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인(死因)
음악 흐른다. 어두운 무대 그 위로 불빛, 연하게 들어온다. 침대위의 시체들 침대를 덮은 천
속에서 문언가 꿈틀 거림. 하나의 느낌으로 형상화된다. 그 느낌들 사이로 유화이(검시관)
이 나온다. 유화이(검시관) 다른 남자 검시관들과 얘길 나눈다.
[유화이] 괜찮아요. 드시고들 오세요. 속이 조금--- 아니에요--- 그러실 필요없어요. 괜히
맘에도 없는 말은--- 늘 드시는 거 드세요. 우리 애인도 먹는 걸요. 정말로 속이 좀- 네?
후후--- 왜요? 임신이라도 했을까봐요? 속도위반도 요즘은 경력이라던데- 이력서에 한줄
더 늘어나고 좋죠 뭐- 갔다 오세요- 시체들이랑 놀고 있을께요. 세번째꺼- 이하나 둘공까
지 봉합됐어요. 오실 때까지 손하나 까닥 않할 꺼에요. 음--- 그냥 마실거나--- 아, 아이
스크림 하나 사다 주세요. 하겐다즈 바닐라- 아몬드 발라 있는 거 말고-
유화이, 서서히 관객쪽으로 시선을 가져가고--- 처음과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이 무대를 흐
르고 유화이는 창문을 열었다간 바람 한번 쉬익 들어 마신다.
[유화이] 여섯 구의 시체가 들어왔습니다. 아침 출근하고 얼마 안되는--- 거의 같은 시간
대였죠.--- 여섯 구의 시체--- 여섯--- 여자 여섯--- 여섯 모두 자살--- 모두 부검 희
망.
시체들의 움직임---
[유화이] 아주 희안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라고 얘기하며
우리 모두는 신기해했습니다. 하지만 잠시후 모두는 그저 우연이라고 얘길하며 슬쩍 웃었습
니다. 왜냐하면--- 이건 정말 우연이었으니까요.
(유화이 슬쩍 웃고--- 또다시 시체들의 움직임. 시체 전춘자, 시트를 제치고 얼굴을 내민
다.)
[전춘자] 아이고~ 두야~
[유화이] 나이 스물 다섯
[전춘자] 골이 띵~허네예.
[유화이] 성명, 전춘자.
[전춘자] 후후--- 됐심더. 고만하소. 에고 정신 없네. 여가 어디라예?
[유화이] 시체 부검실이에요
[전춘자] 아이코, 내 꼴 마~이 흉했지예?
[유화이] (다시 관객석으로) 아, 자주 있는 일이에요. 시체와의 대화. 뭔가 잘 통한다는 얘
기일수도 있고---
[전춘자] 통하긴 뭐가 통한다 그래싸요! 참말로 히안테이.
[유화이] 회사 옥상에서 떨어졌어요, 흔한 방법이죠.
[전춘자] 시골사람이 그 정도면 마~이 용기낸기라예. 참말이라예~
[유화이] 그래도 그 기업사 건물은 너무 높았어요.
[전춘자] 실수할까봐예--- 실수해서 병신 되믄 죽도 밥도 못되는기 아닌가 해서예-
[유화이] 잘하셨어요.
[전춘자] 칭찬이라예?
[유화이] 칭찬이에요.
[전춘자] 고맙습니데이, 아이고.. 머리야~
[김지은] 그만 좀 보채요.
[전춘자] 얼라, 미안합니데이.
[김지은] 네.
[전춘자] 잠이 안옵니꺼?
[김지은] 도통 시끄러워서-
[전춘자] 그래도 요놈의 두통을 참을수가 있어야지예. 게보린쫌 줘보소~
[김지은] 먹어도 별 소용 없을꺼에요
[전춘자] 아~ 깜빡했다. 내 죽은거였지예.
[유화이] 나이 스물 여덟. 식중독, 과식등으로 장기마비
[김지은] 으휴, 그렇게 들어니까 내가 너무 한심한거 같아.
[최윤주] 뭘 그렇게 많이 먹었어요?
[전춘자] 와~ 그래도 행복했겠네예~ 맛난거 묵으면서....
[김지은] 그게 다 상한거였다니.. 난 그것도 모르고 아유, 몰라요. 속만상하네
[박보연] 어머~ 언니! 이거 매니큐어 색 이쁘다~ 나 발라봐도 돼요?
[전춘자] 저 여자 참 이상하니예, 저 보입시더. 죽기전에 좀 병원좀 다녔지예?
(보연 무시하고 계속 매니큐어바름)
[최윤주] 내 생각엔 저 언니 네일아티스트였을거 같아요.
봐요 다른사람하곤 레벨이 달라보이지 않아요?
[김지은] 그러면 뭘해? 소용도 없는짓 하는 저건 엄연한 시간낭비라구
[최윤주] 부럽잖아요. 멋있구요
[박보연] 뭐? 내가 매력적이라고?
[유화이] 최윤주, 십팔세 레미콘 차에 뛰어들음. 과다출혈로 현장에서 사망.
[전춘자] 나랑 비슷하네예~ 머리좀 안아픕니꺼?
[박보연] 레미콘 차는 오버아니야? 여자는 말이야.
곱고 이쁘게 나처럼 조용히 생을 마감했어야지~ 쯧쯧.
(그러고 계속 유화이 가방 뒤짐)
[유화이] 박보연씨, 내 가방좀 가만 내버려 두겠어요?
[전춘자] 내 언제 그 소리 할 줄 알았으예~
[박보연] 쳇, 공유좀 하자구~ 같이좀 예뻐지자니깐 그래~
[유화이] 나이도 어린데, 왜 그랬니?
[최윤주] 탈출하고 싶었어요. 다들 그렇게 말하잖아요.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빨리 천국에 가고싶었어요.. 지금은 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요..
[전춘자] 천국? 하기사. 여보단 나을끼야. 그치예?
[박보연] (춘자에게)어쩜좋아~ 이눈가에 주름.. 언니! 보톡스 하는건 어때?
[김지은] 좀 상황파악좀 해. 이 마당에 뭔 말이 그리많아?
[최윤주] 숨이 막혔어요.. 죽는 그 순간엔 정말 더 그렇더라구요..
[전춘자] 진짜? 내는 아프기만 하데마..
[김지은] 그건 그렇고, 저 정신 산만한 여잔 어떻게 죽었어?
[유화이] 박보연. 나이 스물 하나. 수면제 다량복용. 사인은 질식사
약이 기도로 넘어가서 질식됐네요.
[전춘자] 좋은 기요 나쁜 기요? 수면제를 묵었으면 뒤비자다 죽어야지예
우에 목구멍에 걸려 죽나?
[박보연] 자- 스탑?! 나의 매력적인 이미지를 실추시키지 말아줘요~
[최윤주] 그래도 죽긴 죽었으니까 다행이네요..
