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소설 속에 우리들 삶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음을 본다. 그것은 사실주의 경향이 짙은 작품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소설에 나타난 세계는 실제 사실 그대로의 현실은 아니다. 어떤 대상을 그린다고 할 때, 작가는 이야기의 방향에 따라 어떤 부분을 강조하는가 하면, 어떤 부분은 축소하거나 생략해 버리게 된다. 그래서 소설 속 등장인물은 보통의 인간과 정상적인 인간으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구분되어져야 한다. 그런데 김종광의 「낙서문학사 창시자편」은, 유사풀이란 인물이 죽은 뒤 그를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야기 위주의 발화(發話)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멋대로의 말투를 사용하고, 제멋대로 뭔가를 증언하며, 필요 없어 보이는 말들을 넋두리마냥 늘어놓기도 한다. 연습장에 낙서를 한 것처럼 보이는 이점이 바로 작가 김종광의 끼이며 이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낙서문학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작가 김종광은 창시자편을 만들어야만 지속적인 낙서문학사(史)를 창출해 낼 수 있다고 본다.
작가 김종광은 197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계간 「문학동네」문예공모에 단편 「경찰서여, 안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모내기 블루스』『짬뽕과 소주의 힘』과 중편 소설 『71년생 다인이』, 장편소설 『야살쟁이록』을 펴냈다. 그는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해로가」가 당선 되어 문단에 나왔다. 작가 본인이 스스로의 열정으로 신춘문예에 응모했고, 또한 당선 되어 실력을 평가 받은 신춘문예 출신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낙서문학사>와 같은 작품집을 발간한점은 주목받을 만 하다. 무언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필요로 하고, 창조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요즘의 문학 행태에 부응하듯, 문단의 허와 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는 김종광의 낙서 같은 소설에 독자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도리가 없다.
또한 그의 감각적 상상력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서사 구조로서 전개 방식도 독특하다. 구어체 문장으로 유사풀의 가족과 친구, 주변 인물들의 짤막한 증언들이 나열되면서 그의 생애를 재구성하고 있다. 유사풀의 평전을 쓰기 위한 자료 녹취가 여러 증인들의 제각각의 목소리와 어투로 재구성되면서 한 개인의 짧은 생이 낱낱이 발가벗겨지고 있는 셈이다. 작가의 분신으로 여겨질 정도로 고정된 화자에 의존하는 기존 소설 문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화자들의 음성을 들려줌으로써 한 편의 소설 속에서 여러 겹으로 된 대화의 층위를 형성한다. ‘문학은 낙서’라면서 문학의 가벼움을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풀어낸 이 소설은 문학의 상업화를 조롱하기도 한다. 동시에 한국 문단의 온갖 위선과 허위, 지리멸렬한 일상의 풍경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2. 낙서문학의 창시자 ‘유사풀’에 대해서
<낙서문학사 창시자편>에서는, ‘낙서문학’이라는 신문학 장르를 개척한 ‘유사풀’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증언을 해 주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도 단편에서는 최다 숫자가 아닐까 싶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올 때, 화자의 초점이 흐려질 수 있는 기존 소설의 특성을 이 작품은 구조적 특이성으로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낸 듯싶다. 가운데 중심부에 주인공 유사풀이 존재하고 가장 자리 둘레에 17명의 발화자가 각기 자신들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사실이 특별하다는 데에 우리는 시선을 두어야 한다. 유사풀이란 이름 또한 특기할 만하다.
