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문학＞2018, 여름호 계간평

<시조문학>2018.여름호 계간평 여름호에서 만난 다양한 가락의 연주 野城 이도현 (국제펜한국본부 자문위원)   <시조문학>이 1960년에 창간되어 올해 58년째를 맞이한다. 한국시조큰사전(1985‧을지출판공사)에 기록된 한국시조시사연대표에 의하면 그 해 전국시조시인이 34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동안 <시조문학>을 통하여 등단한 시조시인이 약 800명에 이른다 하니 <시조문학>이 한국시조시단에 기여한 공적이 지대하였음을 가늠할 만하다. <시조문학>을 창간하시고 공을 세우신 故月河 이태극 선생님과 뒤를 이어 지금까지 수고하시는 김준 교수님께 경의를 표한다. 앞으로 <시조문학>이 더 큰 몸짓으로 불리고 확장하여 우리 시조를 전승하고 창달함에 견인차(牽引車) 역할을 감당할 것을 기원해 마지않는다.   이번 여름호에 실린 38명의 작품 176편을 일별하면서 그 작품들이 마치 금강산의 만물상을 보듯 각기 다양한 가락으로 개성을 발휘하면서 연주되고 있음을 보았다. 먼저 소시집에 실린 김영애 시인의 작품을 보자   익어가는 가을빛을 물고 나는 멧새 떼 먼 산이 붉는 소식 함께 업고 오더니만 산국(山菊)이 조는 들에다 바람 한 점 부린다.   빈 하늘에 가끔씩 기러기가 날아들고 댓잎이 몸 부비며 마른기침 재울 때에 고개를 넘어 온 낮달 가을빛을 두른다.   토도독 꿀밤소리 앞세우고 걷는 길이 아무도 없다는 걸 내 벌써 알았는데 한동안 잊었던 얼굴, 나도 마주 웃는다. -김영애의 <가을에 서서>전문   김영애 시인의 <가을에 서서>전문이다. 조용히 물들어 가는 가을 풍경화 한 폭을 눈앞에서 본다. 세 수로 된 연시조 ‘3장 6구 12소절’ 정형(定型)을 한 치도 어김없이 제자리에 놓으면서 시조의 멋과 맛을 살린 가작을 만난다.급하게 서둘지도 않으며 조용조용 다가서는 가을의 행차가 적당한 템포로 보법을 유지하고 있어 더욱 정감을 자아내고 있다. 금년 여름처럼 뜨거운 여름 있었으랴, 가마솥에 찌는 폭염, 언제 또 보았으랴. 100년 만에 찾아온 계절의 마력을 어찌 막을 수 있었던가? 가을은 그냥 오지 않는다. 찌는 듯한 삼복(三伏) 허리를 지나 요동치는 태풍이 하나 둘 쯤 지나간 뒤에야, 아니 왕매미 흐드러진 울음이 마을 숲을 온종일 흔들어 대야 비로소 산국(山菊)이 조는 들에다 가을바람 한 짐 부린다. 토도독 꿀밤소리 앞세우고 걷는 호젓한 가을 길! 뜨거웠던 무더위로 한동안 잊었던 얼굴, 이젠 마주 보며 웃어보자. 잘 다듬어 진 가을 시편이다.   미련으로 가득 찬 트렁크를 내던지고 또 다른 생을 찾아 이륙하고 싶을 때, 사랑은 수신인도 없이 그리움으로 달려온다. -박영우의 <공항에서>전문   툭 하고 조간에서 떨어진 활자들이 고여 있는 어둠의 틈 계단과 복도 사이를, 새떼로 날아오르며 활개 치는 또 하루. -박영우의 <새벽 네 시>전문   박영우 시인의 소시집 중에서 단시조 <공항에서>와 <새벽 네 시> 두 편을 선했다. 싱싱한 언어, 활기찬 보법(步法)이 그리움으로 달려오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훌훌 떨고, 낯선 이국땅에서 수신인은 없어도 또 다른 새로움을 찾고자 비행기 트랩에 오를 때의 희열을 이처럼 묘사할 수 있을까? 또한 새벽 네 시에 잠을 깨어 조간신문과 함께 하루를 여는 박시인의 아침이 부럽기만 하다. 새떼로 날아오르는 ‘아침의 비상!’ 얼마나 건강하고 긍정적인 하루의 시작인가? 고여 있는 어둠의 틈을 깨고 활개를 치는 역동적(力動的)인 분위기다. 박시인은 그의 시작노트에서처럼 항상 젊고 어린 기분으로 인생을 살고 있기에 작품 또한 젊지 않은가? 건강한 하루는 새벽에서 시작하고, 풍요로운 한 해는 이른 봄에서 시작한다. 박 시인은 필경 건강하고 복된 나날을 맞이할 게다. 경쾌하고 사랑이 넘치는 밝은 작품이다. 