[박보연] 그래도 여자들은 다르다구!! 마지막 순간에도 자기 모습에 신경 쓰게 되잖아?
[김지은] 당신 말이야 거울보고 입술 바르면서 죽었어?
[박보연] 틀린 말 아니야. 예쁘게 누워서 곱게 죽고 싶었어. 내 죽은 모습 보면서 남들이
아깝다고 생각하게. 그런데 숨이 막혀서 이리저리 뒹굴다가 화장 다 지워지고 방정리 다해
놨는데 다시 다 어지럽히고--- --- 눈물 콧물 땀에 침 질질 흘려가며- 맨 처음 날 본 남
자는 날 보자마자 그냥 토해버리더군. 죽을 때까지도 이렇게 되는 일이 없으니--- 후후.
[김꽃분] 나는 숨막혀 죽는 게 편하던디
[전춘자] 얼라, 전라도라예?
[김꽃분] 나는 목을 메었는 디- 뭐, 원체 대중적인 방법인께- 처음에만 쪼매 답답혔느디--
그러다가- 어지러워지고 그러다가--- 몽료해지고- 그러다가본께---요로코롬 되어부렸제.
[박보연] 아우~ 아줌마도 영아니야. 목에 줄자국, 뭐 티내요?
[김꽃분] 뚫린 구멍으로 온갖게 죄다 흘러서 기분은 영 뭣하지만 그래도 이리됐다
아니당가~! 개아나부려~
[최윤주] 자식들은 안 보고 싶으세요?
[김꽃분] 자슥들보다 남편이 보고싶당게, 많..이 미안하제..
[유화이] 성명 김꽃분. 나이 마흔 여덟. 목을 메었구요.
[박보연] 아줌마!! 줄이 용케 버텼네!!.
[김꽃분] 나일론이 세긴 세드라구.
--이금동 일어나 전화를 한다.
[유화이] 뭐하니?
[이금동] 전화좀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되요?
[유화이] 9번 누르고 해야돼.
[김지은] 어머 어리네.
[김꽃분] 저 이쁜 것이 뭔 죽을 일이 있었당가?
[유화이] 이름 이금동. 열일곱. 한강대교에서 투신했어요.
[박보연] 얼굴 퉁퉁붓고, 어우~ 찹살떡같애. 희어멀건 한거 하며~
[전춘자] 아까부터- 왜 그런다요, 정말 병원 다녔으예?
[이금동] 모르는 번호 일텐데도 안받네..
[유화이] 급한거니?
[이금동] 아니요- 목소리좀 들어보려고 했었는데..-
[김꽃분] 고등학생?
[이금동] (손가락 세 개)
[김꽃분] 삼학년?
[유화이] 일학년이요.
--이금동 손가락 하나로
[김꽃분] 야가 으른을 가꼬 논당께? 후훗.
음악이 흐른다. 노래.
[유화이] 자연스러운 시간들이에요. 어쩌면 이젠 밖보다도 더 편한 시간들 수 있겠구요. 죽
은 시체들이 고개를 들고 통성명을 나누죠. 뭐 짧은 만남이지만 난 이 사람들의 몸을 마지
막으로 헤집게 되니가 조금은 특별한 관계라고도 할 수 있죠.
[김꽃분] 뭣땀시 그랬냐? 월매나 저시기 했을까이,--- 맘상한 거이 많았어? 그래 부렸어?
[박보연] 얼굴때문이... 아니겟구나? 너 정도면 살만은 한데... 대학 때문에 그래?
[전춘자] 공부를 잘했나보네~ 거 공부도 몬하는 아들이 성적 때문에 죽는다카믄
누가 알아주겠나.
[박보연] 내가 그랬다니까- 학교 다닐 때--- 정말 죽고 싶었는데- 내신이 십등급이었
어.--- 그러니 어떻게 죽어? 다들 또라이라고 그러지- 십등급은 자살도 못해.
[최윤주] 학교 폭력 때문일 지도 몰라요. 맞기 싫어서 학교도 가지 싫고 차라리 그러느니
더 잘나가는 얘들과 어울릴 려고 조직도 만들어서 들어가고--- 뭐 많이 맞게 생겼네요.
[김꽃분] 그렇다고 그런 험한 짓을 해부냐? --- 많이 저시기 했지?
[이금동] (손으로)요만큼요-
[김꽃분] 요고? 뭣을 요고 밖에 안 저시기 허냐? 겁나게 저시기 했을 것 같은 디-
[유화이] 고통이 심했을 꺼야. 그 날따라 비도 오고 물 흐름도 안 좋아서 체온이
급격히 떨어진데다 수면에 닫는 부분이 너무 격하게 터졌어.
[이금동] 그래도--- 알 수가 없잖아요.
[유화이] 뭐?
[이금동] 언니는 살아 있으니까. --- 다 알 수는 없을 꺼라구요.
[유화이] --- 그렇겠지.
[김꽃분] 분위기가 저시기 해지는 구마이..
----유화이 의자에 앉아 정리.
[전춘자] 아이고야.. 많이 수고하네예..
유화이 라디오를 켠다. 음악 흐른다
[최윤주]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예요... 잠시나마 이 것 때문에 좋았는데..
[김지은] 오랜만이네, 이 노래
[최윤주] 이 사람이 좋았던건 부러워서 인거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주니까..
[김지은] 연예인이 그런거지, 인기가 사람 대신이야.
[전춘자] 사랑받고 싶은기였지예? 맞나?
[최윤주] 네, 그래요 그런데요 어차피 죽을꺼니까--
그나마 멋있게 죽을려고요 레미콘차를 골랐어요
[박보연] 그러게- 아- 난- 화장도 다했었는데- 마스카라까지-
[김꽃분] 서울 상경 한거면 돈 많이 벌어 부렀겠네.
[전춘자] 많이 벌면 뭐합니꺼, 그리 좋진 않았으예.
[김꽃분] 서울 인심이 저시기해 부링께 이랬고마이?
[전춘자] 꼭 그것때문만은 아니라예
[김꽃분] 다 죽은 마당에 무신- 똑뿌러지게 말해보드라고~
[전춘자] 아--- 죽어도 - 이건 안풀리네예.
전춘자 갑가기 흐느낀다. (모두보고 한참보고 아주 오래 보고 울음이 그칠 듯- 그치고--- )
[김꽃분] 안 말해줄끼가?
[김꽃분] 왜 요로코롬 엄한 짓을 했당가?
[전춘자] --- 내 이리 된거 쫌 보라꼬예.
[김꽃분] 근께 - 느가 죽은걸 어떤 사람이 봐부려야 혔구만
[전춘자] 내 죽은거 보고 양심 꼭꼭 찔려보라꼬예
[김꽃분] 근께- 거 뭐시냐 그놈 양심이 찌잉~한 거시기해서 거시기 한긴가?
