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겨울별미 간자미 맛에 빠져보세요. 글/사진: 이종원
나트륨 가로등이 길게 이어진 서해의 포구에 들어섰다. 새벽여명이 아늑한 어촌마을의 윤곽을 더듬게 만든다. 작은 포구 이름이 '채석포'라고 몇 번이나 들었지만 깜빡이는 백열등마냥 금방 잊어 버린다. 날은 풀렸건만 새벽 동장군의 기세는 여지 없다. 바람이 불 때마다 칼날이 횡하니 지나간다. 이를 꽉 다물었지만 윗니와 아랫니는 따로 논다. "이 추운 날씨에 매일 나가고 싶것시유? 자식새끼 가르치느라고 이리 생고생 하고 있제." 얼마나 센 바람을 맞아야 병장의 계급마냥 굵은 주름을 새기게 될까? 평생 바다와 함께 살아온 그들의 얼굴엔 순박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오늘은 얼마나 고기를 잡을까? 물 때와 날씨는?그나마 고기라도 많이 낚는다면 개선장군마냥 돌아올텐데.....하긴 그런 희망 없다면 바다에 나갈 이유도 없다. 해가 떠올랐다. 해는 서해바다를 깨우는 자명종이었다. 바다에 촘촘히 박혀 있는 자그만 섬은 여명을 받고 눈을 비빈다. 똥색이든 황금색이든 상관없다. 보는 눈마다 받아들이는 감정들은 다를테니까.....어째튼 바다는 오늘도 어김없이 새날을 시작한다. 포구에서 2시간여를 내 달렸다. 전날 깔아둔 그물을 건져야 한다. 그 넓은 바다위에 표식으로 세워둔 깃발을 용캐도 잘 찾는다. 눈을 씻어도 보이지 않는 깃발이 선장의 눈에는 잘도 보이는 가보다. 눈이 나빠 신문을 읽지 못하는 선장의 눈에서... "그거 못 찾으면 어디 뱃사람이간디..." 질박한 충청도 사투리에는 한평생 산전수전 겪어낸 경륜이 묻어 있었다. 원래 간자미는 오징어잡이처럼 주낙으로 낚아 올렸다. 낚시바늘이 바다밑을 훑고 지나가면서 간자미를 건져 올렸는데 손이 많이 가고 근래에는 간자미마저 귀해 그물을 이용해 다른 고기와 함께 낚는다고 한다. 70여미터 길이의 배구네트처럼 생긴 그물을 바다밑에 깔아두고 2시간여을 기다리면 심해에 있는 간자미가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30여 분 동안 그물을 잡아 당겨도 간자미새끼 한 마리 구경할 수 없었다. 쓸모 없는 불가사리와 야속한 쓰레기만 잔뜩 올라와 보는 이마저 초조하게 만든다.
서해의 겨울은 차가웠다. 옷을 단단히 끼어 입었지만 바람은 용캐 틈을 찾아 파고 든다. 어디 들어가 몸을 녹일 곳도 없다.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추위를 이겨낼 뿐...드디어 간자미 한 마리가 올라왔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낚아 올린 어부보다 오히려 지켜보는 사람이 더 흐뭇하다. '우와...갱개미가 이렇게 생겼네요.' 은근히 충청도 사투리를 쓰고 싶어졌다. "아저씨. 처음 낚았는데 기념 촬영 한번 해야지요." 큼직한 수놈 간자미가 어부의 손에 잡혔다. 곧 횟감으로 직행하는 줄도 모르고 간자미는 희죽희죽 웃고 있다. 어찌나 사람을 닮았는지.... '간자미야. 고마워.' 그 외에도 물메기, 도다리, 삼식이까지 올라온다. 이제 발동이 걸린 모양이다. 한쪽에서 열심히 그물을 올리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물을 예쁘게 정리해야 한다. 이 것도 쉬운 작업은 아니다. 그 손놀림을 눈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왼쪽이 암놈이고 오른쪽이 수놈이다. 암놈이 옅은 루즈를 바른 것처럼 붉으스레하고 수놈은 검푸르며 남성임을 말해주듯 두 개가 고추가 달려있다. 사실 이것도 지느러미라고 하는데.... "수놈보다 붉그스레한 암놈 갱개미가 훨씬 맛있재. 빛깔도 좋고......"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간자미는 웃는 모습을 지우지 않는다. 자신을 인간에게 보시하겠다는 마음 때문인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입을 해죽 벌리고 있다. 이걸 잡아 먹으려니 영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납작한 모습이 광어에 뱀꼬리를 달랑 붙여 놓은 것 같고, 모양으로 따지면 영락없이 가오리와 홍어와 다를 바 없다. "가오리는 간자미의 사촌쯤 되고, 홍어는 육촌쯤 되유. 홍어는 뽀족한 주둥이를 가지고 있지만 간자미는 뭉뚝한 주둥이를 가지고 있어요." 