세월이 헐떡이며 칠십 고개 넘어서니 등 굽은 기둥 하나 민둥산 떠받들고 상천(上天)을 지나던 태양 서녘하늘 물들인다.   태엽을 감아볼까 거꾸로 돌려볼까 모든 무대 되돌리고 나이테도 풀어내어 동산(東山)에 춤추던 태양 다시 품고 싶어라. -정진상의 <노욕(老慾)>전문   정진상 시인의 <노욕(老慾)>전문이다. 만추(晩秋)! 늦가을 동산에 제철로 익은, 그래서 서녘하늘 곱게 물들이는 잘 익은 과일! 정물화 한 폭을 본다. 첫수에서는 인생 칠십 고개를 넘으면서 ‘등 굽은 기둥 하나 민둥산 떠받들고/ 상천을/ 지나던 태양/서녘하늘 물들인다’ 고 노경(老境)의 분위기를 멋지게 표현하고, 둘째 수에서는 태엽을 감아도 보고, 거꾸로 돌려도 보고, 무대도 되돌려 나이테도 풀어 젊음을 다시 부르고 싶다고 욕망을 하소연 한다. 마치 이 작품은 고려 말 우탁(1262~1342)시인의 탄로가(歎老歌)를 방불케 하는 작품이다.「춘산에 눈 녹인 바람 건 듯 불어 간 데 없다// 적은 덧 빌어다가 머리 우에 불리고저// 귀 밑의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가 하노라」 700년의 시차를 두고 예와 이제가 아득하게 멀지만 어쩌면 이렇게 내용은 닮았을까? 늙음을 탄식하고 젊고 싶은 욕망은 같아서일까? 공자도 인생 칠십을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 했으니 하고 싶은 것 마음을 따르되 지나침은 금물이니 가히 삼가야 할 일이다. 인생은 70부터란다. 100세 시대가 도래 하지 안했는가? 희망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 것이니 좌절하지 말자. 인생에겐 리허설이 없다. 꿈을 갖고 정진상 시인처럼 동산(東山)에 춤추는 활기찬 태양을 다시 불러 희망찬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멋지게 살자.   오늘은 또 어디서 바람이 불 것인가 허공은 자유의 품 그리고 지름길인가 한 시대 짙은 안개가 대문 밀고 있는가. -김교한의 <방황>전문   무심코 놓아버린 강물은 서로 안고 무거운 굽이에서 다투어 빠져나와 새로운 시야를 넓히면서 봇물 되어 너그럽다. -김교한의 <강물 앞에서>전문   신작특집 김교한 시인의 <방황>과 <강물 앞에서> 두 작품을 보자. 1966년 <시조문학>3회 천료로 등단한 원로시인의 작품이다. 시인은 지금 현실에 대한 불안과 걱정,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방황하고 있다. 누가 이 시인을 이렇게 방황하도록 만들었는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이념과 세대의 갈등,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불안과 공포로 현실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강을 건넜으면 나룻배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산을 정복했으면 잔가지는 그대로 두라. 역사의 기록은 후일 뒷사람의 몫이다. 작품 <방황>에서 주종을 이루는 시어 곧 바람, 허공, 안개가 함의(含意)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공포, 불안, 어둠, 불확실성 바로 그것들이다. 또한 작품 초, 중, 종장의 맨 끝 어휘를 설의법(設疑法)으로 종결하여 이러한 불안 요소들을 독자로 하여금 더 생각하고 공유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김 시인이 걱정하고 있는 이러한 불안 요소들이 이 땅에서 언제 끝날 것인가? 한 시대를 풍미(風靡)하고 있는 짙은 안개는 언제 개일 것인가? 희망의 밝은 미래를 함께 기대해 보는 것이다. 때문에 김 시인은 작품 <강물 앞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바꾼다. 