[전춘자] 아니라예
[김꽃분] - 근께 거 뭐시냐 오금이 저리고 뒷머리가 서는 것잉께 보- 복수 엇비슷한거 아
뇨?
[전춘자] 그거지예.. 그런거지예!!.
[김꽃분] 독혔구만. 그랑께 독한 맘 먹고 그 독한 짓을 해불었제. 가족들은 뭘 했당가?
[전춘자] ...................
[김꽃분] 근께- 느가 그렇게 죽어 나자빠질 동안 워디서 뭘했냐 이거시제.
[전춘자] --- 가족들은 모르지예
[김꽃분] 염병 뭐 그리 살았당가!
[최윤주] 유서에 가족들한테 할말 썼을꺼에요
[김꽃분] 거기 다간 다 썼소?
[전춘자] 그런거 안썼으예
[최윤주] 어머 왜요? 그래도 마지막인데 할말 못할 말 다 쓰기라도 했었어야죠
[전춘자] 글재주가 워낙 없어가 쓰다보면 해야 될 말 하고싶은 말들이 죄다
이상하게 될꺼 같아서예
[김지은] 하긴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을 다 써놓았다 하더라도 나중에 읽어보면--- 이게 내
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구나- 이게 죽은 이유구나라고 생각을 해보면- 아
니더라구 - 그걸 어떻게 글로 쓸 수 있겠어.
[전춘자] 그라고 또 그라데예. 글 몇 자 적어놓고 내 죽어쁜지믄 아, 이 가스나 이래서 죽
을라 했구나- 라고 다들 그렇게 믿을 꺼 아니라예. 근데 그게 싫더라고예. 그렇게 알고 금
방들 잊을까봐- 그게 영 서운하데예 그래가, 아무말 없이 그냥 죽어쁜지면 한참 동안 '저
가스나가 와 죽었노'하고 생각할 꺼 아니라예?
[박보연]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았네. 그럼 난 너무 많이 썼나? 22자 원고지로 1000매 가까
이를 썼으니-
[김꽃분]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뭐 그리 길당가-
[박보연] 그런데도 나중에 읽어보니까 터무니없이 모자른 거 같더라구-무슨 할 말이 그렇
게 많은지 - 한참은 더 써야될 거 같더라구-
[전춘자] 팔만대장경 나올 뻔했네예.
[김지은] 여자라 그럴 꺼야--- 아닐 수도 있겠고---
-----불빛들의 느낌 바뀌고 음악 흐른다
--여기서부터는 유서 낭독 장면이다. 하나 둘 자신들의 유서를 얘기한다.
[유화이] 이들의 유서는 이들이 오고 몇 시간이 지난 후에 도착했습니다. 죽은 자의 마지막
이야기. 부검 결과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이곳으로 보내졌고 우린 그 글을 읽어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같은 사람은 살아생전 써보지 못할 글이니까요.
[유화이] 우린 이 글들을 읽어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재미있어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독
자의 반응도 생각하지 않은 가장 순수한 작가의 글이었고 우리 같은 사람은 살아있는 한 이
런 글따윈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김지은] 할말이 없어. 당신들 잘못이 아니지. 그래 이건 모두 나 때문이야.
[유화이] 우린 이 글들을 읽어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다 읽었습니다. 그
런데 이상하게 이들의 마지막 글엔 누군가에 대한 불만과 억울함보단 자신의 자책이 더 많았습니다. 세상 최고의 반성문이죠. 그게 참 재미있었습니다.
[김지은] 난 준비가 되어있었어. 충분한 재능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해해 줄 수는 있었잖
아? 똑같은 기준에 왜 나를 맞추는 거지? 왜 잇는 그대로를 보지 않냐고. 난 이제 죽을꺼야
당신들 보란듯이 이 드러운 인연을 끝낼꺼라고.
[유화이] 우리가 이 글들을 좋아한 이유중에 하나는 참으로 지독하고 강한 어휘들이 나열된
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 말들은 살아있는 우린 좀처럼 쓰지 않는 표현들이었죠.
우린 내가 죽는다는 말을 이렇게 쉽게 쓰지 않거든요. 그게 참 신기했습니다.
[최윤주] 세상이 참 매력없는 거 같아요. 나랑은 특히 잘 안맞았죠 천국은 그런대로 괜찮을
거 같아요 뭐- 지금 여기보다야 훨씬 더- 어쩌면 아주 많이 더---
[유화이] 우리가 좋아하는 이 글들 중엔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내용도 가끔 있곤 합니다.
그럼 우린 추측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이 속엔 무슨 깊은 뜻이 있을까---
그런 추측들--- 우리의 상상들--- 그런 게 참 재미있습니다. 정답을 영원히 알 수 없을
지도 모르니까요.
[김꽃분] 야채들은 항상 따로 구분해 두쇼. 썰어 먹을 거 따로 갈아먹을 거 따로. 아침마다
야채즙 갈아 드시는 거 잊지마시우. 간은 죽기 전까지 안아프다한께--- 괜히 꼬장 피우지
말고 꼬박꼬박 드시우. 녹즙기 110이요. 괜히 220에다 꼽고 홀라당 태우지말고 돼지코 항
상 끼워서 쓰시오. 그라고 당신 양복 한 벌을 사놨는디 장롱 맨 왼쪽에 뒀소. 읍내 나갈때
라도 여편네 없다고 꼬질히 다니지말고 가호잡으시라구. 행여 그거보고 남의 옷이라고 내다
버리지 마쇼. 당신거 맞응께. 기럭지가 길더라도 괜히 당신이 짤라 맞춘다고 맹가트리지 말
고 2000원이면 해준께 복칠이네 세탁소에 맡기시우. 그 여편네 항상 술에는 쩔어 있어도
오바로크는 잘칩디다.
[유화이] 우리가 이 글들을 좋아하는 건 몇 자 안되는 이 글들이 읽은 지 몇 분 안되어 우
리 모두를 울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김꽃분] 밖에 나갈 땐 가스밸브 꼭 잠그고 빨래꺼리는 세탁기에 졸리시우. 힘자랑 한답시
구 손으로 쥐어짜지 말구. 돈주고 샀으면 써먹어야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안돌리면 쓰겄소. 그라고 큰놈 광주 자취방 번호랑 김서방 회사번호, 인척들 번화번호 죄다
적은 공책은 단스 서랍에 뒀응께 혹, 뭔일 생기면 눌르시우. 앞대가리에 공팔이 누르면 쬐
게 싸다하데. 그리고 귀찮더라도 청소는 가끔허소. 큰놈 방학이면 그땐 그 놈 시키구. 밥자
셨으면 설거지도 하시구--- 평생 물한번 안묻힌 양반이 제대로 하겠냐만--- 내살림 엉망
으로 되는 게 싫어서 그렁께--- 뭐, 다 귀찮으면 새장가 가시우. 대신에 나모양 비실한 여
편네 만나지말고 차돌 씹어먹고 새찬물 한다라 마셔쌓는 튼튼한 여식이랑 하시오. 내 눈감
으면 줄탱께--- 그라고 참말 미안허요. 당신 아침 녹즙은 나가 갈아 줘야하는디--- 고거
이 참말로- 맘에 걸리요. --- 그라도 우리 두내외- 재미너게 살았지라? ---
--박보연, 읽으려고 한다.