그물을 두 개나 건져 올렸는데 10마리쯤 건졌나? 신문엔 연일 간자미 풍어라고 떠들어 대는데 바다에 나가면 간자미를 보기 힘드니 죽을 맛이라고 한다. 선장은 잡은 10마리중 4마리를 횟감으로 내어 놓는다. "몇 마리 잡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주시면 어떻해요?"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이렇게 나눠 먹어야 다음 그물에는 고기가 많이 걸리지유." 껍질을 벗기고 큼직하게 회를 송송 썰어낸다. 파르르 떨리는 꼬리를 보니 싱싱함과 애절함이 교차한다. 살 속에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지만 워낙 부드러워 뼈 채로 잘근잘근 씹는다. 어쩌면 이 맛 때문에 겨울 간자미를 찾는지 모른다. 역시 찬바람이 불고 눈이 펄펄 내리는 요즈음이 가장 맛있다. 사시사철 잡히지만 11월부터 3월까지가 뼈가 가장 연하고 육질이 담백하고 고소하기 때문이다. 수온이 높아지면 육질이 무르고 뼈가 단단해져 특유의 오돌오돌한 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좌판이 벌어졌다. 바다에서 갓잡아 올려서 그런지 간사한 혓바닥이 스르르 무너진다. 심해의 차가운 온도가 전해지고 바다향기가 풀풀 묻어 난다. 초고추장에 푹 찍어도 좋지만 상큼하게 삭혀진 김치에 싸서 먹는 맛이 최고다. 금년 겨울미각여행의 최고 하일라이트다. 잘근잘근 씹히는 간자미 뼈와 살과 겨우내 푹 익은 김치와 어우러져 환상의 궁합이 이어진다. 이쯤되니까 술생각이 절로 난다. "선장님..꼬불쳐 둔 소주 없어요?" "조업하다가 소주 마시면 안되는디...."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의 손에는 벌써 대병 소주가 들려져 있었다. 고기 낚는 것은 잊어 버리고 한 바탕 술판이 벌어졌다. 회, 김치, 소주등 온갖 차가운 것을 들이 부었는데도 뱃속은 따뜻하다. 차가운 것을 아우르는 뱃사람의 정도 함께 먹었나보다. 노래 한가락이 어우러졌으면 더없이 좋으련만... 갑판장이자 요리사인 선원이 듬성듬성 배를 가르고 누런 것을 꺼낸다. "이거 한번 드셔 보세유." 바로 간재미 간이다. 단단한 간재미 살과는 달리 흐물흐물하지만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이것이 정력에 죽여유." 그 소리 때문인가 자꾸 젓가락이 간으로 간다. 어두일미라고 했나? 간자미의 가장 맛있는 곳은 머리통 부위란다. 쫄깃쫄깃하고 잘근잘근 씹히는 맛을 잊을 수 없다. 세월아..내월아..하다가는 고기 잡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물을 다시 드리웠는데....아까와는 달리 잘도 올라온다. "거봐유...이렇게 베푸니까 고기가 올라 오잖아유." 뱃사람의 팔뚝의 심줄에 더욱 힘이 간다. 고기가 줄줄히 올라오자 탄성이 튀어 나온다. 피로와 고단함은 바다에 쏟아 버리고 이제 희열만을 건져 올릴 차례다. 그래도 오늘 조업은 형편 없었다. 5명이 9시간을 바다에서 고생한 대가가 겨우 간자미 30kg. 경매가로 25만원 정도 되지 않는다. "매일매일 잘 잡히면 재미가 없잖아유. 안 잡힐 때도 있어야지." 인건비는 고사하고 기름값도 건지지 못했건만 넉넉한 뱃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눈물 겹도록 고맙다. 짧은 시간이나마 바다에서 이들과 함께 했다. 정말 고단하고 힘들었다. 바다에서 낭만을 찾고 애절한 감성의 글을 적는 것이야 말로 이들에 대한 모욕이었다. 바다는 처절한 삶의 현장이었다. 추위와 바람에 싸워야 하고 힘겨운 노동의 연속이었다. 더욱 서러운 것은 그나마 고기마져 건져 올리지 못한다면 그들의 하루 노고는 물거품이 된다는 것이다. 눈 한번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빚더미에 허덕이면서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바다로 향한다. 바다는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삶의 터전이며 어머님 품안같은 고향이기 때문이다. 바다가 없다면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겠어요. 그래서 그들은 바다를 고마워 하고 사랑한다.