좌절에서 희망으로 반전한다. 강물 앞에서 강물이 되어 무거운 굽이에서 빠져나와 서로 안고 새로운 시야를 넓히면서 봇물 되어 이를 포용하면서 너그럽게 살고자 한다. 일찍이 노자(老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하였으니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낮은 데로만 흐르는 법, 김 시인은 시끄러운 세속에서 물들지 않고, 방황하지 아니하고, 차라리 무위(無爲)의 세계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강물처럼 살고자 한다. 이 시대 원로시인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경륜이 담긴 작품을 우리는 지금 읽고 있다. 움츠린 세상일들 이제야 불이 붙는, 견고한 물소리도 봄볕에 꺾여 진다 하늘은 시치미 떼고 나 몰라라 앉은 날   산등성 머리맡을 가지런히 헤집으며 내밀한 언어 속을 계절이 오고 있다. 느꺼이 꺼내서 닦는, 다 못 그린 풍경화   고요한 길목으로 아득히 길을 내며 봉오리 꿈이 한 채, 그 안에 내가 들면 소슬히 구름 꽃 피우고 깨금발로 가는 봄날. -김민정의 <꽃섶에서>전문   김민정 시인은 1985년 <시조문학> 지상백일장 장원으로 등단하여 시조와 수필 그리고 평설까지 두루 섭렵하고 문단에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여류 시인이다. 먼저 그의 시작노트를 보자. “어느 새 신록 가득한 오월이 내 앞에 펼쳐진다. 연초록 잎새들이 꽃보다 더욱 어여쁜 오월 앞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이 기쁘다. 오월을 바라볼 수 있고, 오월을 호흡할 수 있어 나는 참으로 행복하고 즐겁다. 오월같이 맑고 싱그러운 시를 쓰고 싶다.” 그의 시작노트에서와 같이 5월의 신록, 5월의 꽃섶을 찬양한다. 얼어붙은 겨울을 깨고 조용조용 봄이 오는 정경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가락으로 미화하고 있다. 참으로 경쾌한 리듬이다. 시조의 묘미는 종장에 달려 있다. 그러기에 시조를 종장의 미학이라 하지 않는가. 이 작품 세 수에서 종장을 보면 ‘하늘은 시치미 떼고 나 몰라라 앉은 날’, ‘느꺼이 꺼내서 닦는, 다 못 그린 풍경화’, ‘소슬히 구름 꽃 피우고 깨금발로 가는 봄날’의 표현은 일품이다. 초장, 중장에서, 금시 내세운 말을 언제 했던가, 시치미 뚝 떼고 종장에서 반전(反轉)한다. 노련한 솜씨다. 또한 종장 모두 명사로 종결하여 여운을 남기면서 독자들의 상상을 유도한 점 또한 놀랍다. 세 수 모두 정형을 철저히 지키면서 자연스럽게 유려한 가락으로 은유한 솜씨가 보통을 넘어 선다. 읽을수록 정감이 넘치는 작품이다.   황량한 이 바닥에 어찌 사나 내 물으니 덩치는 좁히고 몸은 납작 눕혔단다 훗날을 기약하는 법 한신(韓信)에게 배웠다나. -류준식의 <백두산에서>전문 -초목에게   류준식 시인은 지금 백두산 정상에 올라 그 정상에 서식하는 초목과 대화 하고 있다. 2744미터 고지에서 추위와 바람을 이기고 사는 법을 초목에게 물으니, 덩치는 좁히고 몸은 납작 눕혔다고 대답한다. 이렇게 살아서 훗날을 기약하는 방법을 한신(韓信)에게 배웠다는 내용이다. 한신(韓信)의 고사-과하지욕(袴下之辱);한신은 사타구니 밑을 기어가는 굴욕을 당하고도 훗날 한나라 건국공신이 되었다는-를 인용하여 단시조 한 편을 거뜬히 지었다. 명품악기는 그 소재가 고산준령에서 풍설과 싸워 이긴 나무로 만들어 진단다. 그렇듯 고산준령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역시 자기 몸을 최대한 낮추어 모진 풍설을 견디어 내는 것이다. 