[전춘자] 댁도 할라하고예?
[박보연] 네?
[최윤주] 언니는 언제 날잡아 따로 해요.
[유화이] 우리는 이 글들을 좋아했지만 모조리 다 읽은 건 아니였습니다. 가끔은 읽기 힘든
글들도 있었으니까요.
[이금동] 미안해.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 난 모든게 행복했었어.. 내가 행복하면 너도
행복할꺼라 생각했어. 내 착각이었나봐. 너의 불행은 내가 다 가져갈께. 행복해야돼 정말..
[유화이] 우리가 가장 솔직하다고 생각했던 이 글들 중엔 알 수 없는 거짓이 흐를 때도 있
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짓말 또한 지독하게 재미있습니다. 우린 그런 거짓을 남기고 죽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음악이 멈춘다. 순간 정적.)
[전춘자] 누꼬? 야갸예?
[김꽃분] 뭣을 거짓말을 했다는 거여?
[김지은] 그런건 다 거짓이잖아. 행복하라는거. 원래는 이 나쁜놈 어쩌구 저쩌구 하는거라구.
순간--- 탄성 -- 허탈 --- 한숨 ---
[최윤주] 그냥 살지-- 그런거 때문에 죽었어요?
[이금동] 날 모드 미친 취급하죠. 고작 그런것 때문에 죽었다고요..
[유화이] 여기엔 얼굴 비관으로 사유가 되있는데.. 이게 맞니?
[이금동] 핑계에요.. 아니.. 맞아요.. 내가 느낀건 아니지만요..
[전춘자] 그럼 타살이라예?
[유화이] 아니요, 자살이에요. 일년동안 스토커 신고가 스무번이였거든요.
[김지은] 안 됐다. 어린나이에 충격이 컸겠어.
[박보연] 미쳤어. 왠 스토커? (자기 머리 쓸어 넘기다가) 어머머~ 머리 막빠지는거봐..
약 때문인가?
[전춘자] 됐다. 고마하입시데이. 내는. 누버 잘낍니데이.
(하나 둘 자리에 눕는다)
[이금동] 살았었다면 괜찮았을가요?
[유화이 --- 후회하는거니?
[이금동] (웃는다) --- 방법이 좀 이상했지만..(눕는다) - 진심이었어요. 정말.
(유화이 - 혼자다.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유화이] 네 - 저에요. 검시실이죠. --- 늦을꺼 같아요. 미안해요. 낮에 얘기했잖아요. 오늘
이상하게 많이 들어왔다구. 자요 끝나고 메시지 남겨 놓을께요. 그래요. 미안해요. (전화 끊
는다)
[전춘자] 애인이라예?
[유화이] 네에.
[최윤주] 바빠서 데이트도 못하네요
[김지은] 그런데 늦게까지 일하는게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박보연] 그러게 - 일하는 건데.
[최윤주] 여자잖아요. 괜히 걱정시키니까 그렇겠죠
[짐지은] 아니 그럼 맨날 이렇게 늦을 때마다 사과를 해야하는 거야? - 잘못한 거 하나 없이?
[유화이] 여러분들 때문이에요. 이렇게 한꺼번에 들어오니까- 검시 결과도 복잡하고 ---
(전화벨이 울린다. 전춘자 받으러 간다. 그러다가 다른 시체들이 말린다.
"야~ --- 니가 왜 받어?")
[전춘자] (그제서야) 오메-- 버릇이 돼나서예. (유화이 - 씨익 웃으며 받는다.)
[유화이] 네 - 아니요. 내일 별다른 건 없는데 - 오늘 안에 다 끝내죠. -그래요 - 어, 난
괜찮아요. 정말로 천천히 드시고들 오세요.--- 후후후 - 남자들이 무섭지 시체는 안무서워
요. 네. (전화끊는다)
[박보연] 먹고와~ --- 언니, 난 요거면 됐거든~(유화이의 과자들고 알짱댐)
[전춘자] 당신 죽었으예. 뭘 그리 먹을라그라예?
[이금동] 언니는 매일 이러는 거에요?
[유화이] 거의 매일들 죽으니까.
[김지은] 아니 -매일 남자들이 야참 먹으러 가고 언니만 이렇게 혼자 있냐구.
[김꽃분] 산 사람도 도둑질하는 시상인 디 죽은 시체라고 가만히 두겠는가? - 누군가는 지켜야지.
[김지은] 그걸 왜 여자가 해야 하냐구! 내 말은 !- 여자가 뭐야. 봉이야? --- 봉 아니잖아.
남자 여자 - 응? - 그거 딱 두 개야! 그거말고 또 있어? - 없잖아! 산사람 죽은 사람 그것
도 딱 두 개. 그거 말고 또 있어?
[박보연] (갑자기 느닷없이) 꺅!! 번졌어 번졌어!! 언니~ 리무버좀 줘~ 어떻게!!
[김지은] 저 여자 왜저래 자꾸. 그러니까 내 말은 --- 다 똑 같애. 맨날 여자야. 응 뭐야
이게 - 우리 왜 다 여자니? - 열받게. 여자만 죽었네. 왜이래 이거 짰냐! 안짰잖아! 근데 왜
이래!
[박보연] 어떻게 좀 해봐, 저 언니 너~무 흥분하는거 같네.. 아~다 지웠다~ 다시 발라야지~
[유화이] 박보연씨, 자꾸 이러면 손톱도 다시 지우고 위 세척도 다시 해야된다는 것 좀 알아줘요.
[전춘자]죽어서도 저러는 거 보면 한이 많이 맺혔나 보네예, 내비두소,
[김지은] 아무튼 왜 혼자 여길 지키는거냐구?
[유화이] 밤엔 원래 뭘 안먹어요. 그래서 이렇게 있는 거구요.
[김지은] (할말이 별로) - 그래도 --- 뭘 좀 먹지?
[전춘자] 여서 주가 제일 오래걸려예?
[유화이] 네?
[전춘자] 순서 없으믄 (박보연 가리키며) 시간 아끼게 쟈 부터 먼저 하소.
--유화이 웃는다 박보연 상관 없다는 듯 가방 뒤지기에 여념이 없다.
[이금동] 그런데요 - 정말로 --- - 이상하네요. --- 우리 다 여자잖아요.
[전춘자] 와 머슴아 하나 없어가 심심하니? 흠.. 근데 이런일이 종종 있어예?