남편을 바다로 내 보낸 아내는 선창가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무사했것지. 고기도 많이 잡았것제.' 선창가에서 남편을 맞이하는 아내의 모습은 거룩한 성화를 보는 것 같이 성스럽다.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리라. "오늘도 벨로 못잡았어" 가느다랗게 내밷는 남편의 푸념에도 아내는 환한 미소를 화답해준다. 힘들게 일하고 온 남편이 그저 고맙기 때문이다.
방파제에 세월을 낚고 있는 강태공이 보인다.
1. 간자미 회 겨울바다에서 바로 잡은 간자미를 듬성듬성 썰어 신김치를 싸서 먹는 맛이 최고다.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바다 내음이 입안 가득 퍼진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소금간장을 찍어 먹어도 좋다. 오른쪽 노란 것이 간이다. 미식가들이 가장 즐겨찾는 부위다. 간자미 회를 썰 때 물로 씻어서는 절대 안된다. 간자미의 피부는 미끄러운 점액질로 덮어 있어 물로 닦아내면 이 점액질이 씻겨지지 않아 고생하게 된다. 전라도에서는 간재미, 충청도에서는 갱개미라고 부른다.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맛을 낸다. 특히 서해에는 갯벌이 발달되어 영양염류를 먹고 자라 맛이 좋다고 한다. 태안반도의 만리포, 천리포, 안면도, 천수만 보령, 서천까지 어장이 형성되어 있다.
2. 간자미 회무침 고추장과 식초, 참기름, 오이, 대파, 미나리등 갖은 야채와 배를 썰어 넣어 버무려 참깨을 얹으면 간자미 무침이 된다. 싱싱한 야채와 오돌오돌한 회가 어우러져 감칠맛을 느끼게 한다. 홍어처럼 톡쏘는 맛이나 비린내가 없어 회를 못먹는 사람도 좋아한다.
3. 간자미 찜 간자미 한 마리에 갖은 양념을 얹고 통채로 쪄먹는데 절묘한 양념이 음식 맛의 성패를 좌우한다. 속살에 양념이 어떻게 배이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하얀 육질에 간장이 살며시 밴 찜은 워낙 맛갈져 밥도둑이란 소리까지 듣기도 한다. 4. 간자미 탕 무와 양파, 그리고 신선한 야채, 신김치와 싱싱한 간자미를 넣고 바글바글 끓인다. 간자미탕의 절묘한 맛은 김치에서 나온 것 같다. 맛이 시원하고 얼큰해서 숙취해소에 그만이다. *간자미 회는 4인기준 2-3만원이면 먹을 수 있다. 안흥항, 모항, 백사장항등에서 간자미 맛 볼 수 있다. 그러나 채석포항, 청산포항처럼 조용한 선창가 횟집을 찾는 것이 값도 저렴하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아늑한 포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여정은 없으리라. 환동횟집 041-674-0799 태안군 근흥면 도황리(채석포)
*주의 모든 원고와 사진의 저작권은 저작자에 있습니다. 사전동의 없이 무단게재 할 경우 저작권법에 저촉됩니다
|
첫댓글 와~맛잇겠다.....울 동네에선 가오리라고 부르는디.....삐들삐들 말려서 양념얹고 쪄 먹어도 맛있는디...이름은 달라도 해 먹는 방법은 다 같은가 봐요....태안반도로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그 쪽으론 통 안가봤어....
맞아요 가오리를 간자미라고 하는걸 오늘 알았네요 뼈째로 다 먹을 수 있어 참 좋은데 쫄깃하고 부드러워서---아--입에 침 고이네요 난 설에 친정가서 먹어야지-----------
간재미는 서해안 중남부 지역에서 잡히는 가오리과의 심해어다. 진도·흑산도 일대에선 ‘간재미’라 하고, 충청권에선 ‘강개미’라 부른다. ‘갱개미’라는 방언으로 불리기도 한다. 간자미는 가오리 새끼의 이름이라고 하네요. 저도 잘 몰라서 네이버에서 찾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