그렇게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은 나무가 명품악기로 탄생하는 것이다. 류 시인은 그의 시작노트에서 “퇴직 후 어찌 사나? 그것은 기우였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시조라는 삶의 날개를 예비하고 계셨던 것이다.-중략-조나단의 꿈은 내게도 있다고” 술회하듯, 류 시인은 퇴직 후 하나님께 귀의(歸依), 신앙생활로 일관하면서 몸을 낮추어 시조를 쓰고 활력을 얻는다. ‘덩치는 좁히고 몸은 납작 눕히고’ 마치 한신(韓信)장군이 사타구니 밑을 기어가는 낮은 자세로 조나단의 꿈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한나라의 한신처럼 개국공신이 된다는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죽어야 하나님이 보인다는 참 신앙인의 자세, 겸손하고 경건한 하늘을 향한 삶의 윤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묻고 대답하는 문답법(問答法)과 고사를 인용하여 시를 구성하는 노련한 솜씨가 자연스럽게 융합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사월의 초인종이 다급하게 울린다 앞집과 뒷집 사이 꽃샘에 부풀다가 단숨에 터져버렸다. 온 동네 술렁인다. -공화순의 <벚꽃 스캔들>전문   여름 다 사르고 들판을 비워내는데 불쑥 찾아온 서리 단풍에 꽃불 붙는다 국화꽃 향기 잣는 밤 홍시 하나 쿵, 진다. -공화순의 <상강>전문   공화순의 작품 단시조(單時調) 두 편이다. 단시조는 긴장과 압축이 생명이다. 여기에 위트(Wit)까지 곁드리면 금상첨화다. 공화순의 상상은 신인답게 신신한 맛이 있어 좋다. ‘벚꽃 스캔들’ 이란 제목부터 독자를 긴장시킨다. ‘벚꽃’과 ‘스캔들’의 이질적 요소의 결합이 묘한 뉴앙스를 연출한다. ‘단숨에 터져버렸다’ ‘단풍에 꽃불 붙는다’ ‘홍시 하나 쿵, 진다’ 등의 진술이 독자를 긴장의 도가니로 끌어들인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묘를 여기서 본다. 공화순은 언어를 마음대로 다루는 연금술사다. <벚꽃 스캔들>과 <상강>은 봄과 가을을 대표하는 제목(소재)으로 서로 대조를 이룬다. 두 제목의 특성을 살려 어쩌면 이렇게 실감나게 표현하여 제목을 소화시킬 수 있을까? 두 작품을 이어서 보자. 봄인가 했더니 가을이다. 벚꽃으로 온 동네 술렁이더니 어느새 불쑥 찾아 온 서리, 홍시 하나 쿵, 진다. 참으로 놀라운 상상이다. 여기에 ‘불쑥’이라는 단어가 일품이요, ‘쿵’ 다음에 쉼표를 찍은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공화순은 작품을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시어 하나하나를 손으로 그려서 형상화(形象化) 한다. 위의 두 작품은 우리들 눈앞에서 금시 펼쳐지는 듯 입체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봄과 가을, 두 폭 동영상이다. 시각과 청각을 반죽하여 공감각으로 독자를 긴장시키는 기법,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다.   안 되는 거 있으면 안 되는 거 하지 말 것 뒷방차지 인정하고 입 다물고 돈 내 놀 것 경험은 말하지 말고 세 가지는 지켜라. -권도중의 <70>전문   권도중 시인의 <70>전문이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웃음이 절로 나올 만큼 성공한 작품이다. 여기서 70은 나이를 가리키는 숫자요, 노인 세대를 가르킴이다. 70세 이상 노인들은 1) 안 되는 일 하려 말고 2) 뒷방 차지 인정하고 입은 다물고 돈은 내놓으며 3) 지난 이야기는 말하지 말고 위의 세 가지는 꼭 지키라고 교훈한다. 맞는 말이다. 