-- 보연 유화이의 지갑속에 있는 사진을 뒤적거린다.
[유화이] (보연을 향해) 흠흠. 박보연씨. 그 사진은 좀 내버려 둬요. 지갑좀 그만 건들고요.
글세요. 가끔 --- 물론 이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 우연이겠죠.
[최윤주] 우연? 아 - 우연 -
[이금동] 만약 정말로 우연이라면 - 우리가 이렇게 있는 건 진짜 우연이겠죠.
[유화이] 무슨 말들이에요?
[박보연] 얘는 우연이라는데 뭘 그리 우연하게 생각하니? 호 호 호 - 참 우연스럽기도 하지 - 로롤롤로~(립스틱 바른후 팽그르 한번 돔)
[김지은] 너무 그러지마 얘가 설마 우연인줄 알고 그랬어? 우연히 알면서 왜그래?
[전춘자] 여기 우연은. 와 또 띵하지예? 이기 우연이라예?
--유화이 - 마치 자신을 놀리듯 느낀다.
[유화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예요?
[김꽃분] 선생님 너무 신경쓰지 마쇼 - 우연히 이렇게 된거여.
-음악 노래. '우연?' 모두, 침대에 누워 있다. 김꽃분 - 일을 하고 있는 유화이에게 다가간다.
[김꽃분] 바쁘쇼?
[유화이] 좀 - 괜찮아요.
[김꽃분] 근디 나 뭣 좀 하나 물어 볼라 하는 디? --- 거시기 내 속 다 까집어 봤을 때
--- 혹시 뭐 이상한 거 없습디까?
[유화이] 네?
[김꽃분] 아니, 그냥 혹시나 해서 --- 물어 보는 건데---
[유화이] 저희는 대부분 위와 장안에 있는 음식물만 검시했어요. 뭘 잘못드시지 않았나 해서-
[김꽃분] 아 - 그려요.
[유화이] 그런데 --- 김꽃분씨는 좀 다르더군요.
[김꽃분] 야? - 그게 - 뭔 -
[유화이] 물혹 같은 염증들이 모든 장기에 펴져 있더군요. 폐, 간, 대장까지 --- 다른 검시
관들이 그러더군요. 왜 죽었을까, 굳이 자살하지 않더라도 두 달을 버티기가 힘들었을 텐데
라구요.
[김꽃분] 맞지라? - 그거이 암덩어리들이 맞지라? - 됐어리. 그거이 알고 싶었당께요. 이젠
됐어라. 혹시나 했당께요. 혹시 잘못 판정 난 것인디 나가 지레 죽어쁜지는 건 아닌가 하고
- 이제야 맴이 좀 편해지네. --- 그려요. 한 두 어달 더 살다와오 변한 건 없었겠지라. 이
렇게 숭허게 지목숨 끊는 여편네는 안됐을지 모르지라. 그런디요 --- 그러씁디다. 우리 서
방이란 작자가 날 가만 두지 않는 것이어라. 약값이니 병원 값이니 이 작자가 겁없이 마구
써재끼는디 가만히 있다가는 논밭 다 넘기고 집까지 팔아치울 심사였어라. 미친 양반이지
라. 어떻게 만든 것들인디 --- 어차피 썩어 죽을 몸뚱이 뭔 미련이 그리도 있다고 - 어리
석은 양반 -
[유화이] 그걸 누가 바랄 꺼라고 생각하죠?
[김꽃분] 뭔소리당가요?
[유화이] 아픈 건 죄가 아니잖아요?
[김꽃분] 죄일수도 있지라. 집안 들쳐 말아먹은 디 죄중에도 상죄지라.
[유화이] 남편분이 만약 그런 경우라면 어떻게 하셨을 거라 생각하세요?
[김꽃분] 그만하시오? --- 나는 무시혀서 배운 사람허고 길게 얘기하기가 좀 그려요.
[전춘자] 그래도 아줌씨는 복받았은기라예. 여자가 세상 살면서 필요한 게 몇됩니꺼? 그나
마 사랑받고 걱정받고 살았으니 그게 복이지예. 남편 참 잘 만난겁니더. 내는 참말로 지지
리도 복도 없는 여편네라예.그런 사람도 못만나보고.. -
[유화이] 전춘자씨도 후회하는 건가요?
[박보연] 지금은 후회해 봤자 소용도 없다구~ 아! 마스카라 번졌네... 스킨 없나?
[김지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좀 달랐을까?
이 나라 말고 다른 나라 사회에서였으면 좀 달랐을까?
[전춘자] 됐어예. 죽어도 여기가 낫지예. 내는 영어도 몬 하는 데 - 어데 가서 살라꼬예?
[이금동]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김지은] 이렇게까진 안됐을 꺼야 --- 여기가 아니었다면.
[이금동] 우리가 정말로 그렇게 잘못 살은 걸까요?
[전춘자] 잘 살았으면 스스로 목숨은 안끊었겠지예
[김지은]여기가 아니었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을꺼야?
(음악, 시체들 모두 무대 앞쪽으로 나와 있다. 노래한다. 무대 뒤로 전춘자의남, 나타난다)
[전춘자남] 이렇게 하려면 때려쳐라 때려쳐어!?
[전춘자] 아... 그게요...
[전춘자남] 뭐? 뭔데? 니가 잘한게 있어??
[전춘자] 그..그게 아니라요
[전춘자남] 말좀 제대로 해 그러니까 니가 여기까지 밖에 안되는거야.. 쯧쯧 역시 돈 없는것들이란..
(음악 나온다)
[김지은남] 다음사람 들어오세요
[김지은] 안녕하세요, 23번 김지은입니다.
[김지은남] (표정굳음) 아. 자기소개
[김지은] 이름은 김지은이구요, 나이는 28세, 취미는 대사암기, 특기는 시외우기입니다.
[김지은남] 그래요... 흠, 하고 싶은 분야는? (신경 안쓴다는 듯이)
[김지은] 배우요, 배우입니다
[김지은남] 배우? 훗(황당하다는 듯 비웃는다) 그럼 할수 있는거 해봐
[김지은] 네!(노래나 대사한다. 그중간에)
[김지은남] 됬어요! 다음사람
(음악 나온다)
**[최윤주남] 내말이 말 같지가 않아!?(술에 취해)
**[여] 예? 무.. 무슨 소리예요.
**[최윤주남] 남편말이 말 같지가 않냐고..어?(물건 집어 던진다)
**[여] 악~ 그만해요. 술좀 그만 먹으라구요 매일 이러면 뭘 어쩌라는 거예요!?
**[최윤주남] 하. 이 여편네가 이젠 대드네 이 하늘같은 남편한테 뭐? 뭐라고? 니가 그러니까 니딸이
저러는거아냐!