아, 이름 하나는 참 유별났지요. 사풀이가 뭐예요. 형부한테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사풀이가 막 태어났을 때인데, 형부는 말라 죽어가는 풀을 보고 있자니 자기 신세가 마치 죽어가는 풀 같았대요. 생각나는 한자가 ‘죽을 사(死)’ 자밖에 더 있었겠어요. 그 죽을 사 자를 붙여 ‘사풀’ 같았다나요. 그 ‘사풀’을 아이 이름으로 지어버렸다는 거예요. 하지만 면사무소에 신고할 때는 서기가 누가 아이 이름에 죽을 사 자를 붙이냐고 뭐라고 해서 사 자도 그냥 한글로 했대요. 그러고 보니 형부는 한글로 애기 이름을 지은 첫 세대라고 할 수 있겠네요. 김종광, 『낙서문학사 창시자편』 문학과 지성사 55쪽 2006
초등학교 동창 최미주의 이야기를 미루어 봐도, 유사풀이란 인물은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미미한 존재임을 엿볼 수 있다. 유사풀의 아버지는 자식 사랑에 있어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유사풀이 이상의 작품을 ‘낙서’라고 말하면서, 유년 시절부터 이상의 ‘낙서문학‘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 스스로도 낙서를 쓰면서 다른 누군가가 “그거 소설(혹은 시) 아냐?”라고 물으면 낙서라고 계속 주장한다. 유사풀이란 인물은 성장 과정부터 독특하면서, 전형적인 위인형 인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수많은 민중이나 다른 작가들에게서 격리된 채 자신만의 문학적 사상을 펼쳐나가는 뚝심이 독특하다면, 일반적인 위인들이 보여주는 고집이나 어린 시절부터의 특별함이 그가 전형적인 위인형 인간이라는 이유가 되겠다. 실제로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교내의 10000여권에 이르는 책들을, 3년 만에 다 읽었다고 청라초등학교에서 도서관 사서를 도맡았던 조관순은 말했다. 3년 동안 읽은 책의 독서록에 마지막 번호가 9,679권이면, 하루에 10여권을 읽었다는 계산이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한 숫자이다. 이 비유는 작가가 ‘유사풀’이라는 인물을 그 정도로 특출 나게 문학성이 있는 사람으로 대성시키려는 암시도 되겠지만, 그의 과장된 입심 또한 간과 할 수 없다.
유사풀은 특출 난 재능과 노력으로 스무 살에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응모한다. 낙서문학을 알리려면 일단은 제도권 문학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가장 근접한 부분인 소설 부문에 응모하여, 스무 살 나이로 등단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낙서문학’을 한다고 했을 때,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받아본 출판사에서 아무도 그의 낙서문학을 출판하려 하지 않자, 유사풀은 자신의 문학과 삶 자체에 회의를 느낀다. 유사풀의 유일한 혈육 유하늘을 낳은 홍예지의 증언을 통해 그의 독백을 들어 볼 수 있다.
“죽어야 한다. 그래야 내 문학이 살아나고, 낙서문학이 위대해진다. 나는 죽어야만 한다.” 같은 책 92쪽
이 독백은 현시대의 문학계에 한 단면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유사풀은 스물다섯 나이로 죽어버렸다. 그 후에 한 평론가에 의해 유사풀의 낙서가 다시 발굴되며, ‘유사풀 낙서문학상’이 제정되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그의 작품은 흥행에 성공한다. 곧 낙서문학은 위대해지고 유사풀의 예견대로 그는 대중으로부터 우상화 되었다. 덕분에 그의 아들을 낳아 준 홍예지는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유사풀의 아들이 장성해서 ‘낙서문학’을 한다고 하였을 때, 유사풀의 아내였던 홍예지는 이에 대해 반대한다. 그녀가 하는 말 역시 상당히 의미가 깊다.