권 시인은 요즈음 항간에 떠도는 유머를 활용하여 재미있게 작품 한 수를 거뜬히 완성했다. 웃음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답답한가? 일소일소(一笑一少 )요 일노일로(一怒一老)다.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고, 한번 노하면 한번 늙는다. 탈무드에서는 ‘수업에 유머를 곁들여라’ 라고 한다. 그러면 친밀감이 생기고, 기분이 전환되고, 집중력이 높아져서 수업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최근에 발간한 “유머를 알면 인생이 바뀐다”는 박봉주 시인의 유머의 인문학 서적이 서점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작품 <70>에서는 유머의 말놀이(Pun) 곧 언어유희를 이용하여 독자들을 한바탕 웃김으로 분위기를 반전(反轉)시키고 마음을 정화(淨化)함에 성공한다. 시는 대체로 시인의 체험과 상상을 다른 사물로 형상화(形象化) 하거나 치환(置換)하여 시를 성립시키는데 여기서는 직정(直情), 곧 유머감각으로 곧장 한편의 단시조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이러한 유머기법(Pun기법)을 작품창작에 잘 활용하면 시조 창작은 물론 일반의 관심을 제고하고 흥미를 유발하여 시조광장으로 독자를 유치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본다.   민들레 혼자 남아 봄을 앓는 밭두렁에 나비의 경이로운 춤사위가 살아난다. 어머니 등에 얹히는 두어 송이 어린 햇살. -김광순의 <고향 시첩(詩帖) ‧ 1>전문   김광순 시인의 <고향시첩 ‧ 1>이다. 어린 시절 고향의 정경이 가까이서 다가오듯 동영상으로 찍어낸다. 고향엔 다 돌아가시고 민들레 혼자 남아 봄을 앓는 곤고한 밭두렁을 지킨다. 밭두렁 위엔 나비가 춤사위를 펼치며 옛날을 떠올리고,,, 그때 화자의 어머니 등엔 두어 송이 어린 햇살(화자?)이 업혀 있다. 농촌에서 밭두렁을 일구며 성장한 곤고(困苦)했던 시절을 민들레로 상징하고, 어머니 등에 업혀 성장한 화자(?) 자신을 햇살로 환치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야 누군들 없으랴만 김 시인은 고향을 생각하고, 추억하고, 그리고 애틋하게 어머니를 애모하는 사랑이 누구보다 곡진하다. 어린 시절 우리네 고향은 모두 어렵고 힘들었다. 고생하신 주인공들이 이제 훌훌 떠나고 노란 민들레가 텅 빈 들녘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비의 춤사위가 다시 살아나고, 가신 어머니 등엔 두어 송이 어린 햇살이 침묵으로 얹히는 사무쳐오는 그리움의 고향이 눈시울을 적신다.   흐린 물 진흙 속에 뿌리내려 살면서도 티 하나 묻지 않고 향기로운 꽃 피웠네. 내 맘에 가꾸는 꽃도 저리 곱게 피었으면 -박필상의 <연꽃>전문   박필상 시인의 <연꽃>이다. 연꽃은 불교의 상징물이다. 더러운 늪이나 연못에서 자라면서 펄 흙에 물들지 않고, 맑고 미묘한 향기를 간직한다. 이러한 연꽃의 속성이 불교의 이상과 부합되어 청정과 고결 그리고 미묘(美妙)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이러한 연꽃은 향(香), 결(潔), 청(淸), 정(淨)의 네 가지 덕을 갖는다고 한다. 불보살이 앉아 있는 자리를 연꽃으로 만들어 연화대라 부르는 것도 번뇌와 고통과 오욕으로 뒤덮인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도 고결하고 청정함을 잃지 않는 보살을 연꽃의 속성에 비유함이다. 박시인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시인 자신도 연꽃처럼 곱게 맑은 향을 뿜으며 살고자 한다. 