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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黃芝雨) 시인 |
같은 위도 위에서 황지우 지금 신문사에 있거나 지금도 대학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잘 들어라,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지금의 잘 먹음과 잘 삶이 다 혐의점이다 그렇다고 자학적으로 죄송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제발 좀 그래라) 그 속죄를 위해 <악으로>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위해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말도 나는, 간신히, 한다 간신히하는 이 말도 지금도 대학에 있거나 지금도 신문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못 한다 안 한다 그래도 폴란드 사태는 신문에 난다 바르샤바, 그다니스크, 크라코프, 포즈난 난 그 위도를 모른다 우리가 그래도 한 줄에 같이 있다는 생각, 그 한 줄의 연대감을 표시하기 위해 마루벽의 수은주가 자꾸 추운 지방으로 더 내려간다. 자꾸 그곳으로 가라고 나에게 지시하는 것 같다 산다는 것은 뭔가 바스락거리는 것인데 나도 바스락거리고 싶은데 내 손이 내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한다, 시늉만 (내 탓이로다) 내 탓이로다 내 탓이로다 하느님, 정말 불쌍합니다 그날그날의 현장 검증 황지우 어제 나는 내 귀에 말뚝을 박고 돌아왔다. 오늘 나는 내 눈에 철조망을 치고 붕대로 감아 버렸다. 내일 나는 내 입에 흙을 한 삽 처넣고 솜으로 막는다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나는 나의 일부를 파묻는다 나의 증거 인명을 위해 나의 살아 남음을 위해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 2 황지우 갈 봄 여름 없이, 처형받은 세월이었지 축제도 화환도 없는 세월이었지 그 세월 미쳐 날뛰고 맹목의 세례식 -- 개나리꽃 옆에서 우리는 물벼락 맞았지 진달래꽃 앞에서 눈물 벼락 맞고, 우리는 국적을 잃고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색맹이 되고 자욱한 연기, 질식할 것 같은 철쭉꽃 뒤에서 몰지각한 망상주의자 망상주의자였지 우리는, 연방 기참하면서 불순한 사대주의자 위험한 이상주의자였지 손 한번 들어올리지 못하고 소리 한번 못 지르고 우리는, 한 다발 두 다발 문밖으로 들려나가는 모습들을 '느린 그림'으로 지켜 보는 들뜬 회의주의자, 혼수 상태의 세월이었지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에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언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高熱)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물 빠진 연못 다섯 그루의노송(老松)과 스물여덟 그루의 자미(紫薇)나무가 나의 화엄(華嚴) 연못, 물들였네 이제는 아름다운 것, 보는 것에도 질렸지만 도취하지 않고 이 생(生)을 견딜 수 있으랴 햇빛 받는 상여처럼 자미꽃 만발할 제 공중에 뜬 나의 화엄(華嚴) 연못, 그 따갑게 환한 그곳; 나는 세상으로부터 잊혀지고 돌아와야 편한 정신병원 같은 나의 연못, 나는 어지러워서 연못가에 진로(眞露) 들고 쓰러져 버렸네 다섯 그루의 노송(老松)과 스물여덟 그루의 자미(紫薇)나무가 나의 연못을 떠나 버렸네 한때는 하늘을 종횡무진 갈고 다녔던 물고기들의 사라진 수면(水面); 물 빠진 연못, 내 비참한 바닥, 금이 쩍쩍 난 진흙 우에 소주병 놓여 있네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것이다 초경(初經)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다 생(生)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 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 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 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쌍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 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 주면서 먼눈으로 술잔의 수위(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우울한 겨울 3 한때 나는 저 드높은 화엄(華嚴) 창천(蒼天)에 오른 적 있었지 숫개미 날개만한 재치 문답으로! 