“․…하늘이(유사풀의 아들)가 스무 살 때 자기도 낙서문학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나는 말렸습니다. 그냥, 말리고 싶었어요. 나는 문학이라는 게 영 사기 판 같았거든요.”김종광, 『낙서문학사 창시자편』 문학과 지성사 99쪽 2006
이즈막 우리 문단의 등단제도는 어떠한가. 작가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우리는 등단이란 제도에 순응해야만 한다. 등단의 경로는 각 신문사들이 주관하는 신춘문예와, 문예지 신인상 당선과, 개인 창작집에 서평을 받아 발표하는 등의 경로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작가를 꿈꾸는 만큼 제도라는 것이 평이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신춘문예의 허와 실에 대하여는 얼마 전부터 많은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고, 문예지를 통한 등단 또한 몇몇 문예지를 제외 하고는 ‘신인장사’라는 오명을 남기고 있는 현실이다. 그에 따른 부작용과 작가라는 이름에 기대를 걸고 있던 참신한 신인들의 실망 또한 문단의 주역들은 고민해야 될 터다. 그런데 젊은 작가 김종광은 그러한 부분들을 감각적인 언어구사로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은 분명 예술이다. 예술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며, 동시에 결핍을 위로 받게 해 준다. 우수하다고 불릴만한 문학작품이라면, 어떤 것이든 이러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기능들은 개인마다 느낄 수 있는 감동의 폭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는 있다. 분명 예술 작품의 감상은 주관적인 문제이다. 그러므로 일정 수준을 넘어간 예술에는 순위나 등급을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래도록 많은 독자들에게 회자될 수 있을지 생각 해 볼 일이다. 어떤 작품이든, 어떤 장르이든 문학은 반드시 평가된다. 낙서는 문학이 아님이 분명하다. 문학이 문학 밖의 요소에 의해 평가 받는 건,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출판사의 광고에 의하거나, 또는 영화화 되거나, 아니면 애니메이션화 같은 제2의 창작 요소가 없다면 어떤 훌륭한 작가라도, 작품의 평가를 높이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고 본다. 훌륭한 작품을 쓰는 작가라도, 문학을 한다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누구든 제도권의 문학세계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문학 밖의 요소를 잘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부정적인 시점에서 표현해내고 있다 하겠다. 25세에 요절한 유사풀은 기존 문학의 관념을 뒤집은 새로운 예술 장르 ‘낙서 문학’의 창시자가 되어 사후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도 제정되었지만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자기의 낙서문학에 대한 투신을 ‘서투른 비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너무 촌스러운 제목인가요?” 같은 책 100쪽
라며 유사풀 평전 제목을 ‘서투른 비상’으로 해달라고 부탁한다.
‘서투른 비상’은 유사풀과 여섯 명의 친구들이 만든 그 당시 고등학교 시절 유행하던 문집이다. 여러 제목 중에 유사풀의 목소리가 제일 커서 선택된 제목이다. ‘서투른 비상’이 갖고 있는 은유적 표현은 낙서문학과 일치한다. 그가 비상하고 싶은 세계와 문학이 아닌 낙서는 아이러니를 유발한다. 하지만 ‘유사풀’이라는 동시대 실존 인물의 실체를 파악하기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다들 자신들의 기억과 입장, 처지, 그와 공유한 특별한 경험 등에 연루된 다양한, 심지어 상반되기까지 한 말들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3. 가운데를 중심으로 모아지는 서술구조에 대해서
<낙서문학사 창시자편>은 낙서문학의 창시자인 유사풀을 중심으로 외적 요소인 17명의 22가지 이야기가 가운데 중심으로 모아지는 서술 구조 양상을 띄우고 있다. 한 인물의 성장 소설처럼 시간 배열을 순서대로 늘어놓고 있는 구성이 독자들로 하여금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를 돕는다. 만약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의 순서를 마구잡이로 해 놓는다면 과연 발화자들의 이야기가 가운데 한 정점으로 모여들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며 본문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를 낳아준 어머니 박첫예는 어린 시절 돈 때문에 광산촌 포주에게 팔려가, 결국 광산촌 작부가 되었다. 그러던 중 유가인가 하는 단골과의 관계에서 아이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 아이가 바로 유사풀이다. 하지만 그녀는 유사풀이 죽고 유명해진 지금, 그의 아내를 찾아가서 내가 유사풀을 낳아준 어미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유년 시절의 친구 이기운은 유사풀을 작부년 새끼라고 놀리지 않은 유일한 친구이다. 탄광 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된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작부 노릇을 했던 옆집 누나의 동생이, 작부년 동생이라는 놀림을 받고 자살한 이후, 그는 사풀이를 놀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기억 속에 유사풀은, 자신보다 글씨를 몰랐고 고양이와 새를 무서워했다는 정도로 남아 있다. 