세속을 초월하여 연꽃처럼 향, 결, 청, 정의 네 가지 덕을 갖추고 살아가는 세상이 올 것인가?   사방천지 도화지에 그리기 연습한 햇살 이렇게도 그려보고 동영상도 찍어보고 온 종일 연습만 하다 빈손으로 돌아간다. -백민의 <그리기 연습한 햇살>전문   백민시인의 <그리기 연습한 햇살>전문이다. 햇살(해님)은 만상(萬象)을 생성, 소멸케 하는 위대한 동력이다. 천지의 만물을 만 가지로 만들다가 그것을 일순간에 무너뜨리는 크나큰 힘을 갖는다. 어쩌면 조물주 아니면 신과 같은 위대한 능력을 갖는다. 그런데 시인은 이 햇살을 그리기 연습만 하다 빈손으로 간다고 한다. 멋진 상상이요 큰 그림이다. 여기서 사방천지 도화지는 무엇을 말하는가? 거대한 우주를 말함이다. 거대한 우주를 하얀 도화지에 비유한다. 해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종일 하얀 도화지에 숱한 그림을 그린다. 물고기도, 잠자리도, 새도, 고양이도, 독수리도. 사람도 그린다. 우주안의 모든 생물을 살피고, 살리고, 생성 소멸하며 주재(主宰) 하신다. 햇살은 곧 해님이요, 하느님이요, 신이다. 햇살 곧 해님은 온 세상에 천 가지 만 가지 은혜를 내리면서 아무런 말도 없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빈손으로 돌아간다. ‘온 종일 연습만 하다 빈손으로 돌아만 가는 햇살’ 독자를 묵상하게 만드는 대목에 자꾸만 시선이 멈추는 까닭은 무엇인가? 너무 크신 은혜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이제부터 은혜하며 살자.   파운데이션 톡톡 두드려 오늘을 포장하고 루주 곱게 발라 웃음도 덧칠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몸짓 꽃물 들어 환하다. -윤진옥의 <화장하는 날>전문   윤진옥 시인의 <화장하는 날> 전문이다.화장은 자기표현이요, 희망이며, 또 다른 몸짓이다. 여자가 거울 앞에서 화장할 때처럼 기쁘고 행복한 시간 있는가? 시인은 지금 화장대 앞에서 무대 연출 직전의 준비를 하고 있는 시간이다. 너무 긴장하여 서두르면 엉망이 되고, 그렇다고 집중하지 않으면 화장의 효과가 반감된다. ‘파운데이션 톡톡 두드려 오늘을 포장하고// 루주 곱게 발라 웃음도 덧칠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몸짓 꽃물 들어 환하다’ 읽을수록 멋이 있고 감칠맛 나는 작품이다. 어디 해설이 필요할까. 잘못 건드리면 옥에 티를 묻힌다. 어디 군더더기가 한 올이나 묻어 있느냐? 시인이 쓴 그대로, 표현한 그대로 읽으면 감상은 끝난다.   시조를 어렵게 쓰지 말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연스런 가락에 올려 감각적으로 구워내면 된다. 이때 쓰는 과정은 무쇠를 담금질 할 때처럼 고뇌하고 밤을 새울 때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쉽게 읽혀져야 한다. 초장과 중장은 3, 4, 3, 4 반복리듬이요, 종장은 3, 5, 4 ,3으로 반전한다. 또한 의미의 율격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따라서 외연(外延)과 내포(內包)가 팽팽하게 긴장되면 더욱 금상첨화(錦上添花)다. 너무 자수(字數)에 치중하다 보면 시조가 예술적 감각에서 멀어지고, 그렇다고 틀을 벗어나면 정형에서 제외되어 자유시가 된다. 이것이 시조의 보편적 창작 기법이다. 신인들은 이 기초적인 원리를 터득하면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화자가 지금 화장대 앞에서 또 다른 몸짓을 위해 꽃물을 들이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실상을 보는 듯 실감 나는 작품이다.   다음으로 여름 시조단에 나와 있는 작품을 보자.   