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란만 보면 떠오른 이가 내게 하나뿐인 남동생이다. 어머니께서 모든 걸 잃고 세상을 피해 숨어드셨을 때 남동생과는 나는 자취를 시작했다. 범일 동 보림 극장 위의 언덕 배기 비탈진 곳에 묻고 물어서 가장 싼 월세 방을 얻고 내 초등학교 동창생 열 명이 낑낑거리며 그 많은 종갓집 짐을 옮겨 주었을 때까지 그나마 우리는 다시 시작하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매일 새벽 난 동래여고로 동생은 반송중학교로 우린 통학을 했다. 하지만 인문계를 다녔던 나는 야간자율학습에 너무 쉽게 지쳐갔고 밤 12시가 다 되어 컴컴한 언덕 배기 골목길을 오르면 동생은 항상 저만치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누나의 안위가 걱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고시절 내 도시락이나 남동생의 도시락 반찬은 항상 두꺼운 맥심 병에 담긴 김치였다. 그것마저도 우리에겐 감지덕지였다. 이 주일이나 한 달을 걸러 어머니께서 오시면 우린 두고 가신 김치를 가지고 다시 오실 때까지 먹어야 했다. 한 달이건 보름이건 정해진 날짜도 없었다. 그렇게 어머니께서 다녀가신 뒤에야 우린 그나마 김치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반찬도 일주일에 한번 내가 일요일에 해 놓은 나물과 몇 가지 되지 않는 밑반찬이 전부였다. 언제 멸치볶음이라도 있는 주일은 우리에게 그나마 횡재수가 붙은 날이기도 했다. 유일한 도시락 김치에 반찬하나 더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2. 여고시절 우리 반에 부 반장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도시락 반찬으로 계란말이를 사왔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는 계란 반찬에 친구들 사이에선 친구가 양계장을 한다는 소문마저 돌았고 참다못한 몇몇 친구들이 물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어이없게도 계란 반찬을 삼 년 동안 먹으면 일류대학을 합격한다는 친구 어머니의 믿음 때문이었다. 조금은 황당하기도 했지만 우린 그 말을 철저하게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친구는 공부도 잘했을 뿐만 아니라 친구 덕에 우리 역시 일년 내내 계란 반찬을 빠지지 않고 먹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으니 그 덤으로 우리마저 일류 대학에 진학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대학의 행운의 내게 부여되지 않았다. 아마도 주말에는 친구를 만날 수 없었고 계란 반찬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난 친구의 계란 반찬을 먹으면서도 수없이 젓가락질을 망설였다. 내 하나뿐인 남동생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분명 내 남동생은 식어빠진 양은 도시락 찬밥에 시어빠진 김치 쪼가리를 먹고 있을 터였다. 사립을 다녔던 내게 친구들의 반찬이 곱고 화려해질수록 난 동생의 유일한 도시락 반찬인 김치만 떠 올랐다. 그렇게 동생 생각으로 책과 가방마저 붉게 물들였던 그 김치 국물 자국처럼 내 마음까지 하루종일 붉게 쾌쾌한 주홍글씨처럼 칙칙한 우울을 맛보고는 했다. 리고 친구에게 계란 한 조각이라도 얻은 먹은 그날은 어김없이 얇은 내 주머니에서 계란 한 개 값이 지출되곤 했다.
3. 그날도 어김없이 우린 늦은 밤 밥상을 앞에 두고 앉았다. 단 하나뿐인 김치와 그리고 늦은 밤 유일한 구멍가게가 있던 가파른 언덕 배기 계단을 올라가서 사온 계란으로 만든 후라이 한 개. 핑계처럼 너무 늦게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던 내겐 저녁밥만 하는 것도 벅찬 때였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마저 배고프고 굶주리던 내 여고 시절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허기졌던 그러나, 살아있음만으로도 감사했던 그때에 우린 주림을 찬으로 열심히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우리 집 창가를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얼른 고개를 든 순간 함께 세 들어 살던 옆집 아저씨와 두 눈이 마주쳤다. 바로 그 순간과 함께 나도 모르게 밥상을 내 몸으로 덮고 말았다. 초라한 우리 식단이 창피해 죽을 것만 같았다. 내 한 몸으로 우리의 치부를 덮을 수만 있다면 감추고 싶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최소한의 내 자존심이었을까. 그날 저녁 더 이상 밥도 먹지 못하고 급체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 집엔 그 아저씨의 늙은 노모가 끓여주신 된장찌개 한 그릇이 두 손에 쥐어졌을 때 난 겨우내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 가난이란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설움이 울컥 솟아올라 맛있게 보글거리는 된장 뚝배기에 짠 내 눈물 한 방울을 섞고 말았다. 그리고 누나의 눈물 한 방울이 든 그 된장찌개에 이른 새벽 동생은 너무도 맛있게 밥을 말아먹었다.
4. 그런데 우습게도 난 아직도 계란만 보면 남동생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 못난 누나의 잘못으로 지금의 동생의 작은 키 역시도 영양 결핍으로 성장을 멈춘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계란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좋은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유일한 반찬이었던 계란 한 개와 나의 눈물이 섞인 된장찌개와 누나의 눈물이 든 된장찌개에 맛있게 밥을 말아먹던 내 남동생의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게 보이곤 한다. 그래서일까, 이제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바보처럼 계란을 먹을 때마다 울컥 울컥 설움에 목이 메이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