반면 초등학교 동창 최미주에 의하면 유사풀은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었으며 그의 새엄마인 자신의 큰언니는 그런 유사풀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청라 초등학교 도서관 사서를 도맡았던 조관순은 어려서부터 그가 글쟁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엄청난 양의 책을 읽었으며, 심지어는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 도서관에 오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증언을 종합해보면, 유사풀은 낳아준 어머니와 길러준 어머니가 다르며,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고 책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쩌다 소위 말하는 낙서문학가가 되었을까. 중학교 동창 박호현에 의하면 유사풀은 ‘이상 시 전집’을 읽은 이후로 ‘낙서’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유사풀은 10년간 낙서에 푹 빠져서 살았는데 그의 낙서를 시나 소설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최초로 끄적인 낙서는 ‘작부년 새끼’로 내용은 작부가 아이를 낳아서 키웠다는 이야기인데 자신이 “시 좋다.” 라고 하자 유사풀은 “이건 시가 아니라 낙선디”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호현의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었다. 그가 40년 전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상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물으니 자신도 모르게 긴가 민가 -하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진짜처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오히려 유사풀이 그렇게 이름이 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며 아직도 유사풀을 개잡놈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누나를 망쳐 놓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동창 김배인은 유사풀을 싫어했다고 고백한다. 유사풀이 이상문학을 낙서문학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상의 낙서를 모독하고 있는 행위가 늘어만 가고 있는 현실적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은 낙서가 문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낙서는 낙서일 뿐이라고 믿고 있다고 했다. 그런 낙서 나부랭이를 문학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리고, 찬양하고, 유사풀 낙서문학상 같은 것을 만들어놓고 사기극을 벌이는 자들을 저승사자는 왜 안 잡아가는가가 의문사항이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 이복재가 기억하는 유사풀은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빨갱이 책으로 불리는 금서를 읽는 등 선생들이 하지 말라는 짓은 다 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유사풀과 중국 음식점이나 제과점에서 만나 학교 교육의 문제를 비판하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사랑에 대한 성찰까지 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투른 비상’을 같이 했던 서옥순에 의하면. 목소리가 제일 큰 유사풀이의 의견대로 이름 지워진 ‘서투른 비상’은 두 달에 한 번 문집을 냈는데, 특히 전교조 결성과 합법화를 위해 지난한 길을 걸어야 하는 선생님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 그는 유사풀은 경제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지면과 분량을 늘리자고 하여 그가 돌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또 이주영에 의하면 유사풀은 자신의 문학은 무조건 낙서라고 우겼다고 한다. 한 편 문학과 10년 선배 양우석에 의하면 그는 10대들이 판치지 못하던 문학에서 유사풀은 세 개의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고 다섯 개의 문예공모에서 입상을 했다고 한다.
대학 시절을 회상하는 목소리에 의하면 유사풀은 의식이 있는 젊은이일 뿐 아니라 글재주도 뛰어난 상당히 유능한 인재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발화자가 어디에 중심을 두고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유사풀이란 인물이 모두 다르게 인식되는 것이다. 도대체 유사풀은 누구인가. 유사풀의 공적인 삶이 아닌 사적인 삶에 대한 증언을 들어보면 이렇다.
대학 동기 조미연에 의하면 유사풀은 어떤 여자든 두 번만 만나면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 시절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갈 정도로 쭉쭉 빵빵이던 자기에게는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아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는 것. 한 편 그녀가 유사풀과 섹스한 것은 그저 우연이었는데 유사풀이 자신을 본 순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자신도 남자는 먹어 봤지만 ‘시인을 먹어본 적은 없었다’는 것이 맞물려 일어난 일 이었다고 했다.