총명한 눈 흐리다고 답답해 하지마소 볼 것은 다 봤으니 못 볼 것은 안 봐야지 내일엔 마음눈 뜨고 속사람을 밝히 보소.   밝던 귀 먹었다고 불평일랑 하지마소 들을 말 다 들었고 몹쓸 말만 남았다오 정녕코 더 들을 것은 이녁 가슴 소리요.   상아처럼 곱던 이가 흔들리고 빠지는 건 드실 만큼 드셨으니 소식(小食) 소식(素食) 하라는 뜻 혀조차 맛을 잃으니 인생 맛을 어쩌리. -강성효 의<거듭나기>전문   강성효 시인의 <거듭나기>전문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이목구비가 노쇠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노년에 접어들어 이목구비가 제 구실을 못한다고 답답해하거나 불평을 하지 말고 마음눈 다시 뜨고 속사람을 밝히 보라고 시인은 충고한다. 첫수에서는 눈, 둘째 수에선 귀, 셋째 수에선 이가 무너져 내림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각수의 종장에서 첫수에선 마음눈을 뜨고 둘째 수에선 이녁 가슴 소리를 더 듣고 셋째 수에선 소식(小食) 그리고 소식(素食) 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여기서 마음눈은 지혜의 눈이요, 이녁 가슴은 자기의 양심, 소양이요, 소식(小食)은 적게 먹고, 소식(素食)은 성찬이 아니라 검소한 식단을 말함이다. 거듭난다는 말은 지금까지의 방식이나 태도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사전적 의미이지만 여기선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를 믿고 영적(靈的)으로 다시 새사람이 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거듭나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성경은 증거 한다. 강성효 시인은 기독교단에서 일찍부터 신학을 전공하고 교회의 직분은 물론 목양문학회에서 활동하는 시인으로 알고 있다. 나이 먹었다고 육신(肉身)이 무너져 내림을 한탄만 하지 말고, 여생을 신앙생활을 통하여 영(靈)을 맑혀 거듭나 보람 있는 인생말년의 탑을 쌓으라고 강 시인은 모두에게 권면한다. 해학적인 분위기로 작품을 구성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를 진정으로 묻고 대답한다.   쌍계사 절문 앞에 우람한 느티들 뿌리는 뿌리 잡고 가지는 가지대로 드러난 시린 어깨를 서로 덮어 따스하다   하나 되라는 법문대로 하나가 되었는가 간절히 당기는 힘 한참 저쪽 끝에서도 기대고 껴안는 수행 춤을 바쳐 올린다. -김소해의 <연리목 출사>전문   앞의 <거듭나기>가 기독신앙인의 신앙시(信仰詩) 라면 <연리목 출사>는 불교 쪽의 선시(禪詩)작품이다. 연리목(連理木)은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두 몸이 한 몸이 된다 하여 남녀간의 사랑에 비유된다. 그래서 ‘사랑나무’로도 불린다. 첫 수에선 쌍계사 절문 앞에 서있는 느티나무가 뿌리는 뿌리대로 가지는 가지대로 연리(連理)되어 시린 어깨를 서로 덮어 따스하다 했고, 둘째 수에선 불가(佛家)의 법문대로 하나가 되어 기대고 껴안는 수행(修行)을 춤으로 환치한다. 나무도 오랜 세월 마주 보고 정이 들면 하나가 되나보다. 김소해 시인은 지금 쌍계사 절문 앞에서 연리목 우람한 느티나무 사랑에 취해 사진 한 장 찍고 있다.   드디어 남북 정상 경계선 넘나들어 한 자리 마주 앉아 허심탄회 나눈 애기 한 민족 하나의 핏줄 가슴깊이 새긴 약속   기름과 물과 같이 하나 되지 못한 반목 칠십년 긴긴 세월 불면증에 못 편 다리 이제는 네 활개 펴고 꿈나라 가려는가 -박청길의 <부푼 마음>일부   박청길 시인의 <부푼 마음> 네 수중 첫째, 둘째 수이다. 시조(時調)는 시절가조(時節歌調)에서 온 우리 고유의 전통시이다. 