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 <미싱 타는 여자들>
1.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60 전후의 세 여자가 등장해 미싱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들은 오래 전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일했고 투쟁했던 노동자들이었다. 다큐 <미싱 타는 여자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 이후, 평화 시장을 비롯한 주변 노동자들은 ‘청계 피복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활동하기 시작한다. 열악한 근무 조건을 개선하고 받지 못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협력한 것이다. 영화는 당시 근무했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증언으로 재구성된다. 1970년대 가장 음지에서 고통받았던 약자들의 이야기이며, 그들을 사회적으로 무시했던 우리 사회의 민낯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2. ‘시다’로 불렸던 10대 아이들은 부모의 방관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일을 해야 했다. 이들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은 같이 모여서 공부할 수 있는 ‘노동교실’이었다. 1973년 어렵게 시작한 노동교실은 중간의 폐쇄의 위협을 극복하고 노동자들의 배움터이자 휴식터로 제 역할을 충분히 다하였다. 노동자들의 소망은 근로기준법에 있는 ‘8시간 노동’이 아니라, 밤 8시 30분에 시작하는 노동교실에 참석할 수 있도록 8시 이전에 근무가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그 곳에서 새로운 지식을 배웠고, 다 같이 노래했으며, 학교 동창생보다 더 끈끈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때론 피로를 이겨내고 강릉 경포대로 가는 야간 비둘기호를 타고 강원도 바다를 본 후, 새벽에 귀가하는 강단도 보여주곤 했다.
3. 하지만 197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유신체제는 더욱 경직되고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강해졌다. ‘노동교실’에 대한 인식도 나빠졌다. 빨갱이를 교육하는 장소로 낙인찍힌 것이다. 결국 정부는 1977년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을 ‘법정 모독죄’로 가두고, 그와 동시에 노동교실을 폐쇄하기고 결정했다. ‘노동 교실’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분노한 여성들은 몰래 교실에 잠입하여 농성을 벌였다. 그 날이 1977년 9월 9일이었다. 그것은 10일에 폐쇄한다는 소식에 대한 자연스런 결정이었다. 하지만 9월 9일은 북한 노동당의 창립일이기도 하다. 우연한 날짜에 정부는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 이들을 공격하였고 결국 시위에 참여한 핵심 인물들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영화 처음 등장한 세 명은 바로 감옥에 갇혔던 여성들이었다.
4. 영화에는 시대의 야만을 보여주는 많은 사람들의 아픈 증언이 등장한다. 회유에 의해 농성을 풀기로 결정한 어린 노동자들을 경찰은 심하게 구타하였으며, 감옥에 가둔 후에도 화장실도 보내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도 못하게 하면서 반인권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이다. 같은 시기에 잡혀온 대학생 시위자들에게는 허용되는 당연한 일들이 이들에게는 금지된 것이다. 가족 면회도 당연히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들은 철저하게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면서 굴욕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한 증언자의 말처럼 경찰의 육체적 폭력보다도 더 분노하게 한 힘없는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자 폭력이었다.
5. 일명 ‘9.9 사건’은 사회적 관심을 받은 사건이 아니었다.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농성은 오래가지 않았고 쉽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노동교실’을 지키고, 노동자의 순수한 권리를 지키려는 노력은 어떤 사건 못지않게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결코 이들은 외부의 사주에 의해 행동하지 않았다. 경찰의 취조 과정에서 수없이 질문받았던 이야기였지만, 이들은 오히려 노동 지도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정했고 자연스럽게 모여들었으며 순수하게 자신들의 요구를 밝혔을 뿐이었다. 어떤 거창한 정치적, 사회적 이상 실현이 아닌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원했고 그것을 자율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6. ‘9.9 사건’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농성에 참여한 어린 노동자들의 다수가 경찰의 회유와 협박 그리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소외의 느낌을 견디지 못하고 노동조합을 탈퇴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둔 것이다. 그리고 소통의 부재로 인하여 서로에 대한 오해와 미안함이 쌓여 그토록 가까웠던 동료들과의 오랜 시간의 단절을 가져오게 되었다. 영화는 ‘전태일’로만 기억되는 평화시장 노동조합 운동에서 실제적인 피해자이자 참여자로서 ‘여성’들의 위치를 복원시킨다. 그들이 바로 노동 운동의 중심이었고, 단순한 추종자가 아닌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던 주체적인 존재들이었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다.
7. 영화 마지막. 노조와 관련된 많은 중년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40년 전의 사건은 때론 그들의 과거를 숨기게 했고, 과거의 아픔을 지우려고 시도하게 했지만, 그것은 결코 부끄럽거나 비겁한 모습이 아니었다. 사회의 냉대 속에서도, 사회의 무관심과 차별 속에서도 굳건하게 살아야 했던 우리 사회 여성들의 용기있는 모습들이다. 어린 시절 그녀들의 빛나는 얼굴들은 그림으로 재현되었고, 서로가 모여 과거의 ‘교실’에서 합창했던 노래를 다시 불렀다. 그것은 단순한 추억과 회고의 시간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역사적 순간을 지나쳐 왔고,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우리들의 오늘을 가능하게 했던 현재적 시간이었다. 그들의 진지하면서도 순수한 얼굴들이 하나하나 흐르는 화면은 좀 더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역사적 주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요구하는 듯했다. ‘권리’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순수한 용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첫댓글 - 시대의 아픔은 항상 뒤늦게 나타난다. 수많은 고통과 상처를 남긴 후! 먹고 살기 위해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말조차 부끄러운 현실이 되었다. 지식인이라는, 지성인이라는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결국 상황에 따른 삶이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