어림 턱도 없어라 망막을 속이는 빛이 있음을 모르고 흰 빛 따라가다 철퍼덕 나가떨어진 이 궁창;진흙-거울이어라 진흙-마음밭에 부리 처박고 머리털 터는 오리꼴이라니 더욱 더러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 신간은 편하다만 이렇게 미친 척 마음 가지고 놀다 병 깊어지면 이 어두운 심통(心筒), 다시 빠져 나갈 수 있을지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여러번 살아서 좋겠다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生)이 마구 가렵다 어언 내가 마흔이라는 사실에 당황하고 있을 때, 하늘은 컴퓨터 화면처럼 푸르고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왜정 시대의 로마네스크식 관공서 건물 그림자를 가로수가 있는 보도에까지 늘어뜨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내가 어떻게 마흔인가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病名)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나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11월의 나무는 아직도 살려고 발버둥치는 환자처럼, 추하다 그래도 나무는 여러 번 살아서 좋겠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들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1987) |
해남의 문학 - 황지우 시인 | |||
남녘 토양은 시의 자양분
『80년대 한국시문학의 한 지류를 따라 지금까지 흘러온 저의 시적 연혁도 제 고향이 갖고 있는 두 모습, 자연적 아름다움과 사회적 불행을 체화하는 과정이 아닌가 합니다』 황지우시인은 자신의 문학인생을 갈무리해 최근 펴낸 「문학앨범-황지우」(웅진출판사)에서 고향 남녘의 풍토가 오늘의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결정지은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음을 새삼 고백했다. 작가의 고백적 글이 아니더라도 함께 실린 시인의 연대기(임동확)와 작품론(이광호), 작가론(조건영·송기원)등은 황지우 문학의 자양분이 된 남녘토양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황지우의 공간적 원형은 솔섬이며 그의 책읽기의 원형은 고은이다」 이광호는 작품론에서 황지우가 태어난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 배다리마을이 멀리보이는 무인도 솔섬에서 결핍과 고난, 죽음과 환생의 의미를 캐내고 시로 승화시켜냈다고 분석하고 있다. 『차멀미에 시달려 탈진 될 즈음 뱃속에서 보았던 솔섬 갈매기떼들의 행렬이 환한 기분을 만들곤 했다』는 시인의 회상을 연대기에 옮긴 임동확은 솔섬의 갈매기들이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세상밖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 …한 세상 떼어 메고/ 이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했는데도 불구하고 「각각 자기자리에」무기력하게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갈매기로 살아났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해체와 형태파괴의 시」라는 이름을 얻은 황지우의 시 형식에 대해서는 「실험작가중의 하나이거나 신중산층 인텔리겐차의 혐의를 둘러씌우기 십상이지만 일그러진 현실에서 나온 일그러진 형식」임을 강조하고 있다. 연루돼 고통을 받았고 삼촌은 여순(麗順)사건이후 빨치산이 돼 경찰에 의해 비참한 죽임을 당한」가족사적 비극과 문단에 데뷔한 젊은 시절 그가 관통해온 권력과 폭력의 현실이 시의 내용과 형식에 반영돼 있음을 황지우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모더니스트라는 불림에 대해서만은 『멸시를 받는 느낌이 든다』면서 도식적인 겉멋과 경박성의 혐의가 짙은 한국에서의 모더니즘을 경계하는 리얼리스트라고 자신을 규정짓고 있다. 한편 문학앨범에는 그의 개인사와 시정신을 엿볼 수 있는 사진과 황지우 자신이 쓴 산문과 자작 대표시 등도 실려 있다. ( 한 일간신문 인터뷰기사) 황지우 평론 - 대지의 순정 우리 황지우를 만나노라면 몇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우러난다. 그 하나는 그를 만나기만 하면 만사에 대한 안도감이 생겨나서 이 세상에 대해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신뢰감이 아니라 일종의 불가사의에 가까운 풍요에 해당한다. "황지우의 삶만큼 궁핍의 시대를 넘어선 초궁핍의 도량을 갖춘 시인이 어디 있을까" 하고 나는 여러 시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에게는 언제나 슬프도록 넉넉한 마음이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담고 있는 푸짐한 몸조차도 그 마음이 만들어내는 마음의 기구인지 모른다. 어느 때는 추운 겨울의 저녁 무렵에 헤어지면서 저 젊은 것이 너무 큰 궁리를 트고 있구나 어쩔거나 하고 나는 걱정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의 뒷모습이 멀어지면서부터 나는 그가 이 세상을 떠나버렸거나, 아니 남아연방에라도 가 있는 것처럼 가슴이 저리는 그리움으로 달떠버리는 것이다. "에이 지우!"하고 그의 뒤를 쫓아가 그의 등짝을 탁 치고 싶은 것도 그래 본적이 없기 때문에, 여태껏 그에 대한 그리움 안에 포함된 예감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나는 시인 지우를 사랑해 마지않는다. 