**[여] 아니! 왜 윤주는 걸고 넘어지고 그래요? 윤주가 무슨 잘못이 있다구요!
**[최윤주남] 뭐? 이 여편네가 미쳤나? 쥐약먹엇어? (막 때리고 던지는 소리)
**[여] 흑흑. 이제 그만하라구 그만,그만! 아악!!!
**부분, 윤주는 걱정과 무서움 반의 얼굴로 듣고있다.
(음악 나온다)
[박보연남] 어떻게 오셨죠?
[박보연] 저. 얼굴 좀 고치러 상담 왔는데요.
[박보연남] 흠. 그래요? 어디좀 봅시다. (얼굴 살펴 본다. 그리고 긴 한숨)
[박보연] 어때요?
[박보연남] 면적이 넓어서 돈이 꽤 많이들겠는걸요
[박보연] 네?
[박보연남] 젊어보이는데 돈은 있어요?
[박보연] 저..네.있어요
[박보연남] 흠.. 수술은 확실히 장담 할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음악 나온다)
[김꽃분남] 어머니 저 아들입니다 잘지내셨어요
[김꽃분] 그래 잘지내다마다, 너는 어떻노?
[김꽃분남] 저야 항상 잘지내죠
[김꽃분] 그래 보고싶구나.
[김꽃분남] 이제 1년뒤면 보는걸요
[김꽃분] 그래...1년뒤...
[김꽃분남] 어머니 왜그래요 무슨일 있어요?
[김꽃분] 흠, 아니다, 아무일도 없다 항상 잘지내야한다
(음악 나온다)
(이금동 남, 뒤를 살금살금 따라가다 걸린다)
[이금동남] 너 누구야? 왜 자꾸 날 따라다녀 (이금동을 막으며)
[이금동]아..저..그게
[이금동남] 참나. 요즘 애들이란 너 몇일전부터 나 따라다녔지? 스토커냐 스토커?
[이금동] 그게 아니라...
[이금동남] 여자가 더 무섭다니가 야. 가! 그리고 너같은애 상대도안하니까 다신 나 따라다니지마라
(음악나온다)
[박보연] 우와~이쁘다.. 저거~ 저거 가지고 싶다 (인형을 만지며) 좋겟다 이뻐서...
[박보연] 무식? 그래.. 수면제를 너무 많이 먹다 목에 걸려 죽은 사람은 나밖에 없을꺼다 (옆에 악세
사리, 인형들을 들고) 내인생은 이렇게 비참한데 너네들은 이뻐서 좋겟다 부러워
[김지은] 야아~ 근데 그 얼굴 한번 걸작이다. 언밸런스한게~예술인걸...
[박보연] 아직 수술을 덜한거야. 얼굴 전체 수술인데 돈이 없어서 아직 눈,코,수술밖에 못했단말이야
남자도 못만나고~취직도 못하고 집안 식구들 까지 나를 외면하고~ 수술할려고 빚진 돈들은 어마어마
하고~
[김지은] 그래도 당신은 수술이라도 하고 좌절한거지
(음악 나온다)
[김지은] 난 탤런트에 꿈을 가지고 직장을 관두고 오디션을 보러다녔지
[유화이] 얼굴도 이쁘겠다. 뭣 하나 빠질게 없는데요.
[김지은] 그래, 하지만 몸매가 문제더라..
[유화이] 다이어트 하면 되잖아요.
[김지은] 난 완벽하단 말이야. 뭐든지 자신있다고
근데... 오디션 보는데마다 매번떨어지더라..
알고보니 몸매 때문이 였어, 난 좌절했어. 그리고 내자신이 저주스럽더라
[박보연] 나도 그 심정 이해해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껍질이 중요한거야
[유화이] 아니야, 너희들이 착각하고 있는거야
[김지은[ 그럼 왜 나는 매번 오디션에 떨어졌지? 나는 저주스러운 나를 죽이기로 했지 그래도~
죽기전에 실컷 먹자고 결심했지 그래서 아무 음식이나 먹었어 상한 음식인지도 모르고...
(박보연 김지은을 껴 안으면서)
[박보연] (울면서) 동지 한명이 늘었어 너의 마음을 다 이해해 그럼. 그럼 이해해
(음악 나온다)
[유화이] 지금 저 한강 다리위에 올라가 있는 학생의 사연을 듣겠습니다
[이금동] 어엇~ 저거 카메라 나 찍는거에요?
[김꽃분] 긍께 한강물 더러워지게 여기서 뛰어 내렸다는 것인가?
[이금동] 제가 가장 감동 깊게 본 동화가 ‘심청전’인데요 심청이가 바다에 뛰어든 그 장면을 가장 인
상깊게 읽었어요 그래서 한강을 택한 것 뿐이예요..
[최윤주] 무슨 유언같은거 안남겻어? 촬영하러 카메라도 왔는데
[이금동] 한마디 소리 질렀죠 “준수야 못생겨서 미안해”라고
[전춘자] 이야~ 부모님들 섭섭했겠네
[이금동] 하지만 지금도 열렬히 짝사랑하는 그 남자애의 얼굴이 떠오르는것요 그 남자아이에게 제 사
랑을 고백했을때 못생겼다고 하고 차였어요 아~ 그 남자아이는 지금 제 생각을 할까요? 지금 그 남
자아이는 밥을 먹고 있을까요? 공부를 하고 있을까요? 지금 몇시죠? 몇요일이죠?
[유화이] 00시 00일 (그 공연 당시 시간 옵션)
[이금동] 00시 오늘이 00일이면 아아.. 지금쯤 그분은 컴퓨터로 채팅을 하고 있겠군요..
(노래를한다)
돈을 주고 우리 나이의 여자를 사고 어떤 마흔은 돈을 받으면서 우리 나이를 가르치죠 제 대답이 좀
어렵나요? ? 모두 골똘히 생각한다. 음악이 흐른다, 노래. (울리는 전화벨이 불이 들어온다 유화이 전
화를 받는다)
[유화이] 네- 왜 안자구--- 왜요? 왜 잠이 안와요? --- 어떻게 하죠?
[박보연] 수면제 사다 먹으라 그래요. 너무 많이 먹다가 영원히 잠들 수도 있긴 하지만...
[유화이] 사람들 아직 안왔어요. 조금 있어야 될꺼예요. 원래 야참을 거나하게들 드셔서---
[김꽃분] 착하시네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박보연] 뭐야? 애인이야? 난 아버지랑 통화하는줄 알았어.
[이금동] 어머, 저언니도 남자친구는 있나봐요.
[유화이] 하나도 안무섭다니까요. 시체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공포스럽거나 음산
한게 아니에요.
[김지은] 시체도 시체 나름이라고 하세요
[이금동] 놀라고 해요 얼굴한번 보고싶다.
[김꽃분] 노래 한마디 혀라하지.
[최윤주] 관광왔어요?
[유화이] 미안해요. 매일- 내일은 괜찮을 꺼예요. 비번이니까
[김꽃분] 비번이 뭔겨?