유사풀의 유일한 혈육 유하늘을 낳은 홍예지는 노조를 하며 유사풀을 만났고 숫처녀의 몸으로 그와 섹스를 한 후 동거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나 유사풀은 근면 성실해 학원 강사로도 일하고 새벽 늦게까지도 낙서를 썼다고 한다. 그 둘 사이에서 나온 아이가 바로 유하늘이다. 마치 자신이 죽은 후 일어날 ‘유사풀 우상화 작업’을 예견하듯이. 그의 사 후 작품이 팔리며 갑부가 된 홍예지는 그 돈벼락을 하늘이가 적응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유사풀의 덕을 본 사람은 또 있으니 바로 평론가 김성연이다. 그에 의하면 유사풀은 책만 남긴 것이 아니라 ‘낙서’라는 개념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가족을 만나 그의 원고를 받은 김성연은 유사풀을 낙서문학의 창시자로 자리매김함으로 낙서문학 평론의 최고봉이 되었다. 2009년 한반도 통일보다 더 획기적인 문서번역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진 2015년 유사풀 문학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자신은 전 세계적인 평론가가 된 것이다. 유사풀 낙서문학상 제정자 강수철도 만만치 않은 이다. 그는 오래전에 죽은 유사풀이 순전히 자신을 위해 존재했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문학상의 상금을 올리자 그의 작품이 더 많이 팔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사풀이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는 발화자의 입장에 따라 다 다르며 개인이 어디에 엑센트를 주고 이야기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로의 전이가 일어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상황 논리들을 조합해서 유사풀이란 작가를 역으로 추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유사풀에 대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추렴하면 할수록 유사풀이란 존재는 오히려 오리무중으로 빠져 버리고, 시끄러운 소음만이 남게 된다. 발화 주체의 입장에 따라서 다른 가치 판단의 의미는 그 모든 것이 유사풀의 실체를 구성하는 것이며 역으로 모두 아닐 수 있다는 이중적 모순에 빠지게 한다. 최성실, <소설 속의 말, ‘발화’의 정치학> 중에서
라고 <낙서문학사>의 해설을 쓴 최성실은 말하고 있다. 결국 발화란 문장과 달라서 대화적 계기, 즉 주어진 맥락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발화 주체인 개인은 이 맥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유사풀의 평전을 쓰기 위해 그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하는 서사 구조의 선택이 감각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할 수 있겠다.
4. 새로운 글쓰기에 대해서
이즈막, 우리는 지식정보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삶은 급격히 변화되고 그에 따라 가치관과 사유, 윤리와 풍속, 개인과 사회, 사물과 인간간의 새로운 관계가 요구되고 있다. 문학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 본다. 문학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현대는 기왕의 문학 형태나 주제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고 변화하는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표현 방식과 인식에 대한 모색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창작품에서 발견되는 ‘창조적 상상력’과 ‘독특하고 완벽한 예술작품’과 같은 개념은 새로운 글쓰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불식하게 만들고 있음이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 문학 환경의 변화는 젊은 작가들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글쓰기 양상의 확대라 하겠다. 변화의 시대에 새로운 감각과 시각으로 주목받는 김종광의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김유정, 이문구, 성석제에 이어 이야기꾼으로서 호평 받고 있는 그는 서술 구조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다소 아쉬움이 있다면 너무 과장된 허풍과 진실 왜곡이란 것이다. 독자들이 과연 증언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또한 2015년이란 미래의 공간을 설정해 놓고 탄광촌의 작부와 가난한 서민층의 일상은 좀 과장된, 설득력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신선하고 참신하여 독특한 이미지마저 주는 서사양식에 시대적 공간이 주는 분위기는 6,70년대식의 진부한 설정이 왠지 경이로운 느낌을 삭감시킨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글쓰기에 대한 시도가 문학은 낙서라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음을 우린 눈여겨 볼 일이다.
한국 문학에는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확신했어요. ‘시는 시화호처럼 썩었고, 소설은 폭격 맞은 산처럼 황폐해 졌고, 수필은 문학이기를 포기했고, 희곡은 연극의 노예가 되었고, 평론은 출판사의 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요. 이건 유사풀 선생의 표현이었지요. 같은 책 94쪽
21세기에 문학을 하는 우리 모두는 그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자성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일이다. 문학을 하는 일, 작가 정신의 본질을 찾는 일 모두가 또 다른 낙서문학사에 기록될 한 단면임을 상기하면서 독자의 시선으로 김종광을 기대해 볼 일이다.
<참고자료>
1. 김종광, 『낙서문학사 창시자편』문학과 지성사 2006
2. 최성실, 『소설 속의 말 ‘발화’의 정치학』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