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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너 같은 딸 낳아라.
밖으로 내보낸 딸은 산 속으로 쏘아버린 화살과 같다. - 몽고의 격언 -
날씨가 흐리더니 기어이 오후부터는 비가 내린다. 며칠 째 맑은 하늘보기가 힘들만큼 흐리고 비오는 날이 잦다. 마치 여름 장마처럼 젖은 날이 길다. 그렇다. 계절은 꼭 비를 앞세운다. 이 비 그치면 이제 깊은 가을이라기보다는 초겨울이란 체감을 느낄 것이다. 어제 밤 꿈에서는 어느 상견례자리에서 하염없이 음식을 먹느라 꿈에서 깨어날 줄을 모르고 늦잠을 자고 말았다. 꿈에 음식을 먹고 나면 매번 건강에 적신호가 오는 편이라서 조심해야 할 일이다. 또 얼마 전에는 마치 태몽 같은 느낌의 꿈을 꾸고 난 다음 날 딸아이가 둘째를 가졌다는 기별이 왔다. 가족 톡에 남편은 “딱 너 같은 딸 낳아라.” 라는 축하의 덕담을 남겼다. 딸아이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은 기쁨이면서 짠한 마음 또한 그지없다. 날씨가지 꾸물거리니 오늘 퇴근 후에는 가을비 떨어지는 이 소리를 소주랑 함께 삼키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진다. 술이 없이는 고독할 수가 없다. 가을이 깊어간다고, 겨울이 가까워진다고, 밤은 점점 길어지는데 내 맘에 마땅한 사람 하나 없이 조용히 살다보니 달리 기쁜 일이랄 것도 없고 퇴근 후면 내 술상 내가 차려 자분자분 혼자 마시게 된다. 혼자서도 술병 비우는 일은 그다지 버거운 일이 아니어서 금방 비우고 나면 금세 흠씬 취하고 만다. 습관처럼 그리워지는 아들과 딸에게 습관처럼 전화를 걸고 시처럼 소리처럼 말을 한다. 그러나 자식들이 부모를 걱정하는 것은 내 고독과는 무관한 것이기에 삶의 공간을 넓히는 나만의 방편으로 고독을 자처하여 고독을 극복하려 한다. 아! 술 없이 어찌 이토록 고독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식을 낳고 난 후에 부모마음 알 것 같더니 자식을 출가 시켜보니 자식을 보내는 마음과 새 식구를 맞이하는 마음을 훤히 알 것 같다. 낳아 놓고도, 길러 교육시켜 놓고도 그리고 직장 잡아 안정 된 후 결혼까지 마무리해주고도 끝이 없는 자식에 대한 이 사랑을 어쩌랴. 부모는 자식한테 늘 져 주는 게 순리라고 한다. 그러다보면 자식은 철이 든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를 위해 조건 없이 희생하고 이유 없이 이해해주고 기한 없이 참아주고 기다려줄 사람은 부모밖엔 없다. 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뭘 잘해서가 아니라 자식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하고 아껴줄 사람도 오직 부모뿐이다. 그런데 이 같은 마음은 부모입장에서 갖는 마음이라야 한다. 자식이 부모는 이래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특별하지만 내 딸에게 나는 내 어머니만큼 훌륭하지 못해 미안했고 나 보다 훨씬 훌륭한 딸이어서 감사한다. 듣기 좋은 말로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보석이라 한다. 아마도 아이가 어려 부모의 의도대로 할 수 있을 때에 맞는 말인 듯하다. 그러나 미운 7살이 지나고 나서도 보석일수 있는지는 사람 구실하면서 열두 번 변한다는 옛말처럼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딸아이가 큰애를 키우면서 수시로 모범답안을 들여다보듯 “엄마 나는 이맘 때 어땠어?” 라는 질문에 나도 딸아이 키울 때를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해 준적도 없었을 뿐더러 어깃장을 놓아도 오냐오냐 해 준적도 없었다. 그러함에도 부모의 말 한마디에 열 마디로 꼬박꼬박 말대꾸 한 적 없었던 내 아이들이었다. 아침에 깨우느라 고성한 번 오갈 필요 없었고 자기방 청소 좀 하라 목소리 담 넘어간 적 없이 키웠으니 두 아이들에게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물론 자식이 다 자라 철이 들 때까지 몸에 손대기는커녕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고도 자식을 반듯이 키운 부모들은 수없이 많다 그런 경우 분명 부모와 자식 간의 조화는 상대적이라 본다. 부모의 말 한마디에 척척 알아서 나머지를 행동해주는 자식도 있고 말 없이도 일찍 철이 들어 부모의 근심을 들어주는 자식들도 있고 간만에 크게 혼이 나고 나서야 행동을 수정하는 자식들도 많다 어느 부모건 자기 자식이 귀엽지 않은 경우도 없고, 자식들의 행동을 나무라기를 즐기는 경우도 없는데 부모의 마음과 지식들의 마음이 항상 같은 방향이나 목적지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시기가 항상 동일하지는 않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어쨌든 딸아이가 둘째를 가졌다니 남편의 덕담처럼 내 딸 같은 딸만 낳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