[전춘자] 노는 날이요.
[김꽃분] 공휴일?
[전춘자] 그냥 들어요.
[유화이] 그 얘긴 다 된거 잖아요. 나 -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면서 즐겁게 살아요. 이일이 뭐가 어
떻다구요. 이젠 왜 당신까지 이래요?
[김꽃분] 워매 싸우는가벼?
[박보연] 사랑 싸움이야 할수록 좋지.
[최윤주] 사랑 싸움이 아닐텐데
[유화이] 알았어요. 내일 얘기해요 내일 만나서 얘기하자구요. 여기 사람들도 있고. 괜히- 아, 아니
혼자있는거 맞아요. 아니, 듣는 시체들도 많고 하니까--- 아니 그러니까 내말은 (전화끊어졌다)
[유화이] 나더러 미쳤다는군. 당신들 때문이예요
[김지은] 결혼 할 사이인가보죠?
[유화이] 으.응
[전춘자] 이런 일하는걸 안좋아하는가봐요?
[김꽃분] 하긴 여자가 시체 헤집어 놓는일을 한다는데 누가 좋아하겠소?
[전춘자] 왜요? 무슨일이면 어때요 남자든 여자든 직장 하나 쯤 갖고 일해야 하는거 아녜요?
[김꽃분] 그랴도 남자가 싫어하잖어 여자는 고분고분하니 내조를 잘해야 하는겨
[전춘자] 그거만 하니 그거밖에 모르죠. 아직도 저런 생각하는 사람이 있네 사회는 남자만 돌리나요?
[김꽃분] 어구 그래 그런애가 회사에서 좀 소리 들었다고 죽냐 죽기를!
[전춘자] 아니.. 아줌마가 뭘 안다 그러세요?
[김꽃분] 야아.. 너 나이 몇이야? 너 니 부모한테도 이래 하는겨!?
(조숙자와 이수민- 치고 박고 싸운다. 모두들 뜯어 말리면서 난장판이 되고)
[유화이] 제발 - 그만좀 하라구요 뭐하는 짓들이에요?
[김꽃분] 저 새파래 젊은것이..선생님이봐도 그러잖소! 내가 뭐 잘못한게 있으오?
[전춘자] 저는 뭐 죄져서 여기 있나요? 선생님 말씀좀 해보세요 누가 잘못햇나.
[유화이] 하나만 말해두겠는데요. 지금 다들 죽으신 거죠? 스스로들? 아무리 우는소리하고 한품고 눈
물짜고 비극의 여주인공인양 폼 잡아도 아시겠어요? 스스로들 살기 싫어서 죽으셨다구요
(시체들 순간 멍하다. 힘없어진다. 각자 제자리) 슬슬 모여 둘러앉아 들리지도 않는 소리로 궁시렁 궁
시렁 대고 있다.)
[유화이] 결혼 얼마 안남은 여자들 이런 히스테리 조금씩은 있잖아요 이것저것 준비하랴, 바뀌는 신
분 달라질 인생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 이해하세요
(시체들 계속 궁시렁 궁시렁 유화이, 그 궁시렁 잡음들에 더욱 신경이 쓰이고)
[유화이] 그만들 좀 하시라니까요 가뜩이나 머리가 복잡한데 더 어지럽게 만들지 말구요.
[박보연] 머리가 복잡할게 뭐가 있어요? 엎으면 되지.
[유화이] 뭐요? --- 아무 문제 없이 잘 준비하는 사람한테 뭘 엎으라는 거예요?
(시체들, 손바닥으로 엎는듯한 손짓들 ---)
[유화이] 대강들 하시고 이제 좀 누우시죠 시체면 시체답게 시체 본연의 모습으로- 다른 검시관들 올
시간이에요 (시체들 빈정대듯 자리에 눕는다. 누운상태에서 음악--- 노래 몇소절 유화이를 공격하는
투의 가사로 흐른다. 유화이 신경이 곤두선다.)
[유화이] 한가지 얘기해드릴까요? 내 한달 울급이 얼만 줄 알아요? 보통 남자 회사원들보다 많아요
이일이 늙어 수족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을때까지 할 있고 괜찮으면 개인 병원으로 나갈 수도 있어요
그리고 난 결혼을 앞두고 있고 상대는 건강하고 능력있는 남자에요. 난 부러울 것 없이 복에 겨워 살
아요. 후후- 당신들은 지금 거기 그렇게 누워 있어요. 줄 맞춰서 그렇게 --- 알콜냄새 범벅인채로 그
렇게---
[최윤주] 그럭저럭 그렇게 살다보면 그럭저럭 행복해질 수 있을꺼라고 생각하나봐요?
[유화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
[최윤주] 어쩌면 지금 언니가 생각하고 있는게 전부가 아닐수도 있다는 거예요.
[유화이] 전부가 아니면요? --- 난요 뭐 그다지 커다란 꿈이 있거나 어떤 거창한 희망에 부풀어 살
지 않아요. 그저 내게 올만한 행복 와도 될만한 꿈들에 대해서만 기대하죠. 그거에 뭐그리 겁먹을 필
요 있겠어요. 그리고 어쩌면 그게 가장 소중한 삶 아닌가요.
[최윤주] 그 소박한거 마저 무너져 내릴대 언니도 죽을 수 있어요
[유화이] 난 아무리 그래도 죽진 않을 꺼에요. 그런 것들이 내가 죽는 이유가 될순 없다구요.
[최윤주] 언니가 선택한 세상이 아니잖아요. 그저 언니 혼자 거기서 뒹굴고 있는거죠 그러다 보면 그
렇게 거기서 힘없이 뒹굴다 보면 세상을 끝내는 것 만큼은 언니 손으로 하고 싶을 때가 오게 될껄요
(창문을 내다보며) 여기선 도로가 안보이네요 차에 치이는게 효과는 직빵인데
[유화이] 뭐요?
[박보연] 낭만있게 죽는 방법도 생각해봐요 수면제는 제대로 드세요 목에 걸렸다간 나처럼 추해지니
까
[이금동] 언니의 일이 무너지고 언니의 꿈을 등에 업고 가야할 남자가 그 꿈을 팔아 치우게 되면 그
리고 언니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자신있게 서있을수 없게 될 때 한강 근처에 가지마세요 뛰어들고 싶
어질테니까. 물이 너무 더럽드라구요
[김꽃분] 내가 이렇게 죽었다고 하는 얘긴 아니지만 아마 제일로 방법이 아닐까 한데. 원하신다면 매
듭매는 법이랑 끈길이 재는 것은 쬐께 가르쳐 드릴수도 있거들랑요. 선상님 여자는 말이요 그렀습디
다 아직까진 스스로 죽어줘야 할거 같습디다. 아직까진 편안히 이가 할거다하고 끝나기에 부족한거이
많은 세상이라 거 뭐시냐. 잉. 운동차원에서라도 스스로 죽어줘야 겠습디다. 우리가 뭔데 어짜피 살다
보면 자연히 죽고 싶은 맘이 들거고 그러면 우리 생각이나서 우리가 죽은 여섯가지 방법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될테니까 그리고 죽은 시체 좀 뜯어 봤겠어요. 자기가 알아서 자기한테 어울리는 방법으로
하겠죠. 뭐
[유화이]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난 늙어 죽을 꺼야. 그리고 난 내일도 지키고 내 남자도 지키고
내 인생 모두를 그렇게 즐기다 늙어 죽을 꺼야. 당신들은 실패야. 실패한 인생이라구. 자신없고 깨져
버린 인생. 더 이상 갈곳 없어서 비틀 대다가 결국 스스로 죽어버린 최악의 인생들이라구 알아?
