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불교의 현황과 역사
하와이는 미국 59개 주의 하나이다. 폴리네시아군도의 북단, 본토로부터 서쪽 3천㎞의 태평양상에, 동남으로부터 북서로 약 530㎞에 걸쳐 산재한 크고 작은 2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주요한 섬은 하와이ㆍ마우이ㆍ몰로카이ㆍ리나이ㆍ니하우ㆍ카훌라훼ㆍ호놀룰루 등 8개다.
하와이제도는 1778년 발견되었고, 1810년에 카메하메하 1세에 의해 통일됐다. 이후 이 섬은 미국과 극동을 잇는 통상(通商)ㆍ포경(捕鯨)의 기류지로서 발전했다. 1840년대에는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재주(在住)미국인 사이에 귀속을 에워싼 분쟁이 있었으나, 독립은 유지하고 있었다. 19세기 후반 사탕수수ㆍ파인애플의 농원재배가 성공하고 제당업이 번영하면서 다시금 합병론이 대두됐다. 1887년 미국과 합병조약이 맺어져 다음해 미국의 주권 아래 들어갔다.
1900년에는 미국의 준주(準州)가 되었다가, 1959년 3월 미국의 50번째 주(州)로 승격됐다. 총면적은 16,706㎢. 인구는 90만 명 정도다.
하와이는 불교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첫째는 미국에 불교를 전파하는 전진기지였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이민불교가 성공한 대표적인 곳이라는 뜻이다.
하와이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진 것은 19세기말이다. 1868년, 일본계 이민들은 사탕수수와 파인애플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불교는 그들에 의해 전래됐다. 일본인들은 그 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하와이로 왔다. 일본불교계에서는 이민들의 정신적 안위를 위해 전도승을 파견했다. 하와이에 승려로서 첫발을 디딘 사람은 정토종(淨土宗) 계통의 소류 가가이다. 그는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이민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마침내 하와이 최초의 사찰 홍원사(弘願寺)를 지었다. 하와이불교의 개조(開祖)가 된 그는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갔으나, 정치적으로 혼란기를 겪는 본국의 사정 때문에 다시 하와이로 돌아가지는 못하고 말았다.
1894년 일본에서는 다시 조도신주의 승려들이 하와이로 건너갔다. 1896년에는 최초의 하와이교구 사찰을 세웠다.
이 무렵에 하와이에서는 세계불교사상 중요한 일이 한 가지 생겼다.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대회에 참가하고 인도로 돌아가던 대각회(大覺會:Maha Bodhi Society) 창설자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가 하와이에 들러 카메하메하 대왕의 외손녀 메리어 포스터 여사의 귀의를 받은 것이다. 그녀는 다르마팔라에게 인도와 스리랑카에 절을 지을 돈을 내놓고, 부처님의 유적지를 복원하도록 엄청난 재물을 희사했다. 이로 인해 대각회는 인도에서 불교부흥 사업을 활기차게 추진할 수 있었다.
하와이의 이민불교는 2차대전을 전후해 한차례의 시련을 겪었다. 미국과 일본이 전쟁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은 전략상 캘리포니아로 이송되어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전쟁 중이기는 했지만, 뜻밖의 박해에 직면한 하와이불교로서는 어느 때보다 길고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하와이불교는 다시 부흥되기 시작했다. 특히 1959년 미국의 50번째 주(州)로 승격된 이후 하와이불교는 다민족ㆍ다문화ㆍ다종교를 인정하는 정책적 배려에 의해 기독교와 대등한 종교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하와이는 아시아의 불교국가에서 파견한 전도승들을 받아들여 발전을 거듭했다.
현재 하와이에는 일본계 사찰이 128개로 압도적인 숫자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밖에 중국계 사찰 7개, 한국계가 3개, 스리랑카에서 2개, 태국과 티베트에서 각 1개씩 사찰을 지어 자국의 교민교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임제종과 조동종에서 하와이교구를 개설, 포교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중국계 사찰로는 비구가 운영하는 허운사(虛雲寺), 비구니가 운영하는 옥불사(玉佛寺)가 대표적이다.
한국계 사찰은 대원사(大願寺)ㆍ불은사(佛恩寺)ㆍ달마사(達磨寺)가 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은 호놀룰루시 와이오마오로르에 있는 대원사다. 이 절은 1975년 6월 한국승려 기대원(奇大願)스님이 하와이대학 정치학과 글렌페이지 교수와의 인연으로 지은 절로 한국의 전통적 사원건축 양식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대원사는 1983년 하와이대학과 공동주최로 세계불교평화회의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곳에는 한국불교조계종의 종정을 역임한 고암(古庵)스님이 주석하셨으며, 그동안 1천여 세대를 신도로 교화했다.
1975년 이후에는 베트남 불교도들도 이곳으로 이주해와 절을 지었다. 진공선원(眞空禪院)으로 이름을 붙인 이 절에는 베트남 난민들의 정신적 안식처가 되고 있다.
하와이의 불교신자수는 2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전체인구의 22.2%에 해당하는 숫자다.
하와이주립대학에는 불교를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도 2명이나 있다. 철학과의 칼루 파하나 교수(스리랑카 출신)는 팔리어 경전으로 초기불교를 연구하고 있으며, 종교학과의 데이비드 채플 교수(캐나다출신)는 중국불교 가운데 정토(淨土)와 천태(天台)를 연구하는 학자다. 하와이대학 종교학과는 채플 교수의 주도아래 ‘불교와 기독교와의 대화’라는 모임을 1980년부터 4년마다 한번씩 열고 있다.
하와이불교는 아직까지 동양계 이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포교 외에 백인을 대상으로 하는 포교는 부진한 실정이다. 한국전쟁이나 월남전에 참가했던 백인 또는 일본에 거주했던 경험이 있는 몇몇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뿐이다. 이런 가운데 특이한 것은 마노아 골짜기에 ‘다이아몬드상가’라는 선방을 차려 놓고 선(禪)을 펴고 있는 로버트 아이트켄이라는 미국선사의 활동이다.
그는 2차대전 초 괌에서 토목기사로 일하다가 포로로 잡혀 일본에서 수용소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 때 불교의 선(禪)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나중에는 임제종 계통의 야스다니 선사(禪師)에게 인가를 받고, 1959년부터 하와이에 선방을 차려놓고 샌프란시스코ㆍ로스앤젤레스ㆍ시애틀 등지로 다니면서 선(禪)을 펴고 있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또 하나는 한국계 사찰 달마사의 활동. 미국에 한국 선불교를 펴고 있는 숭산(崇山)스님의 제자가 세운 이 절에는 8명은 상주하며, 20여 명은 틈틈이 찾아와 선(禪)을 공부한다. 물론 모두 백인들이다.
희망적 현상 가운데 하나는 물질적으로 풍요해진 백인들이 정신적 충복을 위해 선(禪)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계 사찰에서는 이들이 보다 쉽게 사찰을 찾아올 수 있도록 사찰 내에 유도장ㆍ검도장을 운영하면서, 불교와 자연스럽게 친숙해지도록 돕고 있다. 하지만 호기심충족 또는 취미생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화는 여전히 장벽이 높다.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미주대륙에 동양문화와 불교를 전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온 하와이. 동양과 서양이 접점(接點)을 이루는 이곳에서 불교의 새로운 시대가 어떻게 펼쳐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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