그에게 천부적으로 결핍된 사실주의야말로 다른 사람들이 사실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과 달리, 그의 자유에 대한 무한한 질곡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 질곡까지도 자유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가 1980년 5월 전국 비상계엄령의 극한상황에서 죽도록 얻어맞아서 같은 유치장에 들어 있던 강만길 교수가 피범벅이 된 볼기짝을 어루만지고 주물러줄 때도 그는 무던히도 어떤 무위를 자유를 누렸을 것이 틀림없다. 고통을 제례로 삼는 한 젊은 시인의 아름다움은, 그가 미학을 전공한다는 것과 동떨어져서 실로 처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도 외칠 줄 모르고 울부짖을 줄 모르는 어리석음으로, 그는 시 한 편이 나올 때 여러 의식의 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의 촬영은 마지막 현상에서 전혀 다른 것으로 변모하는데, 이 과정이야말로 그의 독창적인 비극이다. 나는 이런 황지우에게 무엇이든지 맡기고 싶다. 예술보다 인생을. 아냐. 인생보다 예술의 그 당돌한 직입!을 우리 황지우를 만나노라면 또 한 가지 생각을 물리칠 수 없다. 그는 언제나 위태위태하다. 내일 한 시인이 시를 내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가 바로 선방에 들어가 용맹정진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속에서도 그는 고립되고, 선방의 파초 잎새 아래서도 고립된 어정쩡한 상태로 한 무사승이 되어, 스승도 동반도 없이 있게 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되기 이전에 이미 선의 지경에 들어가 마음껏 노닐고 있는 성부르다. 다만 화두 하나를 붙들고 단전에 화두를 심어놓기보다는 몇 천의 공안, 몇 천의 화두를 두루두루 들어다 놓았다 할 것이다. 그러다가 그것도 인연이 다하면 터벅터벅 산을 내려와, 이제 몇 개밖에 남아 있지 않은 옛 삼거리 주막에라도 들러 그 주막에 앉아, 왱하고 날아오는 파리 두어 마리와 더불어 궂은비 오는 들 가운데 왜가리나 바라보면서 담뿍 취해서, 점점 그의 얼굴은 취한 부처 얼굴로 웃음이 번져 나올 것이다. 안주 한 번 집어먹지 않은 채. 사실인즉 그는 타고나기를 비승비속으로 태어났다. 그러니 만큼 일찌감치 이 세상의 모순과 황홀에 눈떠 그것을 터득한 소년기를 지나, 그가 시인으로 나오자 마자 그는 퍽이나 늙수구레한 덕망을 이끌고 원융과 2분법의 사고를 치러내면서, 그에게는 동서양이 하나의 어항 안에서 헤엄치다가 동작을 멈추다가 하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는 입산의 위험이 있고 산에서는 하산의 위험이 있다. 교묘한 것은 엘리어트가 에즈라 파운드를 찬양한 것 이상으로, 그는 이런 두 위험 가운데서 정말 교묘하게 그의 삶을 지탱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의 교묘함은 퍽이나 단호하다. 그가 <운주사>에서 바로 <대인동>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는 과정은 일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시인은 진흙덩이와 잘 수 있을 것인가. 아니다. 아무리 그가 진흙 이불을 덮는다 해도, 그가 피워낼 것은 한 송이 내지 여러 송이 연꽃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이 연꽃의 아름다움이 관념의 미학으로 죽어버리게 하지 않기 위해서, 연꽃과는 십만 팔천 리나 떨어진 진흙덩이와의 접촉을 지향한다. 생각해보라. 연꽃이 연꽃만이라면 이미 꺾어져 죽은 연꽃, 시들어가는 연꽃인 터이다. 하지만 그 꽃이 진흙구덩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 살아 있는 황홀이 아닌가. 그래서 황지우의 관념은 용해에 기여한다. 우리 황지우를 만나노라면 어디 이 따위 따름이겠는가. 그는 대지의 시인이다. 그에게는 이런 정의가 하나의 완결로서가 아니라, 그에게는 요령부득의 행로를 무한히 보장하는 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그의 길에는 종국적인 목적이 없다. 가는 것과 오는 것의 분별도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그는 을지로를 광주항쟁의 전사 윤상원의 이름을 따서 윤상원로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그러나 지극히, 비정치적이도록 1차원을 벗어나 있다. 그런 길을 가는 그에게는 실지로 어떤 약속이 있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지상의 을지로이건 지하철의 을지로이건 그는 그 길을 간다. 그 을지로에서 광교를 건너 종로의 어느 곳에 가야 하는데, 이는 종로에서의 약속 때문이다. 그러는 그는 상투적으로 종로를 박관현로라고 부르기를 꿈꾸지 않는다. 아무튼 종로 2가의 약속장소로 그는 간다. 약속을 도중에 잊어버리지 않는 것으로도 그는 믿을 만하다. 그런데 그 도중에 다른 친구를 만난다. 그 친구와의 만남은 그의 시에서처럼 먼데서 오고 있는 <너>인지 모르는데, <너>를 기다리는 <나>도 감으로써 만나는 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 친구와의 만남 때문에 종로에 가는 약속장소를 까먹거나, 우선 그런대로 그 약속을 시간으로부터 분리시켜 보류하고, 새로 만난 친구가 이끄는 대로, 마치 그 친구와의 만남 때문에 이에 앞서 약속이 있었던 것처럼, 어느 술집에 들어가 항상 젖어 있는 그의 눈을 껌벅이며 전혀 비시적인 현실을 시적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하나의 만남도 그냥 내쳐버리지 않고 소중한 것으로 보내고 나서, "아 이제부터 약속장소로 가야 한다"고 일어선다. 