(음악. 노래 유화이와 시체들과 주고 받는 싸움)
[김지은] 당신도 죽을거야. 너무 억울하고 한 맺혀서 눈도 채 못감고 죽을걸
[유화이] 닥쳐 닥쳐--- 제발 조용히해. 너희들은 죽었어. 죽었으면 그냥 죽은 시체답게 누워서 꼼작
들 말고 있으라고. 움직이며 떠들 수 있는 것도 살아 있는 자들의 특권이야. 당신같은 사람들은 누릴
수 없는 거라구
(모두 눕는다)
[최윤주] 결국 우릴 부른건 언니였잖아요 (최윤주도 눕는다)
무대 뒤로 유화이의 남자 나타난다
[유화이] 다 들었어요?
[남] (고개 끄덕끄덕)
[유화이] 신경 쓰지 마요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남] 신경 안써.
[유화이] 왜그래요. 기분 나빳죠?
[남] 신경을 안쓰는 일에 관해선 아무 신경도 움직이지 않아. 기분 안나빠. 좋아. 기분 좋아
[유화이] 그래요
[남] 사실 겁나는게 있어
[유화이] 네?
[남] 당신이 나를 통해서 세상의 남자를 볼까봐, 나와 겪는 일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모두 다 겪을까
봐 그게 좀 겁나.
[유화이] 그게- 무슨말-
[남] 당신이 맘속에서 늘 가지고 있는 말들이지, 당신 늘 겁내했던거. 당신을 통해서 내가 여자를 다
알아버릴까봐 걱정했잖아. 당신과 함께 겪을 인생을 통해서 세상 인생 살이를 다겪는건 아닐까 걱정
했던거, 그거랑 똑같지.
[유화이] 당신- 그거 아니야. 잘못 생각하고 있는거야. 내가 물 바랄 것 같애. 내가 뭘 중요하게 생각
하고 있는거 같애.
[남] 그걸 내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유화이] 당신만큼은 알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남] 그럼 그런 생각하지마.
[유화이] 당신은 내가 이일을 하는게 못마땅해해. 난 그런 당신을 이해할 수 없고. 그로인해서 난 좋
아진 당신 식구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당신과 나 서로 미안해 하잖아. 그거면 됐어. 그렇게 미안해
하고 조금씩 나아져 가면 된거잖아
[남] 나, 누구랑 좀 닮지 않았어?
[유화이] 당신 누구랑 좀 닮았어
[남] 당신도 누구랑 좀 닮았어
[유화이] 당신 누구랑 닮은 거 같아.
[남] 오늘 당신이 만난 여섯여자들- 그주위에 있던 남자들의 모습?
[유화이] ---(고개 끄덕) 닮앗어---
[남] 당신이야말로 누구랑 닮은 것 같아.
[유화이] 당신, 정말로 그 남자들과 닮았어
[남] 당신과 만난 여섯여자들--- 그 여자들과 당신 참 많이 닮았어.
[유화이] 당신 왜 그 남자들과 닮게 보이지?
[남] 어쩔 수 없이 당신도 그 여자들과 닮았군.
[유화이] 내가?
[남] 당신도 거기 어디쯤엔가 누울 거 같아.
[유화이] 그게 무슨 말이야
[남] 왠지 그럴 거 같다구
[유화이]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구?
[남] 당신은 어떻게 죽을 거지?
[유화이] 난- 난 안죽어.
[남] 내가 죽게 할지도 몰라. 혹은 이 세상이.
[유화이] 아니야. 그래도 난 안죽어. 어려움없이 편할 거라고만 생각해 본적 없어. 그래도 저 여자들
처럼 그렇게 죽어서 이렇게 비참하게 해부나 당하고 있진 않을 꺼야. 난 안죽어
[남] 그래--- 당신은 안죽어--- 그래 괜찮아-괜찮아-괜찮아--- ---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잖아.
음악. 유화이의 노래. 유화이 책상에 엎드린다. 남, 사라진다
[김꽃분] 인제 가야할때인 갑다. 가자.
[이금동] 벌써요? 그냥 이렇게 가기는 아쉬운데..
[김꽃분] 적당혀.그냥..그냥..살던 세상 쉬익 한번 보고 가는겨.
[박보연] 저 초콜렛 보여요?
초콜렛 책상위에 놓여있다.
[박보연] 맛있겠다. 실컷 컥어보지도 못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될것을..
[전춘자] 우리--- 욕하는 사람들 참 많을 거에요. 여하튼 못난 사람들이 잖아요.
[김지은] 여기가 세상이었어. 꿈도 아니고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닌- 이게 정말 세상이었나봐.
(최윤주, 유화이 머리에 입을 맞추고 헝클어진 유화이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핀을 꼽아주고 눕는다.
남자들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유화이] 오셨어요. 맛있게들 드셨구요? 정말 사가지고 오셨네요?
[검시관] 슈팅스타가 없길래 아몬드봉봉 사왔어요
[유화이] 괜찮아요. 아몬드 있는 것도- 잘 먹어요.
[검시관] 담배 좀 펴도 되죠?
[유화이] 그러세요-담배 한 대들 태우시고 천천히 하죠-
[검시관] 창문이 열려있네요.
[유화이] 창문이요?-좀 더워서-
[검시관] 못 보던 머리핀이네요.
[유화이] 네? 머리핀이요? 아--- 그냥- 곁머리가 흘러내려서---
(유화이 다시 시선 관객쪽으로 돌아오고 손을 올려 창문을 닫으려고 한다.- 그러다간 다시 공기를 한
번 더 느끼고---)
[유화이] 여섯 구의 시체가 들어왔습니다.--- 거의 같은 시간대였었죠.--- 여섯 구의 시체--- 여자
여섯--- 여섯 모두---타살--- 참 재미난 우연이라면 우리 모두는 웃었습니다.
(불빛들 남김없이 모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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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축제대본- 아름다운 사인 (확정)이요
14기조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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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1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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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파일은 한글 200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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