문학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금년 봄 가장 큰 뉴스라고 할 수 있는 남북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얼마나 목마르게 기다렸던가? 박시인은 부푼 마음으로 펜을 잡았다. 지난 봄 4.27 남북 정상이 판문점 도보다리 벤치에서 마주 앉아 역사적인 해후의 시간을 가졌다. 구체적인 밀담 내용은 전해지지 안했으나 필경 핵을 폐기하고 평화의 나라를 건설하자고, 휴전선을 철폐하고 평화공원을 세우자고, 끊긴 철길을 연결하고 헤어진 오누이의 통한을 풀자고 약속하였으리라. 그런 날이 속히 도래하기를 박시인은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어찌 박시인만의 기다림인가? 우리 온 겨레의 소망이요, 간절한 꿈이다. 통일의 그날이 성큼 다가서기를 기원한다.   큰 눈썹 끔벅이는 아버지 아미산 둥근 가슴 쓰다듬는 어머니 몽산 달려온 만세의 동자들 웃고 있는 다불산   진달래길 따라서 오를수록 고운 세상 손잡고 둘러 앉아 나눌수록 깊은 정 세월이 다 품에 안고 떠오르는 고향의 달   낙목소리 턱을 치고 번갯불 머리 붙어도 애향의 뼈를 짚고 끄떡없이 서있는 뫼 방황이 다 지워지도록 닦아주는 고향땅   정든 길 꽃을 심고 오순도순 사는 마을 황해의 푸른 파도, 소들강문 황금물결 풍요를 거느린 성산(聖山) 무궁토록 빛나리. -박헌오의 <아미산 가족>전문   박헌오 시인의 <아미산 가족>전문이다. 박시인은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고 당진에서 자랐으니 어디가 고향일까? 아미산(峨眉山)은 문헌에서 보면 당진시 면천면 송학리와 순성면 성북리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봄에는 진달래꽃이 많이 피어 민속주로 유명한 두견주를 생산한다고 나와 있다. 작품에서 이렇듯 아미산을 찬양하는 것을 보면 시인은 분명 당진이 고향인 듯싶다. 아버지 아미산, 어머니 몽산, 동자들 웃고 있는 다불산에 진달래꽃이 만발하고 머리위엔 달까지 솟았으니 이러한 봄의 정취를 어디서 맛볼까. 여기에 두견주 한 잔 곁드리면 천상천하 무엇이 부러우랴. 아미산 정상에 오르면 황해의 푸른 파도가 출렁이고, 우편엔 소들강문 끝도 없이 넓은 평야가 가을 황금물결을 이루니 무엇이 부러우랴? 박시인은 참으로 멋진 고향, 풍요의 들녘에서 은혜로운 성산(聖山), 아미산 고향을 노래한다. 아미산, 몽산, 다불산을 가족으로 의인화하여 작품을 재미있게 구성한 솜씨가 돋보인다. 황해는 지금 뱃길이 열려 중국과 교역이 활발하고 머지않아 소들강문엔 황금물결이 풍요의 가을을 노래할 거다. 시인의 고향은 다족하고 풍요롭다. 이상 여름호에 수록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소시집, 신작특집, 단시조, 여름시조단에 수록된 작품들은 한결같이 시조의 정형을 지키고 있었으며, 건강하고 밝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더 많은 작품을 심도 있게 살피지 못한 점이 아쉽다. 작품 중엔 계절의 미감을 찬양도 하고, 노욕(老慾)을 경륜으로 다스린 작품, 고사를 인용하여 세상을 사는 법을 일깨우기도 하고, 불안한 현실을 걱정하기도 한다. 연꽃의 덕을 찬양하며, 멋진 상상으로 큰 은혜를 형상화 한다. 신인은 신인답게 언어구사가 참신하고, 원로는 유머를 이용하여 현상을 정화 하고자 한다. 고향을 애모하며, 종교적 안목에서 대상을 파악하고 충고하며 교훈하는 등 다양한 가락으로 개성을 살려 연주하고 있음을 보았다.   작품 평설엔 정론(正論)이 없다. 지상에 발표된 모든 작품들은 독자의 것이다. 이들 작품 속엔 애매성(曖昧性), 다의성(多義性)이 공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