그가 종로의 약속장소에 갔을 때는 이미 거기에 와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친구가 떠나버린 뒤였다. 그는 그 공허를 이기적으로나 이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도대체 그의 마음 속에 이럴 경우 그 무엇이 들어가 있는 것이가. 아주 잘 그려진 만다라와 같은 무위이리라. 이런 시인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시인은 두 가지를 다 준다. 자유의 행복과 음모의 불가능성이 그것이다. 우리 황지우를 만나노라면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 시대의 속도와 함께 가버리고 그 이름만 남은 것! <순정>이 아직 그에게는 온전히 남아서 <순정의 멸종>을 막아내고 있다. 아마도 어떤 사려깊은 여자가 시인 황지우의 눈을 보게 된다면 잠깐 보고 말 수 없을 것이다. 그 눈이 깊숙히 간직하고 있는 우수와 무조건적인 평화, 그리고 남에게 털끝만치도 해를 끼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자존심 따위에 사로잡혀 하염없어할 것이다. 여기에다 그의 운명에서 떼어낼 수 없는 순정이라니. 드 때문에 그는 퍽이나 비극적이기까지 하다. 생각건데 그의 시가 이른바 형태 파괴적이든 무엇이든, 거기에 거의 돌연변이와 같은 돈오주의적 해학이나 풍자의 자취가 역연한 바 있고, 이는 고전주의적인 운율 따위로부터 자유분방한 자동서술에 도달하는 역량은, 필경 그의 비극성으로부터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그를 흉내내는 일련의 시인들의 그것이 상당한 헛수고를 하게 만드는 것인지 모른다. 즉 비극정신 내 비극의 미학을 다지지 않은 상태의 파격이란, 경망스러운 작위의 유희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시인의 순정과 해학이 시인적 품성과 시적 품격을 지켜줄 때, 거기에 황지우의 빗소리와도 같은 시의 미학이, 그가 터뜨리는 철학적이기까지 한 직관의 배열은, 그의 능란한 시각예술적 감각과는 달리 어떤 음악의 단계를 실현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80년대 이래 줄곧 그때그때의 시대적 격동기에 그 자신의 몸을 부딪치면서도, 결코 어느 편에도 불화를 일으키지 않으려다가 그 대가는 화해의 형이상학으로밖에 받아내지 못하면서, 순정 가운데서 떠나고 순정 가운데서 지치기도 했다. 이 같은 시인의 순정은 바로 그 고향의 황토 산야에서 얻어진 것이고, 역사적으로 광주항쟁과 깊이 관련되고 있다. 그는 몇 권의 시집을 낼 때마다 그의 동료적 찬미 가운데로부터 점점 그의 시에 대한 지지를 넓혀감으로써, 80년대 이래 남한 시단의 대표적 존재의 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둔탁하기조차 한 몸짓은 이런 위상에까지도 둔탁하다. 그는 시인 그 자체로서만 만족하고 있다. 마치 그가 한 남편으로서, 한 아버지로서 완벽하지 못한 대신, 시인 자신에게도 허다한 연기와 나태를 동반하는 작업이면서도 그 모든 역할을 그 대신 누군가가 해주는 것처럼 꾸려나가는 사실은 거의 이적에 가깝다. 나는 시인 황지우를 사랑한다. 이 말을 몇 번 거듭해도 싫증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그것은 그의 시가 쌓아온 성과와 함께 앞으로 그의 시가 쌓을 빛나는 성과가 반드시 우리 시의 역사에 대해서 한 흐름을 이루어나갈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가 추구하는 선방의 계송세계와 현실의 구체적 정서 변용을 아우르며 새로운 시의 전망을 펼칠 때, 거기에 시인 황지우의 한 국면이 완성될 것이다. 우리 황지우는 축복을 할 수 있는 시인이다. 그 공덕으로 그는 끝내 커다란 축복 가운데 살 것이다. 그것은 미래이기보다 약속된 현재이다. < 연보 > 1952 전남 해남 출생 서울대 인문대학 미학과 졸업 1980 「연혁」이 『중앙일보』 신춘문예 입선하고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등을 『문학과 지성』에 발표하면서 등단 1983 첫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문학과지성사) 간행 제3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1985 제2시집 『겨울-나무러부터 봄-나무에로』(믿음사 간행) 1986 산문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한마당) 간행 1987 제3시집 『나는 너다』(풀빛) 간행 1990 제4시집 『게눈 속의 연꽃』(문학과지성사) 간행 그동안 계간지 『외국문학』『세계의 문학』주간을 역임하고 한신대 등에 출강, 현재는 광주에 거주하며 전남대와 조선대에 출강중임 1991 제36회 현대문학상 수상 |
첫댓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어두운 역사적 한 페에지에 우리네 인생의 삶이 보입니다. 각고의 세월을 담아갑니다. 시적인 감각보다 밝은 태양의 믿음을 얻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수암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