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멜산 대결
왕상 18:20-40
2015.7.26. 주일낮 11시
인도ㆍ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 교회 진천
서로 인사합니다.
반갑고 고맙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는 무서운 재앙을 겪는 과정에서 북 왕국 이스라엘 왕 아합은 회개도 반성도 없었습니다.
잘되면 내 탓이요 못되면 조상 탓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합은 그 기근이 선지자 엘리야 때문이라 여겼습니다.
자기 자신이 그 재앙의 가장 큰 원인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를 섬기고 바알 우상을 섬기고 약자를 짓밟고 피를 흘리며 음행과 죄악의 길로 가는 북 왕국 이스라엘에 회개의 기회를 주고자 기근의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아합 왕과 이스라엘은 그 큰 기근의 재앙 속에서도 회개하거나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아합의 아내 이제벨은 이방 여인으로 두로의 바알 우상을 끌어들여 북 이스라엘을 바알 우상을 섬기는 나라로 만들고자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러나 기근이 3년6개월 이상 되면 이스라엘 백성이 다 죽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비를 주시기로 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반성도 회개도 없는 그들에게 그냥 비를 주시면 징계의 의미를 살리기 어렵습니다.
갈멜산 대결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확인시키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한 바알 제사장들을 정리하고 제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갈멜 산은 길이 약 24㎞ 되는 일련의 구릉이며, 서북단은 지중해로 돌출한 갑(岬)을 이루었습니다.
동남단은 사마리아 산지와 연결됩니다. 그 갑 부분은 동북쪽이 험하고 남서쪽은 느릿한 완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해안 평야를 가르는 쐐기모양의 장벽과 같이 북쪽에 악고 평야, 남쪽에 샤론 평야를 사이에 두고 북쪽 기슭을 기손강이 흘러갑니다.
갈멜산은 천연적으로 물이 많고 나무가 많아 아름답기로 유명한 명산이다.
‘머리는 갈멜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아 7:5)’.
아가서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머리를 갈멜산의 아름다움에 비유한 것입니다.
또한 갈멜산은 샤론 평야, 레바논, 바산, 길르앗과 더불어 올리브와 포도의 결실이 풍요로웠습니다. 갈멜이라는 이름도 풍성한 소출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갈멜산은 지중해의 끝자락 하이파만으로부터 시작되어 남동쪽으로 25km 가량 길게 뻗은 산맥 전체를 가리키며, 이스라엘의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인 하이파 시가 높이 540미터의 갈멜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때는 주전 860년경 북이스라엘 아합왕 시절이었습니다. 녹음방초 우거진 아름다운 갈멜산에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습니다. 사실상 오랜 가뭄의 영향으로 평소의 아름다움을 잃고 황폐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등산 목적은 세기의 대결을 두눈으로 목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건 말이 안 되는 싸움이었습니다. 아무리 온 이스라엘이 경외하는 엘리야 선지자라고 하지만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에 홀로 맞서겠다는 건 심히 무모해보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기죽지 않았고, 오히려 싸움을 주도했습니다. 바알 선지자, 아세라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부른 것도 그였고, 각을 뜬 송아지를 하늘의 불로 사르자는 규칙을 정한 것도 그였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길을 행하는지, 혹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어찌 알겠는가! 그러니 더 큰 소리로 부르라!”고 호기롭게 조롱까지 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깡마른 노인네가 450명의 큰 무리에게 고래고래 호통 치는 그 장면을. 그 호통이 울려 퍼지는 갈멜산의 메아리를.
결과는 모두가 다 아는 것처럼 엘리야의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하나님의 제단에만 불이 내려와 송아지와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마저도 핥듯이 태워버렸습니다. 숫자만 믿고 기세등등하던 바알 선지자들은 모조리 기손 시내에서 도륙을 당했습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진짜 신은 하나님 한 분 뿐이니까.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 옳은 길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이 옳은 길이다.” 여전히 갈멜산에 휜 칼을 들고 서있는 엘리야가 오늘의 우리에게 일갈하는 듯합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 중에 여호와를 바라고 여호와를 버린 죄로 이런 큰 기근과 흉년이 든 것을 깨닫고 여호와께 대한 두려움과 경외를 가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합의 궁내대신 오바댜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비를 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 국민적 회개를 일으키는데 이 갈멜산 대결이 필요했습니다.
바알 예언자들이 오전부터 시작하여 한낮이 지나고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미친듯이 소리지르고 날뛰었습니다.
그들의 예배 관습에 따라 칼과 창으로 피가 흘
러내리도록 자기들 몸을 찌르고 상처를 내어도 바알 우상은 아무런 기척도 대답도 없었습니다.
예배 의식에서 몸에 상처를 내고 의미없는 주문을 반복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신과 인간의 인격적 관계가 아닙니다.
바알 우상은 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본래 없는 것입니다.
사탄의 조종을 받는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오후가 되자 엘리야가 온 백성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너진 제단을 고쳐 쌓았습니다.
여호와 제단을 아합과 이제벨이 파괴한 것입니다.
열두개의 돌을 가지고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스라엘 열두지파는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택한 백성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제단 둘레에 큰 도랑을 팠습니다.
그 곳에 물을 열두 통을 부었습니다.
엘리야가 나서서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주의 불이 떨어져서 나뭇단과 제물을 태우고 도랑 안의 물을 모두 말려 버렸습니다.
온 백성이 그것을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죄악으로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갈멜산 대결에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엎드리고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자기 개인만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위에서도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은혜의 왕국이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구원받은 신자 한사람 한사람의 삶이 중요합니다.
신자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와 사명이 있습니다.
신자 각자는 주어진 그 자리와 사명을 통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도덕법인 십계명을 잘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십계명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입니다.
갈멜산 대결에서 승리한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바알 선지자 450인을 잡아서 기손 시내로 내려가서 거기서 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하고 속여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바알 우상을 섬기도록 앞장 선 그들을 정리하고 제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왜 죽입니까?
교회는 사랑과 공의가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는 표지 세 가지가 잘 시행되어야 합니다.
첫째 말씀의 바른 선포
둘째 성례 즉 세례와 성찬의 정당한 시행
셋째 권징의 합당한 집행
입니다.
죄에도 여러가지 죄가 있습니다.
죽어 마땅한 죄가 있고 훈계로 그칠 수 있는 죄도 있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의 죄는 여호와 종교를 말살하고 바알 종교로 대체하려한 죽이는 것이 마땅한 죄였습니다.
이것은 바알 선지자들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자기 밥상에서 함께 먹게 하며 바알 우상 숭배에 앞장서서 열심을 낸 이제벨과 아합에게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음을 예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