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웠던 고향이야기
이 수 석
까맣게 잊었던 고향의 정겨웠던 일들이 새삼스럽게 떠오를 때가 있어서 몇자 적어봅니다.
압구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배 과수원입니다. 선후배들이 삼삼오오 모여 가지치기를 하여 용돈을
벌어 쓰기도하고 온 동네가 배밭으로 둘러쌓여 있기에 봄이면 배꽃이 만발하여 온동네 풍경이 장관이었습니다.
배꽃이 지고 열매 솎기를 시작 할때면 동네 아주머니들과 처녀들 삼삼오오 모여 일하는 모습들이 배봉지 끝날 때까지
삶의 활력이 넘치는 계절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동네 앞으로는 한강물이 흘러 봄철에 비가 많이 내리면 한강물이 잔뜩 불어나 뱀장어 치어들이 상류로 올라갈때
뜰체를 가지고 강뚝으로 나가 마을 사람들이 뱀장어를 많이 잡아다가 집집마다 잔치를 벌이듯 했습니다.
가을이면 까치벌 논꼬에서 사금파리 깔아놓고 밤에도 등불을 켜놓고 게를 잡던 생각도 나고 가을 비가 제법 쏟아지는
날이면 까치벌 무지개 개울물이 넘쳐나서 함께 쓸려 내려오는 참게, 뱀장어, 메기, 붕어, 잉어 등등, 넘쳐흐르던 개울물은
모래사장에 다 스며들고 모래위에 펄떡이는 물고기들을 잡느라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던 즐거웠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까치벌 무지개개울 위에는 한겨울에도 얼지않는 빨래터 우물이 있었는데 추운겨울 김이 무럭무럭 나는 까치벌우물에서
온동네 아낙들이 빨래를 즐겨 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압구정의 추억을 얘기할때 양짓말 느티나무를 빼놓을 수 없죠. 단오때가 되면 마을에서 짚단을 걷어다가 밧줄을 꼬아서
느티나무에 그네를 맵니다. 배봉지를 씌우는 계절, 과수원에서 하루종일 일을 하고도 저녁 바람 시원한, 강바람이 올라오는
분위기 좋은 저녁에 청춘남녀들이 가슴 설레이면서 그네를 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또한 여름 장마때면 한강에 큰 홍수가 나서 상류에서 초가집들과 여러 나무기둥들, 또 지붕위에 올라탄 사람까지 떠내려가는
딱한 광경도 압구정에서는 자주 볼 수가 있었습니다.
한여름이면 열심히 농사를 지은 채소들을 지게에 지고 리야카에 싣고 한남동 나룻배를 타러 가는데 근처 여러 동네 농사꾼들이
식전에 한꺼번에 몰려나와 나루터가 너무 복잡해서 눈치껏 새치기를 하여 배에 오른 기억도 납니다. 한남동 시장에서 야채를
모두 다 팔고나서 뜨끈한 우거지 선지해장국 한그릇에 피로가 풀리고 기운이 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압구정에는 야학당이라 부르기도 하고 공회당이라 부르기도 하던 마을회관이 있었는데 여기에 방을 들여 겨울이면 불을 때고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쉼터이기도하고 밤이면 야경을 돌아 도둑들로부터 마을을 지키기도 하였습니다. 이 마을회관에는 높이
종이 매달려 있어서 대동회의때나 동네 불이나면 불종을 요란하게 쳐서 마을분들이 모이기도 했는데 6.25전쟁 때 총알구멍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압구정 후배들에게 들려 줄 추억거리가 많은데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