자, 지미 통은 파트너인 물전문가 델 블레인(제니퍼 러브 휴잇 분)과 함께 턱시도의 힘을 이용해서 이들의 음모를 파헤친다는, 너무나 익숙한 할리우드식 줄거리는 아무리 화려한 시각적 볼거리로 유혹한다고 해도 긴장감이 떨어진다.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제니퍼 러브 휴잇과는 호흡은 잘 맞지만, 어설픈 제임스 본드와 본드 걸의 아류처럼 보인다. 전체적으로 007류의 첩보영화를 벤치마킹하면서 성룡식 유머와 액션을 비빔밥으로 만든 영화가 [턱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